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를 좋아했다
남들이 하는 그 흔한 짝사랑이 내게도 왔다. 직감적으로 너를 좋아한다고 느꼈던 건 아니었다. 나는 언제부턴가 너를 눈으로 쫓고 있었고, 너와 우연히 눈이 마주쳐버릴 때면 숨 쉬는 방법을 순간적으로 잊어버리고는 했다.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굳어버린 나에게, 너는 슬며시 미소를 흘리곤 했다. 그 미소가 내게는 잠을 이루지 못하는 요소인 줄도 모르고. 가끔은 네가 미웠다.
"어디 가?"
너는 내게 가끔씩 관심을 던지곤 했다. 나는 너의 그 작은 관심에 생각이 많아졌다. 혹시 너도 나를. 어처구니 없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내가 매점을 간다고 할 때면, 너는 꼭 내 옆에 붙어 같이 매점을 갔다. 그랬기에 나는 너와 친구가 될 수 있었다. 그런데 왜. 왜 꼭 나와 같이 매점을 가느냐고 묻고 싶었다. 당황할 네가 눈에 선했기에, 나는 질문을 속으로 삼켰다.
"초코 빵 좋아하나."
매점에 올 때마다 초코 빵을 사먹는 나에게 너는 그렇게 물었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너보다는 덜하지만, 나는 초코 빵을 굉장히 좋아했다. 너는 초코 빵을 입에 무는 날 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귀엽다. 너는 종종 내게 그런 말을 뱉곤 했다. 내 심정이 어떤 줄도 모르고. 나는 입 안의 초코 빵을 마저 씹어 삼킬 수가 없었다.
"체했나. 안색이 안 좋은데."
"아니, 괜찮아..."
"안 괜찮아 보이니까 묻는 거잖아."
너의 귀엽다는 그 말에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빵을 억지로 씹어 삼키다 결국 체해버렸다. 여전히 내 속을 모르는 너는, 내 손을 잡아왔다. 친구로서의 걱정인 건 나도 잘 알고 있었다. 너는 미간까지 찌푸린 채로 나를 걱정했다. 그러지 않아도 괜찮은데. 차라리 네가 나에게서 신경을 꺼줬으면, 하는 못된 생각까지 들었다. 내 감정과 같지 않다면, 차라리.
결국 너에게 손을 내맡길 수밖에 없었다. 체한 것을 잘 낫게 해줄 수 있다는 너의 호기로운 말 때문이었다. 내 손을 주무르는 너를 나는 빤히 쳐다보았다. 밝은 빨간색의 머리는, 네가 나의 눈에 띈 이유 중 하나였다. 나는 홀린 듯 너의 머리칼로 손을 가져갔다. 정신을 차렸을 땐, 네 행동이 이미 멈춘 후였다.
"왜?"
"아, 그게."
"빨간 머리 맘에 안 드나."
너는 괜히 네 머리를 만지작거리며 내게 물어왔다. 황급히 손을 뗀 나는 너의 머리색 마냥 빨갛게 물든 얼굴을 세차게 저어댔다. 그게 아니라. 너는 그런 나를 보며 입 꼬리를 씰룩댔다. 뭐가 그렇게 웃긴지. 나는 지금 이렇게나 창피한데. 민망함에 너의 어깨를 툭 밀어냈다.
"니 지금 얼굴 진짜 빨갛다."
"더, 더워서 그래!"
"바람이 이렇게 부는데?"
너는 활짝 열린 교실의 창문을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모른 척 좀 해주지. 나는 고개를 푹 숙여 울상을 지었다. 얼굴 빨개지면 더 못생겼는데. 나는 두 손으로 내 볼을 감쌌다. 손도 뜨거워서, 갖다 대도 무용지물이었다. 살풋 웃은 너는 고개를 숙여 나와 시선을 맞추려 했다. 나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제발. 너의 장난기가 발동되지 않기를 빌었다.
"내 손 시원하다."
전혀 예상치 못한 전개였다. 너는 내 손을 치워내고서 네 손으로 내 두 볼을 감쌌다. 니 볼 엄청 뜨겁네. 내 볼을 감싸 쥔 너는 웃음기가 잔뜩 섞인 목소리를 뱉었다. 나는 너와 마주 웃을 수 없었다. 내가 체했다는 사실은 잊은 지 오래였다. 살랑거리는 봄바람이 내 가슴께를 간지럽혔다. 다 네 탓이다. 내 심장이 간질거리는 것도, 내 두 볼이 붉게 달아오른 것도. 밤마다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것도, 다 네 탓이야.
"이것 좀 맡아 줘."
"응."
"오빠 골 넣는 거 잘 봐라."
