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인반고양이 전정국과 아슬한 동거 11
"주잉... 주잉, 꾸기 배 만니 고파."
"5분만... 아니, 3분만..."
귓가에 울리는 정국이의 목소리. 어제 너무 울다가 잤는지 바로 일어나기가 힘들어서 허공에 손가락 3개를 들어 올렸다. 근데 그게 얼마나 바보같은 짓인지 3분이 지나도 내게 칭얼거리는 정국이가 없음을 알고서야 깨달았다.
아, 정국이 지금 우리 집에 없지.
"이거 버릴까? 정국이 오면 서운하다고 나 째려보겠지? 놔둬야겠다."
물건들을 하나 하나 정리하는데 전부 정국이 물건들만 가득했다. 고작 몇 달 같이 있었는데 왜 우리 집에는 정국이 물건이 이렇게나 많을까? 정국이는 거기서 약 복용하면서 건강하게 지내겠지. 물건들을 정리하면서 벌써 3일이 지났다. 정국이랑 지내면서 계절이 바뀌는 걸 몰랐는데, 정국이가 없는 3일은 내게 3번의 계절이 지난 것 같다.
보고 싶어, 정국아.
정국과 의문의 남성/
"정국아, 이거 안 먹으면 너 그대로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고 몇 번 말해야 알겠습니까."
"차라리 그러케 주글래."
나와 떨어져있으면서 얼마나 많은 걸 보고 들었는지 알 수 없었다. 나도 정국이를 다시 만난 게 3개월 만이라서. 예전과 많이 달라진 정국은 내 손길을 심하게 거부했다. 정국이에게 약을 먹이고, 집으로 오는 차에서 사람으로 변한 뒤로부터 계속 고양이로 변하지도 않았다. 내가 그 여자의 집을 찾고, 가끔 미행을 했는데 분명 고양이로 변할 수 있는데 정국은 계속 사람이다. 그리고 그 여자의 집에서 정국을 데리고 온 지 고작 3일이 지났는데 몰라보게 많이 말라버렸다. 약을 투여하려고 하면 성인 남성의 힘만큼 세게 날 밀쳐냈다. 덕분에 왼 팔에는 작은 상처가 생겼다. 이것쯤이야 아프지 않다. 정국에게 약을 투여해야 살 수 있어서 몇 번 더 시도를 하려는데 그때마다 알 수 없는 소리만 외쳐대는 바람에 오늘도 식탁에는 나 혼자 앉아있었다. 그리고 왼팔에는 정국이 새벽에 붙여주고 간 데일밴드도 있었고.
"남준, 나 주잉한테 가고 시퍼."
서재에서 정국이에 관한 기록을 세세하게 기록하고 있는데, 4일 만에 처음으로 말을 거는 정국이었다. 서재 밖에서 말을 하는데도 고양이의 습성이 남아있는 탓에 울리는 목소리는 진심을 토해내고 있었다. 문을 열어주자 온몸에 힘이 빠졌는지 그대로 문 앞에서 쓰러지는 정국이었다. 씨발... 이러다 진짜 죽을 것만 같았다. 어쩔 수 없이 숨이 간신히 붙어있는 정국을 침대에 눕히고 생명유지에 가장 중요한 약을 두개 섞어서 투여했다.
"너 원래 안 이랬잖습니까. 왜 마음 아프게 자꾸 거부하는데, 정국아."
아직도 눈을 감고는 있지만 아까보다는 많이 고른 숨을 뱉어내는 정국이의 곁에서 고개를 파묻고 혼잣말을 되뇌이는데 머리 위로 따뜻한 손이 얹혀졌다.
"남준, 미안. 나 주잉이 너무 보고 시퍼."
"가면 안 돼요. 안 됩니다, 정국아."
"죽어도 주잉이 옆에서 죽고 시퍼. 어차피 꾸기 가족도 없자나."
"..... 네가 왜 가족이 없어. 내가 네 가족이잖아."
"남준은 안니야. 남준은 조은 사람 만나서 사랑해야지. 꾸기 말고."
정말 미운 소리만 골라서 하는 정국이에게 내 머리 위에 올려놓은 왼 손을 이불 속으로 넣어주고 방 문을 닫았다. 방 안에서 들려오는 훌쩍임은 새벽 내내 계속 됐다. 약해지면 안 된다. 비정상적으로 3개월을 버틴 정국에겐 분명 안 좋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을텐데 여기서 보내주면 발칵 뒤집히는 건 시간 문제였다.
"정국아, 이제 좀 괜찮습니까."
내게 삐진 걸 온 몸으로 들어내면서 입에 살짝 공기를 머금고 고개를 돌리는 게 오랜만이라 침대 옆 모서리에 걸터앉아 네 손을 잡아주자 빼버리는 정국이에게 다시 이성을 되찾았고, 밥 먹으러 나오라는 말을 끝으로 문을 닫았다. 혹시나 안 나올까 싶어서 방 문앞에서 서성이는데 이불을 탁탁 털고 정리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오겠구나, 정국이.
오랜만에 집에 온 정국이에게 여전히 버섯과 피망은 있었지만 작게 썰어 놓은 소세시를 보자 입이 벌어졌는데 금세 앙 다물어버린다. 내 앞에 놓인 계란말이도 탐나는지 힐끔 거리길래 정국이 쪽으로 밀어주자 크게 한 입 베어먹는다. 예전에는 이렇게 잘 안 먹었는데 배가 많이 고팠나보다. 가만히 제 모습을 보는 나를 눈치 챘는지 내 밥그릇 위에 계란말이를 올려준다. 나도 먹고 싶어서 쳐다본다고 생각을 했는지 뿌듯한 미소로 남은 밥풀 하나 까지 알차게 먹어치웠다.
"정국아, 주사 맞을 시간입니다. 안방으로 들어와."
"알게써, 남준."
아침에 침대에 올려놓은 하얀 맨투맨으로 갈아입고,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침대에 눕는다. 사실 정국이에게 하루에 두 번 놔줬던 주사였지만 3개월 가량 떨어져있으면서 오랜만에 놓는 주사인지라 약간 긴장됐다. 정국도 나처럼 긴장했는지 조금 내린 바지 사이로 몸이 떨리는 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