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오세요 ,
심야<心惹> 약국
written by. 참이슬
-마음을 이끄는 약국, 그 아홉번 째 이야기-
" 무슨 마음인지 모르겠어요, 다만 재현씨를 대할 때랑 민형씨를 대할 때 마음이 같다는 거에요.. "
" ..... "
우리는 잠시 말이 없었다. 아니, 나의 대답을 들은 재현씨는 가만히 있을 뿐이다. 주책맞게 또 눈물이 나오려한다. 누가 누구를 좋아한다는거. 내가 누군가를 좋아한다는거... 정말이지 머리 아프고 힘든 일이다. 차라리 무감정한 사람이고 싶다. 사랑 앞에선 사람이 왜이리도 작아 보이는지. 사람들이 길거리에 마주보고 서서 고개만 떨구고 있는 우리를 한 번 씩 힐끔거리며 지나친다.
" 그런거라면 차라리 다행이네요, 그럼 나랑 사귈래요 여주씨? "
" .....사.. 사귀자구요.. "
" 네. 적어도 나는 단언할 수 있는게 그 누구보다 여주씨를 사랑할 자신 있거든요. "
갑작스러운 연신 고백에 나는 몸둘바를 몰랐다. 차마 재현씨를 똑바로 보지 못하고 바닥만 내려다보았다. 재현씨의 한 손이 내 앞에 나타났다. 말하기 힘들면 내 손 잡아줘요. 추운가보다. 붉어진 손끝을 보니 미안한 마음이 커졌다. 내가 뭐라고.. 나는 재현씨를 한 번, 그이의 손을 한 번 쳐다보았다. 재현씨는 한결 편안한 표정이었다.
* * *
재현씨는 변한 것이 없었다. 병원에서 마주칠 땐 살가운 표정을 짓다가도 바로 표정이 바뀌었다. 오히려 궂은 부탁은 모두 나에게 하는 것만 같은 기분도 들었다. 실수를 하면 타박을 하는 것 또한 변하지 않았다. 바라는 것도 이상하지만 말이다. 그렇지만 다른 선생님들에게 혼날 때엔 특유의 능구렁이처럼 상황을 바꾸려 하거나, 천연덕스러운 얼굴로 분위기를 무마하려 하는 모습은 눈에 띠었다. 그럴 때마다 정말 빠르게, 다른 사람은 보지 못하도록 내 곁을 스쳐지나가며 손을 한 번 잡았다가 놓았다. 나는 흔히들 말하는 연애고자(?)라서, 혹여나 들킬 까봐 몸이 뻣뻣이 굳었다. 재현씨와 눈이 마주칠 것 같을 때엔 내가 돌려버리고, 피해버리고 말았다. 사내연애가 이렇게 어려운 것이었구나.. 매일 볼 수 있어서 좋은줄 알았더만. 재현씨가 은근슬쩍 티를 낼 때엔 나는 정말 어쩔 줄을 몰랐다. 로봇처럼 표정이 얼어버려서 숨도 못 쉴 것만 같았다. 재현씨는 그런 나를 재밌어하는 듯 했다.
게다가 으레 재현씨와 같이 밥을 먹기도 하였는데 하필 오늘 재현씨와 동기 셋이서 밥을 같이 먹게 되어 참으로 곤욕스러웠다. 그 동기는 내가 재현씨를 엄청 흉보았던 동기이기도 해서 두 배로 힘들었다. 밥이 코로 넘어가는지, 입으로 넘어가는지 모를 식사시간이 끝나고 재현씨는 자연스럽게 커피를 권유했다. 황급히 아니라고 손을 휘저었지만 동기는 네! 라고 대답해서 조금 웃긴 상황이 되고 말았다. 재현씨는 나를 한 번 슥 보고 입꼬리를 올렸다. 헙.. 어떻게 얼굴이 빨개질것만 같아. 나는 두 볼을 손으로 문지르며 온도가 내려가길 바랬다. 재현씨는 사례발표를 위해 우리와 떨어지게 되었다. 나와 동기는 엘레베이터에서 재현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 재현샘, 무슨 일 있나? 요즘따라 얼굴이 되게 좋아보이네. "
" 그, 그런가. "
" 커피 사준 적도 처음이잖아. 같이 밥 먹은 적은 많았어도... 흠, 이상해. "
나는 그저 핸드폰만 만지작 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때, 메시지가 왔다는 알림과 함께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요즘 여주씨 볼 일이 없네요. 무슨 일 있는건 아니죠?] 민형씨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순간 정신이 아찔해져버렸다. 재현씨와 그랬던 날 이후로 며칠 간 약국을 들르지 않았다. 사실 바빴던 것도 있지만.. 왜인지 민형씨를 똑바로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도대체 왜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민형씨와의 사이가 틀어질 것 같은 불안감이 있었다. 작게 한숨을 내쉬는 나를 보며 동기는 괜찮냐고 물었다.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답장은 나중에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그렇게 또 정신없이 바쁜 하루가 끝나고 재현씨는 자연스럽게 퇴근길을 바래다 주겠다고 말했다. 누가 보면 어떡해요. 나의 말에 재현씨는 이미 본 사람 많은 것 같은데 뭐 어때요, 라며 받아쳤다. 민형씨의 메시지를 받은 후 부터 자꾸만 민형씨가 마음에 걸렸던 나는 최대한 재현씨의 마음이 상하지 않는 쪽으로 하여 겨우내 혼자 퇴근을 할 수가 있었다. 연애라는 것이 이제는 더이상 나 혼자만 판단해서는 안 되는 일들이 많아지는거구나. 하는 생각을 하다보니 어느새 내려야할 정류장이 다가왔다. 버스에서 내린 후 약국으로 가기 전 동혁이와 민형씨를 위해 빵을 조금 사갔다. 빛나는 약국 간판을 보니 약간 망설이게 된다. 떨리는 마음을 안고 문을 열자 반가운 목소리들이 들려온다.
