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국지색 (傾國之色)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벚꽃을 닮은 그대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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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
소녀는 정인에 대해 재촉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았지만, 대답하지 못했다. 궁의 고위 관직을 맞고 있는 아버지의 직책 덕분에 금혼령이 내려지기 전 혼인을 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러하지 않는다면, 소녀는 처녀단자를 써야만 했기에. 그래서 혼기가 다가오는 소녀에게 혼인은 급한 것이었고, 금혼령을 피하기 위해서는 더더욱 급했다.
눈이 내리는 겨울, 소녀는 바깥 구경을 하기 위해서 저잣거리로 나섰다. 저잣거리에는 예쁜 비녀들 그리고 예쁘게 수를 놓은 수건 등 소녀의 마음에 쏙 드는 물건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유독 눈에 띄는 비녀가 있었다. 분홍빛을 띠는 벚꽃을 닮은 비녀.
소녀가 한참을 바라보자 상인은 소녀에게 하나밖에 없는 거라며 소녀를 설득했다. 하나밖에 없다는 말에 혹한 소녀는 주머니를 찾았다. "아... 두고 왔나 봐요."
소녀는 손에서 비녀를 내려놓았다. 소녀가 손에서 비녀를 내려놓기 무섭게 한 소년이 비녀를 들고선 계산했다. 소녀는 울상을 지었다. 돈을 가져오지 않은 것을 후회하며.
그때였다. 비녀를 산 소년은 소녀의 눈높이를 맞추고선 비녀를 손에 쥐여주었다. 소녀는 기분이 좋았지만 당황해 소년을 쳐다보았다. 소년은 소녀를 보고 살짝 웃고선 사라져 버렸다.
소녀는 소년이 준 비녀를 머리에 꽂고서 매일 저잣거리에 나갔다. 그 소년도 소녀와 같이 매일 저잣거리에 나왔다. 쑥스러움을 많이 타던 그들이었지만 어느새 소녀와 소년은 함께 저잣거리를 돌며 서로에게 마음을 열었고, 이후 서로에게 친구 이상의 감정을 가지게 되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좋아해."
한 여름밤저녁 소년은 소녀에게 마음을 고백하였고, 달빛에 비친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다음 날 서로의 마음을 알게 된 소녀는 소년에게 좀 더 예쁘게 보이기 위해 도화분까지 찍어 바르고 저잣거리에 나섰다. 소녀는 소년과 만나 무엇을 하고 또 무엇을 나눌까 하는 생각에 신이 났겠지.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보여야 할 소년은 보이지 않았다. 소녀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다음 날, 그리고 또 다음 날, 한참을 기다렸지만 소년은 나타나지 않았다.
소년을 처음 만났던 하얀 눈이 내리던 겨울날, 그날을 잊지 못한다.
소년이 자신을 떠나던 그 여름 날, 소녀는 그날을 잊지 못했다.
"그때, 그 도련님은, 여기 사람이 아니셨던 거 같아요."
시녀인 도연이가 낮에 해 준 말이 계속해서 귀에 맴돌았다. 자신도 아는 건 없지만, 그냥 여기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고. 처음 보는 얼굴과, 행동들이 낯설게 느껴지긴 하였으나, 꽤 가문이 있는 집안 자제라고 생각했을 뿐, 그 이상, 그 이하로도 생각해 본 적 없었다.
"여튼, 이제는 볼 수 없는 사람인 건 맞네."
소녀는 다시 눈을 감았다.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벚꽃을 닮은 그대인데.
확인해 주세요! |
처음 올렸던 화는 수정 전 글이었는데 착오가 있었나 봐요 ㅠㅁㅠ 헷갈리시겠지만 다시 봐 주셨으면 합니다. 많이 달라진 건 없지만 떡밥들이 많이 숨어 있어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