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이 상상하는 22세기는 어떠한가.
개인 이동수단으로 우주에 나가고, 몸에 이식한 칩으로 다른 별도의 기기 없이 다른 사람들과 연락을 하는, 그런 세상을 그려봤을 수도 있겠다.
이건 어떤가, 인간과 똑닮은 로봇이 인간과 함께 공존하는 것.
하지만 22세기, 휴머노이드 로봇과 인간이 공존하는 모습은 찾아보기가 어렵겠다.
2140년, 이미 그 때엔 휴머노이드의 개발 상태가 어느정도의 수준으로 꽤 높았다. 그 당시의 사람들이 휴머노이드를 받아들일 준비가, 아직 되어있지 않은 것이었겠지.
혹시 러다이트 운동이라고 아는지 모르겠다. 19세기에 일어난 그 운동의 비슷한 개념이, 22세기에, 전세계적 규모로 아주, 크게 일어났었거든.
22세기에 개발이 되던 휴머노이드는 사실상 사람들의 지능보다도 훨씬 뛰어났고, 그 당시에 이미 많이 보급되고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의 노동력보다는 휴머노이드의 노동력이 더욱 더 각광을 받고 있었다. 사람을 쓰는 것보다, 이 휴머노이드를 고용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었기 때문이다.
이 것이 사건의 발단이 되었다. 휴머노이드의 수요가 늘어날 수록, 로봇 연구 개발에 대한 지식을 통달하고 있는 고학력자가 아니면, 일자리를 구하기가 어려웠다.
그렇게 자신들의 일자리를 빼앗은 유머노이드에 대한 사람들의 열등감과 분노는 점점 더 커져만 갔고, 급기야 "안티-휴머노이드"라는 전세계적 규모의 단체가 등장했다.
22세기 러다이트 운동이 바로 이 단체에 의해 일어났다.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사 세력을 키운 그 단체는 온갖 수단을 이용하여 휴머노이드를 파괴하였다.
그리고 이 단체는 더 이상의 휴머노이드의 개발을 반대하는 사람들까지도 동조하게 만들었다. 22세기의 휴머노이드는 아직 사람들처럼 완전히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만약 이 휴머노이드 로봇이 완연한 사람들 마냥 감정을 느끼게 된다면, 정말로 인간들이 이 휴머노이드 로봇들에게 지배를 당하지 않을까, 하는 공포가 확산된 것이었다. 휴머노이드가 지배하는 세상에 살기를 두려워하던 사람들에는 각국의 정치인들,유명한 영화배우들, 심지어는 로봇 연구 개발자도 있었다.
이러한 사람들에 의해서 휴머노이드의 사용이 전세계적으로 금기시되었던 때가 바로 22세기였다.
그리고 이 어마어마한 세력에 맞서, 사람처럼 온전히 감정을 느끼고 표현할 줄 아는, 더 나아가 사람과의 소통으로 감정을 학습하는 휴머노이드를 개발하던 한 로봇 연구 개발자와 그의 딸이 있었다. 이전의 휴머노이드는 감정과 공감 능력이 사람들에 비해 현저히 낮을 뿐 아니라 외견상으로도 사람과의 확실한 구별이 가능했다.
하지만, 이 개발자는 외면과 내면 모두 사람과 똑닮은 모습의 휴머노이드를 추구하였다.
그러니까, 이 개발자는 어설프게 사람을 흉내내는 휴머노이드의 이질성을 없애고자 한 것이었다.
안티 휴머노이드 단체의 압박에 못이긴 이 당시 로봇 연구 개발자들은 모든 연구를 비밀리에 진행할 수 밖에 없었지만, 이 개발자는 아니었다. 감정학습 자가 개발 로봇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감추지 않았다. 그리고 설계한 로봇을 조립 중에 있던 어느 날, 이 개발자는 소리 없이 죽었다. 안티 휴머노이드 무리가 다녀간 뒤였다.
안티 휴머노이드가 연구소를 벗어나기만을 기다리던 그 개발자의 딸은, 연구실의 숨겨진 공간 속에서 조용히, 숨만 죽일 뿐이었다.
*
그렇게 아버지가 안티 휴머노이드의 손에 죽임을 당한 뒤에도, 여자는 그 휴머노이드의 개발을 멈출 수 없었다. 자신과 아버지가 설계한 그 휴머노이드에는 로봇에 열렬한 동경을 갖던 네살배기 남동생의 짧은 인생이 담겨있었고, 아버지의 땀이 녹아있었고, 여자의 눈물이 어려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철저하게 비밀로 부친 이 휴머노이드 개발은 여자의 손에서 끝이 났다.
