누구나 어린 시절의 행복한 추억 하나쯤은 가지고 있지 않은가.
나에게 어린 시절, 이라고 했을 때 망설임 없이 떠오르는 이름은 '박우진'이다.
쟤는 아니었나, 싶어서 영 섭섭하지만.
솔직히 좀 많이.
완전.
친구 A의 시점
*
"야, 우진아. 이리 와봐."
"예, 형."
조별 과제 조장 재환 오빠의 말에 묵묵히 움직이는 우진이를 눈으로 좇았다.
조별 과제를 준비하는 내내 조별 과제 내용보다 이 생각이 더 많이 들었다.
내 기억 속 우진이는 저렇게 과묵한 애가 아닌데. 쟤가 진짜 박우진이 맞나.
진짜 박우진이면, 이렇게 나 쌩까는 건 어떻게 설명할 건데?
"어어. 고마워."
재환오빠가 프린트물을 한 장씩 정리해서 우진이에게 주면 우진이가 앞 장에 조원 이름을 쓰곤 스테이플러로 집어서 하나씩 나눠준다.
멍하니 바삐 움직이는 우진이의 손을 바라보다 그 손이 불쑥 나에게 다가와서 혼자 화들짝 놀랐다가 얼버무리며 고맙다 말했다.
아, 쪽팔려.
그리고 쪽팔려하는 그 와중에 갑자기 다시 그 손이 훅 내 앞으로 들어오더니 내 프린트를 다시 가져가기에
물음표 잔뜩 붙은 표정으로 나도 모르게 쳐다보며 으어? 하는 소리를 냈더니 흘긋 날 쳐다본다.
와, 의성어 대잔치냐. 개쪽팔려.
영문도 모르는 채로 우진이를 또 빤히 쳐다보게 됐다.
옆 테이블에 친구가 있었는지 (친구랑 인사 한 마디를 안 했었으면서) 갑자기 가선
내 이거 쫌만 쓴다. 하는 말과 함께 스카치 테이프를 떼오곤
내 프린트 뒷편 스테이플러 심에 그걸 붙힌다.
"아..."
"니 여기저기 잘 찔리는 거 까뭇다."
"어?"
"화장실이랑 다 다녀왔으면 이제 모이자. 마지막으로 체크하게."
"예."
어?, 하고 당황한 기색을 보이자 지가 말해놓고 지도 깜짝 놀라는 게 보인다.
내가 덜렁거려서 여기저기 잘 찔리고 베이고 잔상처 자주 나는 게 기억나 박우진?
별 생각없이 내뱉은 것처럼 들렸는데, 그 말에 나 혼자 의미 부여 하는 거야?
우진이도 나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와중에 재환 오빠의 목소리가 들리자 대답하더니 얼른 가버린다.
너 뭐냐, 진짜.
*
대학교 생활에서 제일 싫은 게 뭐냐고 주위 언니, 오빠들에게 물으면 다들 한 순간의 지체 없이 '조별과제'라고 답했다.
뭐 같은, 뭔발, 개어쩌고, 하는 욕지거리로 수식하며.
지레 겁먹고 시작한 조별 과제는 너무나도 평온했다. 조장인 재환오빠가 일단 크게 한 몫하셨고
다행히 조원 중에 무임승차를 할만큼 양심이 없다거나 보노보노 피피티를 만드는 똥손이 없는 것도 한 몫 했다.
재환오빠 성격에 둘 다 가만히 두지도 않았겠지만.
여하튼 그저 무난하고 평탄하게 흘러가는 내 첫 번째 조별과제에서 (나 혼자) 신경 쓰이는 점은 단 하나였다.
박우진.
( 물론, 뭐. 우리 언니가 지금 현재의 나의 평탄한 조별 과제는 대학 생활 운 몰빵이 분명하다고 악담했지만.
