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에 노래가 하나 더 삽입 되어 있습니다. 글의 분위기가 상반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두 개 첨부했습니다.
마케팅부서 팀장 황민현입니다 C
어느새 인턴으로 들어온지 5일째. 드디어 금요일이다. 오늘은 누가 뭐래도 술먹어야 한다. 왜 직장인들이 술먹고 힘든 마음을 달래는 지 알겠다, 내가 지금 딱 그렇거든. 여자의 촉이라는 말이 괜히 있더냐. 팀장은 나를 존X 심부름을 시켰다. 심부름이라고 하기에도 단어가 아깝다. 개처럼 부려먹었다. 안그래도 더워죽겠는데 이리저리 왔다갔다 시중을 들고 다니니 몸이 노곤노곤해졌다. 점심시간에 잠시 무거운 머리를 책상에 박고 엎드려 있었다. 혼자 있고 싶은데 누가 날 쳤다.
"어디 아파요, 인턴?"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힘들어서."
"곧 주말이에요. 내일 나와서 연장근무 하기 싫으면 오늘 마감합시다."
재수없다. 저건 뭐 약주고 병주고인가. 좀 챙겨주는가 싶다더니 역시. 그니까 한마디로 고개 박은 거 들고 모니터에 집중하라는 거 아냐. 한 날 인턴에게 뭐그렇게 시키는지, 이거 액수 올려줘야 한다.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 점심시간이 끝날 때쯤 나는 믹스커피를 타러 탕비실에 가야했으니까. 그리고 그 재수없는 얼굴을 또 보러가야 하니까. 사직서 각이다. 내일 연장근무면 오늘 있는 약속도 취소해야 할 판인데 가서 자비라도 베풀어 달라고 해야하나. 나는 을에 위치한 인턴이니 개같은 갑을 따를 수 밖에 없다. 어쩌면 을도 아니라 병일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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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한 주를 마무리하는 날 그리고 내일 있을 주말에 다들 조금 들뜬 느낌이었다. 다행히도 인턴은 첫날과 같이 지각하는 일은 없었지만 여전히 허둥지둥한 모습이었다. 점심시간이 끝나갈 무렵 인턴은 또다시 믹스커피를 대령했다, 우물쭈물 애써 웃으면서. 드시면서 열심히 하라고 하는 말도 잊지 않고. 싸이코패스인가, 왜 저 우물쭈물한 모습이 재미있지.
다들 점심먹고 피곤해할 쯤에 잠시 밖을 둘러보았더니 인턴이 턱을 괴며 졸고있었다. 회사 메신저를 켜 키보드에 손을 올렸다.
[인턴, 이면지 좀 가져와요.]
턱을 괴며 졸고있던 인턴이 메신저소리에 깜짝 놀랐는지 작게 발작을 일으키며 눈을 떴다. 눈을 비비며 모니터를 확인 하더니 한숨을 푹 쉬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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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좀 회사 환경에 익숙해지는 거 같더니 졸음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배 속이 든든해지자 눈꺼풀위에 빌딩 두 채를 얹혀놓은 마냥 눈이 감겼다. 띠링- 갑작스러운 소리에 깜짝 놀라 작게 발작을 일으키며 눈을 떴다. 다른 사원들이 봤을까 쪽팔렸다. 사직서 양식이 어디있더라... 소리의 근원인 컴퓨터에 눈을 돌리자 메신저가 도착해있었다. 아니, 손이없어 발이없어 왜 이런걸 나한테 시키냐며 생각하다 한숨을 푹 쉬며 복합기 옆에 쌓여있는 이면지를 두툼하게 집어 뾰루퉁한 표정으로 팀장실 문을 두들겼다.
"여기, 주문하신 이면지요."
시킨대로 이면지를 듬뿍 가져와서 줬을 뿐인데 팀장은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웃고있었다. 얼굴에 뭐 묻었나.
"예, 고마워요. 이왕 주문한 김에 하나 더 주문해도 될까요? 오늘은 커피말고 자몽에이드가 먹고 싶은데, 너무 욕심인가."
