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브금은 자동재생 입니다.
++) 작가의 말 읽어주시면 좋아욧
++) 작가의 말 봐주세요! 수정 했어요!
“안녕히 계세요.”
사장님께 인사를 마친 후 병원을 빠져나왔다. 현주를 만나기 위함이었다. 원래 하던 알바를 잘린 후 구해주겠다던 현주의 알바자리는 병원 카페였다. 큰 병원이기에 늘 사람이 북적거렸고, 알바 일주일차인 나는 일주일 째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가는 버스를 타러 정류장으로 가는 중이다.
“어땠어?”
“너는?”
“나는 뭐 그냥 사람 많았어.”
“겨울인데 왜 이렇게들 꽃을 많이 사는지.” 옆 건물의 꽃집에서 알바를 하는 현주의 투덜거림이었다. 매일같이 터 가는 현주의 손을 보자 차라리 카페 알바가 백배는 나을 것 같아 조용히 입을 다물고 버스를 기다렸다.
“가자.”
집으로 가는 버스가 온 것을 본 현주가 꾸벅꾸벅 졸고 있는 나를 작게 흔들었고 버스에 타자마자 자리에 앉아 창밖을 바라봤고, 형형색색의 빛들이 창문을 통해 지나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문득 생각이 들었다. 충동적으로 그 때 현주를 따라 가지 않았더라면, 아마 나는 집과 가까웠던 그곳에서 지금보단 편하게 알바하고 있었을까. 뭐, 아마도 그랬겠지…
그럼 그 때 선택을 후회하냐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대답할 것이다. 아니. 후회 안 해.
내 인생에 있어 그렇게 사랑을 듬뿍 받은 적은 처음이었고, 앞으로도 없을 거니까.
현실에 와 보니 역시나 꿈이었다는 생각에 괜히 서글퍼 창밖 불빛들만 바라보고 있는 지금 이 상황조차 서글펐다.
이제는 내 기억 속에서 차츰 사라져 버릴까 두려운 그가, 오늘따라 그립다.
아프다는 말을 듣자마자 자신의 밥그릇을 들고 내 처소를 찾아왔던
“체면도 없으십니다.”
“부인 앞에서 체면이 어디 있어요.”
“왜 죽을 드세요?”
“심신이 미약하신 중전을 앞에 두고 저만 맛있는 거 먹는 건 좀 아니지 않나 싶어서요.”
국왕.
그가 보고 싶었다.
*
“언니 저 왔어요!”
하얀 입김이 바람 사이로 흩어지는 곳을 벗어나 카페 안으로 들어와 목도리를 벗었다. 옷걸이에 걸린 목도리가 앞뒤로 흔들리고 있었다. 나보다 조금 일찍 온 언니는 날 반겨줬다. 아침 아홉 시. 병원 카페 영업 시작 시간이었다.
“아메리카노 두 잔이랑 쿠키 네 개요.”
“이따 차례 되시면 울릴 거예요~.”
사람은 오늘도 북적거렸다. 환자들뿐만 아니라 보호자, 의사까지 모두 이 카페를 이용하고 있었다. 오늘도 이 좁은 카페 안을 둘이 뛰어다니며 주문을 받기 바빴다.
“와. 이제 좀 쉬자.”
점심시간이 끝나갔고 사람들이 많이 줄자 언니가 건넨 말이었다. “좀 쉬자.” 그 말에 나는 대답할 기력도 없어 고개를 끄덕이고는 의자에 늘어졌다. “시급이 센 줄 알았는데 이정도 노동이면 그럴 만 한 것 같아..”“더 줘야죠..” 이제 둘이 좀 얘기하고 쉬나 했는데 다시 들려오는 손님에 언니가 가겠다며 일어났다.
좀 쉬나 싶었는데, 갑자기 울리는 언니의 전화로 인해 결국 내가 나가게 됐다. 흰 가운들을 입은 것을 보니 이 병원 의사들 같았다.
“나는 아메리카노.”
“그럼 나도. 아메리카노 네 잔?”
