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물을 가장한 불도저 김재환 :: 번외 1
w.서화
1. ㅇ간호사의 금연 프로젝트
담배. 분명 내 눈이 잘못 된 게 아니라면 지금 그녀의 손에 들린 하얗고 기다란 게 담배가 확실하다. 지난 주였나, 의국 복도에서 스쳐 지나간 그녀에게서 옅은 담배 냄새가 나는 것 같아 “너 담배 피워?”라고 물었을 땐 “끊은 지가 언젠데-” 하며 고개를 내저었는데. 왜 지금 내 눈엔 저 예쁜 입에서 희뿌연 연기가 새어나오는 것이 담기는 건 지. 나는 저절로 구겨진 인상을 펴지 않은 채 그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얼씨구, 담배 안 피운다며.”
“헐, 뭐야. 너 언제 왔어?”
그녀는 갑작스런 나의 등장에 급히 담뱃불을 발로 비벼 껐다. 한 눈에 봐도 당황스러움이 잔뜩 묻어 나오는 얼굴로 나를 슬쩍 올려다보았지만 봐 줄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담배가 건강에 해롭다는 건 비전문가들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인데 간호사라는 사람이 그걸 뻑뻑 피워대는 게 가당키나 한가. 뭣도 모르던 대학생 시절에야 담배 피는 그녀의 모습이 섹시하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녀의 건강이 우선이었다. 가뜩이나 일도 많아 힘들어하면서 담배까지? 절대 안 되지. 나는 표정 변화 하나 없이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장난을 치려는 건지, 이 상황을 무마하고 넘어가고 싶은 건지 은근슬쩍 제 손을 올려놓으려 하길래 인상을 확 찌푸리자 그녀는 헛기침을 내뱉으며 제 유니폼 주머니로 양 손을 집어넣었다.
“담배 줘, 얼른.”
내 목을 타고 흘러나온 목소리는 예상보다 훨씬 단호했다. 이에 그녀의 입꼬리와 눈 끝이 주인에게 혼난 강아지 마냥 끝을 모르고 축 쳐졌다.
“자기야아, 나 진짜 딱 이거 까지만 피면 안 될까? 나 두 개비 밖에 못 태웠어. 담뱃값이 얼마나 비싼데 아깝잖아, 응?”
내가 저 눈빛에 약한 건 어떻게 알고. 평소엔 애교의 ‘애’자도 찾아보기 힘든 그녀는 아주 자기 불리 할 때만 ‘자기야’라느니, 말꼬리를 늘린다느니, 제 두 눈을 축 쳐지게 만든 채 나를 쳐다본다느니. 내가 제게 껌뻑 죽는 포인트만 콕콕 집어서 들이댔다. 별 거 아닌 일에는 이에 홀딱 넘어가 봐주고 봐줬지만 담배와 같은 일은 절대 안 된다. 나는 입꼬리를 살짝 당겨 웃으며 말했다.
“응, 안돼요. 자기야. 내놔 얼른.”
전보다 훨씬 더 단호해진 내 말투에 그녀는 축 늘어뜨렸던 입꼬리를 올리다 말곤 도톰한 입술을 쭉 내밀어 제 불만을 토해냈다.
“아, 진짜. 너도 피웠었잖아. 끊기 힘든 거 알 거 아냐.”
“알지. 근데 난 끊었잖아. 그리고 너 저번에 나한테 끊은 지 오래라고 했어, 안 했어.”
내게 거짓말을 했던 사실을 곱씹자 그녀의 입술이 또 한 번 내 앞으로 마중을 나왔다. 아, 진짜 이 와중에도 귀엽고 난리냐 왜.
“..했어.”
잔뜩 시무룩해진 그녀에 당장이라도 껴안고 뽀뽀를 퍼붓고 싶었지만 그건 얘가 싫어하길 뿐더러, 일단 담배부터 뺏어야하니 일단 패스. 그녀의 앞에 들이밀었던 손을 한 번 까딱이자 그녀는 순순히 제 주머니에서 담배 곽을 꺼내 내 손 위에 올려놓았다. 무슨 먹을 거 뺏긴 아이마냥 시무룩해진 모습이었다.
“너 앞으로 담배 피는 거 걸릴 때마다 뽀뽀 한 번 씩.”
“뭐?”
“싫어? 그러면 키ㅅ,”
“너 솔직히 말해 봐. 변태지?”
그녀의 미간이 살짝 주름지며 내게로 다가왔다. 나는 가까워진 거리를 더욱 좁히며 그녀의 동그란 이마에 내 이마를 갖다 대곤 작게 속삭였다.
