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kaHolic. w. Yeah L
-prologue
"사무실에 쳐박혀서 일만하기엔 아까운날씨네요."
커다란 유리창으로 빈틈없이 들어차는 따스한 햇볕을 바라보며 경수는 미간을 살짝 지푸렸다. 아오, 눈부셔라. 누구 놀리는 것도 아니고. 가뜩이나 마감이 코앞이라 바깥구경은 커녕, 몇일동안 사무실도 못벗어나고 야근인데. 사람 짜증나게시리. 적당한 긴장감이 감도는 아침 브리핑에서의 투덜댐은 신입들의 손에 땀을 쥐게 하는데 충분했다. 뭐든지 빈틈없고 완벽한 모습인 경수에게 한치의 오차란 허용되지 않았다. '처음이라서 그렇다, 실수다' 이런 말들은 모두 경수에게 잘못을 감추려고 허둥대는 꼴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편집장 경수의 말 한마디에 회의실은 모두 쥐죽은듯 조용해졌고 오직 들려오는것은 긴장된 직원들의 꿀덕대는 소리와 조금 신경질적으로 넘어가는 책장소리였다.
"…이거, 누가 여기다 끼워놨어요?"
조용한 회의실의 적막을 가르고 조금 날이 선 백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거말이야 이거. 팔랑거리는 사진을 두손가락으로 집어들고 사진을 끼워놓은 장본인이 누구인지 찾으려는듯 백현은 고개를 두리번 거렸다. 그러자 곧 그의 눈빛에 기가 죽은 직원 한명이 고개를 푹 숙이고 조심스레 한손을 천천히 들어올렸다. 백현은 손을 든 직원을 흘끔 쳐다보고는 손가락으로 집어들고 있던 사진을 책상에 놓고 주욱 밀어버렸다.
"내가 이사진 이번호에 실지 말라고 분명히 말했을텐데. 그렇게 정신 못차리고 계속 허둥댈껍니까?"
검정색 뿔테안경을 손가락으로 살짝 추켜올리고 다시 다급하게 책장을 넘기는 백현이 직원에게 쏘아댔다. 계속 이런식으로 하면 곤란해요. 경수에 이어 백현까지, 직원들은 모두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었다. 오늘따라 쌍으로 지랄들이야… 직원들은 저마다 끼리끼리 불안한 눈빛을 주고 받았다. 마감날만 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지랄데이, 그날이 바로 오늘이구나- 하고.
"아, 제 맘같아서는 이번달꺼 엎고 다시 하고싶은데. 마감이라 참습니다. 회의 끝났으니까 각자 돌아가서 일들 봐요."
백현은 대충 넘겨보던 책을 덮고 경수를 살짝 쳐다보며 책상을 탕탕 쳤다. 백현의 말이 끝나자마자 직원들은 들썩이던 엉덩이를 드디어 의자에서 떼고 바퀴벌레 떼 처럼 급히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다들 꽁무니에 불이라도 붙었나 천천히 좀 나가요 천천히." 경수는 도망치듯 회의실을 나가는 직원들을 보며 혀를 끌끌 찼다. 하여간 다들 참을성들은…
직원들이 회의실을 다 빠져나간후 넓은 공간에 경수와 백현만이 남아 자리잡고 있었다. 백현은 마지막 사람까지 모두 빠져 나가는 것을 확인하고는 근질거리는 입을 급하게 열고 경수에게 따지듯 물었다.
"이번달 왜이래? 엉망진창이야. 마음에 안들어 표지부터가" 백현은 쓰고 있던 뿔테 안경을 벗어 책상에 올려놓곤 기지개를 펴며 말했다. 맘에 안들어 진짜.
"…이번에 표지모델 두명인가 펑크났잖아. 그래서 그렇게 부실한거다."
"아, 맞다… 그걸 까먹고 있었네. 근데 이번달은 펑크 안내는거 확실하지? "
그제서야 납득이 간다는듯 고개를 끄덕끄덕 거리던 백현이 책상위에 어지럽혀져 있던 종이가지들을 주섬주섬 손에 쓸어담았다. 이번에 펑크내면 각오 좀 단단히 하라그래. 우리가 어디 삼류 패션 잡지 회사도 아니고. 입을 삐죽대며 마음에 안든다는 듯히 잔뜩 짜증을 내며 말했다.
"이번에도 펑크내면, 뭐 우리 보다 그쪽 손해가 더 크겠지. 알아서 잘 납실꺼야." 경수는 어깨를 으쓱하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을 뱉었다.
"그래- 이번엔 진짜 펑크안내겠지?"
"그딴 새끼들 말고도 우리 표지모델 써달라는 애들 수두룩 빡빡해. 목숨거는 쪽은 우리가 아니라 걔네 쪽이어야 맞지. 아무리 탑모델이면 뭐해. 탑모델이면 일정 잡혀있던거 막 자기네 마음대로 취소해도 되나? 너무 막가파야. 나 어리다고 무시하기라도 하는건지 원."
젊은 편집장을 고깝게 보는 눈도 참 많았다. 새파랗게 어린게 빽써서 들어왔다는 뒷소문도 항상 경수의 뒷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녔다. 하지만 이리저리 근거없는 말들에 뭣하러 구차하게 해명이 필요 있겠는가, 행동으로 보여주자는게 경수의 모토였다. 남 씹기 좋아하는 기질이 본능적인 사람들인지라 무성한 뒷소문만 몰고다니는 적당한 씹을거리의 등장에 모두 경수에게 하이에나처럼 달려들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뭐, 금방 깨갱하고 걸음아 나살려라 도망간 사람들이 태반이었지만.
벌써 육개월째 국내시장, 더 나아가 해외시장에서까지 내로라할 패션잡지사 르망의 편집장을 맡은 경수의 능력은 이바닥에서 소문이 파다할 정도였다. 항상 빈틈없이 완벽한 흐트러짐이 없는 경수의 모습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피곤감을 불러 일으킬정도로 심할 정도였다.
'워커홀릭' 바로 그를 보고 지어낸 말인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