“시켜.”
세 명 정도 되는 의사들 사이에서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오고갔고 “아메리카노 네 잔이요.”하는 주문에 결제 후 아메리카노를 만들고 있었다. 그러다,
“저 왔어요.”
“아메리카노, 맞지?”
“저는 아메리카노 써서 못 마신다니까요?”
뒤늦게 온 의사로 보이는 흰 가운을 입은 남자의 목소리에 놀라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면
그가 있었다.
쨍그랑-
내 손에서 컵이 떨어졌고, 의사 네 명의 시선은 모두 내게로 향했다.
물론
그의 시선까지도.
“괜찮으세요?”
그를 제외한 세 명의 의사들 중 한 명이 내게 괜찮냐고 물었고 나는 그제야 정신을 차려 떨어져 깨진 컵 조각들을 주웠다.
지금 내가, 뭘 본 거지?. 다시 한 번 보고 싶은데 뭐가 그렇게 두려운 건지. 자꾸만 시선이 땅으로 향했다. 우여곡절 끝에 다 만들어진 아메리카노를 쟁반 위에 올린 뒤 3번 테이블의 진동벨을 울리니 의사 한 명이 와서는 쟁반을 가져간다. 그 의사에게 진동벨을 받는 순간까지도 시선은 그에게 있었다.
정재현, 당신이 왜 여기에.
*
“야 왜 이렇게 힘이 없어?”
“어? 아냐. 차 왔다.”
왜 이렇게 힘이 없냐는 현주의 말에 아무 대답도 하지 못 했다. 하나를 설명하면 백 까지 이어질 것 같아서. 아무 말 없이 버스에 올라 창밖만 멍하니 보고 있었다. 정말 내가 본 게 그가 맞는 것일까. 얼굴은 물론 목소리까지 똑같은데. 그가 아닐까. 자꾸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는 내가 컵을 떨어뜨린 후 자신의 동료들과 카페를 나갈 때까지 내게 시선 한 번 주지 않았다. 그렇기에, 내가 그가 맞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내게 늘 다정했던 그인데. 아예 모르는 사람이기에.
“나 잘게. 이따 도착하면 깨워줘.”
“그래. 좀 자라. 너 오늘따라 엄청 피곤해 보여.”
싱숭생숭한 마음을 진정시키려 눈을 감았다. 차라리 잠을 자자. 그래야 잠깐만이라도 심란한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그가 맞다면
“앞으로도 많은 처음을 함께하고 싶어요.”
다시 그와 많은 것들을 처음 해 볼 수 있을까.
*
“안녕하세요.”
“아, 네. 안녕하세요.”
“안 피곤하세요?”
“괜찮습니다. 이게 일인데요.”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함은, 며칠 전 하루가 멀다 하고 의사 동료들과 찾아오는 국왕으로 의심되는 그 사람 때문에 정신을 못 차리던 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
그 뒤로 꽤나 친해졌다고 생각하는 중이다. 하루에 한 번이라도 말하는 게 어디냐 싶어 그가 카페에 올 때마다 말을 걸고 있다. 때로는 날씨 얘기, 때로는 메뉴 얘기 등 시시콜콜하고 의미 없는 말만 주고받고 있는데도 이걸 멈출 수가 없었다. 대화를 하는 것에 만족했으니까.
“너 저 의사쌤 좋아해?”
잠깐 휴게실에 들어왔을 때 뒤에 들어온 언니가 건넨 말이었다. 언니의 말에 화들짝 놀라 눈을 크게 뜨고 쳐다보니, 씩 웃으며 내게 묻는다.
“하긴 정 쌤이 잘생기긴 했지?”
“성이 정 씨야?”
웃으며 내게 말을 건네는 언니의 팔을 잡고 물었다. 정 쌤? 성이 정 씨라는 말이야? 언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입을 열었다.
“뭐야, 아직 이름도 모르고 좋아하는 거야? 그 이름이 뭐더라.”
“이름이 뭐야? 빨리 언니.”
