벙어리장갑 |
- 벙어리장갑 W. 슬로건
눈이 왔다. 아니.... 눈이 온다. 이렇게 또 외로운 겨울을 보내겠구나, 하고 씩 웃었다. 도로에 주저앉아 있는 한 소년이 보였다. 뭔가 이상했다. 초조한 표정을 지으며 손톱을 물어뜯고 있었다. 뒤에는 거대한 트럭이 소년을 보고 클락션을 울리고 있었다. 하지만, 소년은 그저 트럭을 물끄러미 처다볼 뿐 피하지는 않았다. 이러다가 뭔 일 생기겠구나, 하고 소년을 안고 도로를 뛰쳐나왔다. 순간 기분이 좋았다. 나와 심장을 맞대고 있는 사람이, 처음이였기 때문이다.
10년 전 그때, 엄마가 죽었다. 내 앞에서, 뒤에는 아버지가 보였다. 믿기 힘들었다. 그 뒤로는 말이 안나왔다. 갑자기 손톱을 물어뜯는 버릇도 생겼다. 왜 그러지 하고 궁금하지도 않았다. 도움을 청하지도 않았다. 난, 혼자였으니까. 내 곁엔 아무도 없었으니까. 도로에서 자살을 하려고 했다. 내가 정말 이렇게 죽어야 될까, 초조했다. 하늘을 보고, 눈을 감았다. 하지만 지금. 난 누군가와 심장을 맞대고 있다. 심장이 두근댔다.
"괜...찮아?"
소년은 말이 없었다. 그저 날 보며 손톱을 아직도 물어뜯었다. 뭔가 숨기고 있는거 같았다.
"손톱은 왜 물어뜯어, 너 말 못해?"
말을 하며 소년의 손을 끌어당겼다. 한손에 잡히는 여리여리하고 하얀손목이 눈에 띄었다. 그러자 소년이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올해들어 보는 첫 웃음이였다.
"너...정말 괜찮은거야? 내 말은 알아 듣는거지?"
그 순간, 소년의 배에서 꼬르륵 하는 소리가 들렸다. 배고픔이 심했는지 엄청 큰 울림이였다. 하긴, 그 손목에 그 얼굴. 엄청 얇고 갸련했으니 배고펐다는걸 의심할 여지도 없었다. 일단 소년의 배는 채워야 할 것 같아 말 없이 손목을 잡고 골목을 나왔다. 더 이상 말을 해봤자 돌아오는건 그저 순수한 웃음뿐이였기에. 소년은 아무 저항도 없이 날 그 큰 두 눈으로 날 똘망똘망 바라볼 뿐 걸음을 멈추는 등의 짓은 하나도 하지 않았다. 아마도 내가 필요한 듯 했다. 처음으로 날 필요로 하는 사람이 생겼다. 가슴은 또 다시 두근댔다. 거리를 걷다 근처의 분식집으로 들어갔다. 옷에 있는 모든 주머니를 털어 돈을 찾았다. 간단한 분식을 시키고 소년과 함께 의자에 앉았다.
"너, 내 이름 모르지? 난 김종인이라고 해. 김.종.인. 네 이름은...."
하고 순간 말을 멈췄다. 소년에게 백번천번 이름을 물어봐도 대답을 하지 않을것이라고 확신했다. 자꾸 너라고 하는것도 뭔가 이상했다. 이름을 지어주기로 했다. 순간, 머리에 하나의 생각이 스쳐갔다.
"어리야! 벙어리, 벙어리 할때 어리. 어리야, 어때?"
비록 이름의 뜻은 별거 없지만 그래도 소년에게 너라고 부르는 것보다는 '어리', 라는 하나의 호칭을 지어주어서 기뻤다. 소년이 내가 지어준 이름이 웃긴듯 나에게 눈웃음을 지었다. 맘에 들지 모르겠지만 난 그래도 소년에게 '어리'라 부르기로 했다. 그리고 이것 또한, 내 생애 가장 아름답자 처음 본 눈웃음이였다. 어리의 눈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그 동안 외로웠고 탁한 회색 빛이였던 마음이 어리로 인해 점점 하얗게 변하는 것 같았다. 음식이 나왔다. 역시 어리는 많이 배가 고팠는지 옆의 포크를 들고 허겁지겁 떡볶이를 입에 넣었다.
"어리야, 맛있어?"
어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끄러미 어리를 처다보는 내가 쑥쓰러웠는지 포크에 떡을 하나 꽂아서 나에게 건냈다. 어찌 하는 짓이 왜 이리 여자 같은지, 남자인데도 너무 귀여웠다. 어리만 보고있으면 나도 모르게 입가에 웃음이 나왔다. 난 어리가 건낸 떡을 먹는 대신 옆에 있던 컵에 물을 따라 어리에게 건냈다. 또 씩 웃더니 포크를 접시 위에 놓은 후 물컵을 받아 후루룩하고 물을 먹었다. 지금까지 내가 겪어보지 못했던 모든 일들을 어리를 만난 후부터 겪어보는 중이였다. 그리고 심장은 여전히, 두근댔다. 언뜻 생각을 했다. 어리도 나처럼 심장이 두근거릴까, 그 순간에도 어리는 날 보고 씩 웃음을 지었다. 방금까지 했던 생각은 내 머리에서 지워버렸다. 왜냐면 그 웃음은 나에게 주는 큰 선물이자 내 생각의 동의같았기 때문이다. 음식을 다 먹고 거리로 나왔다. 벌써 해는 지고 하늘은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옆에 있던 어리의 옷차림이 눈에 들어왔다. 난 다행히 얹혀사는 형의 옛날 패딩을 입고 있었지만 어리는 얇은 가을티 한장에 발목까지 오는 면바지만을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리에게 패딩을 입혔다. 그리고 거리 옆에 주렁주렁 있는 한 노점으로 뛰어갔다.
"아저씨, 장갑 있어요? 따뜻한 거로요."
노점 아저씨가 건내준 장갑을 받고 아까의 거스름돈으로 계산을 한 후 어리에게로 갔다. 그러고보니 장갑은 벙어리장갑이였다. 어리와 꼭 닮은, 벙어리 장갑. 어리의 손에 벙어리 장갑을 씌워줬다.
"어리야, 춥지 않게 하고다녀...어리야....."
어리에게 말을 한 후 머리를 쓰담었다. 가지런한듯 하지만 엉킨 머리가 내 손과 바람에 살랑거렸다. 이번 겨울에 또 하나의 목표가 생겼다. 그 전까지의 목표는 잘 지키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꼭 지킬수 있을거라 확신했다. 그건 바로...어리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
반응 좋으면 더 쓸 예정입니다!
문체가 별로 안좋아요ㅠㅠㅠ
그리고 소설 중 어리=경수 라는 점, 양해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