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드 블루 C (부제 : 너에게 한 걸음 더) 여주는 제가 움직이는 쪽으로 따라붙는 우진의 진득한 시선을 애써 외면하면서 스테이션 컴퓨터 앞으로 가서 모니터를 방패삼아 얼굴을 숨기고 이미 몇 번이나 읽었던 환자의 차트를 읽고 또 읽고 곱씹었다. 지훈에게 신경 쓰지 않겠다 말했던 게 불과 5분전이던가. 눈은 차트를 보고 있지만 신경은 온통 우진에게로 향해있는 걸 느끼면서 '아휴, 등신아.' 하며 혼잣말을 내뱉곤 주먹으로 제 머리를 콩콩 때리는데 어느 순간 머리가 아프지 않고 손도 어딘가 푹신한 곳을 때리는 느낌에 고개를 들어보니 제 머리를 손바닥으로 막아주고 있는 다니엘이 보였다."어, 선생님.""똑똑한 머리 다 버리겠네.""아.....""무슨 일 있어? 김선생도 그렇고 다들 분위기가 평소랑 좀 다르네.""아, 응급환자가 많았었거든요. 다들 피곤해서 그렇죠, 뭐. 근데 여긴 어쩐 일이세요?""퇴근하다가. 그냥 갈까 했는데 들러보길 잘한 거 같기도 하고.""왜요?"".......김선생 눈치가 많이 없는 편이구나.""저요? 아닌데, 저 눈치 짱 빨라요!!""어이구, 짱 빨라요?""진짠데....""그래, 김선생 눈치 짱 빠르다. 아, 맞아. 김선생 오프가 언제야?""저 다다음 주 목요일이요.""오케이, 접수."응? 하는 얼굴로 저를 바라보는 여주를 보고 픽 웃고는 '수고해.' 하며 손을 휘적휘적 젓고는 응급실을 나서는 다니엘이었고 여주는 그 뒷모습을 보다 아차, 하며 우진이 서있던 곳으로 시선을 옮겼고 아무도 없는 걸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동시에 미친 생각이란 걸 알면서도 아주 아주 잠깐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지금은 아무리 밉대도 한 때는 가장 사랑했던 사람이기도 하고 5년 만에 만나기도 했으니까 이 정도는 괜찮다고 스스로 다독여 본다.**간만에 응급환자가 없는 틈을 타서 의국에 들른 여주와 지훈. 여주는 그동안 잔뜩 밀린 논문 작성을 위해 노트북을 열었다."나 오늘은 진짜 한 페이지라도 써야 돼. 이러다가 EM보드고 뭐고 아무것도 못 할 거 같아.""아, 뭔 소리야.""아니, 뭔 놈의 병원이 이렇게 논문 쓸 시간도 안주니?""그러게 누가 이렇게 큰 병원으로 오래.""아.... 내가 잘못했네. 근데 오빠는 다 썼어?""거의?""헐?""왜.""배신자.... 아, 치사해!!""너 또 도와달라고 할 거잖아.""도와달라고 하면 도와주긴 할 거야?""너 하는 거 봐서."여주는 입을 삐쭉거리고 노트북에 손을 올렸으나 논문은 개뿔. 바로 응급호출이다."TA환자 3명 2분 내로 도착한답니다. 3명 모두 중상이랍니다.""....오늘도 글렀네... 가자, 2분이래."가운도 제대로 못 입고 달려 나가는 여주의 뒷모습을 보고 헛웃음을 터트리던 지훈은 아무래도 쟤 때문에 며칠은 더 밤을 새워야겠다고 생각하며 그 뒤를 따라 뛰어간다."환자입니다!!!!""이쪽이요!! 바이탈은요?""100에 65, 120회입니다. 조수석에 앉아있던 환잔데 복부 통증 호소하시고 팔목골절도 있습니다.""최쌤, 초음파 준비해주세요. 페스트(Focused Abdominal Sonography in Trauma:내부 출혈 확인 초음파 검사) 먼저 볼게요!!""네!!""환자분, 제 목소리 들리세요? 환자분!! 유쌤, 라인 잡아주세요.""네.""헤모페리(hemoperitoneum:복강 내 출혈) 네. 양이 많지는 않은데... 