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천성이 다정했다. 모두가 나를 보며 그 친절함은 내가 가진 최대의 장점이라 말했다. 내 사람이라 부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지만 딱히 사람을 싫어하는 일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신뢰받는 사람일 수 있었다.
그런 내가, 18년 인생 처음으로 대놓고 비호감을 표하게 만드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최민기. 내가 싫어하는 그 애의 이름은 최민기였다. 내가 최민기를 싫어하는 이유는 많았다. 그냥 최민기는 성격부터가 나와 맞지 않았다. 최민기의 모든 부분을 싫어했다고 해도 될 정도였다. 최민기는 내가 유치원 때 이후로는 하지 않던 험담도 다시 하게끔 만들었고, '내가 이렇게 못된 애였나'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사람이었다. 그 정도로 나는 최민기를 싫어했다.
그리고 그런 나와 최민기의 관계(?)는 학교 안에서 유명했다. '사람을 싫어하지 않는 다정한 애가 유일하게 싫어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을 싫어하는 애는 그 다정한 애밖에 없어.'
물론 최민기도 알고 있었다. 내가 본인을 싫어하는 것을.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민기는 특유의 친화력을 앞세워 자꾸만 내게 다가왔다. 사소한 것 하나라도 나와 관련된 거라면 내게 다가와 재잘거렸다. 그런 최민기가 부담스러웠고 또 그런 최민기의 모습이 내키지 않았던 나는 그저 굳은 표정으로 대응했지만 최민기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아무런 반응이 없어도 계속해서 웃었다.
어느 날이었다.
"근데 걔는 최민기 왜 싫어해?"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굳이 다른 설명이 없어도 목소리의 주인공이 말하는 '걔'가 나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나를 제외하고는 최민기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었으니까.
"최민기 너 걔한테 뭐 잘못한 거 있냐?"
"딱히 없는 것 같은데..."
최민기의 목소리였다. 숨죽여 엿듣기 시작했다.
"진짜 의문이다. 걔 완전 착하잖아. 근데 너한텐 왜 그러냐. 잘못한 것도 없다며."
"몰라. 난 진짜로 걔랑 친하게 지내고 싶은데. 내가 모르는 사이에 나 뭐 걔한테 죄 지었나 봐."
최민기가 한숨을 쉬는 소리가 들려왔다.
최민기가 싫은 이유라.
글쎄. 정말 많은데.
그냥 나랑 안 맞는 성격. 아마도 그게 가장 큰 이유.
최민기의 생일은 내 생일의 하루 전이었다. 친화력이 좋은 최민기답게, 최민기의 친구들은 생일파티를 한다며 평소보다 학교를 일찍 온 상태였다. 그 덕에 원래 일찍 등교하는 나는, 교실의 문을 열자 쏟아지던, 익숙하지 않은 상황 속의 시선들을 감내해야 했다. 그날따라 너무 피곤해 조금만 더 자려고 책상 위로 엎드렸다. 다만 주변이 너무 시끄러웠던 덕분에 나는 잠들지 못했다. 짜증이 올라왔다.
최민기는 애들에게 둘러싸인 채로 웃으며 생일을 보낸 듯 했다. 그러나 나는 아침 그 짧은 시간에 피로를 풀지 못해 오전 수업 내내 반쯤 나간 정신으로 수업을 들어야 했다. 최민기가 싫은 이유가 하나 더 추가되는 순간이었다.
그 날 밤, 씻고 잘 준비를 하려 누웠더니 최민기로부터 카카X톡이 와 있었다.
ㅡ 나 오늘 생일인데
ㅡ 축하한다고 해주면 안될까 ㅠㅠㅜ
ㅡ 너 빼고 다 축하받았는데 너한테도 받고 싶어
내가 왜 해 줘야 하지 싶다가도 뭔가 지금 축하해주지 않으면 내일 학교에서 축하해달라고 할 것 같아 메세지를 보냈다.
ㅡ 생일 축하해
내가 메세지를 보낸 건 11시 56분이었고,
ㅡ 고마워 ㅎㅎ
ㅡ 너도 생일 축하해 좋은 하루 보내!
그렇게 두 번째 답장이 온 건 12시 정각이었다. 최민기의 답장을 시작으로 여기저기서 축하한다는 메세지가 날라왔다.
싫어하는 애한테서 받는 올해의 첫 생일 축하 메세지는 좀 뭔가,
웃겼다. 얘는 내가 뭐라고 딱 맞춰서 메세지를 보내는 건지.
솔직히 좀, 바보같다고 생각했다. 나는 오늘 네가 싫은 이유가 하나 더 생겼는데.
최민기는 나와 가까워지려 무던히도 애를 썼으나 나는 최민기를 피하려 애쓰기에 바빴다. 내 친구들은 그런 나를 보며 잘못 없는 최민기만 불쌍하다고 혀를 찼지만 그래도 나는 최민기가 싫은 건 어쩔 수 없었다.
2학년의 마지막 날이었다. 동시에 3학년 반 배정을 받는 날이었다. 제발 최민기와 마주치지 않게 해 달라고 전날 밤에 기도했던 게 무색하게도 우리반에서는 유일하게 나와 최민기만 6반을 배정받았다.
