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알신에 많이 놀라셨죠! 너무 금방 찾아오는거 아닌가, 싶지만! 파이드파이퍼가 아닌 새로운 글입니다 ㅎㅎ 재밌게 읽어주세요.
- 도짜님들의 댓글은 자까에게 매우매우 힘이 된답니다!! 비타민 같은 존재랄까.. 무슨 말이든 헐 댓글이다ㅠㅠㅠ 이러고 몇 분동안 심장을 부여잡고 행복해하는 자까랍니다 희희 정말 아무말이나 상관없어요♡
-제 글은 언제나 브금이 다하는 거 아시죠?? 꼭꼭 전부 들어주셔야 합니다 ㅎㅎ 부탁드려용
-오늘도 제글을 찾아주시는 모든 독자님들께 감사를 표합니다 사랑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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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잔혹한 이야기의 끝은 어떻게 맺게 될까.
-첫번째 브금입니다! 꼭 들어주셔야 해요 ㅎㅎ 글을 한층 더 몽환적으로 만들어주는 마법!
신데렐라. 잠자는 숲 속의 공주. 인어공주.
개인적으로, 나는 동화 속 이야기를 정말 싫어한다. 특히 신데렐라 이야기. 뻔하디 뻔한 해피엔딩이 싫은 게 아니라, 불행했던 주인공에게 행운을 가져다주는 듯, 온갖 생색을 내는 그 존재들을 싫어한다. 동화 속에서는 흔히들 그들을 요정이라고 칭한다. 새언니들에게 구박을 받고 파티에 가지 못해 슬퍼하는 신데렐라 앞에 짠, 하고 나타나 유리구두, 드레스, 그리고 호화로운 마차까지 뾰로롱, 하고 만들어 내는 그런 존재들. 그래, 여기까진 좋다. 도와주려면 완전히 도와줄 것이지, 12시까지 돌아오라는 제약을 두는 건 뭐야. 꽤나 악랄하지 않은가? 결국엔 시간에 쫓기던 신데렐라는 급하게 오느라 구두까지 잃어버리고, 결국은 친히 발걸음 하여 하나하나 신발을 신겨보며 왕자가 찾아내는 엔딩. 실상은 왕자가 이뤄낸 성관데, 동화를 읽는 독자들은 이렇게 생각하지 않는가. 요정 '덕'에 신데렐라와 왕자와 만나 행복하게 살았다고. 이 말에 나는 실컷 코웃음을 쳐주고싶다. 감히 예상해보지만, 동화 속에서 칭해지는 그 '요정'이라는 존재는 선한 존재가 아닐 것이라고. 아니, 정정하겠다. 그들은 사탄과 같은 어둡고 비열한 '무언가' 일 거라고 확신한다.
왜냐하면 지금 내 앞에 그 '무언가' 가 서있거든.
"갈까. "
낮게 깔린 목소리가 내게로 향한다. 새까만 옷을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뒤집어쓰고 있어서 얼굴을 보이지 않지만, 아마 웃고 있는 듯하다. 저 짧은 두 글자에 비웃음이 가득했으니. 천천히 소리도 없이 뒤도는 그를 뒤따라 어두운 터널에서 벗어났다.
지금부터 써 내려갈 이 이야기는, 동화 속에 갇혀버린 내 이야기다. 행복하지만은 않았던. 오히려 끔찍한.
그런 잔혹동화.
잔혹 동화
prologue : Start point.
01.
"백설아. 설아야. "
나를 부르는 아빠의 목소리에 천천히 눈을 떴다. 일어나라는 듯 고갯짓을 해 보이는 아빠가 보인다. 핸드폰을 들어 시계를 확인하니, 오전 9시. 뭐야, 주말인데 좀 자게 내버려 둬요, 하곤 다시 자리에 누워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그런 내 행동에 재빨리 이불을 걷어내는 아빠에 행동에 무거운 눈을 간신히 다시 떴다.
"우리 공주님, 오늘 생일인데 잠만 자려고? "
아, 공주라고 부르지 말라고.