“그렇게 급해? 아 뭐더라…”
정 씨. 정재현. 정재현. 분명 그의 이름은 정재현이었다. 아직까지도 그의 손수건이 눈앞에서 일렁였다. 기억이 날듯 말듯 하는 언니의 표정을 보며 재촉했다. 그러자 언니는 이제야 생각난 듯 입을 열었다.
“그 정윤오! 정윤오 의사쌤? 맞을거야. 초반부터 잘생겼다고 난리였어.”
아, 그녀의 말에 참고 있던 숨이 저절로 내뱉어졌다. 허. 같은 사람일 줄 알았는데. 이름이 정재현이 아니었다. 그래, 뭐 애초에 그는 내 질문에 필요한 대답만 해 줬고, 그가 국왕일 거라는 생각은 나 혼자 한 생각이었기에 그렇게 타격이 크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이미 국왕과 똑같이 생긴 그에게 마음이 기울어 있었고 애꿎은 손톱만 물어 뜯고 있을 뿐이었다.
“여자 친구 있나 물어봐 줄까?”
“어? 언니 잠시만요!!”
언니는 그런 나를 보더니 그에게 여자 친구가 있나 물어봐 주겠다며 내 손목을 잡고 다짜고짜 카운터로 가기 시작했다.
“윤 쌤! 이거 좀 드세요!”
나와 보니 그는 이미 가고 없었다. 그러자 언니는 두리번거리더니 그와 평소 같이 다니던 다른 의사 쌤을 불렀다. 언니의 부름에 달려온 윤경식 선생님께서는 자주 와 주셔서 감사드린다는 말과 함께 쿠키를 건넸다.
“환자들 돌보시는데 고생이 많으십니다!”
“아유 뭘 이런걸 다.”
“선생님, 제가 궁금한 게 있는데 물어봐도 돼요?”
윤 쌤은 언니에게 말하라는 듯 눈썹을 한 번 들었다 내렸고 언니는 그제야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 정 선생님 있잖아요.”
“아, 정윤오 선생?”
“네. 혹시 여자친구 있어요?”
윤 쌤은 언니가 준 쿠키를 입에 한 번 베어 물고는 언니의 질문에 대답했고
“여자 친구는 없고.”
여자친구는 없다는 윤 쌤의 말에 마음을 놓은 것도 잠시
“와이프는 있지? 아마 엄청 일찍 결혼 했다는 것 같은데.”
“…”
“애는 있는지 모르겠다.”
“……아.”
망했다. 입에서 저절로 짧은 탄식이 흘러 나왔다. 와이프라니. 결혼을 했다니. 그곳에서도 이곳에서도 그는 곁에 누군가가 있구나.
그래, 그냥 그리워하던 그의 얼굴을 보고 있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언니는 내게 안타깝다는 눈빛을 보냈고 그런 언니에게 괜찮다며 한 번 웃어 주고는 뒤돌아 휴게실로 향했다.
그저 혼자 하는 이야기지만, 제발. 제발 그 와이프가 한 씨의 성을 가진 여자만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빌었다. 씨발 그러면 내가 너무 비참하잖아.
휴게실에 들어와 한숨을 푹 쉬었다. 뭘 기대한 거야? 괜찮아. 어차피 이곳에서는 인사 정도만 나누는 사이니까. 인사는 누구든 할 수 있잖아? 스스로를 위로했지만 속상한 마음은 풀리지 않았다.
차라리 여자 친구가 있었다면. 그랬다면 지금보다는 낫지 않을까. 깨지기를 바랄 것도 아니었고, 뭘 어떻게 해볼 심산도 아니었지만 가정이 있다는 지금보다야 나을 것이다.
그리고는 그 생각을 접기로 했다. 계속 좋아하는 것도, 떠올리는 것도 그 사람 와이프 되는 사람한테 미안한 감정이니까. 누가 들으면 미쳤다고 할 게 분명하니까. 그래서, 접기로 했다.
접자. 접어.
*
“미친.”