예, 뭐 시키시는 데로 해야죠. 인턴인데.다음 생엔 내가 팀장으로 태어나서 부려먹는다. 라는 마음가짐과 함께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인 뒤 자리로 되돌아갔다. 그냥 계속 백수할 걸 왜 인턴으로 들어와서. 아니 하필 왜 마케팅부서 넣었냐. 경영관리부? 소문엔 경영관리부 팀장님이 그렇게 젠틀하다고. 옆 부서로 이직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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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면지를 대충 집더니 뭐가 그렇게 심란한지 뾰루퉁한 표정으로 제 방으로 들어오더니 이면지를 내밀었다. 졸다가 일어난 걸 증명이라도 하는 듯 턱을 괸 곳이 다홍빛으로 물들여져 있었다. 그래서 자연스레 웃음이 새어나왔다. 그 뾰로퉁한 표정을 계속 보고 있자니 가만있는게 너무 아쉬웠다. 오늘따라 자몽에이드가 먹고 싶은게 아니라 평소 커피말고 자몽에이드를 즐겨먹었기 때문에라는 내면 속 이야기는 뒤로한 채 인턴에게 커피대신 자몽에이드를 주문했다. 설렌다, 오랜만에 자몽에이드를 먹을 생각에.
"야, 너 잘 생각해봐."
"뭘."
"그정도면 사랑아니냐? 애꿎은 인턴한테 왜 자꾸 시키고 그래."
"재밌잖아. 놀리면 반응이 재미있는 사람, 그런거지."
"그래, 내가 잘못했다. 밥이나 먹어라."
점심시간, 성우와 서로 부서에 들어온 인턴에 대해 얘기하다 저 자식이 이상한 말을 짓껄여 놓는다. 사랑은 무슨. 그냥 인턴 표정이 재미있어서, 귀여워서 단순히 그런 이유인데 밥이 쉬었나 헛소리를 하고 난리인지 모르겠다. 그게 아니라면 요즘 날씨가 더워서 그런지 더위 먹은 게 틀림없다. 회사에 에어컨도 빵빵하게 틀어주는데 저건 회사 자본금 낭비나 다름이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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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위해 무거운 몸을 침대에 눕혔다. 더워서 잠을 못 자는건지 스트레스를 잔뜩 받아서 잠을 못 자는건지 요즘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 피곤한데 잠이 안오는 이건 시간낭비가 아닐 수가 없다. 그러다 문득 점심을 먹으며 말했던 성우의 말이 생각났다. '그정도면 사랑아니냐?' 사랑은 무슨 사랑이야. 연애세포가 다 뒈지게 생겼는데. 그런 헛소리를 머리 속에서 지우려 침대에서 일어나 침실에 나왔다. 졸려, 졸려 죽겠는데 잠이 안 온다. 얼마전에 새로 바꾼 가죽소파에 앉아 곰곰히 생각해봤다. 왜 그 헛소리가 잠자기 전에 문득 생각났는지. 새로운 주를 알리던 월요일부터 나는 인턴의 행동을 눈으로 쫓고 있었다. 첫날이라고 열의에 불타 모니터에 집중하는 것도 보았고, 조금 적응된 모양인지 긴장해있던 표정이 조금씩 풀리는 것도 보았으며, 턱을 괴고 조는 모습을 보고 심부름 시킨 자신의 행동도 이해할 수 없었다. 다홍빛으로 물든 턱 부근을 보고 왜 난 입꼬리를 당겨 웃었는지. 하나씩 퍼즐이 맞춰지는 느낌이었다. 학창시절에 다들 한 번쯤은 들어봤던 말 그게 나였다. 남자아이들이 좋아하는 여자아이를 보고 일부러 장난치고 시비건다는 거. 그녀를 이리저리 심부름 시키고 놀려먹은 건 그저 재미있어서가 아니었다. 그녀에게 관심을 받고 싶었던 거고 한 번이라도 그 얼굴을 더 보고 싶었던 거니까. 자몽에이드를 먹을 생각에 설렌게 아니라 자몽에이드라는 핑계로 그녀를 한 번 더 볼 수 있다는 거에 설레는 거였다.
굳이 거울로 보지 않아도 민현의 귀 끝은 그녀의 턱부근 처럼 다홍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는 팀장이라는 직급을 가질만큼 나이를 먹었지만 아직 감정에 있어서는 서툰 민현이었다.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을 타인에 의해 알게 됐음과 그러한 감정을 일곱 살배기 어린아이 처럼 표현한다는 것.
+)
여주가 팀장님에서 팀장으로 호칭으로 바뀐 거 보면 많이 화가 난 거 같아요 ㅋㅋㅋㅋㅋㅋ
그에 반면에 민현이는 인턴에서 그녀로 바뀌었다는 것도 볼 수 있고요
사실 이 똥글을 어떻게 이어나가야 할 지 고민이랍니다 ㅠㅠㅠ 분량 조절 늘 실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