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아파트에 살인범이 산다니깐. ”
출근하는 나의 귀에 꽂힌 그 한마디에 돌아보니 아파트 아줌마들이 더우신지 아침부터 공원 팔각정에 모여 이야기 중이시다.
“ 그래 맞아. 나도 봤어. 그 경찰 선생님이 그랬잖아 범인이 검은 모자 검은 마스크 쓰고 다닌다고... 내가 봤어. 그 사람 항상 그러고 다니더라니깐? ”
“ 무엇보다 우리 아파트에 남자가 들어오는 건 처음이지 않아요? ”
“ 그러니깐 수상해 수상해. ”
지나쳐 가고 싶었지만 그 사람이 옆집남자인거 같아 귀를 쫑긋하며 기울이고 있었다.
“ 어이 아가씨, 그, 거 옆집에 이사 온 남자 만나봤어요? ”
네?? 갑자기 나에게로 이목이 집중되었고, 당황한 나머지 목소리가 커졌다.
“ 아이구야 놀래라 젊은 아가씨가 참 당돌하네. ”
“ 옆집남자 수상하지 않아요? 우리가 볼 땐 수상해 수상해. 어제는 그 남자 어떤 여자랑 같이 아파트로 오더라니깐? ”
아. 그거 나인 거 같은데. 뭐라 말하기도 전에 그 말은 아줌마들에 의해 부풀려져 버렸다.
“ 그럼 살인사건 또 일어나면 그 여자가 당한거야? ”
“ 아휴 이놈의 아파트 무서워서 살것나. 이사를 가불던가 해야지. ”
“ 아무튼 아가씨 조심해요. 가까이 지내선 득볼게 없을 것 같으니깐 ”
아... 네. 감사합니다. 빨리 그 자리를 벗어나야 될 것 같아 인사를 하며 종종걸음으로 빠져나왔다.
내 옆집에 살인범이?
-03-
어제 그일 이후 애써 아니라고 살인범일 리가 그럴 리가 없다고 합리화했던 그 마음은 무너져 버린 지 오래고, 살인사건이 또 일어나면 그 여자가 당한거야? 라는 그 말이 귀에서 맴돌았다. 정말 난가. 진짜 이대로 죽는 건가. 그 전화가 진짜 나를 죽이려는 말이었던 건가.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고 나니 잘만 다니던 동네 거리가 으스스했고, 버스정류장까지 제대로 걸어갈 자신이 없었던 나는 지나가는 택시를 불러 세웠다.
아저씨, 부기패션빌딩 앞으로 가주세요. 빨리요. 손톱을 물어뜯으며 비정상적인 행동을 보이자 택시 아저씨는 아가씨, 무슨 일 있어요? 제가 좀 도와드릴까요? 라고 물었고, 나는 그 말을 하는 택시아저씨와 처음 나에게 말을 걸던 옆집 남자의 모습이 겹쳐보였고, 그 자리에서 바로 내릴 수밖에 없었다.
“ 엄마... 나 곧 죽나봐. ”
무서워 전화를 건 곳은 엄마였다. 엄마는 그 말을 듣고 얘가 무슨 헛소리를 하냐며 회사일이 힘드냐. 상사가 시비 거냐. 당장 때려치워라. 하며 열불을 내셨다.
아니, 우리아파트에 살인범이 사는 거 같아. 엄마 나 너무 무서워. 그것도 우리 옆집이야. 어떡하지. 라고 말을 꺼냈다. 뭐라는 거야 하며 안 믿던 엄마도 내가 울먹거리며 얘기하자 정...말? 하며 믿어주는 것 같았다. 당장 부산으로 내려와라. 그럼 회사는... 잠시 휴가 내던가, 때려치워 그냥. 그럼 우린 뭐 먹고살아. 그냥 내가 친구 집이나 잠시 묵어볼 곳 찾아볼게. 많이 걱정하지 말고 엄마 딸 튼튼하잖아? 하며 엄마를 안심시켰고, 니가 뭐가 튼튼하노 하면서 걱정에 걱정을 호소하는 엄마를 보니 괜히 전화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내가 알아서 해결할걸...
엄마와의 전화를 마치고 회사로가 잠시 지낼 곳을 백방으로 알아보았지만, 마땅한 곳이 없어 한숨을 쉬며 엎드려 두 팔 사이로 고개를 묻었다
“ 왜 그래요, 여주씨? 무슨 일 있어요? ”
아... 저 그게 잠시 지낼 곳을 찾고 있는데 마땅한 데가 없어서요... 회사에서 항상 나를 잘 챙겨주던 채린 대리님이 오늘도 역시 커피를 타주시며 물었다.
“ 여주씨네 집 무서워서 그래요? 그럼 그냥 저희 집에서 지낼래요? 빈방 있으니깐 빌려줄게요! ”
“ 그래도 돼요? 진짜 항상 도움만 받는 거 같아 미안하고 고마워요 정말. ”
“ 여주씨가 제 동생 같아서 그래요. 그러니깐 부담 갖지 말고 오늘 집에서 짐 챙겨서 우리 집으로 와요. 같이 지내면 재밌을 것 같아. ”
휴 한시름 덜었다. 하며 안도의 한숨을 쉬니깐. 괜찮아요. 괜찮아. 하며 등을 토닥토닥 해주는 채린 대리님이다.