수쌤, GS(general surgery:일반외과) 랑 OS(orthopedic surgery:정형외과) 콜 하고 마취과 연락해서 수술 방 좀 잡아주세요. 아, 콜 하시면서 컴바인 오피(combine operation:합동수술) 확인도 해주셔야 돼요.""네, 그럴게요.""이쌤, 환자 CT 좀 부탁해요.""네, 알겠습니다.""이 환자는요?""운전자입니다. BP(blood pressure:혈압) 는 정상이고 핸들에 머리를 심하게 부딪친 것 같습니다. 심한 구토 증세와 어지럼증 호소하십니다.""바이탈은요?""100에 70, 130회입니다.""옮길게요, 하나 둘 셋! 대휘야, 헤모리지(hemorrhage:출혈) 일 수 있으니까 일단 멕쏘롱(metoclopramide:항구토제) 부터 주고 브레인 CT 찍어줘.""네.""여주쌤. 체스트 페인(chest pain:흉통) 환자 페스트 준비됐습니다.""어. 보자... 피가 많이 고였는데... CT찍자. 윤쌤한테 푸시 좀 넣어. 레프트 헤모또락스(left hemothorax:왼쪽 허파와 가슴 벽 사이에 피가 고여 있는 것) 의심돼.""네. 알겠습니다.""아, 시은아. 수술실 어레인지(arrange:수술을 진행하기 위해 방을 배정받는 것) 도 같이.""네.""수쌤, 저 CS(cardiovascular surgery:흉부외과) 옹선생님 콜 좀 넘겨주세요.""여기요."-"네. 옹성우입니다.""선생님. ER 김여주입니다. 27세 남환 TA환자, 바이탈 90에 60, 100이고 의식은 아직 있습니다. 페스트로는 레프트 헤모또락스 의심되구요. 일단 CT 찍으러 갔고 수술방 어레인지도 했으니까 오셔서 CT 확인만 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어, 바로 갈게."대체로 응급실 콜은 울렸다하면 그 누구라도 저주에 걸린마냥 벌벌 떨면서 받기 마련인데 그 와중에 여주의 전화는 스탭들 사이에서도 안심을 주는 콜로 유명하다. 알아서 척척, 일을 번거롭게 만들지도 않고 초음파만 보고 내리는 응급의학과의 진단치고는 꽤나 정확한 편이라서.그렇게 겨우 응급상황을 수습하고 한숨 돌리려는 찰나"선생님. 5번 베드에 17세 남환 라이트 포헤드 라쎄레이션(right forehead laceration:오른쪽 이마 *열상) 이요. 자전거 타다가 넘어졌대요."(*열상 : 외부의 자극에 의해 피부가 찢어져 입는 상처)"출혈 많아요?""아니요. 많지는 않습니다.""다행이네. 수처(suture:봉합) 세트 좀 부탁할게요.""네.""환자분. 제가 좀 볼게요. 어쩌다가 넘어졌어요?""친구가 장난치고 도망가길래 따라가다가...""어디에 부딪쳤어요?""돌이요.""아픈 건?""참을만해요.""상처가 꽤 많이 벌어졌네. 몇 바늘 꿰매야겠다. 유쌤, 국소마취하게 리도카인(lidocaine:국소마취약) 좀 주세요.""네.""잘생긴 얼굴 흉지면 안되니까 예쁘게 꿰매줄게요. 마취할건데 조금 아플 거예요.""아야....""귀여워라."선호는 주사가 꽤 따가웠는지 움찔하며 주먹까지 움켜쥐면서 눈을 꼭 감았고 여주는 제 동생이 생각나기도 하고 그 모습이 귀엽기도 해서 평소와는 조금 다르게 입가에 미소를 띠며 치료를 한다."봉합이랑 소독 다 됐고, 금요일쯤 실밥 풀러 가까운 병원 꼭 가요.""네. 근데 그거 여기로 와도 돼요?""응? 여기로?""네. 선생님이 해주시면 안돼요?""어.... 실밥 푸는 건 그냥 동네병원 가도 돼요. 보다시피 여긴 응급실이라 항상 정신이 없거든요. 근데 왜?""선생님 예쁘셔서 또 보러오고 싶어요. 완전 제 이상형."선호는 자신의 말 한마디가 응급실에 어떠한 파장을 몰고 올 지 예상했을까? 