R0825. 사람과 함께 감정을 학습하며 자기 스스로 시스템을 복구,개발하는 초인지 휴머노이드가 탄생했다.
로봇이 눈을 떴다. 사람과 구별이 가지 않는 겉모습이었다.
눈동자를 굴렸다.
"안녕하세요. 저는 R0825입니다."
"아니야, 너 이름은 내 남동생이 미리 지어줬어."
"...."
"R0825말고 옹성우."
로봇이 눈을 느리게 감았다 떴다.
"네, 저는 옹성우입니다."
*
어렸을 때 네살배기 남동생이 실종된 뒤, 아버지와 로봇을 만드는데에만 8년을 보낸 여자도, 어느덧 25살의 나이를 먹었다.
아버지가 계셨을 적에도 가끔 외로움에 사무칠 때가 있었지만, 그 때는 나름대로 아버지의 등에 기대어 그 감정들을 삭혀온 여자였다.
옹성우를 제 손으로 완성시킨 뒤, 그러한 외로움의 감정을 잘 느끼지 못했던 여자는 이따금씩 잘 설계된 로봇에 만족감을 표하곤 했다.
"지금 TV속의 저 남자는 왜 여자 대신 아프고 싶다고 말하나요?"
"자기가 아픈 것보다, 여자가 아픈 것을 지켜보는 것이 더 고통스럽기 때문이겠지."
"왜 그런가요?"
"그 남자는 저 여자를 사랑하니까."
"그렇습니까? 사랑하면, 내가 아픈 것보다 그 사람이 아픈 게 더 고통스러운 것이군요."
성우와 매일 함께 생활하면서 외로울 틈이 없는 것이 이 것 때문일 수도 있겠다. 명색이 감정학습 로봇답게 감정을 배우는 것에 있어서 쉴틈없이 질문을 하는 성우였다.
"왜 저 남자는 여자의 자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습니까?"
"흠...여자가 자는 모습마저도 사랑스러워 보이니까..?"
비밀리에 만들어진 옹성우와 이 로봇을 개발한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문을 닫은 걸로 위장한 연구소 안에서 그저 조용히 둘만의 생활을 하는 것이었다.
영화를 보고, 잠을 자고, 밥을 지어먹었다. 성우가 감정을 배울 수 있는 존재는 여자, 그리고 TV드라마와 영화가 전부였지만, 성우는 여자와 함께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감정을 학습했다.
"지금 여주의 기분은 좋아보이지 않아요. 또 배가 고픕니까?"
"배 고픈거 아니야. 오늘은 몸이 좀 안좋네."
"제가 간호하겠습니다. 이미 몸살감기의 간호에 대한 메뉴얼이 입력되어있습니다."
여자의 이마를 짚어보던 성우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벌써 열이 37.4도 입니다."
여자를 눕히는 성우의 손길이 조심스러웠다.
눈을 감고있는 여자의 이마에 물수건을 올려다 놓았다.
여자의 자는 얼굴을 빤히 내려다 보고 있는 성우의 얼굴이 진지했다.
*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던 지난 휴머노이드에게 있어서 가장 어려운 요구사항이 바로 '사랑'이라는 감정을 익히는 것이었다.
"저는 여주가 아플 때 대신 아프고 싶어요."
"여주가 자고 있을 때 그 모습을 바라보기만 하는 것도 좋아요."
"제가 여주한테 배운 대로라면, 저는 여주를 사랑하는 것 같아요."
성우가 사랑을 배울 수 있는 존재는 드라마와 영화, 그리고 여자 뿐이었다. 여자가 만든, 성우의 눈동자 안에는 오로지 여자의 모습만이 가득 차있었다.
성우의 감정이 오롯이 자신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깨달은 여자가 눈을 감았다. 당황스러웠다.
어쩐지 요즘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성우의 눈빛이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있던 참이었다. 자신이 설계한 로봇에 있어서, 어느정도의 통제권은 제가 가질 수 있다고 확신해오던 여자는, 벌써 자신의 코앞까지 다가온 성우의 감정이 큰 파도와 같다고 생각했다. 통제는 무슨....여자는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이미 제 자신이 그 큰 감정의 파도에 휩쓸릴 것만 같았다. 많은 사람들이 우려했던 것이 바로 초인지 휴머노이드를 통제하는 문제였다. 그 동안 여자는 그런 것들을 전혀 문제삼지 않았다. 하지만 성우가 일으킨 파도가 너무 높아졌다. 그래서 여자는 선을 긋기로 했다.
