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컵에 맺힌 물방울을 손가락으로 이었다. 아무리 닦아내도 이내 다시 생기는 물방울에 하던 짓을 그만두고 다른 목표를 찾아 시선을 옮겼다.
휘핑크림, “휘핑크림 올려드릴까요?”, 이 물음에 박우진이 “아니요”라고 대답할 확률 0%. 빵 프로. 내가 웃고 있다는 걸 깨닫고 입꼬리를 내렸다. 이젠 세상에 있는 물건을 전부 가져다 놔도 너랑 연결 지을 수 있을 것 같다. 결국 생각의 끝은 박우진이다.
짜증 나.
프라푸치노에 다 녹아들지 못하고 둥둥 떠다니는 애꿎은 휘핑크림 덩어리를 빨대 끝으로 뭉갰다.
*
_ 야, 휘핑크림을 빼뿌면 어야는데
이거의 핵심은 휘핑크림이라고, 휘핑크림. 내가 이런거 까지 가르쳐야 되나.
_ 아 되게 말 많네. 빼 먹든 넣어 먹든 너가 무ㅅ..
_ 아아 됐다. 휘핑크림 등한시하는 사람이랑은 상종 안한다-
나는 휘핑크림에 집착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주면 먹고 말면 마는 거지. 근데 박우진이랑 붙어 다니면서 그놈이 펼치는 좆논리에 설득당했다. 휘핑크림 본연의 능력을 무시하지 말라나 뭐라나. 그 뒤로 휘핑크림은 꼬박꼬박 올려먹는다. 휘핑크림 주문까지 마치고 박우진을 돌아보면 ‘인제 쫌 물 줄아네’하며 내려다보는 눈빛이, 내 머리 위에 올려놓던 그 손이 사실 더 좋았을지도.
*
너에게 여자친구가 생겼다- 그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의 기분은 그냥 말 그대로 엿같았다. 아무렇지 않은 척 “여친 생겼냐”고 물으니 그렇단다. 붉은 네 머리만큼이나 예쁘게 물든 네 귀 끝을 보고는 감정 없이 축하한다는 말만 남기고 뒤돌아 나왔다.
너 때문인지 어제부터 따끔거린 목 때문인지 머리가 지끈거려서 점심시간 내내 꼼짝 못 하고 책상에만 붙어 있었다. 그러다 내 손등을 살살 만지는 손길이 따스해 잠이 깼을 때는 내 앞에 네가 있었다. 너를 알아채고도 일부러 눈을 꼭 감고 일어나지 않았다. 당장은 박우진을 볼 자신이 없었다.
_ “안 그래도 비실비실한 게 밥까지 안 묵고 이러니까 자꾸 아픈 거다.”
_ “......”
_ “내 봐바라. 열나나 보자.”
_ “......”
_ “ 많이 아픈 갑네. 아, 몬산다 진짜.”
_
너의 다정함은 이래서 문제다. 이제까지 얼마나 힘들게 그 지긋지긋한 ‘불알친구’라는 틀 안에서 살아왔는데, 네 악의 없는 다정함이 나를 얼마나 비참하게 만드는지 모르지. 그게 부질없이 또 기대하게 만드는 줄 모르고. 세상 걱정스럽게 내 얼굴을 찬찬히 훑는 박우진에, 입술을 말아 물었다. 아직 우진이한테 한번도 말 못했는데,
너를 남김없이 좋아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