“그걸 이제 알았어?”
“어우씨, 내가 진짜 애인을 만나는 건지 변태새끼를 키우는 건지. 아, 몰라. 나 갈 거야! 따라 오지 마.”
그녀는 7년 째 능글맞은 내 행동에도 여전히 질색을 하며 어깨를 밀쳤다. 이제 좀 적응할 때도 되지 않았나. 딱히 아프지도 않았지만 제 딴에는 소심한 복수라는 걸 잘 알기에 나는 그저 미소를 띤 채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씩씩대며 병원으로 향하는 것뿐인데 왜 저리 귀여움 투성인지. 한참을 그녀의 발자취를 바라보다 시선을 돌린 곳은 내 손에 쥐어진 담배 곽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담배 케이스. 제 직업은 매일 피를 보는 응급실 간호사면서 곽에 그려진 그림은 징그러웠나보다. 그녀를 꼭 닮은 핑크빛 담배 케이스에 피식하며 바람 빠진 웃음이 새어나왔다. 나는 케이스에서 담배 곽을 빼내 마구 구겨 벤치 옆 쓰레기통으로 던져버린 뒤, 케이스를 가운 주머니에 곱게 넣어 조용해진 병원으로 향했다.
아무래도 ㅇㅇ에게 금단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 같았다. 가끔 응급실에 내려가면 잠이 그렇게 많지도 않던 애가 꾸벅꾸벅 졸고 있질 않나, 제 일엔 덤벙대도 일 처리는 깔끔하게 하던 애가 신입도 잘 하지 않는 차트 기록 실수를 하질 않나, 눈 밑도 퀭해 보이고. 전형적인 금단현상이 온 흡연자의 모습을 띠고 있는 그녀였다. 날이 갈수록 피곤해하는 모습이 괜히 마음에 걸렸지만 지금 안 끊으면 앞으로도 끊기 힘들 거라는 걸 잘 알기에 나는 계속해서 그녀의 흡연을 막을 수밖에 없었다.
***
“가자.”
“우리 집, 너네 집?”
“너네 집 가자. 너 밤에 돌아가려면 힘들잖아.”
“콜콜.”
오랜만의 오프였다. 게다가 웬일로 둘의 오프가 딱 맞아 떨어져 간만의 데이트까지 즐길 수 있는 여건이 되었다. 뭐, 사실 데이트라고 해도 워낙 돌아다니는 걸 귀찮아하는 연인인지라 정해진 데이트 장소는 단 두 곳뿐이었다. 각자의 집. 연애 초반엔 여기저기 싸돌아다니며 다른 연인들이 하는 걸 똑같이 따라도 해보았지만 우리에게 맞는 방법은 역시 이 것이었다. 오늘은 ㅇㅇ의 집. 늦은 밤에 집까지 돌아가려면 귀찮아 할 그녀를 향한 배려였다. 그녀 또한 이를 알아차렸는지 살짝 웃어 보이며 발걸음을 옮겼다. 가벼운 그녀의 발걸음 앞으로 붉은 노을이 진하게 깔렸다. 벌써 저녁이네.
***
집에 도착해 그녀가 꺼낸 든 것은 지난 번 오프 때, 둘 다 잠에 들어 끝을 보지 못했던 영화의 dvd였다. 우리는 익숙한 자세로 밖에서 사온 팝콘 통을 뜯고, 디비디를 틀고, 영화에 집중했다. 한참을 달려 영화의 중반부 쯤 왔을까, 조용하던 옆자리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흘러 넘어왔다.
“환아, 나 담ㅂ,”
“안 돼.”
“치-”
“애교 부려도 안 된다.”
“아 진짜, 예전엔 애교 부리면 다 해 주더니. 변했어.”
“지금도 다 해주는데 담배는 안 돼.”
“아, 알았어. 안 해, 안 해.”
그녀는 입술을 비죽거리며 티비로 시선을 돌려냈다. 그 모습이 귀여워 자꾸만 웃음이 새어나왔지만 지금 웃어봤자 내게 돌아올 것은 그녀의 원망 섞인 눈빛 밖에 없을 것 같아 속으로만 웃음을 삼켜냈다. 그 이후론 별 투정 없이 영화를 보길래 나 또한 이미 몇 번은 더 본 영화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시작했는데, 왜. 도대체 왜, 내 손을 자꾸만 만지작거리는 것인지. 그냥 만지작거리는 수준이 아니라 깍지를 끼기도, 마디 사이사이를 훑어 지나가기도 하는 것이 묘하게 내 리비도를 자극했다. 신경을 안 쓸래야 안 쓸 수 없는 그녀의 발칙한 행동에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돌린 순간, 그녀는 내 무릎 위로 올라타 배시시 웃어 보였다. 보나마나 담배가 고파 저러는 거겠지, 곧 저러다 말겠지 싶었다.