‘ 엄마, 회사 상사님께서 집 빈방 있어서, 잠시 빌려주신다니 깐 걱정하지 마. ’
아까 그렇게 안심시켰지만 아직 걱정하고 있을 엄마에게 문자를 보내곤 일에 집중했다. 오늘 짐 챙기러 아파트 다시 가야되는데 할 일이 산더미라 또 늦은 시각 퇴근하게 될 것 같았다.
열심히 일을 끝내보려 했지만 시계의 시침은 11을 넘어서고 있었다. 너무 늦은 시각인데... 걱정을 하며 시계를 보고 있다가 같이 야근 하시던 채린 대리님과 눈이 마주쳤다.
“ 너무 늦은 거 같은데 밤이면 무섭지 않아요? 제 차로 같이 갈까요? ”
“ 아니요! 괜찮아요. 너무 신세 많이 지는 거 같아 지금도 마음이 무거운걸요... 제가 조심히 알아서 잘 다녀오겠습니다! ”
“ 그래요 그럼, 주소는 문자로 찍어 보내줄게요! ”
네! 너무 감사합니다. 고개를 꾸벅 숙이는 나를 보곤 채린 대리님이 빙그레 웃어주셨다. 그 웃음이 너무 예뻤다. 너무 착하셔서 탈이야. 정말.
아까 택시를 타고 너무 놀래서 택시를 타고 싶진 않았지만 늦은 시각. 버스는 다 끊겨버려서 하는 수 없이 ‘빈 차’ 라고 적힌 택시를 불러 세웠다. 아저씨, 브랜동 리니아파트요. 집을 가는 길에는 무서운 장소가 많았기 때문에 좋은 생각, 행복한 생각, 재밌는 생각을 머릿속에 가득 채웠고, 아파트가 보이는 부근에 다다르자 여기 세워주시면 된다며 택시에서 내렸다.
꺄악-
택시에서 내려 조금 걷자마자 들리는 이 소리 분명 비명이다. 뭐지 뭐야. 서 있는 맞은편에는 숲이 우거져 있었고, 조금 더 가면 건물이 두 채 마주보며 서 있었다. 주위를 돌아보고는 온몸에 소름이 끼쳤고, 발은 땅바닥에 붙어 떨어질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순간 뚜벅뚜벅- 발자국소리가 내 뒤에서 느껴졌다. 그제서야 내 발은 전력질주를 하였고, 마주보고 서있는 건물 쪽으로 가게 된 나는 숨으려고 골목으로 들어섰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골목을 헤매다 더 외진 곳으로 들어갔다.
바닥에 빨간 것이 보이는 내 눈을 의심했다. 내가 지금 뭘 보고 있는 거지. 피... 땅에 묻어있는 그것은 바로 피였다. 그 핏자국은 골목길을 따라 모퉁이를 돌아 나있었고, 나는 뭐에 이끌린 듯 그 자국을 따라 갔다.
살...살려주세요.
내 귀를 파고드는 그 작은 음성은 겁에 질려 도움을 호소하는 여자의 목소리였고, 그것을 들은 나는 멈춰 서게 되었다. 옆이다. 분명 옆에서 소리가 났다. 그럼 내가 지금 서있는 이 모퉁이를 돌면 핏자국이 멈출 것이고 그곳엔 살인범과 피해자가 있겠지.
도... 도와줘야해. 소리라도 질러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들자 소리를 지르려 했던 나의 입은 무엇에 의해 막히게 되었다.
읍으읍- 손이다. 누군가가 내입을 막고서 몸을 뒤로 끌어당기고 있었다.
“ 누나, 잠시만 잠시만 이러고 있어요. 소리 지르면 누나가 위험해요. 잠시만... ”
귀에 속삭이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종현이였다. 종현이는 나를 뒤에서 끌어당긴 채 쓰레기통과 쓰레기통의 사이로 몸을 구겨 넣었다.
인기척을 느꼈는지 범인은 내가 서있었던 그곳으로 나왔고,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자 쓰러진 건지 죽은 건지도 모를 만큼 피투성이가 된 여자를 질질 끌고 와 우리가 숨어있는 그 쓰레기통으로 넣으려는지 쓰레기통 문을 열었다. 종현이는 나의 눈을 감겨주었고, 나는 흐르는 눈물을 훔치며 그 자리에 그대로 얼어 붙어있었다. 그 순간에도 나는 내 뒤에 이 남자가 살인범과 공범이 아닐까. 미리 알고 일부러 자신이 의심을 받는 중이니깐 지금 나를 구해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쿵-
쓰레기통으로부터 진동이 느껴졌고, 살인범은 우리를 발견하지 못한 채 유유히 사라졌다.
그제서야 종현은 나를 놓아주었고, 숨통이 트인 나는 다리가 풀려 일어나지 못한 채 몸을 돌려 종현을 봤다.
검은 모자, 검은 마스크, 온통 검은 색, 그리고 손에 핏자국이 묻어있는 그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