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혁이 형이 세상을 떠난지 3년... 우린 3년이라는 시간을 악몽 같이 보냈다. 차라리 이 모든 일들이 악몽이길 바랐다. 꿈이었으면 현실에서는 그런 일이 없었을 거니까. 하늘은 우릴 몇 번이나 지옥 속으로 떨어트렸다. 우린 지옥 속에서 작은 희망의 빛줄기라도 찾아서 이겨낼 수 있었지만 이제는.. 희망을 찾아도 지옥 속에 갇힌다. 하늘을 원망하기에도 지쳤다. 원망해 봤자 돌아오는 건 없으니까.
하얗고 하얀 우리 재효 형은 2년 전 병원에서 사라져 버렸다. 재효 형은 착해서, 너무 착해서 천사가 데리고 갔다. 천사는 언젠가 재효 형을 우리한테 되돌려 줄 것이다. 다 같이 믿어 왔으니까.. 꼭 그렇게 될 것이다. 노한 하늘이 우리에게 벌을 내린다 해도 우린 재효 형을 데려간 천사를 찾아서 어둠을 헤친다. 또다시 지옥 속에 갇히더라도 천사를 찾아서.. 재효 형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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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다. 숨을 한껏 내쉬었다. 하얀 입김이 하늘로 몽글몽글 자취를 감췄다. 시린 손을 만지작거리며 지호 형의 작업실이 있는 건물 문을 열었다. 지호 형을 만나는 게 두 달 만인가.. 오랜 시간 동안 얼굴 한 번을 못 봤다. 잘 지내고 있진 않을 거란 생각에 걱정이 밀려왔다. 공허하고 하얀 복도를 지나서 작업실에 도착했다. 손잡이를 잡으니 얼음장 같이 차가웠다. 장시간 동안 사람의 발걸음이 뜸했음을 알 수 있었다.
문을 여니 역시나 작업실은 퀴퀴한 담배 냄새로 가득 차 있었다. 작업대 위엔 핫식스 수십 캔과 담배꽁초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그리고 의자 등받이 사이로 지호 형의 애처로운 뒷모습이 보였다. 작업하다가 잠이 든 거 같았다. 혹시라도 지호 형이 깰까 봐 조심조심 문을 닫고 들어왔다.
" 표지훈.. 오랜만이다. "
자고 있는 줄만 알았던 지호 형의 목소리가 들리자 심장이 덜컹했다. 오랜만에 듣는 형의 목소리라 반갑기도 했다. 지호 형이 의자를 내 쪽으로 돌려 자신은 괜찮다는 듯 웃어 보였다. 형의 모습은 가엾기 짝이 없었다. 두 달 사이에 살도 더 빠진 거 같았다. 갑자기 형이 가쁜 숨을 내쉬며 기침을 했다.
" 형... 담배는 끊어요.. 천식 더 심해져요. "
지호 형은 내 말을 들은 건지, 만 건지 그저 웃기만 했다. 오면서 산 한약 한 박스를 지호 형에게 내밀었다. 지호 형은 뭘 이런 걸 사왔냐며 멤버들하고 먹으라고 나한테 되돌려 줬다. 약은 잘 챙겨 먹고 있냐고 물으니까 형은 또다시 묵묵부답했다.
" 약 먹어요.. 꼭 먹어요. "
3년 전 형의 모습이 떠올라서 약을 꼭 챙겨 먹길 당부했다. 형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이제 일해야 되니 이만 가 보라 했다. 야윈 형의 얼굴을 애처롭게 바라보며 다음에 또 오겠다 하고 작업실을 나섰다. 또다시 하얀 복도가 보였다. 아까보다 더 공허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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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혁아...... 민혁아........흐윽..... 민혁아..... "
지호 형은 3년 전 미쳐 버렸다. 민혁이 형이 세상을 떠나고 울고 웃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심지어 자신의 목숨도 끊으려고 했다. 머리가 완전히 깨져서 병원에 입원해 있는 재효 형을 붙잡고 미친놈 미친놈 하며 멱살을 잡았던 적도 있다. 재효 형이 왜 그렇게 증오스러운 건지 재효 형만 보면 이를 아득아득 갈았다. 정신병원에 데리고 간 적도 있지만 오히려 상태가 더 악화돼서 며칠 만에 나와 버렸다.
그 후로 형은 작업실에만 갇혀 있었다. 핫식스와 담배를 달고 살았다. 잠도 잘 자지 않았다. 자신의 몸이 죽어나는 걸 이제는 즐기는 듯했다. 그런 형을 되돌리고 싶어도 방법이 없다. 재효 형이라도 돌아오면 괜찮아질까 싶으면서도 3년 전 형이 재효 형에게 했던 행동들을 생각하면 나아지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천사의 장난이 끝이 나길 그저 기다린다. 지호 형도 재효 형도 제자리로 돌아오길.. 모든 게 돌아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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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복도의 끝이 보였다. 건물 문을 열고 나가려는데 어디선가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지호 형 울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에 마음이 아파 왔다. 지호 형의 외로운 작업실을 바라보며 건물에서 나왔다. 공기가 차갑다. 몸도 마음도 시리다. 하늘은 우릴 따뜻하게 할 생각이 없는 거 같다. 계속 차갑고 어두운 지옥 속으로 떨어트려서 죽일 생각인가 보다. 어쩌겠어... 한숨을 내쉬었다. 또다시 하얀 입김이 하늘로 사라졌다.
전화벨이 울렸다. 경이 형이다. 분명 배고프니까 얼른 오라고 전화한 것이다. 전화를 받자마자 형의 투덜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 야, 표지훈! 어디야. 나 배고파. '
" 아, 지금 가요. 형, 어딘데요? "
' 당연히 숙소지. 무슨 일이 있다고.. '
" 하긴.. 그렇네요. 오늘은 낙지 먹을까요? "
' 좋지. 얼른 와라. '
" 네, 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