“자기야.”
“담배 안 된다고 했다.”
일전의 내 예상은 아주 곱게 엇나갔다. 그녀는 무릎 위에 올라타 매혹적인 미소를 띠며 제 동공에 나를 깊게 담아냈다. 이에 나는 두 눈을 꼭 감아 버리곤 미리 선수를 쳐버렸다. 나름 단호하게 이야기 한다고 했으니 ‘이 정도면 그만하겠지’ 라고 생각했으나 그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가버리고 말았다. 꽤 가까이서 느껴지던 그녀의 달뜬 숨결이 더욱 가까이 다가오더니 잠시 뜸을 들였다. 내 눈은 여전히 굳게 닫힌 채였다. 그녀의 작은 웃음소리가 이어졌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가지고 이러는 것인지. 그녀도, 나도. 아니, 어쩌면 나만. 위태위태하다. 간신히 잡고 있는 이성의 끈이 거의 제 손을 벗어 날랑 말랑. 애달픈 줄다리기였다. 그녀의 팔이 내 목에 둘러지자 나는 굳게 감겨있던 눈을 떠 손을 떼어 내려했다. 하필 그 순간에 말캉한 입술이 거칠한 내 입술에 다가왔으니 문제지.
“이래도?”
진한 키스는 아니었다. 수없이 나누었던 그저 잠시의 입맞춤. 단지 그 뿐이었는데 내 리비도는 미친 듯이 날뛰기 시작했다. 끈적한 그녀의 눈빛 때문일까, 어두컴컴한 새벽의 묘한 감성 때문일까.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으,
“응? 이래도?”
뚝. 정말 겨우 잡아내던 이성의 끈이 제 혀를 내어 거칠한 입술을 살살 핥는 네 발칙한 행동에 무참히 끊겨버리고 말았다. 나는 배시시 웃으며 내게서 떨어지려던 그녀의 뒷목을 감싸 급히 입을 맞추었다. 제 예상엔 없던 시나리오였는지 당황해 입을 꾹 다물고 있는 그녀에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어 벌어진 틈으로 깊게 파고들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입 안을 굴러다녔던 사탕의 단 맛이 서로의 입안에 가득해질 쯤, 숨이 달아오르는 지 작은 손으로 내 어깨를 쳐오는 그녀에 빈틈이 없던 우리의 거리엔 겨우 손가락 하나 정도 들어갈 틈이 생겼다. 물론 그 틈은 하얀 실타래와 번들거리는 입술이 다했지만.
“왜 이래. 응? 나 화장실 좀 갔,”
그녀는 잔뜩 상기된 볼을 한 채로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리곤 물었다. 왜 이러냐고. 왜 이러냐니, 정말 모르고 묻는 건가. 나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일어난 그녀의 팔을 확 잡아당겨 도로 무릎에 앉히곤 흘러내린 네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속삭였다.
“어디 가게?”
“..아니 난, 그.”
그녀의 달큰한 목소리는 진득한 내 입술에 무참히 삼켜 들어갔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던 영화는 끝을 맺었고, 작은 빗소리와 두 남녀의 입술이 맞물리며 나는 질척이는 소리만이 작은 집 안을 메꿨다. 재환의 완전한 k.o.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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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금연에 성공하지 못한 ㅇㅇ가..앙대...짧죠..? 압니당헤헿 그래서 구독료도 안 받아요..핳 하지만 번외가 여기서 끝이 아니라는 점! 아직 에피소드 몇 개 더 남아있으니 짧다고 아쉬워하지 마세용!! 금방 다음 에피소드 들고 올테니까요! 사실 에피소드 다 쓰면 들고올까 했는데 그러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아서 첫번째 에피소드 먼저 들고 왔어욥
아 그리고 투표수는 낮았지만 본편의 재환이 시점도 잘 써지면 그냥 들고 오려구요!!! 하지만 잘 써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여..제가 목요일부터 시험이라 멘탈이 나가리 될 예정인지라흡 최대한 들고 올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당 그나저나 여러분 저 글쓰면서 제 취향을 발견한 것 같아요 전 변태가 맞습니다껄껄...그럼 다들 굿밤!!♥ 암호닉도 금방 정리해서 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