그건 무시하기로 한다. )
조별과제를 준비하는 내내 말없이 재환오빠가 준 분량을 꼬박꼬박 해내서 특별히 눈 밖에 나지도,
그렇다고 성격이 엄청 활발한 것도 아니라 (오히려 조용하다) 아주 눈에 띄는 편도 아니었던 박우진은 분명 내가 알던 그 부산 박우진이 맞다.
박우진 이름 석 자 하며, 입만 열면 튀어나오는 부산 사투리나 어렸을 때 그대로 큰 생김새까지.
다른 건 딱 하나 성격이었다. 어렸을 때 내 단짝친구 우진이는 엄청 개구쟁이였다.
맨날 날 놀리고 울리고, 울면 또 미안하다고 달래주다가 또 놀리고, 그러다 다른 남자애들이 날 놀리면
지가 더 화내면서 걔네랑 싸우고.
"ㅇㅇㅇ, 너 너무 대놓고 우진이한테 관심 있는 거 티내는 거 아니냐?"
"예? 어우, 오빠 저 좀 그만 몰아가세요. 맨날 저만 괴롭히세요 왜."
"네 분량은 제대로 다 하고 우진이 뚫어져라 쳐다보지?"
"아, 저를 뭘로 보시고. 당연하죠. 저 장학금 받고 들어왔어요. 왜 이러시나."
허헣, 하는 멍청한 소리를 내면서 우진이에게서 시선을 돌리고 프린트 물로 시선을 고정시켰다.
아... 쪽팔려...
옆에 앉은 우진이의 시선이 느껴졌다.
야 인마, 그만 쳐다봐.
진짜 존나 쪽팔리니까......
*
12살 동네 단짝친구 박우진, ㅇㅇㅇ
사회체육과 17학번 박우진, 무용과 17학번 ㅇㅇㅇ
서로를 수식하는 말이 이렇게 바뀔 수가 있나.
역시 내가 서울로 이사오고 얼굴 못 보고, 연락 못하고 산 세월이 무서운 건가.
처음 하는 조별 과제가 과가 섞여서 하는 조별 과제라 더 걱정하고 쭈뼛쭈뼛 거렸었다.
같은 조가 된 사람들끼리 모이고 나서 나 감탄했잖아.
와, 어떻게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냐. 하고.
하하, 하고 멋적은 웃음을 흘리며 자리에 앉아있을 때 마지막으로 내 옆자리에 앉은 남자의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랐었다.
너무 익숙한 얼굴이라. 너무 어렸을 때 얼굴이 그대로 남아있는 얼굴이라.
"사체과 17학번 박우진입니다."
이름도 내가 아는 그 이름이 맞아서.
내가 우진일 쳐다보며 어버버 하고 있는 동안 박우진은 아무 생각 없다는듯 담담한 얼굴이었고
어버버 거리고 있으니 놀리기가 좋아서 그런가 재환 오빠는 날 은근히 놀리기 시작했었다.
아, 나중에 듣고 보니 오빠는 그런 식으로 조원들이랑 친해진다고 했다.
'그거 김재환 기술이야. 조원들이랑 친해지는 기술. 그리고 넌 미끼.' 아는 실음과 선배가 그랬다.
그래, 결국 내가 만만했던 거지. 시발...
여튼 내가 우리 조 대표 놀림의 대상이 된 데에 반해 우진이는 '그냥 묵묵히 자기 일 하는 애' 정도의 이미지였다.
뭐랄까, 하도 애가 딱딱해보이고 사담도 없고, 과묵해서 그런가 누구도 놀리려 들지 않는 느낌이랄까.
박우진 때문에 진짜 고민 많이 했다.
'우진아, 나 기억나?' - 존나 삼류 소설 같다.
(아직도 사진첩에 있는 어린 우진이랑 내 사진을 가져와서 건넨다.) - 어쩌라고
'저기... 번호 좀.' - 재환 오빠한테 걸리면 빼박캔트 놀린다.
'우진아, 나랑 학식 먹을래?' - 연서복이야 뭐야?
