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민윤기와 난 접점이 없었기 때문에, 내가 굳이 피해 다닐 필요는 없었다. 내가 그동안 민윤기에게 관심이 없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학교에서 마주친 적도 없는 것 같다. 요즘은 친구들이 하는 얘기들을 귀를 열고 듣는다. 관심이 생겼다는 티를 내지는 않지만. 친구들의 이야기를 열심히 들은 결과, 민윤기는 아래 층인 3반이라는 걸 알아냈다. 역시, 층수가 달라 마주칠 일이 없었구나. 그런 생각을 하던 중, 이따금 들려오는 친구들의 말에 다시 집중하기 시작했다. 야, 오늘 점심시간에 농구부 연습이래. 밥 빨리 먹고 가자, 명당 가서 앉아야지. 탄소 넌 오늘도 공부할 거야?
어? 아니, 나도 갈래.
최대한 자연스럽게 대답한다고 한 건데, 역시나 눈치가 빠른 친구들은 의심의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며 묻는다. 네가 무슨 일로 농구를 다 보러 가냐며, 그런 건 관심 없다고 했었지 않냐, 너도 드디어 관심 가는 농구부 애가 생겼냐며. 솔직히 다 맞는 말이라 친구들의 말이 제 심장을 콕콕 찔러왔다. 그럼에도 난 아직 들키고 싶지 않았기에 고개를 저으며 친구들에게 말했다. 아니, 뭐 너희 없으면 심심하니까. 다행히도 친구들은 그렇구나 하며 아무 의심 없이 넘어갔다. 아까 눈치 빠르다고 한 거 취소.
*
4교시 종이 땡 치자마자 친구들을 뒤따라 얼른 급식실로 달려갔다. 방금 막 종이 쳤던 지라 아직 급식실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제 앞엔 제 친구들과 남자아이들 7명 정도. 친구들 뒤에 서서 숨을 고르고 있었을까, 속닥거리며 무언가 작은 호들갑이 느껴지는 친구들에 또 무슨 일인가 싶어 친구들이 서로 눈짓을 하는 곳으로 시선을 옮긴 곳에는
벌써 급식을 받곤 앉아 농구부로 추정되는 친구들과 같이 밥을 먹고 있는 민윤기였다.
친구들은 밥을 받자마자 농구부 아이들이 있는 자리 바로 옆에, 최대한 티가 안 나게 사이에 빈자리를 두 칸 정도 띄워놓고 앉기 시작했다. 친구들 중 제일 마지막에 밥을 받은 내가 농구부와 가장 가까운 자리에 앉아야 했다. 그것도 민윤기가 고개만 조금 옆으로 돌리면 저와 마주 볼 수 있는 그런 자리. 내가 이제껏 얼마나 열심히 피해... 다닌 것까지는 아니지만 나름 마주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는데. 이렇게 된 이상 급식판에 고개를 박고 밥을 먹는 수밖에. 고개를 푹 숙인 채 밥을 먹으며 민윤기의 눈에 띄지 않으려 온갖 신경을 쓰고 있었을까, 답답한 목소리로 제 이름을 크게 부르는 친구의 목소리에 눈을 동그랗게 뜨곤 고개를 들어 친구를 바라보았다.
-어, 어?
-세 번이나 불렀는데 대답이 없냐, 물 먹을 거야? 나 지금 물 뜨러 갈 건데 떠다 줄까.
-아... 응.
친구의 물음에 얼른 대답을 하며 고개를 끄덕이곤 황급히 시선을 급식판으로 내리깔았다. 나를 바라보는 민윤기를 보았기 때문이다. 왜 저 아이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은 항상 이런 상황일까. 속으로 한숨을 푹푹 쉬었다. 남은 밥을 입으로 먹었는지 코로 먹었는지 기억도 안 난다.
아... 쪽팔려 진짜.