짜증스런 마음에 추운 날씨 때문에 방송으로 하는 종업식 내내 책상 위로 축 늘어져 있다가도 종업식을 끝낸다는 목소리에 벌떡 고개를 들었다가,
"......"
"......"
언제부터 날 보고 있었는지, 최민기와 눈이 마주쳤다. 그러나 내가 '눈을 마주쳤다'는 사실을 인지하기도 전에 최민기는 눈을 피했다.
기분이 나빴다. 꼭 뭔가 잘못한 게 있는 듯한 표정으로 내 눈을 피하는 최민기의 모습이.
그렇게 나는 최민기와 1년을 더 보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나와 친해지고 싶어 안달인 최민기를 애써 피해가며 1년을 더 보냈다. 웃긴 건 최민기의 친구들과는 잘 지냈다는 거다. 더 웃긴 건 최민기는 내 친구들이랑은 잘 지냈다는 거고. 그래서 최민기의 친구들과 내 친구들은 나와 최민기를 이해해보려 난리를 피웠다. 물론 그것도 얼마 지나지 않아 '널 이해하는 것보다 수능 때 만점 받는 게 더 쉽겠다'며 포기하긴 했지만.
어김없이 최민기의 생일이 찾아왔다. 그러나 작년과 다르게 조용했다. 나는 그게 단지 수능이 얼마 남지 않아서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무도 최민기의 생일을 말로도 축하해주지를 않았다. 뭐지, 작년엔 복도만 걸어도 축하한다는 소리를 들었다고 (최민기의 친구가) 그랬는데.
내가 이걸 왜 신경을 쓰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신경이 쓰였다. 그래서 최민기의 친구들에게 떠 봤다.
"오늘 무슨 날이야? 왜 이렇게 조용해."
"수능이 열흘 남았으니까 그러지. 오늘 뭐. 평소랑 똑같구만."
그 대답을 듣는 순간 깨달았다. 아, 얘네 그냥 까먹었네. 하긴, 최민기는 고3 되면서 SNS도 다 끊었댔지. 그럼 생일 알림같은 것도 없었을 거니까.
그날 밤, 나는 왠지 모르게 펜이 잡히지가 않았다. 어차피 내게 수능은 보나마나한 것이라 그냥 일찍 자려 침대에 누운 순간 작년이 생각났다. 작년에는, 최민기가 먼저 축하해달라고 했었는데.
분명히 최민기가 싫은데 신경이 쓰인다. 친구가 많아 그럴 확률은 적지만 혹시라도 오늘 축하 한 번 받지 못했을까 봐. 고민을 하다가 휴대폰을 들었다.
ㅡ 생일 축하해 최민기
11시 59분이었다.
ㅡ 생일 축하해
ㅡ 축하해줘서 고마워 ㅎㅎ
그리고 답장은 12시 정각이었다.
작년과는 드는 기분이 달랐다. 하나도 웃기지 않았고 최민기가 바보같지 않았다.
근데 그냥 웃었다.
스무 살이 되는 날이었다. 친구네 집에서 여럿이 모여 새벽까지 놀던 중이었다.
"이거 누구 거야? 전화 왔는데?"
친구네 어머니께서 들어보이는 휴대폰은 내 거였다.
"제 거네요. 감사합니다."
그렇게 건네받은 휴대폰에 뜨는 번호는 저장되지 않은 번호였다.
"누구세요?"
ㅡ 느에... 밍긴데여...
"...최민기?"
목소리가 최민기였다. 아, 나 최민기 번호도 없었구나. 새삼 깨달았다. 그나저나 혀가 잔뜩 꼬인 걸 보아하니 스무 살이라고 술 마셨나 보네.
ㅡ 우웅 밍기! 나 밍기!
"...왜?"
솔직히 좀 많이 당황스러웠다. 이 시간에, 술 마시고 나한테 전화는 왜 걸었지.
ㅡ 너는 왜 나 시러해?
"......"
ㅡ 나는 너 조은데! 너능 막 어?
"...나는 뭐."
ㅡ 너무 챠가워... 나는 지짜루 너 조아하는데...
"......"
ㅡ 아니 지챠, 내가 멀 잘모태따구 그래애...
"...너 울어?"
말에 울음기가 섞여 있었다. 설마 싶은 마음에 묻자 정말로 울더라.
ㅡ @8%+^/+0×@&/^&*
울음소리 때문에 알아듣지 못한 말을 끝으로 전화가 뚝 끊겼다.
...내가 너무 심하게 대했나.
ㅡ 어젠 미안
다음날 최민기가 내게 보낸 문자 한 통이었다. 뭐라고 답장을 보내야 하나 한참을 고민하다가 관뒀다.
머릿속이 최민기로 가득찼다.
복잡했다.
까맣게 물든 밤하늘 |
제목이 곧 내용입니다. 다만 아직 글 속의 '나'는 민기를 싫어할 뿐, 사랑이라고는 생각도 안 하고 있어요. 흔적 연재하기 전에 짧은 단편 올려 봐요. 2017년 마무리 잘 하시고 새해에도 행복한 일만 가득하시길 바랄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