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written SOW.
‥비록 타락은 했지만 위엄 있는 그의 얼굴에는 왕자다운 지혜가 빛난다.
현인처럼 그는 서 있다.
강대한 왕국들의 무게를 짊어질 만한 아틀라스의 어깨를 펴고서
밤처럼 침묵이 깔린 가운데 그의 모습은 군중의 시선과 주의를 끌었다.
-밀턴의 <<실낙원>> 中
58. T H E
E N D
태형이 여주와 정국을 석진에게 부탁하는 동안 지민은 여태 나오지 않았던 눈물을 삼키느라 부던히 애를 써야 했다. 눈물에는 모두 이유가 있다고 했다. 이유 없는 눈물을 존재하지 않는다고. 이유는 있었지만 지민은 눈물을 흘리지 않기로 했다. 태형이 삶을 마감하는 그 날을 위해 아껴두기로 했다. 저보다 더 울고 싶을, 힘들어 할 여주의 곁에서 함께 울어주기로 했다.
석진은 좆같다며 책상을 한 번 걷어찼다. 전쟁에 자신도 도움을 주겠다는 의사를 태형이 거절했기 때문이었다. 태형은 석진을 믿었다. 남준 다음으로 믿는 형같은 존재이기도 했고 석진이 마왕의 자리에 오른다고 하면 기꺼이 도움을 줄 수 있을 정도의 관계였다. 그 정도의 관계이기에 태형은 석진에게 여주를 부탁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재정상 가장 풍족한 것도, 머리가 가장 좋은 것도 석진이었으니. 혹여 여주와 정국이 무너지더라도 술수를 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컸다.
"내일 아침, 여주랑 정국이 '히그'로 보낼 거야. 김석진 네가 동행 해."
"그냥 이 전쟁 피하면 그만 이잖아. 너 그 정도의 여력은 되잖아."
"내가 피하면, 그 책임은 누가 지지?"
"태형아, 너 이번에 잘못되면 여주가 어떻게 나올 거 같아?"
"‥어차피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어. 민윤기를 처음 만났을 때 부터, 멀쩡하던 심장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었거든."
피할 수 없는, 한 걸음만 더 가면 낭떠러지인 전쟁. 윤기는 저가 이길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하겠지만 태형은 확신했다. 이번 전쟁은 승자와 패자가 이미 나뉘어져 있는 전쟁. 자신은 절대로 윤기에게 이길 수 없다는 것을.
" 여주는 어딨어요?"
전쟁은 순식간에 끝이 났다. 이유는 간단했다. 태형은 전쟁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콜카타에 알리지 않았다. 전쟁에 참가한 악마는 단 두 마리, 태형과 지민 뿐이었다. 지민은 밑에서 조무래기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이 많은 수를 어떻게 구해온 건지, 대충 짐작은 갔지만 성경이 이 정도의 병력을 가지고 있을 거란 생각은 못했다. 태형은 서둘러 윤기에게로 향했고, 윤기는 태형과 상극인 '불'을 이미 피워 놓고 있었다. 얼음은 불을 이기지 못한다.
명백하고도 단순한 사실을 이제야 깨달은 자신을 태형이 비웃었다. 하지만 불은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없다. 얼음은 불에게 녹는 동안의 시간을 그냥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네가 원하는 심장, 가져가."
"왜 이렇게 적은 병력으로 왔어요?"
"난 너한테 이길 수 없어, 널 죽일 수도 없고."
성경은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듯 싶었다. 윤기가 당연히 이길 줄 알고 있었던 건진 모르겠지만 성경은 아마 제 집에서 천천히 생각하고 있겠지. 태형과의 결혼을.
"너도 참 약았다. 이성경이 원하는 나를 걸고 동맹을 맺는 배짱, 네 아버지와 정말 닮았네 그건. 네가 날 죽이게 되면 이성경이 널 가만두지 않을 텐데, 그건 어떻게 처리 할래?"
"‥이성경은 죽었어요."
"뭐?"
"아마 지금 쯤 호석이가 악마의 심장을 꿰뚫는 화살로 죽이고 있겠지."
"무방비하게 누워 있는 대악마 하나 쯤 죽이는 거, 일도 아니라더구요."
태형이 아는 민윤기는 반류였지만, 반류답지 않은 인간미를 가지고 있는 남자였다. 여주를 얻기 위해 생긴 집념과 집착이 사람을 악마로 만들었고, 지금 그 악마는 태형을 죽이려 하고 있었다. 태형은 작은 단도를 꺼냈다. 윤기는 반사적으로 제 몸을 보호하기 위해 불길을 태형 쪽으로 보냈지만 태형이 만든 바람은 그 불길을 쉽게 꺼버렸다. 태형은 모든 것을 내려놓은 표정이었다.
"이 단도, 내가 예전에 특별 제작한 거야. 대악마 살생용으로. 네 아버지를 죽일 때 사용 했지."
"‥."
"이걸로 네가 내 심장을 꺼내가면 돼."
반항 할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태형은 말 그대로 움직이는 시체 같았다. 심장 부근이 이미 뚫려있는 듯 했다. 윤기는 단도를 제 손에 쥐면서도 이게 과연 잘 하는 짓일까 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미 돌이키기엔 너무 많은 길을 걸어왔다. 태형의 심장 부근으로 칼을 가져다 대자 윤기는 몸 속의 피가 끓어 넘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제 몸에 봉인되다시피 한 아버지의 영혼이 무의식적으로 날뛰는 것 같았다.
칼을 쑤셔 박는 순간 터져 나오는 피는 온전한 악마의 것이 아니었다. 여주로 인해 너무 많이 융화 되어버린 악마의 피는 보라색이 아닌 새빨간 색을 띄고 있었다. 조무래기를 다 쳐리하고 올라온 지민은 그 피들을 보며 절망했다. 결말을 알고 본 소설책이라도 결말이 절망적이라면 그 절망을 피할 수 없으리라.
태형은 힘 없이 쓰러졌다. 지민이 겨우 태형을 받쳐 들었지만 이미 심장과 분리 된 육체는 그저 겉껍데기에 불과 했다. 눈물을 한 방울 흘리는 지민을 내려다보던 윤기는 말없이 심장을 제 심장 부근에 가져다 대었다. 자, 드세요. 그리고 여주를 제게 주세요. 하지만 반응이 없었다. 그런 윤기를 노려보던 지민은 윤기를 벽 쪽으로 날려보냈다.
"안타깝지만, 그거 김태형 심장 아니야."
거친 숨을 내뱉은 윤기가 손에서 뛰고 있는 검붉은 심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럴 리 없다. 이건 분명히 ‥ 김태형의 심장이 맞을 텐데.
윤기가 제 몸을 지키려 손에서 불을 내뿜자 지민이 더 큰 불길로 윤기를 둘러쌌다. 존나게 안타까운 새끼. 지민은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느냐고 물었다. 윤기는 직감했다. 여기서 죽는 거구나. 고작 두 마리의 악마에게 모두가 죽는 구나. 태형의 널브러진 육체를 바라보던 윤기는 지민의 눈을 바라보며 제 오른손에 쥐고 있던 심장을 부쉈다. 죽일 ‥ 거면, 빨리 죽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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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화
完
다음 화는 텍파 기차 공지랑 같이 올 예정이니까 신알신 해놓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