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 순간의 너와 나는 03월 밤 열한 시 반이 넘어서야 겨우 학원에서 빠져나와 어깨를 두드리며 스스로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내뱉던, 그 이름도 거창한 '대한민국의 열아홉 고3 수험생'이었던 나는, 거리를 가득 채우는 백색 가로등 빛에도 불구하고 집으로 가는 길이 그렇게나 무서웠다. 때문에 부모님께서는 매일같이 밤 열한 시 반에 귀찮음을 무릅쓰고 날 데리러 와 주시곤 했지만 하필 그 날은 두 분 다 출장을 가신 채였다. 친구들도 모두 각자의 학원에서 공부하고 있을 터, 고로 내가 그날 밤 도움을 청할 만한 존재는, 애석하게도 귀차니즘과 동거하는 동생 녀석 뿐이었다. "야 최민기..." 최대한 불쌍한 목소리(내 주관)로 전화를 걸었더니 어째 전화기 반대쪽이 시끌시끌하더라. 그제서야 오늘 아침에 제 친구들을 데려와 우리집에서 재울 거라던 녀석의 말이 기억났다. ㅡ데리러 갈까? 뭐야, 웬일이래. "진짜?" 잔뜩 기대를 하고 되물었다. 그러자 들려오는 대답은, ㅡ나 말고, 강동호. 주인 없는 집에 손님만 두는 거 아니잖아? 핑계는 좋다. 그냥 나오기 귀찮은 거면서. 집에서 여기까지 오려면 빨라도 10분은 걸리겠지 싶어 상가 입구에 기대어 서서 친구와 한창 문자를 하고 있을 때였다. "누나." 벌써 10분이 지났나 하는 생각과 함께 휴대폰으로부터 고개를 들어올리면, "...안녕하세요." 열일곱의 네가 있었다. 나는 민기의 친구들과 꽤나 친했다. 다들 성격이 최민기랑 비슷(?)해서 그런가, 민기와 죽이 잘 맞는 나는 그 애들과도 잘 놀았다. 다만 너는 예외였다. 이상하게도 나는 네가 낯설었다. 최민기는 그랬다. 너는, 장난기 많고 웃기도 잘 웃는 녀석이라고. 하지만 내가 느낀 너는 좀 달랐다. 너는 묘한 분위기를 내뿜었고, 섣불리 다가가면 안될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 솔직히 나는 네가 어려웠다. 그런 너와 둘이서 나란히 우리집으로 향하게 될 줄은 몰랐다. 한 번도 상상을 해본 적 없는 일이었기에, 막상 상황이 닥쳐오자 너와 나는 자연스레 정적을 사이에 끼고 걸었다. 그 정적을 먼저 헤집은 건 너였다. "누나." "어?" "저 무서워요?" 움직임을 멈추는 너의 발에, 날 바라보는 너의 시선에, 네 입에서 나온 뜬금없는 질문에 나도 모르게 덩달아 발을 멈췄고, 덩달아 너와 눈을 맞추게 되었던 나는 그저 멍하게 서 있기만 했었지. "아니, 최민기가 그러길래. 누나가 저 무서워하신다고." 내가? "...무섭다고 느낀 적은 없는데." 어렵다고 느낀 적은 있어도. 필요없는 뒷말은 생략한 채 대답하면, 너는 그럼 다행이라 말하며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고, 그런 너를 따라 나도 발걸음을 옮겼다. 다시 정적이었다. 이번에는 내가 입을 열었다. "그냥 너랑은 말을 몇 번 안 해봐서 좀 어색하긴 한데." "......" "무섭지는 않아." 내 말에 너는 어떤 반응을 보였더라. 글쎄, 기억이 안 난다. 담아두지 않은 걸 보니 별 거 없었겠지. 아, 집 앞에서 네가 했던 말은 기억한다. 내가 도어락 비밀번호에 손을 가져다 대기도 전에 너는 벨을 눌렀다. 그러고는, "저는 진짜로 누나랑 친하게 지내고 싶어요." 날 바라보며 웃었다. 나는 처음으로 마주하는, 너의 웃는 모습이었다. 열일곱의 너를 마주했던 순간이었다. 그리고 문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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