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신발의 뒤축을 반쯤 꺾어신고 다니는 것이 버릇이었다. 억압당하는 걸 싫어하는 제 어미의 버릇을 고지곧대로 받은 태가 고스란히 묻어나있었으니 그녀를 한 번쯤 본 사람들은 반듯하지 못한 그녀의 행실을 탓하고는 했다. 교복을 입었음에도 당당하게 물고 있는 담배 끄트머리가 빨간 재로 모두 사라져 없어질 때까지, 까닥거리며 한 쪽 다리를 짚은 모양새가 일종의 반항아 같았다고 표현했으며,
스물의 반절이 지난 지금도 그녀의 신발은 여전히 뒷축이 남아나질 못했다.
장미, 별, 설탕
w. 여름의 별
똑같이 되풀이 되는 사계절의 반복 속에서 나는 겨울을 맞이했다. 크리스마스의 이브답게도 까만 밤하늘을 예쁘게 수놓은 빛들 중에서 나는 붉은 색을 가장 좋아했다. 5년이라는 시간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스물이 되자마자 보기 좋게 포장되어 가버린 유학에서 나는 먹고 놀고를 반복하다가 끝끝내 살아야겠다는 일념 하나로 버틴 것이 다였다. 이대로 가다가는 내가 속한 모든 곳에서 버림 받아도 이상하지 않을 거라고 내게 경고를 하던 어머니의 말이 뭐길래, 나는 맞지도 않은 옷을 입은 것처럼 익숙치 않은 언어를 공부해야 했는데 도무지 쓰지 않던 머리를 굴리는 것은 영 쉬운 일이 아니였다. 남들만큼만 하자고 했던 내 목적이 모두 물거품이 되어서 더이상은 버티기 힘들다고 내 딴에 웃기지도 않게 한국으로 도피를 한 것이 오늘, 12월 24일이었다.
조금 커져버린 키와 제 속내를 숨기고 사는 것이 쉬워질 때쯤 나는 그의 소식을 들었다. 나와 먼 미래에 결혼을 하기로 한 약혼자라는 사람의 소식은 내가 유학을 가 있을 때도, 도피를 할 겸해서 온 한국에서도, 어딜가나 귓등에서 떨어질 새가 없었다. 그 덕분에 숱하게 많이 사랑하고 관계를 가진 남자들보다 고등학교 시절 만난 것이 전부였을 그가 더 친숙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아무래도 따로 마음에 둔 여자가 있는 모양이야.’
그리고 어떻게 알았는지 내가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잠시의 틈도 주지 않고 그와 함께 하기로 한 저녁 약속을 가는 길에 들은 소식은 그에게 내연녀가 있다는 것이었다. 이브여서 그런가, 쓸데없는 생각들이 반 강제로 가야하는 그와 약속을 잡은 레스토랑 앞에서 나를 서성거리게 만들었다. 우리는 연인이었다. 언제부터 우리가 사귀었는지조차 모르는 사이였지만 우리는 안 보면 죽을 것 같고 서로 사랑해 마지않는 그런 연인이 되지 못한 연인이었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는 뒤늦은 나이에 찾아온 권태인가 싶었다. 그 사람에겐 나보다 더한 여자들이 왔다 갔고 그 행실에 별다르게 하고 싶은 말도 없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나밖에 없는 것처럼, 한 여자만을 지고지순하게 사랑하고 사생활이란 사생활을 모두 통들어도 그 사람만큼 깨끗한 사람도 없을 거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남자였으니 이중적인 면모에 대해서 일일이 따지고 들자면 아마 끝도 나지 않을 것이었다.
하물며 우리가 아직 결혼이라는 끈으로 묶여있는 사이도 아니고 서로 사랑해서 목숨까지 바친 로미오와 줄리엣도 아니었다. 어른들 사이에 언약이 조금만 엇나간다면 끝나는 사이에 사랑이 존재하기는 어려운 것이 맞았다. 애초에 어른들 앞에서는 나를 보는 눈빛이 그렇게나 사랑에 절여있었으면서 속으로는 다른 여자나 생각하는 것이 당연한 남자라는 건 익히 몸소 겪어봤으면서도 정신차리지 못한 내가 잘못한 것이었다. 그러니 차라리, 내가 그에 대해서 잘 모르는 풋내기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오면 말이라도 하지, 마중이라도 나갔을 텐데.”
그랬으면 고등학교 시절 나를 처음 만난 그 날에 했던 말을 버릇처럼 되풀이 하는 너를, 사랑하지는 않았을텐데.
장미, 별, 설탕
01
여름의 시작을 알리듯 초록색이 가득 물들어있는 나무들은 하나같이 색이 똑같았다. 그나마 봄이라고 꽃이 피어날 때는 제 본연의 색이라도 가진 것처럼 굴더니 여름이나, 가을이 다가올 때면 모두들 같은 색을 하고마는 것이 이럴바에는 사시사철 초록색을 띄고 있는 소나무가 낫겠다 싶었다. 버스에서 나오는 에어컨 바람이 시원하다 못해 차가워질 때쯤 나는 서서히 몰려오는 잠에 빠져있었다.
‘이번에는 가서 사고 치지 말고, 네 처신 똑바로 해.’
