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
“오늘은, 그냥 이 시간에 왔어….”
많이 늦은 시간이야. 저녁은 훌쩍 넘었고 밤도 지났어. 해가 뜨기 전, 어둡지도 밝지도 않은 시간이야. 네 시야.
“갑자기 보고 싶어져서 왔어.”
그냥, 갑자기 보고 싶어질 때 있잖아. 분명 씻고 자려고 누웠는데 뜬 눈 사이로, 감은 눈 사이로 네가 아른거려서 나도 모르게 찾아왔어.
“무슨 꿈꿔?”
재미없는 꿈꾸고 있으면, 무서운 꿈꾸고 있으면 눈을 떠도 좋아. 좋아, 네가 눈을 뜨는 게. 근데 슬퍼. 네가 눈을 뜨면 난 조금, 아주 조금 슬퍼져.
“널 닮은 시간이야.”
어둡고 푸르고 시리지만 은은하게 빛나고 아주 작은 환상과 기대를 심어줘. 영원히 붙잡고 싶은 시간이야.
“있잖아-. 오늘은….”
목이 메어와 태형은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아주 작은 골방 벽에 기댄 그는 파리한 얼굴을 하고 누워있는 여자를 더 이상 보지 못하고 커다란 두 손에 얼굴을 묻었다. 미처 가려지지 않은 손 사이로 낮은 흐느낌이 새어나왔다.
“…웃어줘….”
형편없이 뭉개진 발음이 부서지듯 허공에 흩어졌다. 작은 골방을 낮은 울음소리가 가득 메웠다. 태형은 울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여자의 목소리가 들리기 전까지.
‘…누구세요?’
태형의 울음소리에 잠을 깬 건지 파리한 얼굴로 눈감고 있던 여자가 눈을 뜨며 물었다. 태형이 붉어진 눈과 볼에 눈물길을 그리며 고개를 들었다.
‘아- 뭐야, 김태형?’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움직이지 않는 몸을 억지로 움직여 여자에게로 다가갔다.
‘그래. 오늘은 또 무슨 일인데?’
여자가 인심 쓴다는 듯 말하자 태형이 나오는 웃음을 숨기지 못하고 몸을 들썩이며 웃었다. 그리고 답하기 위해 입술을 달싹였다.
‘내가 언제는 무슨 일이 있어서 널 찾아왔냐.’
아직 입술을 열지 않았는데 태형의 목소리와 같은 목소리가 먼저 답을 내놓았다. 태형의 몸이 로봇처럼 멈췄다.
‘그러니까~ 일이 있을 때만 좀 오시라고요~’
‘하, 참. 그래도 오늘은 일 있어서 온 거거든요?’
‘정말~? 무슨 일인데?’
‘네가 너무 보고 싶은 일.’
‘어어억-! 그게 뭐야! 으~ 닭살! 김태형!’
태형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 것도 하지 않았는데 여자는 즐거워했고 그와 똑 닮은 목소리도 즐거워하고 있었다. 끔찍이도 좋고 슬픈 상황에 태형은 견디지 못하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하… 하하하…!”
다리가 후들거려서 더 이상 서있지 못하겠어. 네 목소리를 들으면 힘이 날 거라 생각했는데 역시 오늘도 아닌가봐.
‘좋아해.’
‘나도 알아.’
‘아! 무드 없어! 너도 좋아한다고 해야지! 태태!’
‘좋아해.’
“좋아해.”
진짜야. 진짜 좋아해. 그래서 네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너를 보는 것만으로도 다리에 힘이 풀리고 눈에 눈물이 고이는 거야.
‘와하하하! 진짜 좋아. 좋아한다! 김태형!’
“그러니까….”
웃어줘. 거기 있는 나 말고. 여기 있는 날 보고
“…웃어줘. 제발….”
태형은 웃고 있는 여자를 보며 간절히 말했지만 잔인하게도 빔이 비춰주고 있는 여자는 그를 향해 웃어주지 않았다.
+) 네시 노래 듣고 뭐라도 적고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