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독약 향기가 퍼지는 순간
변백현.
백현아.
-
쪽지를 읽고 차가 있는 곳으로 달려가
운전석에 앉는 순간 누군가에게 전화가 왔다.
김종인.
" 선생님 어디있어요. "
" 변백현 어디있어. "
" 내 말 잘들어... "
" 어디에 있냐고!!!! "
" 시발!!! 좀 들어!!! "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다.
운전을 해야하는데, 비가 내려 시야확보가 되지 않는다.
애꿎은 클락션만 울려대고 핸들을 때렸다.
어쩌다 이렇게 된걸까.
변백현의 편지와 김종인의 말이 동시에 생각나 한숨이 나왔다.
이상하다고 느낀건 오늘 새벽.
품안에 빠져나와 조용히 방을 나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들어온 아이가 좀 의문이긴 했지만
다시 누워 나를 꼭 껴안고 자길래 대수롭지 않게 넘겼었다.
그리고 놀이공원에서.
다른날에 비해 더 들떠있고 즐거워했지만 , 무대 위에서는 이별 노래를 불렀다.
애써 괜찮은 척 웃는 아이를 잡아 끌고 걸었다.
그 때 아이를 보지 못했던건, 눈을 마주쳤다간 당장이라도 헤어지자 말할 것 같아서.
두렵고 무서워서. 그래서 앞만 보고 걸었다.
그리고 롤러코스터에서.
사랑한다는 말을 들었다.
사랑해.
그리고 다음말은 듣지 못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들어버렸던거다.
부정하고 싶었을 뿐.
- 선생님이 이 편지를 보고 있을즈음엔, 난 선생님 곁에 없겠지?
미안해, 평생 함께하자고 그랬는데. 항상 내가 문제네. 바보같이....
나랑 하나만 약속해줘, 오늘부터 선생님 인생에 변백현이라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던걸로.
종인이 할머니네 집에서 선생님 도움으로 천장에 손을 댄거 기억해?
내가 나중에 스스로 해보겠다고 그랬잖아.
근데 변백현 성격에 천장은 너무 쉬운 것 같아서 더 큰 하늘을 가려보고 싶었는데, 내 눈을 가리게 될 것같아.
선생님 없으면 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바보인가봐, 미안해. 사랑해 박찬열. -
" 전 의리 같은거 없는 친구거든요, 그딴거 몰라요.
변백현 지금 공항으로 갔어. 외국으로 가는 것 같아.
가서 잡아. 잡아서 당신 부모가 찾지 못하는 곳으로 도망가서 행복하게 살아.
한국 땅 평생 안밟아도 괜찮아.
나랑 경수 죽을 때까지 안봐도 상관 없으니까, 걔 좀 지켜줘. 제발.... "
마음이 급해져 속도를 올리다가
앞에 차가 느려지는 것 같아서 브레이크를 밟았는데
엔진 소리가 크게 나더니 속도가 더욱 빨라진다.
심장이 빨리 뛰고 몸에서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떨리는 손으로 변백현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전원이 꺼져있다는 개같은 소리만 들려온다.
음성 메세지를 남기고 이어폰을 귀에서 뺐다.
그리고 숨을 짧게 들이 마신 뒤 핸들을 세게 틀었다.
웃음이 나왔다.
.
시간을 지체하다간 그가 날 찾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무작정 달렸다.
폐장시간이 다가오는데도 사람이 많아 그걸 비집고 나가는게 힘들었지만,
오히려 다행이다.
그가 날 찾는 것도 그렇게 쉽진 않겠지.
" 어? 엄마, 비와. 비. "
" 그러네..얼른 집에 가자. "
" 아 싫어!!! "
오늘 일기예보에서는 내일 오후쯤에야 비가 올거라고 그랬는데,
처음엔 조금씩 내리다가 이젠 하늘에 구멍이 뚫린건지 굵은 비가 몸을 적신다.
왠지 얼굴에 흐르는 비가 뜨겁다.