알바를 끝내고 병원을 나서니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듯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떨어지는 빗방울은 일직선으로 땅을 강타했고, 그 주위에 동그랗게 원이 퍼졌다.
오늘 왜 이러는 거야. 그에게 못된 마음을 품어서 그런 것일까. 현주에게 전화를 하려는 찰나
“고생하셨어요.”
“그래도 오늘은 좀 일찍 가서 좋네요.”
뒤를 돌아보니 저쪽 엘리베이터에서 의사들이 내렸다. 한 대여섯 명 되는 것 같은데, 내 눈은 그를 찾았고 동료들과 얘기하던 그는 나와 시선이 맞닿았다.
“씨발.”
어쩔 수 없었다. 이미 전화를 받아버린 현주가 “야! 말을 해!” 하는 소리에 대답도 못 하고 끊어버렸다. 그리고는 다짜고짜 뛰었다. 정류장을 향해서. 한겨울에 잘 내리지 않는 장대비가 쏟아짐에도 불구하고 죽어라 뛰었다.
다시는, 마주치고 싶지 않아.
자꾸만 감정을 품어버릴 것 같아서 겁이 났다. 그저 그와 닮았다는 이유만으로 빠져버린 나인데, 그 쪽 세계에서 후궁이 있어도 좋아했듯 자꾸만 그가 눈앞에 아른거릴까 싶어서였다.
머리부터 조금씩 젖어 들어가기 시작한 몸은 결국 비로 샤워하듯 젖어버렸다. 뒤를 돌아 병원이 보이지 않자 걷기 시작했다.
잊자며. 별 거 아닌 인사 정도만 나누는 사이라며. 그렇게 생각한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나 보다. 오랜만에 만난 잊지 못한 옛사랑처럼 자꾸만 말만 나누어도 가슴이 떨리는 게, 점차 커져갈 감정이었다.
“킁.”
울기 싫은데, 나 이렇게 찌질이 아닌데 자꾸만 눈물이 흘렀다. 차라리 비가 와서 다행이었다. 집에 들어가서 엄마가 얼굴이 왜 이모양이냐 하면 비 때문이라고 해야지 뭐.
저 멀리서 비를 쫄딱 맞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놀라 뛰어오다시피 걸어오는 현주가 보였다. 그녀를 보자 마음이 놓이는 동시에 손이 시렸다. 하얀 장갑이 필요했다. 찬 손을 데워줄 그런 장갑이. 내 곁으로 온 현주는 무슨 일이냐며 물어왔고, 대답 대신 택시를 타고 가자는 내 말에 현주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택시를 탔음에도 자꾸만 앞이 뜨겁게 흐려지는 것이
오늘은 집에 가서 씻고 빨리 자야겠다.
*
“어우 추워. 이놈의 날은 언제 풀리냐. 너 괜찮아?”
“괜찮아요….”
괜찮기는. 내 몸은 내가 알았다. 대충 괜찮다고 둘러대긴 했지만 자꾸만 몸에 힘이 풀리고 눈이 감기는 게 아무래도 감기몸살인 것 같았다. 하지만 시급이 세고 손님이 많은 이곳을 하루 동안이나 빠진다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언니 혼자 이 많은 손님들을 어떻게 다 상대해.
“좀 들어가서 쉴래?”
“아뇨, 진짜 괜찮아요 언니. 걱정해 주셔서 감사해요.”
정말 괜찮다는 내 말에 언니는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그런 언니 옆에서 카운터를 보고 있었다. 본다기 보다는 지키고 있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한 것 같다. 정확히 말하면 버티고 있었다. 누가 되지 않으려고. 그런데
“아메리카노 네 잔?”
“저는 못 마신다니까요.”
“알겠어 아메리카노 네 잔~”
차라리 들어가서 쉰다고 할 걸 그랬나.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콜록대고 있는데 의사 선생님 무리들이 들어와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물론, 정ㅈ, 아니. 정윤오 그도 함께.
“아메리카노 네 잔이요.”
“아메리카노 네 잔 주문 받았ㅅ…흐.”
그대로, 다리에 힘이 풀리며 정신을 잃었다.