옆에 서 있던 진영은 입이 떡 벌어졌고 여주는 심히 당황을 했으며 스테이션에 있던 대휘는 어머, 왠일이야 하면서 흥미진진한 눈으로 바라봤다. 폭탄을 던진 선호만이 왜? 뭐가? 하는 아주 평온한 얼굴로 여주를 바라보고 있다."어..... 그....." 그러는 와중에 옆을 지나가던 지훈이 더 큰 폭탄을 투척한다."그 누나 유부녀야.""저 미친놈ㅇ,""쌤, 환자분!""아. 미안....""저거 봐. 말도 겁나 험하게 하지?""와... 매력쩐다...."".....야, 김여주 너 절로 가. 얘 위험해서 안 되겠어.""아, 뭐가 위험해요!! 예쁜 쌤, 그럼 저 금요일 날 또 올게요.""예쁜 쌤은 무슨, 너 금요일에 오면 내가 볼 거야.""...둘이 뭐하냐, 진짜."그제야 말싸움을 멈춘 두 사람. 여전히 선호는 전혀 아무렇지도 않지만 그에 반해 매우 민망해진 지훈은 흐흥, 하고 웃더니 쏜살같이 저 멀리로 도망간다."금요일에 와도 실밥 푸는 건 내가 아니라 이 형이나 저기 동글동글 귀여운 형 보이지? 저 형이랑 둘 중에 한 명이 할 거라서 별로 오는 의미가 없을걸?""아, 뭐야...""그러니까 아무 병원 가서 실밥 푸시고 공부 열심히 하세요. 자전거 타다가 또 넘어지지 말구. 알았지?"".....네."결국 원하는 대답을 얻지 못한 선호는 어깨가 축 쳐져서 발을 옮겼다."그래도 쌤, 내 꺼!!!"폭탄은 던져놓고 겁은 났는지 사람이 저렇게 빠를 수가 있나 싶게 도망간다. 여주는 그저 귀여운 아이의 모습에 피식 웃어 보였다. 그리고 환자를 확인하고 수술실로 올라가려고 빠르게 움직이던 성우가 재밌어 보였는지 덩달아 여주에게 장난걸고 도망가신다."김여주, 응급실 유부녀 1호냐?""아, 쌤!!!!"**"선생님, 트랜스퍼(transfer:이송) 환자 2분 내로 도착한답니다.""얼른 OS 콜 해.""네."정형외과 전문의가 없는 병원에서 보낸 환자다. 이미 사고가 난 지 2시간이나 지나서 많이 위급한 상태였고."환자입니다!!!!""바이탈은요?""90에 60, 120회입니다.""최쌤. 일단 수액 웜으로 바꿔주시고 라인 하나 더 잡아서 토탈 2리터 하이드레이션(hydration:수액투여) 해주세요.""네.""이비(EB:붕대) 많이 주시고 스플린터(splinter:고정용 치료대) 도 준비해주세요.""네, 그럴게요.""어때?""발등에 펄스(pulse:맥박) 없어. 앰퓨테이션(amputation:절단) 해야 될 거 같아.""진영아. 마취과 연락해서 수술 방 잡아라.""네.""환자 어때요?"이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만남이다. 펠로우로 온 건 알았지만 이렇게 금방 응급실에서 재회할 줄이야. 수술이 끝나자마자 온 건지 수술복 위에 대충 가운을 입으면서 들어 온 우진의 얼굴을 보자마자 말문이 턱 막힌 여주를 힐끗 본 지훈이 대신 대답을 하며 여주를 제 뒤으로 숨겼다. 우진은 지훈의 말은 들으면서 시선은 지훈의 뒤에서 멍하게 서있는 여주에게로 향해있었고."보스 로어 렉 크러슁 인져리(Both lower leg crushing injury:양쪽 무릎 아래 다리 압궤 손상) 입니다. 앰퓨테이션 해야 할 거 같습니다.""마취과 연락했어요?""네. 지금 연락하러 갔습니다.""나 김여주 선생한테 물었는데.""굳이 김선생이 대답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서요.""넌 그때나 지금이나 굉장히 공격적이네.""왜 그런지 잘 아실 텐데요."여주는 까딱하면 한 대 칠 기세인 지훈의 가운소매를 슬쩍 잡아당겼고 그 모습을 놓치지 않은 우진이 무언가 말을 하려 입을 벌리는 찰나 '선생님. 5번방 준비됐습니다.' 