*
급식을 해치우곤 친구들과 체육관으로 향했다. 분명 밥을 먹기 전까지만 해도 오고 싶었던 곳이 었는디, 10분도 채 되지 않은 그 사건-사건이라 하기엔 조금 오버하는 감이 없진 않지만-때문에, 다시 반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냥 평소대로 반에 있을 걸 그랬다. 체육관으로 들어서자 벌써 농구공을 가지고 몸을 푸는 아이들이 보였다. 우리가 밥을 빨리 먹은 터라 아직까지는 연습을 구경 온 아이들은 나와 내 친구들 밖에 없었다. 그래서 더 숨고 싶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농구부 아이들은 이런 것들에 익숙한지 우리에겐 별 신경을 쓰지 않고 각자 몸을 푸는 것에 집중을 하고 있었다. 그래도 나는 최대한 눈에 띄지 않기 위해 친구들 뒤에 숨듯이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는데, 이게 오히려 눈에 더 잘 띄게 되었다는 것을 나는 왜 진작에 알아차리지 못했던 걸까.
친구들 뒤를 따라 느릿하게, 조심스레 걸음을 옮기고 있었을까. 내 쪽으로 농구공이 통통- 하며 낮게 튕겨져 오더니 제 발 앞에 안착했다. 나는 그 농구공 때문에 걸음을 옮기지 못했고, 이미 친구들은 자칭 '명당'이라는 곳에 도착한 것 같았다. 이 공의 주인이 민윤기 만은 아니길 바라며 농구공을 주워 조심스레 고개를 들어 농구공을 건네자 제 눈에 가득 들어차는,
...민윤기였다.
고마워, 김탄소.
어... 어?
김탄소 맞지?
응...?! ㅇ, 어 맞는데...
아까 급식실에서 들은 게 맞나 싶어서. 내 이름은,
야, 민윤기! 이제 시작한대, 빨리 와!
들었지? 민윤기. 그럼.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멍하니 친구들이 있는 곳으로 가 자리에 앉자, 무슨 이야기를 나눴냐며 이것저것 물어보는 친구들에게 별거 아니라며 그냥 공을 주워줬더니 고맙다고 한 것뿐이라 하니 이내 식어버린 친구들이었다. 연습 경기가 시작되고, 여전히 멍한 그 상태에서도 눈은 민윤기를 쫓았다. 민윤기가 첫 득점을 하곤 응원석을 슥슥 살피더니 저와 눈을 마주치곤 손을 흔들며 웃는 것이었다. 친구들과 구경 온 여자아이들은 모두가 자기를 가리켰다며 꺅꺅 거리며 난리가 났지만 나는 조용히 얼굴을 붉힐 뿐이었다.
아니, 민윤기 쟤 뭐야 진짜...?
*
Boy view
다음 주 00고와의 경기 때문에 농구 연습이 있는 날이었다. 연습이 있는 날이면, 점심을 최대한 빠르게 먹고 체육관으로 가 연습을 한다. 선생님께 양해를 구하곤 마치기 5분 전 먼저 급식실로 향하니, 농구부인 제 친구들 말곤 급식실은 텅 비어 있었다. 급식을 받고 있자 웅성거리며 아이들이 급식실로 들어오고 있었다. 친구들 중 제가 급식을 제일 늦게 받아서 남은 끝자리에 그냥 앉았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친구들의 말을 들으며 밥을 먹고 있는데, 순간 옆쪽에서 누군가의 이름을 수차례로 부르는 것이다. 탄소야, 김탄소? 김탄소! 평소라면 아무 신경도 쓰지 않고 밥을 계속 먹었을 텐데, 그날따라 그냥 나도 모르게 소리가 들리는 그 곳을 쳐다보았다.
며칠 전 보았던 그 아이였다, 눈이 동그란.
어찌 볼 때마다 똑같은 표정을 하고 있는 거 같아 웃음이 났다. 갑자기 작게 웃는 날 보더니 친구들이 이상한 눈초리로 보았지만... 뭐. 그때 이후로 학교에선 마주친 적이 없는 거 같아서 궁금했는데, 김탄소였구나 이름이. 하나둘 일어나는 친구들을 따라 저도 자리에서 일어나 급식실을 나서는 순간부터 체육관에 도착하는 그 순간까지, 속으론 '김탄소'라는 이름을 계속해 곱씹었다.
공강이니까 하루종일 투표를 해야지... 빠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