*
“으으.”
“? 미친. 일어났냐?! 어제 그렇게 비를 맞더니!!”
눈을 뜨니 카페가 아님에 인상을 찌푸렸고 내 옆에서 날 보던 현주가 놀라 말하러 가야겠다며 뛰어나갔다. 간호사를 부르려나. 이곳은 병원이었다. 아마 내가 알바 하는 그 병원 같은데. 6인실도 아니고 1인실로 잡다니, 너무 무리한 게 아닌가 싶다. 여기서 하루면 내 알바비가 얼마야.
“일어나셨어요?”
그런데 시발. 완전히 망했다. 하루 빨리 퇴원해야겠다. 현주가 데리고 온 사람은 다름 아닌 그였다. 정윤오.
“카페에서 정신 잃으셔서 급하게 데리고 왔어요.”
“…아.”
“병원비는 아마 보험 혜택 다 되실 거니까 마음 놓으시고 편히 쉬세요.”
“…네.”
“산책하고 싶으실 때나 심하게 아프실 때는 저 찾아오시거나 옆에 비상 호출 벨 누르시면 됩니다. 쉬세요.”
엥. 왜 내가 본인을 불러야 하는 거지. 궁금해 물어보려던 찰나 그는 호출이 온 듯 소리가 나는 주머니를 잡고 뛰어 나갔고 그 질문의 화살은 현주에게로 향했다.
“근데 내가 산책하고 싶은데 저 쌤을 왜 부르지…?”
“같이 나가야 하나 보지?”
그게 무슨 말이야. 현주의 말에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응? 하며 되물었고, 나는 현주가 가리키는 침대 끝에 걸린 종이를 읽었다.
‘담당의 : 정윤오.’
망했다. 그것도 아주 많이.
*
“아프신 곳은 없으시고요?”
“네. 저 진짜 괜찮은데 퇴원은 언제쯤…”
“대충 나으신 것 같을 때는 안 보내드려요. 지금이 겨울이라 밖에 나가서 감기몸살이 EH 재발하기 쉬우니까요.”
하루 빨리 이 병실을 나가 알바를 하든 그만두든 해야 하는데, 감기몸살이 뭐 그리 대단한 거라고 날 보내주지도 않는다. 감기몸살로 이틀이나 병원에 입원해 있다니.
“내가 다 알아봤는데 너 진짜 병원비 하나도 안 내도 돼!”
현주가 옆에서 말했다.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라고……. 일단 현주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고 나가려는 그를 말로 붙잡았다.
“저, 선생님.”
“네, 말씀하세요.”
뒤돌아 날 보는 그의 시선에 잠시 말이 잘못 나올 뻔 했지만 급하게 정신을 차려 입을 열었다.
“정말 이름이 정…윤오 맞아요?”
“네?”
“혹시 정재현 아니에요?”
정신이 나갔구나 내가 드디어. 떡하니 의사 가운 왼쪽 주머니에도 ‘정 윤 오’ 라고 적혀있고, ‘담당의 : 정윤오’ 라고 내 발 밑에도 적힌 종이가 걸려져 있는데. 자꾸만 그가 생각이 나서 물었다. 혹시 이름이 정재현 아니냐고.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네요.”
“얘가 정신이 좀 온전치 않아서….”
“아뇨, 정신은 멀쩡하신 것 같아요.”
그는 내 말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난처하다는 웃음을 보였고, 나 역시 그의 마지막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리고 뒤돌아 나가는 그의 뒷모습을 눈으로 계속해서 쫓았다.
“괜찮아?”
“응.”
미치겠네. 자꾸만 하나하나 그와 연관시키려 하는 모습이 초라했다. 아닐 걸 알면서도 물어본 내가 웃겼다. 혹시나 개명을 한 건 아닐까. 그래도 마지막 희망이라고 생각했는데…. 내렸던 열이 다시 오르는 것 같았다.
빨리 퇴원해야겠다.