하는 진영의 말에 화를 참는 듯 눈을 한 번 찡긋하고는 진영에게 대답을 건넸다. 여전히 시선은 여주에게 머문 채로."환자 올려줘요. 나도 바로 올라간다고 콜 해주고.""네."그리고 여주를 잠시 더 바라보다 발걸음을 옮겼다. 여주는 그제서야 겨우 숨을 돌렸고 지훈은 그런 여주가 영 못마땅한 얼굴이다."너 진짜 계속 그렇게 의식할거야?""내가 뭘....""저 사람 아무렇지도 않은 거 못 봤냐? 아주 나 없으면 다시 시작하자고 하겠어."".................""정신 차려. 한 번 버리고 떠난 놈이 두 번은 못 그러겠냐.""......응.""버리고 갔으면 쫄딱 망할 일이지, 왜 성공을 해서 돌아오고 지랄이야."지훈의 장난 반, 진심 반 섞인 농담에 여주는 겨우 웃을 수 있었다. 가만 생각해보니 그러게, 성공이나 못했으면 뿌린대로 거둔거라고 쌤통이다 하면서 좋아했을 텐데 너무 잘돼서 돌아오니 그것도 그거 나름대로 얄밉네. 누군 자기 때문에 시험도 말아먹을 뻔 했는데. 그래도 여주는 누군가 그 때로 다시 돌아갈래? 하고 물어온다면 주저 없이 그러겠다고 대답할 것 같다. 비록 슬픈 엔딩이었지만 후회 없을 만큼 사랑받았고 행복했던 기억이 훨씬 더 많아서. 그 때의 우진만큼 자신을 사랑해 줄 사람이 또 생길 수 있을까 싶을 만큼. - 여러분 안뇽안뇽'-'요즘 금손자까님들 넘나 많으셔서 글을 가져오기가 점점 부끄러워지는 핑크녤입니다나름대로 야금야금 러브라인을 티내기 위해 떡밥을 만들어내는 중인 저의 노력이 느껴지시나요...사실 제가 삼각관계는 처음 써보거든요(덜덜)오늘은 뵹아리 선호가 등장했어요 아무래도 중딩은 너무 어려서 17살로...ㅋㅋㅋㅋ뭔가 저돌적인 고딩의 모먼트를 보여주면서 귀여운 선호도 포기하고 싶지 않았어요ㅠㅠ그래서 이렇게 총체적 난국의 글이 완성된 것이지요...ㅋㅋㅋㅋ아직은 두 주인공보단 지훈이와 엮이는 부분이 많죠?지훈이가 여주한테 아빠고 오빠고 친구고 그렇다보니 그렇습니다(?)지금은 지훈이에게 우진이는 나쁜 사람이라서 여주를 지켜줘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더 붙어있다고 보시면 되겠네요!그것도 오늘까지지만요..ㅋㅋㅋㅋ다음편엔 여주와 우진의 과거 이야기를 한 번 가져올게요언젠가는 짚고 넘어가야 할 이야기니까달달했지만 엔딩은 행복하지 못했던 둘의 이야기도 잘 준비해서 가져오도록 하겠습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굳밤'-' *암호닉 신청은 가장 최근화에 [암호닉] 으로 부탁드려요! 혹시라도 누락되면 꼭 알려주세요!*암호닉녜리 / 다녤잉 / 자몽몽 / 레인보우샤벳 / 응 / 꼬부기 / 못생긴햇님 / 정연아 / 라벤 / 설아 / 디눈디눈 / 마티니 / 괴물 / 사모예드 / 부0608 / 둘셋0614 / 망개몽이 / 깡구 / 몬 / 우진이랑 / ■계란말이■ / 일오 / 코튼캔디 / 수 지 / 쨘쨘 / 이상한 나라의 솜사탕
코드 블루 C
(부제 : 너에게 한 걸음 더)
여주는 제가 움직이는 쪽으로 따라붙는 우진의 진득한 시선을 애써 외면하면서 스테이션 컴퓨터 앞으로 가서 모니터를 방패삼아 얼굴을 숨기고 이미 몇 번이나 읽었던 환자의 차트를 읽고 또 읽고 곱씹었다. 지훈에게 신경 쓰지 않겠다 말했던 게 불과 5분전이던가. 눈은 차트를 보고 있지만 신경은 온통 우진에게로 향해있는 걸 느끼면서 '아휴, 등신아.' 하며 혼잣말을 내뱉곤 주먹으로 제 머리를 콩콩 때리는데 어느 순간 머리가 아프지 않고 손도 어딘가 푹신한 곳을 때리는 느낌에 고개를 들어보니 제 머리를 손바닥으로 막아주고 있는 다니엘이 보였다.