내가 제일 싫어하는 별명을 부르며 나를 흔들어대는 아빠를 당해 낼 수가 없었다. 내 이름 백설아에서 백설을 따서 백설공주, 짧게 부를 땐 공주라고 부른다. 저 별명을 붙이려고 이름을 이렇게 지은 게 분명해. 공주와는 거리가 먼 나를 매번 저런 식으로 부른다. 저 별명을 정말 좋아하거나 내가 오글거리는 걸 질색하는 모습을 보고 즐기는 거나, 둘 중 하나다. 그게 아니라면 왜 매번 저렇게 부르냐고. 오소소 소름이 돋는 느낌에 팔을 비비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간단히 양치를 하고 대충 의자에 걸려있던 겉옷을 걸쳐 입고는 신발장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아빠와 함께 밖으로 나갔다. 차가운 바람에 절로 몸을 움츠리게 된다. 이런 날은 이불 속에서 귤이나 까먹는 게 딱인데. 생일이 뭐 별거라고, 하고 궁시렁거리니 삐죽 나온 내 입을 조용히 하란 듯 톡톡 치고는 집 바로 앞에 주차된 차 문을 여는 아빠다.
으, 추워. 아빠, 히터 좀 틀어줘.
뒷자석에 올라타니 차디찬 시트의 감촉이 내 다리를 타고 전해진다. 시동을 걸고 빵빵하게 히터 버튼을 누르는 손가락을 보고 나서야 살짝 들고 있던 엉덩이를 제대로 시트에 붙였다. 우리 지금 어디 가는데, 하니 할머니 댁에 간다고 답하고는 안전벨트를 매라는 아빠의 말에 풀썩 옆으로 누워 뒷자석을 전부 차지했다. 안 죽어. 쯧쯧 혀를 차는 아빠의 목소리와 함께 내 머리맡에 느껴지는 딱딱한 느낌에 손을 머리 아래로 집어넣었다. 그 물건을 꺼내보니 동화책 묶음이다. 뭔 동화책을 이렇게 싸놨대. 온통 공주 이야기다. 이게 다 뭐야, 하고 혼잣말하니 조카들한테 주기로 했다며 간 김에 주고 오자는 아빠의 대답이 들려온다. 줄 거면 좀 유익한 내용의 책을 주지, 꼭 이런 공주 동화를 줘야 하나.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표정으로 슬쩍 딱딱한 표지를 들쳐보았다. 그림체는 나름 이쁘네. 아기자기 한 그림들이 그려져있는 페이지를 슥슥 빠르게 훑으며 넘겼다.
"어, 어... 뭐야. 설아야! ... "
빠앙-
귀를 찌르는 크랙션 소리에 아빠의 목소리가 묻혔다. 책을 보고 있던 눈을 들어 앞을 보았을 뿐인데, 순간적으로 내 시야 전체가 화악 밝아졌다. 머리 쪽에 약간의 통증을 느꼈던 것도 같은데 그 이후의 기억은 하나도 없고, 잠시 동안 정신을 잃었다.
눈을 뜨니 깜깜한 암흑이다. 한 줄기의 빛조차 들어오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우두커니 서있었다. 어떠한 느낌도, 소리도 나지 않는 고요 속에 나홀로 존재하고 있었다. 이 상태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단 절망감으로 한참을 주저앉아있었다. 그러다가 저 멀리에 정말 작게, 새끼손톱만큼 새어들어오는 빛이 보인다. 몸을 일으켜 그 작은 빛을 따라 걸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한참을 걸으니 손톱 만했던 빛은 오백 원짜리 동전 만 해졌고, 조금 더 걸어가니 밝은 빛들이 만연했다. 지금껏 내가 지나온 어둠을 무색하게, 그 빛들 아래는 형형 색색의 꽃들과 푸른색 잔디가 쫙 깔려있었다. 마치 동화 속에 들어와 있는 거 같다, 하고 생각했다.