"성우야, 넌 이제 옹성우가 아니야. 난 다시 너를 R0825라고 부를거야."
어쩐지 물기가 서려있는 것 같은 성우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떨렸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겠습니다."
"저는 이제부터 다시 R0825입니다."
*
그 일이 있던 후 며칠이 지난 오늘도, 성우는 자신이 배운 감정을 숨겨야 했다. 감정을 학습하는 로봇은, 이제 감정을 숨기는 방법도 터득했다.
그 날따라 연구소 밖은 더 조용한 것처럼 느껴졌다. 조그마하게 나있던 창문 밖 나무들이 더 앙상해 보였다.
"이 연구소에 아직 처리하지 못한게 있더군."
"김여주, 그리고 그 휴머노이드 나부랭이."
장비들로 연구소의 문을 뜯어 침입한 괴한들의 얼굴에 광기가 돌았다. 장비들 중 둔탁한 것들이 여자를 향해 날아들었다. 성우가 여자를 껴안아 감쌌다.
그 둔탁하고 무거운 것들을 온몸으로 막아낸 성우의 모습이 처참했다. 사람의 살갗을 따라만든 성우의 피부 밖으로 회로가 드러났다. 망가진 회로에서부터 불꽃이 튀었다.
망가진 성우의 몸이 축 쳐져, 괴한의 발길질 한 번에 옆으로 나뒹굴었다. 이제 둔기들은 온전히 여자를 향했다.
그 후로 꽤 오래 퍽퍽, 사람을 치는 소리가 들렸다. 괴한들은 여자가 죽은 것을 확인하자마자 자리를 떴다.
나뒹굴어 쓰러진 성우는 자가 프로그래밍을 통해 망가진 회로를 복구하고 있었다. 여전히 의식은 없었지만 여자의 처음 설계대로, 휴머노이드의 자가복구 시스템은 잘 돌아가고 있었다. 이미 불에 타버린 회로는 작동을 멈추고 다른 부가의 회로를 열심히 가동 중에 있었다.
서너시간의 프로그래밍 끝에 성우의 눈이 뜨였다. 그리고 저 만치서 쓰러져있는, 여자의 피가 흥건한 몸을 보았다.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호흡이 빨라졌다. 이 것은 분노와 슬픔이 뒤섞여 엉망이 된 감정이 보내는 신호였다.
여자의 가냘픈 몸은 성우가 안아들자 축-하고 늘어졌다. 피부에는 찬 기운만 돌았다. 성우는 침대에 여자를 눕혔다.
성우는 그 날, 죽고 싶은 감정이 무엇인지 배웠다. 그리고 자동적으로 복구된 자신의 회로를 터뜨릴,무언가를 찾기 시작했다. 성우 자신이, 의식 없이도 설계된 그대로 프로그래밍하여 자가 복구를 할 동안, 여자는 혼자 죽어갔다. 이제 더 이상 망가진 회로를 고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였다. 그래서 아예 회로를 손 쓸 수 없을 정도로 망가뜨려버릴 라이터 따위를 찾았다.
여자의 연구실을 뒤지던 성우의 눈동자에는 이제 어떠한 감정도 내비쳐지지가 않았다. 라이터를 찾는 손은, 어지럽혀진 서류들을 자꾸만 스쳐갔다. 분주하게 서류들을 헤치던 손이 갑자기 멈추었다.
'타임머신 연구_설계 및 작동방법 구상' 서류의 제목에 눈길이 오래 머물렀다. 다시금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다급하게 서류를 훑어보던 성우의 눈에 생기가 비쳤다.
"내가 이걸 만들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까?"
"그 인간들이 당신을 저렇게 만든 시간 그 전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까?"
대답 없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성우의 손이 꽉 쥐어졌다.
*
성우가 타임머신을 완성시킨 때는 2207년, 여자가 안티-휴머노이드 괴한들에게 공격을 당해 죽은지 이미 60년도 훨씬 더 지난 때였다. 이렇게나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은, 타임머신을 만드는 것이, 성우의 머리에 프로그래밍된 정보보다 훨씬 더 많고 어려운 지식을 요하는 연구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우 그 자체로도 끊임없는 업데이트를 해야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60년이 넘는 시간이 흐르도록 그의 얼굴은 변한 구석이 없었다.
타임머신에 마지막 정보를 입력한 성우가 고개를 들었다.
"R0825는 2140년으로 돌아갑니다."
"제가 데리러 갈게요."
*
2207년 4월 23일 ---> 2140년 11월 9일
날짜값이 입력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