"어, 선생님."
"똑똑한 머리 다 버리겠네."
"아....."
"무슨 일 있어? 김선생도 그렇고 다들 분위기가 평소랑 좀 다르네."
"아, 응급환자가 많았었거든요. 다들 피곤해서 그렇죠, 뭐. 근데 여긴 어쩐 일이세요?"
"퇴근하다가. 그냥 갈까 했는데 들러보길 잘한 거 같기도 하고."
"왜요?"
".......김선생 눈치가 많이 없는 편이구나."
"저요? 아닌데, 저 눈치 짱 빨라요!!"
"어이구, 짱 빨라요?"
"진짠데...."
"그래, 김선생 눈치 짱 빠르다. 아, 맞아. 김선생 오프가 언제야?"
"저 다다음 주 목요일이요."
"오케이, 접수."
응? 하는 얼굴로 저를 바라보는 여주를 보고 픽 웃고는 '수고해.' 하며 손을 휘적휘적 젓고는 응급실을 나서는 다니엘이었고 여주는 그 뒷모습을 보다 아차, 하며 우진이 서있던 곳으로 시선을 옮겼고 아무도 없는 걸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동시에 미친 생각이란 걸 알면서도 아주 아주 잠깐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지금은 아무리 밉대도 한 때는 가장 사랑했던 사람이기도 하고 5년 만에 만나기도 했으니까 이 정도는 괜찮다고 스스로 다독여 본다.
**
간만에 응급환자가 없는 틈을 타서 의국에 들른 여주와 지훈. 여주는 그동안 잔뜩 밀린 논문 작성을 위해 노트북을 열었다.
"나 오늘은 진짜 한 페이지라도 써야 돼. 이러다가 EM보드고 뭐고 아무것도 못 할 거 같아."
"아, 뭔 소리야."
"아니, 뭔 놈의 병원이 이렇게 논문 쓸 시간도 안주니?"
"그러게 누가 이렇게 큰 병원으로 오래."
"아.... 내가 잘못했네. 근데 오빠는 다 썼어?"
"거의?"
"헐?"
"왜."
"배신자.... 아, 치사해!!"
"너 또 도와달라고 할 거잖아."
"도와달라고 하면 도와주긴 할 거야?"
"너 하는 거 봐서."
여주는 입을 삐쭉거리고 노트북에 손을 올렸으나 논문은 개뿔. 바로 응급호출이다.
"TA환자 3명 2분 내로 도착한답니다. 3명 모두 중상이랍니다."
"....오늘도 글렀네... 가자, 2분이래."
가운도 제대로 못 입고 달려 나가는 여주의 뒷모습을 보고 헛웃음을 터트리던 지훈은 아무래도 쟤 때문에 며칠은 더 밤을 새워야겠다고 생각하며 그 뒤를 따라 뛰어간다.
"환자입니다!!!!"
"이쪽이요!! 바이탈은요?"
"100에 65, 120회입니다. 조수석에 앉아있던 환잔데 복부 통증 호소하시고 팔목골절도 있습니다."
"최쌤, 초음파 준비해주세요. 페스트(Focused Abdominal Sonography in Trauma:내부 출혈 확인 초음파 검사) 먼저 볼게요!!"
"네!!"
"환자분, 제 목소리 들리세요? 환자분!! 유쌤, 라인 잡아주세요."
"네."