비가 눈으로 들어갔는지 앞이 잘 보이지 않아 눈을 비볐다.
출구에 다다르자 익숙한 차 한대가 기다리고 있었고,
그 앞엔 우산을 들고 서있는 남자가 있었다.
단번에 날 알아본듯 놀란 눈으로 뛰어오는 그에게 살짝 웃어주자 눈을 찌푸리며 우산을 씌워준다.
" 괜찮아요...빨리... "
" 네. "
이제야 느껴지는 추위에 몸을 부들부들 떨자 조수석에서 큰 쇼핑백을 집어 나에게로 준다.
안에는 갈아입을 옷과 수건이 있었다.
" ....그냥 준비해봤어요. "
" 고마워요.... "
괜히 부끄러운 마음에 등을 돌리고 옷을 갈아입은 뒤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역시나 계속되는 그의 전화와 문자.
빠른 속도로 전화를 거부한 뒤에 김종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 니가 무슨 일이냐, 이 밤에. "
" 김종인. 내가 하는 말 잘들어... "
" 뭔데. "
말을 마치고 전화를 끊은뒤 배터리를 분리해버렸다.
" 죄송한데 라디오 좀 틀어주세요... "
말없이 볼륨을 높이는 그 덕분에 울음섞인 눈물이 터져나왔다.
심장이 찢어질 듯이 아프고 괴로웠다.
편지를 읽었을까, 그럼 지금쯤 차에 올라타 무작정 밖으로 나왔겠지.
비를 잔뜩 맞은채로 추운줄도 모르고 운전만 하겠지.
날 찾으면서.
" 부탁 하나만 할께요.... "
" 네. "
" 나중에, 나중에 시간이 지나서 그 쪽이 박찬열을 만나면요. "
" 나 아주 잘 살고 있다고.
멋진 여자 만나서 결혼도 하고
행복해 하고 있다고.
박찬열이라는 이름은 잊은지 오래라고.
그렇게 말해주세요.... "
.
공항에 도착했다.
아슬아슬한 시간에 도착을 해,
빠른 속도로 절차를 마치고 비행기 안으로 들어왔다.
"Ladies and gentlemen. We are holding at the end of the runaway waiting
for clearance to take off. "
곧 있으면 비행기는 이륙한다.
이제 다 끝났다.
주머니에 있던 휴대폰을 꺼내어 전원을 켰다.
부재중 142통. 음성메세지 1개.
음성메세지.
그의 목소리가 듣고싶어 재생을 눌렀다.
아무것도 아닌 그의 걱정된다는 바보같은 말에도 눈물이 흐르는데,
어떻게 낯선 땅에서 그 없이 견딜까.
그렇게 계속 그의 메세지를 듣다가
마지막 말에 심장이 내려 앉았다.
돌아가야 한다.
돌아가야해.
박찬열.
찬열아, 안돼.
그렇게 내가 탄 비행기는 날아올랐다.
나와 박찬열을 제외한 모든 시간은 정확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빨간 실은 끊어졌다.
" 뉴스 속보입니다. C그룹 회장의 장남이 현재 교통사고를 당해 크게 다쳐 병원으로 이송되었지만
끝내 사망했다고 알려졌습니다. 경찰은 사고 차량과 목격자 등을 상대로 정확한 사고 경위를 조사하고 있으며.... "
" 변백현. 왜 이렇게 전화를 안받냐, 걱정되게..
나랑 술래잡기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네가 있는 곳 벌써 알아냈어.
근데 있잖아. .....지금 당장은 못갈 것..같아... 지금 상황이 좀 안좋다.
다행이야, 너는 살아서.
같이 차에 탔으면, 너도 같이 죽는거잖아.
브레이크가 말을 안들어. 어떻게 된건지 밟으면 속도가 더 빨라진다.
.............있잖아, 사랑해.
사랑해 백현아. "
July - Somewhere 다음편이 마지막화네요..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