" 어!! 누나다! "
" 안녕 동혁아. "
데스크에 없는 민형씨를 눈으로 찾는데 우당탕- 하는 소리와 함께 조제실에서 민형씨가 뛰쳐나왔다. 괘, 괜찮으세요? 뭔가 급하게 나온것 같은 민형씨는 데스크 밖으로 나와 나를 반겼다. 여주씨 정말 오랜만이에요. 민형씨의 미소는 늘 그랬듯이 사람을 편하게 만들어주었다. 나는 준비한 빵봉투를 건넸다. 민형씨는 왜 이런걸 사오냐며 나를 자리에 앉혔다. 동혁이는 빵봉투를 받아들고 예에~ 하며 좋아한다. 철부지 같은 모습도 오랜만에 보니 반갑고 귀엽네. 잠시 사라졌던 민형씨는 다시 나타나 말했다.
" 빵을 먹을 만한 자리가 없네요. 밖에 나가서 커피라도 마실래요? 제가 살게요. "
" 아아 아니에요. 그럴 필요 없어요! 저 빵 진짜 얼마 안하는거에요. 늦은 밤이어서 싸게 팔거든요... "
" 그래도 여주씨 오랜만에 봤으니까 제가 살게요. "
또또! 청승맞게 솔직하게 다 말한 후에 그제서야 입을 가리며 놀란 나를 보며 민형씨는 웃었다. 아우 창피해. 진짜 김여주 바보 멍청이.. 민형씨가 강력히 사주겠다는 의사를 밝혀서 자꾸 거절하기도 뭐해진 민형씨 뜻을 따르기로 했다. 본인도 데려가라고 떼쓰는 동혁이에게 미안했지만.. 나와 민형씨는 말없이 어두운 골목을 걸었다. 무슨 일 있던건 아니냐는 질문에 나는 정말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간 나를 많이 걱정했던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런 고마운 사람에게 늘 똑같은 사람으로 남고 싶은데, 자꾸만 마음이 무거워진다. 분명 나에겐 나쁜 일이 생긴 것도 아닌데 말이다.
" 여주씨, 평상시하고 달라보여요. 정말 무슨 일 없어요? "
" ...제 표정이 달라보여요? "
" 네. 평소하고 달라요. 그래서 더 걱정되구요. 말하기 곤란한 일이라면 말하지 않아도 돼요. "
" 무슨 일 없는데.. 왜 이럴까요 제가. 저도 저를 모르겠어요. 특히 민형씨 앞에선 더욱요.. "
" ...... "
무릎에 올린 두 손을 꽉 잡았다. 민형씨는 말없이 나를 기다려주는 듯 했다. 민형씨. 실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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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야<心惹> 약국
" 뭐야, 형 왜이렇게 늦게 들어와요. 둘이 뭐 있는거 아니야? 누나 그렇게 쉽게 못줘요. "
" 됐고, 라이터 있어? "
" 웜메, 청소년한테 라이터를 찾다니요! 뭐 난 좀 천재니까 있긴 하다만. "
" 압수야. "
" 헐 뭐야. 그럼 오늘까지만 딱 피울게요. 어때요? "
민형은 말없이 약국을 나왔다. 동혁은 민형의 마음을 모른체 신이나서 같이 밖을 나왔다. 동혁이 담배를 피우든 말든, 민형은 무표정한 얼굴로 연신 담배를 태웠다. 약간의 낌새를 눈치챈 동혁은 민형의 눈치를 보며 슬쩍 먼저 약국 안으로 들어갔다. 동혁이 들어가고 나서도 담배를 피운 민형은 오랜만에 피운 담배에 머리가 아찔한 기분을 느꼈다. 잠시 표정을 찌푸리며 관자놀이를 짚은 민형은 그 상태로 편의점으로 가 맥주 몇 캔을 샀다. 다시 약국으로 들어온 민형은 데스크를 지나쳐 그대로 조제실 뒤에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동혁은 슬쩍 방 앞을 서성이다가 민형에게 걸렸다.