"헤모페리(hemoperitoneum:복강 내 출혈) 네. 양이 많지는 않은데... 수쌤, GS(general surgery:일반외과) 랑 OS(orthopedic surgery:정형외과) 콜 하고 마취과 연락해서 수술 방 좀 잡아주세요. 아, 콜 하시면서 컴바인 오피(combine operation:합동수술) 확인도 해주셔야 돼요."
"네, 그럴게요."
"이쌤, 환자 CT 좀 부탁해요."
"네, 알겠습니다."
"이 환자는요?"
"운전자입니다. BP(blood pressure:혈압) 는 정상이고 핸들에 머리를 심하게 부딪친 것 같습니다. 심한 구토 증세와 어지럼증 호소하십니다."
"바이탈은요?"
"100에 70, 130회입니다."
"옮길게요, 하나 둘 셋! 대휘야, 헤모리지(hemorrhage:출혈) 일 수 있으니까 일단 멕쏘롱(metoclopramide:항구토제) 부터 주고 브레인 CT 찍어줘."
"여주쌤. 체스트 페인(chest pain:흉통) 환자 페스트 준비됐습니다."
"어. 보자... 피가 많이 고였는데... CT찍자. 윤쌤한테 푸시 좀 넣어. 레프트 헤모또락스(left hemothorax:왼쪽 허파와 가슴 벽 사이에 피가 고여 있는 것) 의심돼."
"네. 알겠습니다."
"아, 시은아. 수술실 어레인지(arrange:수술을 진행하기 위해 방을 배정받는 것) 도 같이."
"수쌤, 저 CS(cardiovascular surgery:흉부외과) 옹선생님 콜 좀 넘겨주세요."
"여기요."
-"네. 옹성우입니다."
"선생님. ER 김여주입니다. 27세 남환 TA환자, 바이탈 90에 60, 100이고 의식은 아직 있습니다. 페스트로는 레프트 헤모또락스 의심되구요. 일단 CT 찍으러 갔고 수술방 어레인지도 했으니까 오셔서 CT 확인만 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어, 바로 갈게."
대체로 응급실 콜은 울렸다하면 그 누구라도 저주에 걸린마냥 벌벌 떨면서 받기 마련인데 그 와중에 여주의 전화는 스탭들 사이에서도 안심을 주는 콜로 유명하다. 알아서 척척, 일을 번거롭게 만들지도 않고 초음파만 보고 내리는 응급의학과의 진단치고는 꽤나 정확한 편이라서.
그렇게 겨우 응급상황을 수습하고 한숨 돌리려는 찰나
"선생님. 5번 베드에 17세 남환 라이트 포헤드 라쎄레이션(right forehead laceration:오른쪽 이마 *열상) 이요. 자전거 타다가 넘어졌대요."
(*열상 : 외부의 자극에 의해 피부가 찢어져 입는 상처)
"출혈 많아요?"
"아니요. 많지는 않습니다."
"다행이네. 수처(suture:봉합) 세트 좀 부탁할게요."
"환자분. 제가 좀 볼게요. 어쩌다가 넘어졌어요?"
"친구가 장난치고 도망가길래 따라가다가..."
"어디에 부딪쳤어요?"
"돌이요."
"아픈 건?"
"참을만해요."
"상처가 꽤 많이 벌어졌네. 몇 바늘 꿰매야겠다. 유쌤, 국소마취하게 리도카인(lidocaine:국소마취약) 좀 주세요."
"잘생긴 얼굴 흉지면 안되니까 예쁘게 꿰매줄게요. 마취할건데 조금 아플 거예요."
"아야...."
"귀여워라."
선호는 주사가 꽤 따가웠는지 움찔하며 주먹까지 움켜쥐면서 눈을 꼭 감았고 여주는 제 동생이 생각나기도 하고 그 모습이 귀엽기도 해서 평소와는 조금 다르게 입가에 미소를 띠며 치료를 한다.
"봉합이랑 소독 다 됐고, 금요일쯤 실밥 풀러 가까운 병원 꼭 가요."
"네. 근데 그거 여기로 와도 돼요?"
"응? 여기로?"
"네. 선생님이 해주시면 안돼요?"
"어.... 실밥 푸는 건 그냥 동네병원 가도 돼요. 보다시피 여긴 응급실이라 항상 정신이 없거든요. 근데 왜?"
"선생님 예쁘셔서 또 보러오고 싶어요. 완전 제 이상형."