뭐, 이런 고민을 거치며 결국 난 우진이한테 제대로 말 한 번 못 붙이고 훔쳐보기만 했다.
아, 그래. 내 소심하고 찐따 기질 넘치는 성격 어디 가겠냐마는.
근데 우진이가 날 기억한다는 듯이 말했다.
아, 생각이 더 많아진다. 나 어떡해? 근데 박우진한테 말 진짜 걸고 싶다고.
*
재환 오빠를 필두로 (무려 실음과 2년 연속 장학생이다) 발표까지 마치고 나서야 조별 과제는 성공적으로 끝났고
우진이 생각에 복잡한 마음이었던 나도 (오빠한테 놀림 받기 싫어서) 평소 잘 숙지하고 달달 외워놨던 덕에
큰 어려움 없이 조별과제를 마쳤다.
그리고 이제 난 더 고민한다.
박우진이랑 이제 겹치는 것도 없는데 이제 어떻게 보지?
진짜 보고 싶었다고 말하고 싶은데. 지금 말 안 걸면 이제 못 보겠지?
근데 말 걸었는데 아까 그 말 내 착각이고 나 기억 못하면 나 어떡하지?
아, 그냥 한 번 무안하고 말까. 기억 되새김질 해주면 나 기억하지 않을까?
설마 내가 걔한테 그 정도도 안 되는 사람이었으려고.
"밥 먹었나."
"... 어?"
"니 또 늦잠자느라 안 먹었을긴데."
"..."
"근처에 우리과 여자애들 맨날 들락거리는 떡볶이집 있다. 갈래?"
"..."
"와, 이제 떡볶이 싫어하나."
"... 너 진짜 미워."
"야... 와, 와 우는데?"
내가, 내가 너 때문에 혼자 얼마나 고민했는데.
너 솔직히 내 표정에서 그거 다 보였잖아, 근데도 말 한 번을 안 걸어주고.
사람 다 변한 것처럼, 나 기억 하나도 못하는 것처럼. 너 왜 그랬는데.
닌 이제 20살이나 먹어놓고도 나 놀리냐?
뭐, 대충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이랬다.
울음이랑 섞여서 나와서 무슨 옹알이마냥 터져나왔겠지만 어떻게 용케 알아 듣는지 박우진은
고분고분 대답을 다 잘 해줬다. (많이 당황했는지 자꾸 말을 더듬었지만)
내가 우니까 어쩔 줄 몰라하면서 뭐 마려운 강아지마냥 있다가
결국 어색하게 날 안고 토닥거린다. 아, 박우진 너 지금 토닥거리는 거 그거 엄청 어색해보인다고.
엄청 뚝딱거린다고, 네 행동.
어렸을 때도 딱 이랬던 것 같은데.
독방에서 우진이 짤을 우르르 던져준 우진맘 듀가 원하던 소재로 들고 와씁니다... 헤헤...
(짤이랑 소재 준 듀 사라해!)
아까 올린 글은 어제 써놨던 글이고 이건 오늘의 -뜻밖의 너무 술술 잘 써짐- 이라서 올려봐요. ㅋㅋㅋ
제가 드디어... 절대 나보다 어린 애 덕질은 하지 말아야지... 해놓고 미자 덕질을 하고 있습니다... ^ㅁㅠ 우지나 싸라해...
아프지 마... 데뷔해... 따흐흑
새내기 느낌 나게 17학번이라 써봤어요. 저는 헌내기지마는... ^ㅁㅠ
분명 저는 며칠 뒤가 시험인데! 과제도 아직 남았는데! 이케 여유롭게 글을 쓰고 있으까여? 8ㅁ8
얘는 아마 두 편 정도 더 있을 것 같습니다.
맞춤법 생각도 제대로 안 하고 호로록 쓴 글 재밌다고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따흐흑 고흐흑 바흐흑,,, (큰절) ㅇrz
프듀 다들 데뷔해주라... ㅁ7ㅁ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