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Awesome Day 07월 최민기와 거래를 했다. 동호 생일선물로 뭘 원하는지 살짝 떠 봐. 그럼 내가 치킨 사 줄게. 내 친한 친구인 거울(진짜로 친구 이름이 거울이다)이는 나더러 손해보는 장사를 했다고 하지만, 사실 받는 거에 비해 용돈을 많이 쓰지 않는 내게는 딱히 손해는 아니다. 그냥 가끔 가다 맛있는 거 사 주는데 이번엔 조건이 하나 붙은 거지 뭐. 그나저나 얜 나랑 거래한지가 언젠데 아직도 얻어 온 정보가 없어? "받고 싶은 거 없대." "...너 귀찮아서 그냥 하는 말 아니고?" "난 치킨으로 뻥치지 않아." "알았어, 알았어." 아, 이럼 좀 곤란한데. 생일 챙겨주기로 했단 말야. 어쩌지, 해줄 게 없어. 속상한 표정으로 입을 삐죽이고 있자 옆에서 최민기가 그런 나를 가만히 보다가 묻더라. "그럼 그냥 편지 써서 줘. 원래 선물은 정성이랬으니까 편지 쓰면 되겠네." 민기의 말에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 했다. 나는 왜 꼭 뭔가를 사 줘야 한다고 생각했지. 민기 말처럼 챙겨주는 그 자체에 의미를 두고 정성을 건네면 되는 건데. "...나 진짜 바본가 봐." "넌 그걸 이제 알았, 아! 아파! 왜 때리는데!" 근데 이게 어디서 감히 누나한테. 확 그냥. "너는 대체 수능이 백일 남짓 남았는데 대체 누구한테 무슨 편지를 쓸 예정이길래 나까지 끌고 와?" "아 그런 게 있어. 어떤 게 더 예쁠까?" 어휴. 거울이가 한숨을 쉬었다. 고개도 절레절레 저었다. 미안, 내가 선택장애를 좀 많이 앓는 편이라 혼자 올 용기가 나지 않았어. "이거, 이거 예쁘네. 여름 느낌 나고 줄 간격도 괜찮고." "그래? 그럼 이거로 할까?" "아님 이것도 괜찮다." 남들이 보면 무슨 편지지를 그렇게 심오하게 고르고 있냐 하겠지만 나는 이런 사소한 것에도 정성을 들여 고르고 싶었다. 그만큼 네가 내 사소한 부분들도 잘 챙겨줬으니까. "네가 생일편지 쓴다고 그러는 건 또 처음이다. 무슨 바람이 든 건지는 모르겠다만 아무튼 너 이상해." 사실 나도 알아. 요즘 나 좀 이상한 거. 근데 왜 이상한지 그 원인을 몰라서 고칠 수가 없어. 편지까지 쓰고, 그래도 편지만 건네기는 좀 그러니까 케이크도 줘야지. 케이크는 생일날 사면 되고. 모든 준비가 끝났지만 가장 어려운 게 하나 남았다. ...이걸 어떻게 전달한담? "야 최민기..." 결국 내가 선택한 방법은 최민기에게 SOS를 치는 거였다. "아 네가 직접 줘라 직접." "나도 그러고 싶지. 근데 당일날 주고 싶단 말이야. 어떻게 해." 입을 내밀고 속상한 티를 내가 민기가 한숨을 쉬더니 말했다. "그날 방학식이다 바보야. 일찍 마친다고." ...... "...민기야." "왜." "넌 정말 천재야." 그래서 결국엔 네게 전화를 걸었다. ㅡ 네, 누나. "나랑 좀 만날래?" ㅡ ...지금요? 밤 열 시가 넘었는데? 앗, 이런 실수. "아니, 7월 21일에." ㅡ 아, 전 또. 제 생일 챙겨주려고 그러는 거 맞죠? "응, 미안해. 내가 이런 거 돌려 말하는 재주가 없어서." 내 대답에 반대편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치만 내 성격이 그런 걸 어쩌겠어. ㅡ 누나는 정말... 네가 말끝을 흐렸다. 궁금해지는 뒷내용에 나 왜? 하고 부추기니 네게서 돌아오는 대답은, ㅡ 매력 터진다고요. 당연한 소리(절대 아님)였다. "그건 나도 알아. 