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증이 날 만큼 강하고 눈부신 햇빛에 눈을 떠보니 벌써 열시가 지나가고 있었다. 미친…. 정신이 퍼뜩 든 나는 서둘러 나갈 채비를 했고, 울렁거리는 속을 붙잡으며 어제 일을 생각하지않으려 애썼다. 술먹고 무슨 일이 있었다기에는 너무 평화롭고 조용했으며…무엇보다 편안했다. 사실 편안했던 이유를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애써 외면한 어제밤의 일을 접어두고, 난 학교로 향했다. "재환아!" "어,형." "뭐야. 왜이리 늦었어?" "늦잠…." 바보. 형이 웃으면서 얘기하는데 심장이 터질거같이 간지러웠다. 괜히 부끄러워져 고개를 푹 숙였더니 학연형이 어디 아프냐며 걱정스러운 말투로 물어보는데 그게 너무 귀여워 웃음이 절로 났다. 고개를 들어 눈을 마주하자 학연형이 히-. 하곤 입꼬리를 당겨 웃는게 사랑스러워 껴안고 싶을정도였다.
"난 홍빈이랑 너랑 데이트간줄 알았다. 둘다 안오길래-" "내가 이홍빈이랑? 어휴 이 형 이상한 형이네." "뭐, 뭐 내가 왜 이상한 형이야!" 아, 진짜 왜이리 귀여워…누가 채가면 어쩌려고. *** 결국 잠을 자지 못해 밤을 샜다. 밤새 울어 눈도 새빨갛고, 퉁퉁 부어서 몹시 꼴사나웠다. 또 얼굴은 눈물자국들로 엉망진창…허리도 쑤셔오고 아프지 않은곳이 없었다. 열도 나는거 같고……어지러운 머리를 꾹꾹 눌러주고 열심히 씻고 나왔는데 시계가 9시를 향해간다. 슬슬 학교가야하는데, 솔직히 난 학교에 가서 이재환과 차학연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였는지 난 느릿느릿하게 준비했고 10시가 다 되서야 집을 나섰다. 난 겁쟁이였지만 아프다는 핑계로 내 자신을 변명했다.
학교에 오니 제각각 자신들의 짝과 떠드느라 정신이 없었다. 난 강의실에 들어오자마자 이재환과 차학연을 찾았고 둘은 뭐가 그리 좋은지 깔깔거리며 웃고있었다. 두명의 시야에는 내가 없었다. 아니 그들의 생각속에도 나는 없었다. 다시 지끈거리는 머리에 신경질이 났다. 어지러운 머리속을 정리하며 관자놀이를 누르고 있는데 딱, 차학연과 눈이 마주쳤다. 차학연은 그런 날 보며 비웃었다. 분명, 비웃었어. 잠깐이였지만 차학연은 내 눈을 보고 날 비웃었다. 신경질이나 난 성큼성큼 걸어가 둘의 앞에 섰다. 둘은 동그란 눈으로 날 쳐다봤고 차학연은 모르는척, 빨리 가달라는 눈치를 줬다. 난 굴하지 않고 차학연에게 할말이 있다고 얘기하자고 했고, 차학연은 이재환 눈치를 보는척하며 거절했다. "얘기 좀 하자구요, 형." "나…너랑 할 얘기 없어." "형 좀-!" "학연이형이 할말 없다잖아.
이재환이 차학연을 대신에 화를 내며 얘기했고, 차학연은 또 연기를 시작했다. 재환아- 왜 화내고 그래~ 그러지마. 저 이중성…진짜 역겹다. 미친놈. 차학연은 아무말 못하고 있는 날 보며 웃으면서 얘기했다. 홍빈아, 미안…근데 지금은 얘기할 기분이 아니라서. 차학연은 날 달래는척하며 날 그들 밖으로 밀어냈고, 난 입도 뻥긋 못한채 차학연에게 밀려났다. 몇년간 쌓아온 감정을 차학연은 한순간에 무너뜨렸다. 비참한기분에 수업들을 기분이 아니였지만 곧바로 수업이 시작됐고 교수님이 들어와 억지로 자리에 앉아 집중도 되지않는 지루한 수업을 흘려보냈다.
수업동안 차학연에 대해 생각하느라 수업이 끝난지도 모르고 있었다. 원식이 와서 이홍빈 뭐하냐, 안가냐? 라는 질문에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차학연과 이재환에게 찾았지만 둘의 자리는 벌써 비워져 있었고 난 어쩔수없이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향하는길이 유독 길었던것같다. 버스에서 내려서 한참을 동네놀이터에 앉아있었고, 결국 슈퍼로 향했을땐 7시를 조금 넘긴 시간이였다. 슈퍼를 들리고 난 원식이에게 전화를 걸었고, 원식이는 흔쾌히 우리집에 온다고 했다. 대충 안주와 술을 거실에 내놓자 원식이가 집에 왔고 난 원식이가 앉자마자 술을 들이켰다.
"야, 나 진짜 미칠거같다…이재환이 차학연 좋아한데. 근데 차학연도 이재환 좋아하는거 같단말이야아…" "응. 그런데?" "근데 웃긴게! 내가 차학연한테 이재환 좋아한다구 했을땐, 지는 안좋아한다구 해쓰면서……" "응. 근데 이제 좋데?" "어! 어이없지!" "……그래도 학연형이 먼저 좋아했을수도 있고. 너가 먼저 좋아했다고해도 다른사람도 이재환 좋아할수 있는거고." "……." "넌 짝사랑일뿐이야. 소유욕가지면 안돼…형식적으론 학연이형은 잘못한게 없지……" "이, 이! 씨이바알!" "억!" 나도 모르게 내 발이 원식이의 옆구리로 파고 들어갔다. 원식이가 괴상한 비명을 지르며 뒤로 엎어졌고 난 씩씩거리며 더 짓걸여보라며 원식이를 발로 퍽퍽 치기 시작했다. 원식이는 충분히 피할수있었지만 다 맞아주었고, 난 그걸 알고도 때렸다. 원식이는 날 진정시키고는 정말 다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이,이 개새끼.
"…음, 뭐라고해야되지 도덕적으로는? 너가 불쌍하지만 학연형은 잘못이 없지…." "네 그렇습니다, 그래. 다 차학연이 옳습니다, 옳아요." "그런게 아니잖냐." "그럼, 뭐!" "…재환형이 누굴 택하느냐가 끝이지." 눈물이 났다. 끝이 정해져 있잖아……흐어엉. 갑자기 울기 시작하는 내 행동에 원식이가 놀래서 어쩔줄몰라했고, 내 눈물은 그칠줄을 몰랐다. 서럽고 서러웠다. 수년간 쌓아왔던 마음이 이재환의 선택으로 끝이라니, 그것도 나에겐 비극으로 끝이라니! 엉엉 더 서러워져 괜히 원식의 어깨를 퍽퍽 쳤다. 아플법도한데 원식은 그저 내 투정을 받아주고 위로해줬다. 그렇게 우리의 술판은 내 울음과 투정으로 끝이 났고, 난 훌쩍거리다 잠에 들었다.
왜 어째서 오늘도 짧아보여..........나는 슬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