으름장을 놓는 것마냥 인상을 찌푸리던 어머니의 얼굴이 맴돌았다. 처신을 잘하라니, 나한테 퍽이나 어려운 숙제를 내어주는 그녀가 싫었다. 자식에게 화를 내면서도 고상한 척 연신 눈치를 보는 작은 목소리가 싫었다. 원래 내가 알던 어머니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내가 무엇을 하든, 관여하는 것을 질색팔색 하는 여자였다. 물건을 훔치거나 사람을 죽이는 일만 아니라면 내 알바 아니라는 식인 사람이었다. 그런 여자가 한순간에 변한 것은 비단 그녀의 탓만 있는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미혼모로서 딸 아이 하나 건사하기도 힘들었던 그녀는 젊었고 젊다는 말이 어울릴정도로 아름다웠다. 가진 건 외모밖에 없었어도 그러한 외모를 사랑해주는 돈 많은 남자를 만났으며 그 남자는 젊지도, 외모가 특출나지도 않았지만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이었다. 흔하게 겪는 신데렐라의 주인공이 된 지도 언 2년이 흘러갔다. 2년동안 그녀는 집안의 눈치를 보는 것이 일상이 되었고 아버지란 생각하지도 못한 존재가 내게 다가왔을 때에는 피 한 방울 안 섞인 나는 그 집안의 문제아였다.
아버지라는 남자 밑으로는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나보다는 세 살 먼저 태어나 때 아닌 오빠를 갖는 때도 바로 그 때였다. 착한 인성과 뭐든 잘해내는 능력, 잘생긴 외모, 뭐 하나 빠질 것이 없는 오빠였다. 그에 비하면 내가 문제아라고 한들 뭐라 할 말은 없었다. 매번 바쁘다는 그 사람의 얼굴조차 어머니가 내 어머니가 아니게 되버린 그 날에 마주한 것이 다였던지라 얼굴도 기억이 나질 않았다.
‘이번 정류장은 성현 고등학교 입니다.’
버스 안에서 나오는 안내방송을 들으며 두 눈을 길게 감았다 뜨자 여느 고등학교와는 다르게 태부터가 다른 학교가 보이기 시작했다. 일반 대학과 견주어도 남다를 바 없는 학교의 부지는 이 학교의 운영자금이 실로 대단하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게끔 했다. 감이 안 잡힐만큼의 기부금과 다니는 아이들의 대부분은 사회에서 내로라 하는 사람들의 자제들이었다. 단지 그들에게 있는 능력이 후한 뒷배경을 제외하고 나서는 잘난 머리나, 특출나게 뛰어난 재능, 그를 비롯한 제 스스로가 가진 것들이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만 이미 태어날 때부터 저마다 입에 수저 하나씩은 물고 태어난 자들이 뭐가 아쉬울까. 분명 다른 학교들보다 성적이 뛰어나게 높은 것도 아니었거늘 이 학교에서 진학하는 대학교의 이름은 모든 학생들이 선망하는 곳들이었다. 그리고 그 곳에 처음 발걸음을 딛어야 하는 나는 전학 첫 날부터 어머니가 맞춰주신 교복과 단정하게 윤기가 흐르는 구두를 보면서 문득, 이대로 못 들은 척 학교를 지나쳐버릴까 싶었다.
*
“네가 ㅇㅇ니? 어쩜 태경건설 회장님 따님답게 예쁘기도 하지.”
내가 가진 것들이 아니었어도 돈과 권력은 좋은 요기가 되어주는 것은 사실이었다. 이 학교로 전학온 것은 좋은 뜻으로 온 것도 아니었다. 첩의 자식이라고 뒤에서 신물나게 얘기하던 아이들을 응당 가만둘 수 없었던 얌전치 못한 내 과거로 인해 온 것임에도 불구하고 나를 맞아주는 선생님들은 따스하고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치렁치렁하게 흘러내리는 머리들을 끈으로 질끈 묶으며 선생님을 따라간 곳은 2학년 8반이라는 팻말이 붙어있는 교실이었다. 교실 문이 열리자마자 일제히 나에게 향한 시선들은 다분히 이질적이었지만 피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봤자 나와 엇비슷하거나 내 밑에 놓여질 아이들이었으니.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가난에 허덕이는 삶을 산 것도 아닌 나는 어머니와 나, 단둘이 살던 때를 그리워했다. 마음 속으로는 그 때로 돌아가고 싶다고 수도 없이 외치면서 겉으로 가진 것들로 판단하는 세상 속에서 피붙이도 아닌 내 아버지의 권력은 그들로 하여금 내 안위를 보장받게 해줬고 이중적이게도 나는 은연 중에 다 퍼져있을 내 칭호를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전학 첫 날, 반에서 흐르는 기류를 감당하기는 좀 부담스러웠다. 내 곁으로 다가와 단번에 말을 붙이는 아이가 있는 것도 아니거니와 흘깃거리며 보는 시선들은 딱히 내포하고 있는 뜻이 없었어도 불편했다. 하릴없이 창밖만 바라보는 것도 따분해지는 찰나에 누군가 내 곁으로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굳이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사람이었다. 쉴 새 없이 수근거리는 분위기, 넓은 보폭으로 다가오는 발걸음, 특유의 친절한 말투. 갖다 붙일 수식어야 많은 사람이었다.
“오면 말이라도 하지, 마중이라도 나갔을 텐데.”
어머니가 하고 많은 학교들 중에서 나를 이 곳에 보낸 이유, 아버지가 친자식도 아닌 나를 아껴주는 근원지이자 모든 이에게 선망 받을 수 있는 가장 궁극적인 목표.
…옹성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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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자주 만나기를 빌면서 오늘 좋은 꿈 꾸세요:)
그럼 이만,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