선호는 자신의 말 한마디가 응급실에 어떠한 파장을 몰고 올 지 예상했을까? 옆에 서 있던 진영은 입이 떡 벌어졌고 여주는 심히 당황을 했으며 스테이션에 있던 대휘는 어머, 왠일이야 하면서 흥미진진한 눈으로 바라봤다. 폭탄을 던진 선호만이 왜? 뭐가? 하는 아주 평온한 얼굴로 여주를 바라보고 있다.
"어..... 그....."
그러는 와중에 옆을 지나가던 지훈이 더 큰 폭탄을 투척한다.
"그 누나 유부녀야."
"저 미친놈ㅇ,"
"쌤, 환자분!"
"아. 미안...."
"저거 봐. 말도 겁나 험하게 하지?"
"와... 매력쩐다...."
".....야, 김여주 너 절로 가. 얘 위험해서 안 되겠어."
"아, 뭐가 위험해요!! 예쁜 쌤, 그럼 저 금요일 날 또 올게요."
"예쁜 쌤은 무슨, 너 금요일에 오면 내가 볼 거야."
"...둘이 뭐하냐, 진짜."
그제야 말싸움을 멈춘 두 사람. 여전히 선호는 전혀 아무렇지도 않지만 그에 반해 매우 민망해진 지훈은
흐흥, 하고 웃더니 쏜살같이 저 멀리로 도망간다.
"금요일에 와도 실밥 푸는 건 내가 아니라 이 형이나 저기 동글동글 귀여운 형 보이지? 저 형이랑 둘 중에 한 명이 할 거라서 별로 오는 의미가 없을걸?"
"아, 뭐야..."
"그러니까 아무 병원 가서 실밥 푸시고 공부 열심히 하세요. 자전거 타다가 또 넘어지지 말구. 알았지?"
".....네."
결국 원하는 대답을 얻지 못한 선호는 어깨가 축 쳐져서 발을 옮겼다.
"그래도 쌤, 내 꺼!!!"
폭탄은 던져놓고 겁은 났는지 사람이 저렇게 빠를 수가 있나 싶게 도망간다. 여주는 그저 귀여운 아이의 모습에 피식 웃어 보였다. 그리고 환자를 확인하고 수술실로 올라가려고 빠르게 움직이던 성우가 재밌어 보였는지 덩달아 여주에게 장난걸고 도망가신다.
"김여주, 응급실 유부녀 1호냐?"
"아, 쌤!!!!"
"선생님, 트랜스퍼(transfer:이송) 환자 2분 내로 도착한답니다."
"얼른 OS 콜 해."
정형외과 전문의가 없는 병원에서 보낸 환자다. 이미 사고가 난 지 2시간이나 지나서 많이 위급한 상태였고.
"90에 60, 120회입니다."
"최쌤. 일단 수액 웜으로 바꿔주시고 라인 하나 더 잡아서 토탈 2리터 하이드레이션(hydration:수액투여) 해주세요."
"이비(EB:붕대) 많이 주시고 스플린터(splinter:고정용 치료대) 도 준비해주세요."
"어때?"
"발등에 펄스(pulse:맥박) 없어. 앰퓨테이션(amputation:절단) 해야 될 거 같아."
"진영아. 마취과 연락해서 수술 방 잡아라."
"환자 어때요?"
이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만남이다. 펠로우로 온 건 알았지만 이렇게 금방 응급실에서 재회할 줄이야. 수술이 끝나자마자 온 건지 수술복 위에 대충 가운을 입으면서 들어 온 우진의 얼굴을 보자마자 말문이 턱 막힌 여주를 힐끗 본 지훈이 대신 대답을 하며 여주를 제 뒤으로 숨겼다. 우진은 지훈의 말은 들으면서 시선은 지훈의 뒤에서 멍하게 서있는 여주에게로 향해있었고.
"보스 로어 렉 크러슁 인져리(Both lower leg crushing injury:양쪽 무릎 아래 다리 압궤 손상) 입니다. 앰퓨테이션 해야 할 거 같습니다."
"마취과 연락했어요?"
"네. 지금 연락하러 갔습니다."
"나 김여주 선생한테 물었는데."
"굳이 김선생이 대답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서요."