" 뭐. "
" ...괜찮아요? "
" 신경 꺼. "
" 신경을 끌 수가 있어야지 원. "
날카로운 민형의 말에도 동혁은 어깨를 으쓱이며 문턱에 걸터앉았다. 오늘은 손님이 별로 없어서 다행이네요. 자연스럽게 맥주를 집어드는 동혁을 말릴 힘도 없던 민형은 맥주를 따서 마시기만 했다. 한 모금 마시고 한숨 한 번을 반복한 민형은 맥주가 떨어지자 동혁이 마시던 맥주를 집어들어 마셨다. 이 형 술 약하네. 그 짧은 순간에도 동혁은 민형이 술에 약한데 무리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한 캔으로 얼굴이 달아오르는 모습을 본다면 누구나가 예상할 수 있지만 말이다. 동혁은 다른 곳을 바라보며 툭 내던졌다.
" 차라리 일찍 문 닫고 제대로 먹던가요. "
" 그건 안 돼. "
" 왜요? 음주 영업보단 낫잖아요. "
" ...난 여기서 잘거야. 약국은 너만 보면 되지. "
" 돈 더줄거에요 그럼? "
" 응. "
민형과 눈이 마주친 동혁은 민형의 반짝이는 눈을 보며 놀랐다. 설마, 형 울어요? 동혁이 가까이 다가오려 하자 민형은 손으로 그를 막았다. 다행인지 딸랑- 하는 종소리와 함께 동혁은 어쩔 수 없이 다시 데스크로 갔다. 동혁이 가고나서 민형은 다시 한 번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천천히 핸드폰을 집어들어 애꿎은 메신저 화면만 바라볼 뿐이였다.
" 축하해줘야 하는데.. 그러기가 왜이리 싫지. "
-30분 전,-
" 요즘.. 만나는 사람이 생겼어요. "
" 아... 정말요. 혹시 저번에 봤던- "
" 네.... 민형씨한테 말해야할 것 같아서요. "
" ...저한테요. "
" ..네. "
" 왜.. "
"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자꾸만 민형씨가 생각나고.. 그래서, 그래서 말하러 왔어요 오늘. "
여주의 말을 들은 민형은 한동안 아무런 말이 없었다. 둘의 사이엔 정적만이 흐를 뿐이었다. 여주 또한 마음이 편했으랴, 민형을 똑바로 보지 못하고 커피잔만 움켜잡고 있을 뿐이었다. 민형은 왠만해선 표정 관리를 하려 했지만 이 순간 만큼은 자신의 속마음을 여지없이 얼굴로 드러냈다. 하지만 그러다가도 곧, 나는 속상해할 자격이 있을까. 하는 생각에 애써 미소를 지으려 했다.
" 여주씨, 축하드려요. "
" ...... "
" 그런 좋은일이 있을 때, 저를 먼저 생각해줘서 고맙구요. 저도 얼른 그런 축하받을 일을 만들어야할텐데. "
" ....민형씨. 미안해요. 저 때문에... "
" 여주씨가 미안할 일이 뭐가 있어요. 당연히.. 당연히 축하받을 일인데. "
여주의 눈을 보다가 결국 민형은 안되겠는지, '실례지만 먼저 일어날게요. 동혁이만 두고오니까 마음이 편치 않네요.' 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원래는 절대 그러지 않을 민형이었지만 그도 여주에 대한 마음을 돌이켜보고 생각해볼 시간이 필요했다. 카페에 홀로 남은 여주는 까만 커피를 바라보며 울컥하는 마음을 참으려 애썼다. 왜, 왜이러지. 왜 가슴이 아프고 슬픈거지. 끝내 여주는 소매자락으로 눈가를 훔쳐야했다.
-아홉번 째 이야기, 끝-
&작가의 말&
안녕하세요! 저는 지독한.. 감기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ㅜㅜ
여러분들 요즘 공기도 안좋고 독감도 유행이라하니 꼭꼭 마스크 끼고 다니시고 감기 조심하세요ㅠㅠ
흑흑.. 이야기의 전개가 신기하게(?) 흘러가죠? 하핫.. 아직 끝나려면 멀었으니 재밌게 봐주셨음 해요!
암호닉은 15명으로 마감하도록 하겠습니당 신청해주셔서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ㅎㅎ
그럼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드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