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그의 결혼식이다.
며칠 전, 그는 나를 찾아왔다. 개구지게 웃던 얼굴은 어느새 사라지고 반듯하게 웃는 어른이 된 그는 예전에도 종종 그랬듯
내 머리를 간지럽게 쓰다듬었다. 이게 얼마만이지? 오랜만이다, 백현아. 낮은 목소리가 머리 위에 내려앉고
그 포근함에 가슴 설레서 입가엔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나 결혼해, 백현아.”
적어도 그 말을 하기 전까진. 부드럽게 웃는 입에서 나온 말은 나를 무너뜨리기 충분했다.
표정을 굳히고 그를 보자 그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내게 하얀 종이를 건넸다.
그것이 청첩장이라는 것은 굳이 꺼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네가, 와줬으면 좋겠어. 헤어진 연인에게 청첩장을 주며
결혼통보를 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아, 그는 나를 단념시키기 위해 온 걸까. 아직도 미련하게 혼자 앓고 있는 나를 위해서? 아니면,
“다른 사람보다 너에게 축하받는 결혼 하고 싶어.”
이기적이게도 자기 마음의 짐을 덜고 싶어서 일까. 다시 한 번 내 머리를 훑어오는 손길을 밀어냈다.
어색한 웃음이 들리고 백현아, 하는 부름도 들렸다. 입술을 세게 물었다가 풀었다. 손가락 끝이 간질거리고,
속은 무언가가 가득 채운 듯 답답해서 몇 번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이렇게 굳이 찾아오지 않아도, 갈 수 밖에 없잖아.”
난 당신의 동생인걸. 목 끝까지 차오르는 말은 가까스로 삼켜냈다. 무슨 말 뜻 인지 알아듣지 못하던
그는 한참이 지나서야 아, 하고 바보 같은 소리를 냈다. 무언가 말을 하려 입을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하며 우물쭈물하던
그는 꼭 와줬으면 좋겠다. 그 한마디만 남기고 무책임하게 떠나갔다.
*
결혼식장에 피아노소리가 울리고 박수소리가 쏟아졌다. 중년남자의 손을 꼭 마주잡고 환하게 웃으며 식장에 들어오는 그녀는 예뻤다.
하얗게 빛나는 드레스 자락을 끌며 들어오는 그녀는 환하게 웃고 있는 그에게 한걸음, 한걸음 다가섰다.
그리고 바보같이, 단정하게 정장을 차려입고 그에게 다가가는 나를 상상했다. 그녀가 중년 남자의 손을 놓고 내밀어진 그의 손을 잡았다.
상상 속에 나도, 그의 손을 잡았다. 그와 그녀가 주례를 듣는 뒷모습이 보였다. 나와 그의 뒷모습도 보였다.
이윽고 그와 그녀가 모두가 보는 앞에서 입을 맞추었다. 박수소리가 크게 울렸다. 나와 그도 입술을 맞대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볼에 따듯한 물기가 느껴졌다. 아, 나는 울고 있나? 그제 서야 내가 울고 있단 걸 깨달았다. 손가락으로 볼을 문질렀다.
눈물은 쉼 없이 흘러나왔다. 세게 눈두덩이를 부볐다. 잇새로 울음소리가 새어나갔다.
그가 그녀의 손을 단단히 마주잡으며 그녀의 부모님에게 다가가 절을 했고, 곧이어 이쪽으로 다가왔다.
“백현아, 왜 울어.”
그가 부모님에게 절을 한 뒤 다정히 내게 물었다. 그리고 부드럽게 손가락으로 볼을 문질러왔다.
얘도 참, 오늘같이 좋은 날 왜 울고 그러니? 방긋 웃으며 말하는 엄마의 목소리에 소리 내어 엉엉 울었다.
그녀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마 그녀도, 다른 사람들도 모두 형의 결혼식에서 우는 아직 철이 덜 든 아이인 줄만 알 것이다.
하지만 내 울음에 속 뜻을 아는 그는 어색하게 웃을 뿐이었다. 나는 그의 말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어겼다.
난 당신의 결혼이 행복하지 않길 빌어요.
그에게는 닿지 않는 바람이었다.
**
“아아, 들려요?”
큼큼, 목을 가다듬었다. 차가운 전화기에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신부는, 뭐해요?