"동화 속 맞아. "
어디에선가 들리는 목소리가 내 주위를 가득 채웠다. 어디서 나는 거지, 하고 뒤를 도니 새빨간, 핏빛이라고 하는 게 맞을까. 빛을 받아 한층 더 붉은빛을 내는 '무언가' 의 눈이 나를 똑바로 향하고 있었다. 뭐라고 칭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저 '무언가' 라고 밖에는. 섬뜩한 느낌에 그 두 눈을 피할 법도 했지만 묘한 이끌림에 멍하니 그 새빨간 눈을 바라봤다.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숨이 콱 막히는 느낌에 그제야 시선을 아래로 했다.
"저, 여기가 어디예요? "
"삶과 죽음의 경계. 네가 본 마지막의 잔상들. "
기계음과 같이 딱딱하고 차가운 목소리가 정말 이 세상의 것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게 했다. 저 짧은 문장이 내게 하나하나 새겨지듯 다가왔다. 아, 죽은 거구나, 허탈하네. 내 생일이 곧 기일이 되었겠구나, 하는 생각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하필이면 내가 싫어하는 공주 동화책을 보다가 죽을 건 뭐야. 슥슥 넘겨보았던 아기자기한 일러스트들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그러고 보니, 내 앞에 펼쳐진 풍경들은 그 그림들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했다. 그간 생각해왔던 죽음보다는 담담하게 다가왔다. 조금 현실감은 떨어졌지만, 지금 내겐 이곳이 현실이었다.
"혼수 상태. "
"네...? "
되묻는 나의 말에 그 '무언가' 가 손가락으로 탁, 소리를 내니 내 눈앞에 내가 모르는 장면들이 펼쳐진다. 산소 호흡기와 함께 침대에 누워있는 내 모습과, 그 옆에는 깁스를 하곤 내 손을 꼬옥 잡고 있는 아빠의 모습, 그리고 멍하니 초점 없는 눈으로 내 이름을 중얼거리는 엄마의 모습이 차례로 보였다. 그제야 내 죽음이 실감이 났다. 혼수상태라면, 돌아 갈 수 있는 걸까. 그럴 수만 있다면야, 그러고 싶었다. 이렇게 혼수상태가 될 줄 알았다면 낳아줘서 감사하고 사랑한다고 한마디라도 할걸. 뒤늦은 후회가 휘몰아쳤다. 내 생각을 읽은 듯한 '무언가' 가 킬킬 거리며 목소리를 냈다.
"나랑 거래할래? "
기분 나쁘게 키득이는 웃음소리가 나를 둘러쌌다. 지금 아무것도 가진 내가 거래를 할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을 입 밖으로 내지 않고 머릿속에서 되뇌었다. 어차피 말로 하지 않아도 내 생각을 읽을 수 있단 걸 알았으니까.
"담보는 따로 없어. 단지 이 세계에서, 내가 말해줄 한 남자를 찾아서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게 된다면, 너를 현실로 돌려보내줄게. "
단, 그 남자 외에는 어떤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는다는 전제로.
잠시 동안 생각을 해보았다. 내가 잃은 건 없지 않는가. 해 봤자 이쪽 세계에서의 상황이고, 그저 한 번의 꿈같은 순간일 터이니 딱히 마다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다. 역시나 내가 이곳에서 써 내려갈 이 동화 속에서도 이런 존재가 등장하는구나. 제안을 하고, 그 뒤에 붙는 저 전제가 마음에 걸려 만일 넘어가면요, 하고 물으니 그렇다면 여기에 갇히게 되고, 또 다른 대가가 따를 거라고 답하는 비릿한 웃음가득한 말투가 거슬렸지만 어쩌겠는가, 지금 내겐 선택지가 없는데. 간단히 위아래로 고개를 끄덕이니 그 '무언가' 가 어둠 속에서 천천히 걸어나온다. 입이 확 찢어졌다던가, 기다란 손톱을 하고 있다던가 그런 모습을 하고 있을 줄 알았는데, 그저 온통 까만색으로 온몸을 가렸을 뿐, 특별한 점은 없었다. 환한 빛에 의하여 빛나던 그 새빨간 눈이 보였던 것도 같지만, 이내 눌러쓴 검은색 망토로 생긴 그림자에 의해 가려졌다.