아무튼 우리 어디서 볼까?" ㅡ 저 방학식 열 시 반에 마치는데, 누나는요? "아, 나는 열한 시." ㅡ 그럼 제가 누나네 학교 앞으로 가도 돼요? 잠깐만, 이건 조금 파격적인(?) 제안인데. 나 케이크 들고 학교 올 거 아니란 말이야. 당황스러움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고 어... 하고만 있자 네가 한마디 더 덧붙이더라. ㅡ 저 어차피 최민기가 오래서 최민기 집 가는데, 누나가 좀 그러면 그냥 집에서 대화해도 되고요. 아, 어차피 우리 집 올 거였구나. "아니아니, 그럼 우리 학교 앞으로 와주라." 어차피 고3이라 친구들이랑 놀지도 못하고 집 가야 하는 거, 나 혼자 가기 심심할 것 같으니까. ㅡ 알겠어요. 누나 안녕히 주무세요. "말고." ㅡ 네? " 안녕히 주무세요 말고 잘 자요 해 줘." 한 번 더 네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ㅡ 네, 잘 자요 우주 누나. "으응, 너도 잘 자." 그냥, 너한테서 그 말이 듣고 싶어서 그랬어. 아, 나 진짜 좀 많이 이상한 것 같아. 정말로. "최우주 오늘 방학식인데 뭐 하는 거 있어?" "이씨, 니네가 바쁘다고 안 놀아준대서 집 간다 왜." "야 학원보단 낫지. 난 방학식날에 논술학원 상담 간다." "어... 내가 생각해도 학원보다 집이 나은 것 같아." 애들이랑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나누다 보니 어느 새 방학식은 끝나버렸고, 네가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걸 자각하고 있던 나는 '나 먼저 갈게, 전화해라!' 라는 말을 남기고는 후다닥 정문 쪽으로 달려갔다. "어어, 누나 뛰지 말고요." "미안, 망할 학교가 날 너무 좋아해서 이제야 보내주네." 열한 시 반. 30분이나 지연된 내 방학식에 너는 어쩔 수 없이 기다리고 있어야만 했다. 그것도 남의 학교 앞에서, 교복을 입은 채로. 우리 학교와는 다른 교복에 하교를 하던 우리 학교 학생들의 시선이 느껴지더라. 그게 조금 부담스러워서 어서 가자며 네 손을 잡고는 바삐 움직였다. "그, 누나." 겨우 인적이 드문 길에 들어와서야 발걸음의 속도를 낮추는데, 네가 날 불렀다. 왜? 하고 묻자 너는 씨익 웃으며, "저랑 손 잡고 싶으면 진작 말을 해 주지 그랬어요." 미처 잊고 있었던, 내 손에 잡힌 네 손을 움직여 내 손에 깍지를 껴 오더라. "어... 아 그게 아니라..." 뭐라 말을 하려는데 말이 안 나온다. "혹시 손 더워요?" "...아니?" "그럼 저 생일이니까, 누나 손깍지 한 번만 선물로 주세요." 이상하게도 정말 아무 말도 안 나온다.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넌 뭐가 그렇게 좋은지 가는 내내 입가에서 웃음을 지우지 못하더라. 그냥 네 생일이니까, 네가 원하니까, 그래서 해준 거야. 그것 뿐인 거야. "왔냐." 참 태평하다. 교복을 갈아입지도 않은 채 소파 위에 널브러져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는 최민기를 본 내 한줄 평이었다. "옷이나 갈아입어라 좀." 보는 내가 다 갑갑해서 한 마디 하자, "금방 나갈 거야. 야 강동호 빨리 나와." 라더니 정말로 지갑만 챙겨 휙 나가더라. 아, 놀러 나가는 거네. 그럼 빨리 편지랑 케이크랑 줘야겠다. "자, 생일 축하해. 편지는 꼭 혼자 읽어야 해." 웃으며 그것들을 건네었다. 내 축하에는 한치의 꾸밈도, 과장도 없었다. 