이렇게 전화, 받아도 되는 거야? 말이 뚝뚝 끊겨 나갔다. 코를 찌르는 알코올냄새에 잠시 인상을
썼다가 들리는 목소리에 인상을 풀었다. 혜선이 씻고 있어. 응, 그렇구나아.
“술마셨어?”
“응, 조금요. 근데 이제 안마실거에요.”
아니다, 마실 수 가 없겠구나. 웃음기가 섞인 내 목소리 위로 한숨이 내렸다. 빨리 자, 내일 머리 아프겠다.
걱정하는 말투는 아직 여전하구나. 그는 신혼여행을 가지 않았다. 그건 내 마지막 부탁이었다.
부탁을 들어준 것은 나에 대한 마지막 예의일까.
“난 지금도 아픈데,”
“…백현아.”
“알아요, 무슨 말 하려는지. 근데 내일부턴, 술도 안마시고, 아프지도 않을 거 에요.”
“백현아.”
그의 목소리가 다급하게 들린 건 착각일까, 바스락 대는 소리가 수화기 건너로 들렸다. 그는 놀랄만큼 나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였다.
“마지막으로 얘기, 할게요.”
“응, 끊지 말고 계속 얘기해.”
“나 약속 어겼어요. 축하해 달라는 부탁 못 지켰어요. 미안해요. 형은 신혼여행 가지 말란 내 부탁도, 들어 줬는데….”
“너 지금 어디야.”
“형은 약속 안 지키는 사람 제일 싫어하잖아요.”
“집이지?”
찬열 오빠! 어디가요. 수화기 너머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의 신부, 그의 아내.
내가 가질 수 없는 것들을 그녀는 가질 수 있다. 한 손에 들어오는 하얀 통을 집어 들었다. 잘그락잘그락 거리는 소리가 났다.
“찬열이 형은,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나, 대신, 내 몫만큼.”
전화를 끊었다. 캄캄한 방에서 핸드폰 액정만 환하게 반짝거렸다. 화면엔 그와 내가 웃고
있는 모습이 가득 차있었다. 잠시 화면이 흐릿하게 보이다 그 위로 물이 몇 방울씩 떨어졌다.
또 울고 있나. 볼을 문지르고 통의 뚜껑을 열었다. 알약들이 가득 차있는 통을 입에 대고 들이 부었다.
알약이 입에 가득 차고 그것들을 씹어 삼켰다. 미처 다 씹지 못한 약들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형, 찬열이 형.”
쓰디 쓴 약들이 입으로 다 넘어가고 주저앉듯 벽에 기대어 앉았다. 텅 빈 방안엔 웅얼대는 내 목소리만 들렸다.
찬열이, 형, 찬열, 형. 그 목소리는 점점 짙어지더니 울음으로 변했다. 잠이 몰려들었다. 참지 못하고 바닥으로 쓰러졌다.
눈이 가물가물하게 감기는 와중에도 입은 쉴 새 없이 그를 찾았다. 박찬열, 찬열이형…. 이젠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서서히 눈이 느리게 감겼다 떴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쾅, 문이 세게 열리는 소리가 났다. 힘겹게 감긴 눈을 떴다.
빛이 세게 들어오고 그가, 보였다. 꿈같다. 허탈하게 미소를 지었다. 변백현!
소리치는 그 낮은 목소리도 나를 감싸오는 따듯한 품도 모두, 꿈만 같았다.
졸리다, 형 나 잘래…. 웅얼거리는 말이 그에게 들렸을 까. 백현아, 변백현! 내 이름들이 들려오는
와중에도 간간히 울부짖는 소리도 들렸다. 모든 게 꿈이었으면 좋겠다. 자고 일어나면 평소와 같은 하루가 시작되게끔.
찬열이형, 결혼 축하해. 그리고 사랑해.
+bgm. 크레페-결혼식에는 갈 수 없어
쿠카 |
단편입니다. 연재ㄴㄴ...갠홈에서 다른거 연재하다가 삘받고 썼는데 네 뭐..우울하네여^P^ㅋㅋㅋㅋ 우울한 글 쓰다 또 우울한거 쓰다니ㅠㅠㅠㅠㅠ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우울증걸리겠네ㅠㅠㅠㅠ아무튼 전 갠홈에서 주로 서식합니다..여기다 홍보해도 되나..? ㅠㅠㅠㅠ갠홈 많이 와주셧으면 좋겟네여ㅠㅠ 됴륵됴륵.. 외전을 바란다면 쓰..쓰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