"갈까. "
얼굴이 보이지 않지만, 알 수 있었다. 웃고 있다는 것을. 별일 없겠지? 이대로 죽는 것보다는 낫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으로 검은 망토 자락을 흩날리며 걷는 그의 뒤를 따라 걸었다.
아까 내가 있었던 곳이랑 한 공간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알록달록한 색채들로 가득한 풍경에 입이 떡 벌어졌다. 풍경에 놀라는 것도 잠시 어느 커다란 궁전 앞에 다다랐다.
외국에서나 볼 법 한 거대한 궁전이었다. 잘 정돈된 정원을 지나 안으로 들어서니 여길 봐도, 저길 봐도 번쩍번쩍 빛이 난다. 진짜 공주님들이 사는 궁전 같네. 이리저리 구경을 하며 멈춰 서있던 나를 '무언가' 가 확 잡아끌었다. 얼음같이 차가운 느낌이 살을 애는 듯했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손인데, 체온이라곤 하나도 느낄 수 없었다. 마치 시체 같았다. 소름이 쫙 끼치는 느낌에 눈을 꽉 감았다 뜨니 널찍한 방의 침대 위에 앉아 있는 나를 발견했다. 스윽 나를 잡았던 손이 사라지고 어느새 멀찍이 떨어진 '무언가' 가 입을 열었다. 손이 떨어진 내 팔목에 여전히 그 차디찬 느낌이 남았다.
"옷 갈아입고 아래로. "
여전히 딱딱한 말을 끝으로 스르르 사라졌다. 그가 사라진 빈자리를 잠시 보다가 몸을 일으켰다. 실감이 안 나네. 손을 쥐었다 펴 봐도 생생하기만 한 느낌이 현실과 다를 바가 없었다. 방이 하도 커서 한참을 걸어야 옷장을 열어 볼 수 있었다.
와, 이게 다 뭐야.
옷장을 여니 각양각색의 드레스들이 가리런히 걸려있었다. 레드 카펫에서 여배우들이 입을 듯한, 어찌 보면 그보다 더 과한 옷들이 잔뜩이다. 정말 공주님들이나 입을 법한 옷 들이었다. 찬찬히 하나씩 살펴보니 앞이 무난하면 뒤가 훤히 파여있고, 뒤가 무난하면 앞이 민망하게 드러나있었다. 이런 걸 어떻게 입어. 손톱을 깔작깔작 뜯으며 옷들을 넘기던 손을 잠시 멈추었다. 흰색의 드레스가 내 눈을 사로잡았다. 파인 정도도 이 정도면 뭐, 이걸로 해야겠다, 하고는 옷을 집어 들었다.
갈아입고 문을 여니 끝없이 늘어선 계단이 눈앞에 펼쳐졌다. 정말 완연한 궁전이구나. 이 정도라면 한참을 내려가야겠는데. 바닥에 질질 끌리는 치맛자락을 들고는 천천히 계단을 내려왔다. 계단 아래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그것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모습이 보인다. 도대체 이런 옷을 입고 어딜 가려는 건지, 하고 마지막 계단을 내딛는 순간, 결국 내 치맛 자락을 밟고는 중심을 잃었다.
그 순간 내 허리춤을 잡아 주는 힘에 의해 다행히도 넘어지는 않았다. 찰나였지만, 나를 잡아주었던 그 손에 온기가 느껴진 듯했는데, 착각이었나. 내 손을 이끌었던 차디찼던 손의 감촉이 생생하게 생각이 나 착각이겠거니, 하고 멀뚱히 서있었다. 그런 나를 보고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문을 열고 나가는 그의 뒤를 따랐다. 문틈 사이로 들어온 차가운 바람이 나를 둘러쌌다.