물론 그의 일이겠지만 자꾸만 괜찮냐 묻고, 시야에 보이니
접기로 한 한 줌의 연기 같던 마음이 피어올라 구름 사이로 숨었고 어느새 정신을 차려 보니 하늘을 만들었더라.
*
“회진 시간입니다-.”
“어, 곧 의사 선생님 오시겠다. 나 3분 뒤에 알바 시작이라 이제 가 봐야 돼…”
“잘 갔다 오고.”
이 층의 회진은 아침 8시, 오후 1시, 오후 6시, 오후10시. 이렇게 네 번으로 나뉘는데 이틀간 본 결과 아침 8시, 오후 6시는 다른 선생님이 들어오신 후 그가 들어오지만 오후 1시, 오후 10시는 그가 들어오지 않는다. 오후 9시 57분, 회진을 알리는 방송이 병실에 울렸고 꽃집 일이 너무 힘들다며 병원 야간 편의점 알바로 바꾼 현주가 내려가 보겠다며 손을 흔들었다.
사실 산책이 하고 싶었다. “산책을 하고 싶으면 본인을 불러라.”는 그의 말이 떠올라 회진만 끝내면 그와 산책을 하러 나갈 생각이었기에 침대에 눕지 않고 앉아 회진 시간을 기다렸다.
“어디 아프신 곳은 없으세요?”
“네, 저기 근데…”
오후 10시의 회진은 윤경식 선생님이셨다. 별 이상 없으시죠? 하며 물어오는 윤 선생님께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며 푹 자라는 선생님의 말에 또 한 번 고개를 끄덕인 후 선생님을 불렀다.
“정윤오 선생님께서는 왜 아침 8시, 오후 1시에만 들어오시는 거예요?”
내 질문에 차트를 보며 이상이 없다고 쓰고 계시던 윤 선생님께서 인상을 찌푸리며 “정윤오 선생님이요?” 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윤오 선생님은 회진 담당이 아닌데……. 제가 가서 확인해 볼게요.”
윤 선생님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 하시더니 밖으로 나가셨다. 회진 담당이 아니라니? 그럼 왜 들어온 거지. 일단 회진이 끝났다 싶어 병실을 나가 그를 찾으려 했는데 자꾸만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래도 내가 언제 퇴원할지 모르는데. 한 번쯤 산책을 하는 건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 사실 이건 내 욕심이었다. 이러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산책을 핑계로 그와 잠시라고 같이 있고 싶어서가 아닐까.
드륵-.
문을 열고 고개를 빼꼼 내밀어 밖을 보니 저 멀리 그가 등을 보인 채 걸어가고 있었고, 문을 열고 나가려는 찰나
“이거 놓고 갔는데요!”
“아, 안 그래도 깜빡해서 부탁드리려 했는데. 고마워요.”
어떤 여자가 달려와 그에게 뭔가가 담긴 아기자기한 쇼핑백을 건넸고, 그는 고맙다며 웃었다. 그리고 그와 그녀가 나눈 결정적 대화에 감정이 복잡해졌다.
“내일 안에서 봬요. 오실 거죠?”
“가야죠. 조심히 들어가요.”
아, 저 사람이 와이프인 것 같았다. 집에 뭘 두고 와서 가져다주는 것 같은데. 속으로 확신하고 있었다. 그 때 그 여인과 눈이 마주쳤고, 나는 도망치듯 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와 버렸다.
맞다, 가정이 있는 사람이었지. 진짜 미쳤나 봐.
허한 마음에 현주가 있는 편의점에 놀러나 가 볼까. 아니면 혼자라도 산책을 해야겠다. 싶어 침대 옆 옷걸이에 걸린 가디건을 가지러 걸어가던 때였다.
자꾸만 어지러웠던 머리가 핑 돌았고
그 자리에서 또 세상이 까매졌다.
*
“일어나셨어요.”
눈을 뜨니 내 손에 꼽힌 링거를 조절하고 있던 그가 깨어난 날 보며 말했다. 일어났냐고. 그런 그에게 미친 척 한 번 해 보자. 하는 심정으로 입을 열었다.
