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지에 몰린 쥐는 섹시하다
철거 예정인 동시에 내 보금자리인 그곳은 적막하기 짝이없다. 그 곳은 낡고 허름하며, 습하기까지한 정말 최악의 보금자리로, 굴러다니던 스티로폼 박스로 그럴듯한 모냥의 침대를 만들고, 헌옷 수거함에서 몰래 꺼낸 담요를 그 위에 얹어 그나마 이 시리디 시린 서울의 겨울을 나고 있다. 이러한 부연설명을 통해 내가 누군지는 눈치챘을터 그래, 나는 '노숙자' 이다. 그렇다고 이름까지 노숙자는 아니다, 나에겐 엄연한 이름이 있다. 내 이름은 승쥐이다, 왜 승쥐냐고? 나도 잘 모른다. 어느새 나의 이름은 승쥐였고, 다른 노숙자들도 나를 승쥐라고 부르고 있었다. 나도 딱히 그 이름이 싫지 않아 그 이름을 내 이름이라 생각하는 중이다. 이름마저 없다면 난 정말 살아있는 느낌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이 곳에서 이름조차 없는 노숙자 로만 지낸다면 내가 죽어 없어진다하들 그 누구도 '나' 라는 존재를 기억해주지 않을 것만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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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 컴컴한 곳 어디선가 피 냄새가 나는 곳, 그곳은 나의 보금자리이다. 사실 내가 지내는 집은 따로 있지만, 그곳은 그냥 이름만 '집' 일뿐 실상 하루의 반나절 이상을 지내는 이 곳이 나의 실질적 보금자리이다. 사람의 신체 일부 중 없어서는 안될 장기, 심장, 각막 등이 도려내어 암거래로 팔려나가는 이 곳. 누군가에겐 삶의 희망과 빛이며, 또한 누군가에게는 죽음의 나락이며 악(惡)행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그 현장을 지휘하고 통솔하는 권리는 나에게 쥐어져있다. 여러개의 대포폰으로 걸려오는 누군가의 다급함에 난 그 사람에게 빛을 안겨주고, 또한 누군가에겐 악을 안겨준다. 나의 직업은 '장기매매업자' 이른바 눈뜨고 콩팥 떼내 간다는 무시무시한 사람이다. 이런 세상에서 가장 추악한 곳에서 일하는 나의 이름은 권지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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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파."
누군가가 듣기를 바랬을지도 모르는 말이었다. 그렇게 말을 하면 누군가가 어디선가 먹을것을 던져주지 않을까 하는 헛된 희망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주린배를 애써 몸을 웅크리는것으로 참으며 배의 요동을 잠재우려 했다. 낡고 허름한, 추움과 외로움은 너무나도 익숙해졌지만 딱 하나 배고픔이란 것은 익숙해지지 않는다. 뭣 하나 주어먹지 못하면 소란을 피워대는 푹 꺼진 배는 득달같이 먹을 것을 달라며 소리를 친다. 가끔은 이런 배가 너무나도 미워 딱 한대 배를 세게 때려본적이 있다, 그치만 나의 신체일부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나만 아플뿐이었고, 배는 더욱더 난동을 피울 따름이었다. 그날의 기억을 되새김이라도 하면서, 이 배고픔이 빨리 지나가기를 바라고 또 바라본다.
그때, 타닷 하고 누군가의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야?"
어느 낯선이의 등장으로 날이선 배는 더욱더 요란하게 난동을 피운다. 자자 조용히 해 배야-. 암만 타이르고 타일러도 배는 성난 괴물같이 그칠줄을 모른다. 푹 꺼진 배를 한번 쓰다듬고는 다시 낯선이를 쳐다보자, 낯선이는 하이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굶주림 없이 살아서 하얗고 고운 피부와 적당히 살이 붙은 낯선이는 나의 부러움을 자극함과 동시에 나를 수치심으로 몰아 넣었다. 너무나 확연히도 비교되는 낯선이와 나의 모습은 나를 수치스럽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화악 하고 타들어가듯 빨개져가는 얼굴을 애써 숨기려 들지만 낯선이의 손길에 그만 제지 당했다.
"씨발아. 고개들어."
곱디 고운 피부를 지닌 낯선이에게선 형용할 수 없을 만치 끔찍한 욕이 흘러나왔고, 그와는 반대되는 미소를 띄고 있는 그 얼굴에 소름이 끼쳤다. 푹 꺼진 배가 나에게 소리쳤다, 어서 도망쳐 승쥐! 나는 배의 소릴 듣고 낯선이를 밀치고는 냅다 달렸다. 신발(신발이라 보기 힘든 걸레같은)이 많이 낡아 덜렁거렸지만 상관없이 나는 그냥 달리고 달렸다.
승쥐 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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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쥐를 구해주세여(찡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