"어디로 가는 거예요? "
"파티. "
뒤돌아있는데도 선명히 들리는 목소리에 또 한번 놀랐다. 바로 옆에서 말하는 듯, 내 주변에서 목소리가 웅웅거렸다. 하긴, 이렇게 입고 어딜 가겠나 싶었다. 근데 웬 파티람. 혼수상태에서 하는 파티라. 새롭네.
"그 남자 만나야지. "
아, 거래가 시작 된 거 였구나. 그런데 많고 많은 사람들 중 어떻게 알아보지. 여러 가지 궁금증이 머릿속에 피어올랐다. 답을 바라고 생각 한 것은 아니었는데 내 생각을 모두 읽은 그것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알아 볼 수 있어. 너네 둘은 기필코 사랑에 빠질 테니. "
"... "
"한 가지 힌트를 주자면, 둘째 왕자를 조심해. 그도 나와 거래를 했거든. 너를 알아보게 되면 널 죽이려 할 거야. "
무슨 생각을 함부로 못하겠다. 밑바닥에 있는 얕은 내 감정과 생각들을 다 빠짐없이 파악해버리니. 둘째 왕자가 있으면, 첫째 왕자도, 셋째 왕자도 있는 건가. 그런데 그 사람이 나를 죽이려 할 거라고? 나와 무슨 관계가 있길래. 큰일이네, 나는 그에 대한 정보가 하나도 없는 걸.
함부로 생각하지 말자고 방금 다짐해놓고는, 또다시 여과 없이 전부다 생각해 버렸다. 바보가 따로 없다. 한참을 묵묵히 걷던 그것이 천천히 멈춰 섰다. 아까 갔던 궁전보다 두 배 정도는 더 커 보이는 궁전 앞이었다.
"나는 여기까지. 남자에 대한 정보는 안에 들어가면 얻을 수 있을 거야. "
잠깐만, 아직 궁금한 게 많은데.
내 외침은 듣지 못한 것인지 스르륵 사라지는 모습을 보곤 입맛을 다셨다. 그 '남자' 라는게 나와 사랑에 빠질 남자를 말하는 건지, 또는 나를 죽이려 드는 남자를 말하는 건지 어떻게 알아. 깊은 한숨을 푹, 내어쉬고는 거대한 에메랄드 빛이 나는 문을 안쪽으로 밀었다. 이런 파티를 보통 실내에서 했던가. 여태껏 해보지 않아서 잘은 몰랐지만, 대부분 실외에서 하는 걸로 알고 있었다. 여러 의구심을 품고 안으로 들어가니 화려하게 장식된 궁전 내부에 잠시 벙쩠다. 커다란 샹들리에, 끝이 안 보이는 나선 모양의 계단들, 벽면엔 전부 황금으로 칠해진 벽지들, 그리고 화려한 옷들을 차려입은 사람들이 와인잔을 들고는 이 넓은 궁전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두번째 브금입니다 필청이에요 ㅎㅎ
"밖에서 하면 더 좋았을 텐데, 아쉽다. 그치. "
"왕자님이 아프신 걸 어떡해, 바깥공기조차 쐬질 못하시는걸. 볼 수 있는 것만으로 감사하자. "
"그건 그래. "
웅성이는 말소리들 사이에 희미하게 들려오는 두 여인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이래서 안에 들어가면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한 건가, 이 여인들 말고도 곳곳에서 왕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정보를 취합해보니, 몸이 약한 이 나라의 왕자께서 이번 파티를 여신 거라고 한다. 그 왕자는 병에 걸린 것인지, 몸이 약해 이 성안에서만 생활하고 있고. 그런데 용캐 이런 파티는 열었네. 이 이야기의 주어는 '둘째' 왕자일까? 다들 왕자님, 왕자,라고만 하지 몇째라는 말은 없어서 정확히 알 수가 없었다. 혹여나 '둘째' 왕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까, 곳곳을 누비며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들을 엿들었다.
"근데, 둘째 왕자는? "
뒤에서 들려오는 '둘째',라는 단어에 멈춰 서서 모든 감각들을 그 이야기를 듣는 데에 집중했다.