다만 조금은 오글거리는 진심이 있었다면, 네게 쓴 편지 속에 있었겠지. "고마워요, 진짜로. 그냥 축하한다는 말 한마디였어도 됐는데." 너 역시 웃었다. "좋아서 챙겨주는 건데 뭘." 그냥 내가 챙겨주고 싶어서 그러는 거야. 그러니 너는 마땅히 받아도 돼. 그 두 줄을 열 글자로 축약했다. 네가 내 마음을 제대로 이해했을지는 잘 모르겠다만, "아, 이래서 제가 누나를 좋아해요." 아무튼 나는 오늘 만족한다. 네가 웃는 걸 봤으니. "너 대체 편지에다 뭐라 쓴 거야." 그날 밤, 방에서 혼자 공부를 하는데 똑똑 노크를 하고 들어온 최민기가 다짜고짜 물었다. "자고로 담화의 주요 구성 요소 세 가지는," "아아 강동호 편지에다 뭐라 썼냐고." 그렇게 말하면 내가 어떻게 알아듣나 싶어 마침 펴져 있던 개념서의 내용을 쭉 읊으려 하자 그제야 제대로 이야기하더라. "그냥 생일 축하한다고 앞으로도 친하게 지내자 뭐 그렇게 적었는데?" 물론 그게 다는 아니었지만. 뒷말은 생략하고 대답하자 최민기가 머리를 한 번 쓸어올리더니 말했다. "제발 쟤 좀 어떻게 해 봐. 나한테 전화왔길래 받았더니 니 편지 읽고 있는데 너무 좋다고 자꾸 웃잖아. 나 쟤 웃음소리에 유체이탈 할 것 같다 진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누나, 나 진지하거든?" "아니, ㅋㅋㅋㅋㅋ, 아 미안 미안." 최민기가 이렇게 빡쳐하는 건 처음인 것 같은데, 그 이유가 또 너무 웃겨서 자꾸 웃음이 나온다. "좀 쟤 좀 어떻게 좀 제발." "왜, 귀여운데." "귀엽... 대체 어디가?" 귀엽잖아. 내 편지 읽고 좋아하는 것도, 네게 전화해서 웃는 것도. "아, 편지 자주 써 줘야겠다." "아 제발 그러지 마세요..." 마침 휴대폰 화면이 반짝 켜졌다. 옆에서 세상을 잃은 듯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는 민기를 무시하고 휴대폰을 쥐어들었다. "어, 동호 톡 왔다." "너 지금 내 말 안 듣고 있지?" "당연하지. 그만 나가라 민기야." ㅡ 우주 누나 편지 잘 읽었어요 10:15 ㅡ 진짜 좋아요 10:15 누나 지금 답장하느라 바쁘거든. "인생..." 민기가 나가자마자 휴대폰 자판을 톡톡 두들긴 후 전송 버튼을 눌렀다. [ 내가? 아님 편지가? ] 보내자마자 사라지는 1 표시. ㅡ 당연히 누나죠 오늘은 정말, 뭔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오묘한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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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일기 마지막 줄 |
네 지우주입니다 오늘 5화는 기울임 글씨가 없어요 딱히 기울임을 걸 만한 곳이 없는 것 같아가지고... 매번 제 글에 주시는 많은 사랑 정말 감사드려요 ❤ 댓글 하나하나 정말 소중히 읽고 있습니다! PS. 사실 아까 독방에 잠시 본인표출 켜고 의견 여쭈었었는데 ㅎㅎ 랑7님 똥촉 아닙니다!! 의견 내주신 분들 알러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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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특별함이란 ㅡ심야 영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