너는 내 머리를 장난스럽게 흩트리고서 축구장으로 달려 나갔다. 체육시간이면 너는 네 체육복 상의를 내게 맡겼다. 나는 너의 체육복을 보물 다루듯 꼭 끌어안고서 너를 눈으로 쫓았다. 튀는 색의 머리를 하고 있는 너는 축구를 잘 하기로 소문이 난 남학생이었다. 네 잘생긴 얼굴 탓일까, 네 뛰어난 축구 실력 탓일까, 네 매력 탓일까. 너는 인기가 많았다. 그래서 나는 더욱 너에게 다가갈 수가 없었다. 친구로라도 남지 않으면 나는.
"야! 임영민!"
열심히 너를 눈으로 쫓고 있을 때였다. 발을 잘못 디딘 네가 운동장 흙바닥에 굴렀다. 나는 네 체육복을 꼭 끌어안은 채로 달려갔다. 흙먼지가 내 시야를 가렸다. 다행이도 네 머리칼의 색이 밝은 탓에 너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너를 따라 주저앉은 나는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려댔다. 속상한 탓이었다. 꽤나 크게 구른 너는 제대로 일어나지도 못하는 상태였다.
"괜찮아? 야!"
"아, 괜찮다."
넘어져서 무릎이 크게 까진 상태에서도 너는 실실 웃음을 흘렸다. 아, 쪽팔리네. 너는 네 팔로 네 얼굴을 가린 채 실소를 흘렸다. 이 상황에서 쪽팔린 게 문제냐고. 울먹이는 내 목소리를 들은 네가 몸을 일으켰다.
"왜 우는데."
"그러는 너는. 왜 다치고 난리야!"
눈물을 뚝뚝 흘려대는 나를, 너와 다른 아이들이 당황한 눈초리로 쳐다봤다. 아이구, 울지 말자. 내가 잘못했다. 다쳐서 미안해. 너는 나를 아이 달래듯 달랬다. 다 까진 손바닥을 보니 속이 또 문드러졌다.
"아파서 못 걷겠다. 보건실까지 데려다주라."
너는 능청스럽게 그런 말을 잘도 했다. 볼을 타고 줄줄 흐르던 눈물을 닦아낸 나는 너를 따라 몸을 일으켰다. 너는 익숙하게 내 어깨에 팔을 둘렀다. 쟤 뭐야? 김여주 왜 울어? 뒤늦게 상황을 본 애들이 묻는 소리가 들렸다. 몰라. 뒤 따라 들려오는 답변은 어이가 없다는 듯한 말투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네가 다쳤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속상했다.
"아, 따갑다."
"가만있어. 애 같이 왜 다치고 난리야."
"그러는 너는. 애 같이 왜 울고 그러는데."
너는 또 실실 웃어댔다. 뭐가 그렇게 웃기냐고! 나는 네 팔뚝을 손으로 때렸다. 아, 아프다. 내게 맞은 팔뚝을 손으로 문지르는 와중에도 입 꼬리는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보건 선생님이 없는 탓에 내가 너의 상처를 소독하고 약을 발랐다. 너는 치료를 하는 나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 시선이 너무나도 잘 느껴졌기에, 나는 다시금 내 두 볼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제발 아니어라.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지 않았기를 바랐다.
"또 덥나? 얼굴 빨개."
"아, 몰라."
"모르긴. 내 손 또 빌려줄까?"
너는 상처가 없는 반대편 손을 내게 내밀었다. 나는 그 손을 툭 쳤다. 네 손은 시원했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네 손이 닿으면 그 때는 두 볼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달아올랐으니까. 너는 내게 내밀었던 손을 거두고서 볼을 긁적였다. 민망할 때 나오는 네 습관이었다.
"아이고, 울어서 눈 빨개진 것 좀 봐. 못났다, 못났어."
"야!"
"농담이야, 농담."
너는 내 볼을 콕 찍으며 그렇게 말했다. 나는 너에게 찔린 내 볼을 손으로 감싸며 너를 째려봤다. 아까부터 뭐가 그렇게 재밌는데? 퉁명스럽게 묻자 너는 고개를 갸우뚱할 뿐이었다. 안 재밌는데? 돌아온 대답은 저러했다. 근데 왜 자꾸 웃냐고. 네가 그렇게 웃으면, 나는 마음 편히 웃지 못한다. 심장이 벌렁거려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으니까.
"그러니까."
"뭐?"
"왜 자꾸 웃지, 나?"
말을 하는 와중에도 웃음을 참지 못하는 네가 괘씸해졌다. 어깨를 툭 치고서 너보다 먼저 자리에서 일어섰다. 알아서 오던지! 왠지 모르게 토라진 나는 발을 쾅쾅 구르며 보건실을 나섰다.
"아, 같이 가자!"
웃음기가 섞인 네 목소리에, 나는 결국 또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이번엔 영민이...!
우진이 글도 이 글도 적어도 한 편씩은 더 쓸 것 같아서
알파벳을 붙이긴 했는데... 틈나는대로 올릴게요!
여주의 독백체... 뭔가 더 내 얘기같구 그르네여...(나만 그럼)
감사합니다ㅠㅠ(하트)
+) 아 참 암호닉! 신청 받을게여!! 지금까지 신청해주신 분들 확인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