"너 그 소문 못 들었어? "
"무슨? "
"... 죽었잖아. "
예상치 못한 이야기의 내용에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죽었다고? 그래서 그 '무언가' 와 거래를 한 건가. 나처럼 살려준다는 전제로. 그런데 그런 그가 나를 죽이려 할 거라고? 내가 남자와 사랑에 빠지는 것처럼 나를 죽이면 살려준다고 한 걸까. 정말 악랄하기 짝이 없다. 귓가에 계속 '무언가'의 킬킬거리던 웃음소리가 맴도는 느낌이다.
"자기가 둘째니까, 왕위에 못 오른다고 첫째 왕자님 죽이려다가 실패해서, 왕한테 죽임 당했대. "
동화치고는 꽤 잔인한 스토린데. 질투에 눈이 먼 그런 콘셉트인가. 지금 이 부분은 동화에 실린다면 각색되어 실리겠지, 하는 쓸데없는 생각을 했다. 왜인지 살짝 긴장되는 탓에 바짝 말라버린 입술을 혀로 쓸었다.
"잠시 지나갈게요. "
뭉쳐있는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남자에게서 진한 향기가 난다. 무슨 향이지, 이게. 밀지 말라며 소리치는 사람들에게 연신 죄송하다고 고개룰 숙이고는 이쪽으로 걸어오는 남자다.
그가 내 앞을 스쳐 지나가자, 선선한 바람이 부는 듯했다. 여긴 바람 하나 들어올 수없게 꽁꽁 닫힌 실내인데 말이지. 남자의 잿빛 머리가 햇살을 반사시켜 잠시 동안 반짝였다. 그가 지나간 자리에 진한 체취가 남아있었다. 굉장히 강렬했다. 깔끔하면서도 응축된 향. 무슨 냄새였더라, 하고 곰곰이 생각에 잠길 찰나에 사람들의 환호성이 터진다. 주변을 두리번 거리니 모두들 2층 계단 위 단상을 올려다보고 있다. 그 시선들을 따라 나도 고개를 들었다.
와아-
환호성이 왜 터졌는지 알 듯했다, 그 누가 보든 '왕자님'이라는 말이 여기에 있는 그 누구보다 잘 어울리는 사람이 단상 위에 서서 이곳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왕자 주위에만 반사판을 가져다 놓은 듯 환한 햇살이 비쳤다.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그를 휘감고 있었다. 무표정이었던 왕자가 자신을 반기는 사람들에게 표정을 바꿔 웃으며 손을 흔들어 보인다. 그 웃음에 공기의 흐름이 바뀐 듯한 착각이 들 지경이었다. 찬찬히 그 웃음을 쫓으니 나보다 더 하얀 듯한 피부가 눈에 띄었다. 밖을 안 나가서 저렇게 하얀 걸까. 내 주변에 서있던 여인들은 모두 입을 가리고 그를 감상하기에 바빴다. 그렇게 잠시 동안 손인사를 하던 왕자가 자리를 옮겨 뒤에 있던 의자에 가서 앉는다. 아, 내려오시진 않나 보네. 사람들이랑 접촉하면 안 되는 건가? 입가에 옅은 미소를 머금고 이쪽을 내려다보는 그의 표정에 외로움이 묻어났다. 재미없겠다. 아래는 파티가 한창인데 바라보기만 해야 하는 상황이라니. 너무 앞쪽에 서있어서 그런지 뒤쪽으로 간 왕자의 모습을 자세히 보기 힘들었다. 더 살펴보고 싶었다. 차라리 뒤로 가는 게 잘 보일까, 싶어 사람들 사이를 파고들었다. 그렇게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는데 누군가의 구두와 내 발이 엇갈려버렸고 그대로 휘청거렸다. 아, 여기서 넘어지면 진짜 부끄러울 거 같은데.
그 순간, 진한 향기가 주변을 가득 매웠다. 그리고 내 어깨를 잡아 세워주는 따뜻한 손길에 고개를 들었다.
-마지막 브금이에요 ㅎㅎ 끝까지 들어주실거죠??
조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