차라리 털어내고 다시는 안 보는 게 나을 것 같아서. 그래서.
“왜. 왜 하필 또 선생님이세요. 다른 의사 선생님들 많은데. 왜 또…….”
자꾸만 헷갈리게. 그는 내 말을 듣더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죠.”하며 내 질문에 대답을 하지 않은 채 되물었다.
“…….”
아무런 말을 하지 않자 왼쪽 가슴에 정윤오라는 이름이 적힌 의사가운을 입은 그의 닫혀 있을 줄만 알았던 입이 열렸다.
“분명 제가 아프시면 호출 벨 누르시라고 말씀 드렸는데 왜 안 누르시는 겁니까.”
“…….”
“그러면 제가 아무런 도움이 돼 드릴 수 없어요.”
그래요. 내 잘못입니다. 호출 벨을 누르라고 분명 말 했는데. 안 누른 건 나니까, 내 잘못이니까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는 화가 난 듯 보였기에.
그리고 나를 다그치던 그가 갑자기 한숨을 푹 쉬었고, 둘 사이에 흐르는 것은 찬 공기와 적막뿐이었다.
“참 여전하십니다.”
“?”
그 다음에 내뱉어진 그의 나긋한 음성에,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보면
“이곳에서 이 직업이면 내게 아픈 걸 말 해주겠지. 했는데.”
“…….”
“아플 때 말 안 하시는 건, 지금도 똑같네요.”
그의 눈동자의 화는 차분히 내려앉았고,
“제발 아프면 말 좀 하세요.”
“…”
“부인.”
따뜻했던 그 시선 그대로 날 내려다보는 그가 있었다.
+)
“내일 안에서 봬요. 오실 거죠?”
“가야죠. 조심히 들어가요.”
재현과 그의 앞에 선 여자. 그녀는 재현의 뒤로 문을 연 채 고개만 빼꼼 내민 여인과 눈이 마주친다. 뭐지 하는 순간, 급하게 문을 닫고 들어가는 여인에 그녀는 그쪽 병실을 가리키며 재현에게 물었다.
“저쪽 병실 환자분께서 쳐다보시는데 안 가보셔도 돼요?”
그녀의 말에 재현은 그녀가 손으로 가리킨 병실을 보았고, 아. 하더니 입을 열어 그녀의 궁금한 점에 대한 답을 해줬다.
“산책하자고 기다리고 있는 거일 거예요.”
“네? 산책이요? 왜 직접 가세요?”
그녀의 말에 재현은 한 번 웃으며 머리를 긁적인 뒤 자신의 앞에 있는 그녀의 두 번째 궁금한 점에 대답을 해 줬다.
“와이프예요.”
그런 그의 말에 그녀는 박수를 한 번 치더니 아~ 하며 이해한 듯 보였고, 마지막 인사를 한 뒤 돌아섰다.
“네. 김간호사님.”
“아내분이랑 좋은 시간 보내세요~”
그런 간호사의 말에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
귀가 빨개진 채 병실로 향하는 그였다
! 작가의 말 ! |
안녕하세여 독쟈님들!!!!!! T^T 니퍼입니다. 드디어 재현이 완결을 쓰는 날이 왔네요 흐브흐급... 기대에 못 미치는 부족한 글이었다면 죄송해요 T^T. 처음부터 재현이가 여주 와이프라고 말하고 다닌 것? = X 재현이는 아까 언니가 말했듯 인기 짱 많았고 그쪽 세계에서 결혼한 것도 맞으니까 그냥 ! 있다고 말하고 다닌 겁니다! 막 쟤가 내 와이픕니다. 이러면서 여주가 카페 알바 하기 전부터 말하고 다닌 게 아니라 그냥 있다~. 정도만 말하고 다닌 거요! 아마 목요일이나 그쯤 스핀오프로 한 화 나올 것 같은데 확실하지는 않아요..! 나오게 된다면 온다고 공지사항으로 글 쓸게요! ^0^ ♥ 늘 부족한 제 글 읽어 주셔서 감사드려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