"넌 그때나 지금이나 굉장히 공격적이네."
"왜 그런지 잘 아실 텐데요."
여주는 까딱하면 한 대 칠 기세인 지훈의 가운소매를 슬쩍 잡아당겼고 그 모습을 놓치지 않은 우진이 무언가 말을 하려 입을 벌리는 찰나 '선생님. 5번방 준비됐습니다.' 하는 진영의 말에 화를 참는 듯 눈을 한 번 찡긋하고는 진영에게 대답을 건넸다. 여전히 시선은 여주에게 머문 채로.
"환자 올려줘요. 나도 바로 올라간다고 콜 해주고."
그리고 여주를 잠시 더 바라보다 발걸음을 옮겼다. 여주는 그제서야 겨우 숨을 돌렸고 지훈은 그런 여주가 영 못마땅한 얼굴이다.
"너 진짜 계속 그렇게 의식할거야?"
"내가 뭘...."
"저 사람 아무렇지도 않은 거 못 봤냐? 아주 나 없으면 다시 시작하자고 하겠어."
"................."
"정신 차려. 한 번 버리고 떠난 놈이 두 번은 못 그러겠냐."
"......응."
"버리고 갔으면 쫄딱 망할 일이지, 왜 성공을 해서 돌아오고 지랄이야."
지훈의 장난 반, 진심 반 섞인 농담에 여주는 겨우 웃을 수 있었다. 가만 생각해보니 그러게, 성공이나 못했으면 뿌린대로 거둔거라고 쌤통이다 하면서 좋아했을 텐데 너무 잘돼서 돌아오니 그것도 그거 나름대로 얄밉네. 누군 자기 때문에 시험도 말아먹을 뻔 했는데.
그래도 여주는 누군가 그 때로 다시 돌아갈래? 하고 물어온다면 주저 없이 그러겠다고 대답할 것 같다. 비록 슬픈 엔딩이었지만 후회 없을 만큼 사랑받았고 행복했던 기억이 훨씬 더 많아서. 그 때의 우진만큼 자신을 사랑해 줄 사람이 또 생길 수 있을까 싶을 만큼.
-
여러분 안뇽안뇽'-'
요즘 금손자까님들 넘나 많으셔서 글을 가져오기가 점점 부끄러워지는 핑크녤입니다
나름대로 야금야금 러브라인을 티내기 위해 떡밥을 만들어내는 중인 저의 노력이 느껴지시나요...
사실 제가 삼각관계는 처음 써보거든요(덜덜)
오늘은 뵹아리 선호가 등장했어요 아무래도 중딩은 너무 어려서 17살로...ㅋㅋㅋㅋ
뭔가 저돌적인 고딩의 모먼트를 보여주면서 귀여운 선호도 포기하고 싶지 않았어요ㅠㅠ
그래서 이렇게 총체적 난국의 글이 완성된 것이지요...ㅋㅋㅋㅋ
아직은 두 주인공보단 지훈이와 엮이는 부분이 많죠?
지훈이가 여주한테 아빠고 오빠고 친구고 그렇다보니 그렇습니다(?)
지금은 지훈이에게 우진이는 나쁜 사람이라서 여주를 지켜줘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더 붙어있다고 보시면 되겠네요!
그것도 오늘까지지만요..ㅋㅋㅋㅋ
다음편엔 여주와 우진의 과거 이야기를 한 번 가져올게요
언젠가는 짚고 넘어가야 할 이야기니까
달달했지만 엔딩은 행복하지 못했던 둘의 이야기도 잘 준비해서 가져오도록 하겠습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굳밤'-'
*암호닉 신청은 가장 최근화에 [암호닉] 으로 부탁드려요! 혹시라도 누락되면 꼭 알려주세요!*
암호닉
녜리 / 다녤잉 / 자몽몽 / 레인보우샤벳 / 응 / 꼬부기 / 못생긴햇님 / 정연아 / 라벤 / 설아 / 디눈디눈 / 마티니 / 괴물 / 사모예드 / 부0608 / 둘셋0614 / 망개몽이 / 깡구 / 몬 / 우진이랑 / ■계란말이■ / 일오 / 코튼캔디 / 수 지 / 쨘쨘 / 이상한 나라의 솜사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