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대로
07
“뉴욕대면 회사 근처인데? 같이 갈까?”
“진짜??”
“응, 같이 가자. 퇴근하고 데리러 가면 돼?”
대학교가 성운이 회사 근처라서 정말 다행이었다. 진짜 하성운 너가 나 여러 번 살린다... 이제 성운이만 분주한 아침은 끝나고 나는 좀 더 일찍 일어나 성운이가 아침밥 하는 것을 도왔다. 뭔가 신혼부부가 된 것 같아서 흐흥, 하고 웃으니까 성운이는 뭐가 그렇게 좋냐면서 머리를 헝크러뜨렸다.
“잘가! 이따 봐!”
차 창문을 열고 손을 흔드는 성운이가 떠나고 차가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보고 있었는데 콕콕, 누군가 어깨를 찔러서 돌아보니 황민현이었다.
“어, 안녕!”
“가자, 연습실.”한 번도 둘이서 얘기해본 적이 없기에 공기가 어색해져서 괜히 읏차- 하며 첼로 케이스를 고쳐 메자 황민현은 앞만 보고 있는 나의 어깨를 다시 콕콕 찔러 자기 얼굴을 보게 하더니 힘들면 들어줄까? 라고 말했다.
“괜찮아, 하하.”
“하하.”
연습실에 도착해서는 어색함이 사라졌다. 연습은 내가 먼저 연주함으로써 시작됐다. 내가 연주할 때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황민현이 잡아주고, 합주할 때도 시작할 때만 서로 확인하며 타이밍을 맞추고, 그 뒤로는 황민현이 내 박자에 맞추기로 했다.
“메트로놈 키고 연습하다가 익숙해지면 그대로 가자, 박자 안 맞으면 말해줘.”
그렇게 연습하고 피드백 받고, 또 연습하고. 첼로 쉰 지 얼마 안 됐는데 벌써 굳은살이 좀 사라졌는지 손가락 끝이 얼얼했지만 그래서 더 많이 줄을 잡아 익숙해지도록 만들었다. 오전 내내 맹연습을 하다가 배 안 고프냐는 황민현의 말에 바로 밥을 먹으러 갔다. 황민현은 자기랑 어울리는 분위기의 레스토랑에서 자기랑 어울리는 크림 파스타를 시켰고, 나는 한국인은 밥심! 을 주장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새우 필라프를 시켰다.
“너 손가락 너무 혹사시키는 거 아니야?”
“음··· 그냥 오랜만에 했더니 재밌어서. 굳은살도 다시 박혀야 되구.”
“너무 무리하지는 마, 가볍게 도와준다는 생각으로 해도 돼.”
“도와줄 거면 확실히 해야지! 그리고 내가 좋아서 하는 거야.”
고마워, 하고 또 하하 웃는다. 되게 중독성 있는 웃음이다. 시킨 음식이 나오고, 신나게 먹는데 황민현이 테이블을 톡톡, 두드려서 나를 부른 후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물어봤다.
“켁-”
갑자기 들어온 질문에 사래가 걸려 켁켁 대자 자기가 더 당황해서 자기가 뜰 수 있는 만큼 최대한 크게 뜬 눈을 하고 나에게 물을 건넨다. 겨우 진정이 돼서 말을 하려고 하는데, 막상 말하려고 하니 우리가 무슨 사이일까,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어··· 남자친구는 아닌데.”
“아닌데,”
“모르겠다, 하하.”
“그럼 지금 공식적으로 남자친구는 없는 거네?”공식적으로···? 말이 좀 이상하긴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라서 고개를 끄덕끄덕하자 황민현은 자기도 끄덕끄덕하더니 다시 파스타를 돌돌 말기 시작했다.
오후에는 다른 학생들도 연습실을 써야하기 때문에 동아리실로 옮겨서 했다. 학생들은 선후배 관계없이 손으로 인사했고 황민현 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인사해서 나는 어색하게 하.. 하이..! 하고 손을 흔들었다. 이건 거의 영어가 아니라 일본어···.
오전보단 조금 설렁설렁하게 오후 연습을 끝내고, 성운이 퇴근 시간에 맞춰서 정문으로 나왔다.
“올 때까지 기다려줄게.”
“아, 그래! 인사도 하고! 성운이도 동갑이야.”
“나는 황민현이고, 걔는 성운이?”
순간 할 말을 잃어서 입만 벌리고 쳐다보고 있자 황민현은 다시 하하, 장난이야. 하고 웃었다. 다행이다, 기분 나빴을까 봐 걱정했는데. 그렇게 얘기를 하다가 손가락으로 옆을 가리키는 황민현에 옆을 홱 돌아보자 차 창문이 내려가고 성운이가 보였다.
“황민현입니다.”
두 사람은 정말 간단하게 통성명만으로 인사를 끝냈고 황민현은 나에게 갈게, 내일 봐! 하고 손을 흔들며 떠났다. 나도 잘 가라고 손을 흔들어 주고 첼로를 실으려고 했는데 언제 나왔는지 성운이가 첼로를 가져가 트렁크에 실었다.
“앉자마자 뭔 소리야.”
“눈빛이, 수상해. 조심해야 돼.”
“아 뭐래- 빨리 집 가자아아! 고고!”
아, 피곤해. 잠 온다. 안 돼, 운전하는데 조수석에서 자는 거 아니야.. 피곤에서 창문에 기대 머리를 대고 멍 때리고 있었다. 신호등에 멈춰 섰을 때 성운이가 고개를 돌려 말했다.
“아니야, 너 운전하는데 어떻게 자.”
그렇게 곧 신호가 바뀌고, 눈을 떠보니 의자가 끝까지 눕혀져 있었고 차는 집 앞에 주차되고 있었다.
“헙, 미안.”
“뭐가 미안, 들어가자.”
“아, 나 너한테 맨날 민폐만 끼쳐.”
하나도 아니라며 오히려 나를 달래주는 모습이 괜히 밉다. 귀찮으면 귀찮다고 말해도 되는데.
그렇게 바쁘게 한 주가 흘렀고 황민현의 졸업 공연도 점점 가까워졌다. 공연일이 다가올수록 부담감은 커져갔고 신경도 날카로워졌다. 게다가 시도 때도 없이 들이대는(?) 황민현 때문에도. 갑자기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귀엽다고 하질 않나, 만나자마자 오늘 진짜 예쁘다며 오글거리는 말을 서슴치 않게 하질 않나. 이런 황민현에게 딱 선을 긋기도 애매하고, 그렇다고 마음이 없는데도 계속 받아주는 건 더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혼자 고민하다가 스트레스가 더 쌓였다.
사건이 터진 건 내 컨디션이 최악이었던 날이었다. 연습을 끝내고 돌아와서 성운이랑 얘기를 하는 중이었다.
“응? 누구?”
“··· 저번에 말했잖아. 두 번은 말한 것 같은데.”
“··· ··· 미안···.”
“못 알아들은 말 있으면 바로 얘기하라고 했잖아.”“너 짜증날까봐···.”
“내가 왜 이런 걸로 짜증을 내. 난 니가 답답할까봐,”“또 그러지. 넌 항상 나만 배려하지, 니 감정은 신경 안 써? 솔직히 너도 귀찮잖아. 답답하잖아. 왜 짜증 한 번을 안 내, 왜 귀찮다 티 한 번을 안 내? 난 니가 착해서 힘들다. 내가 미안해지고, 내가 민폐만 끼치는 사람 된 것 같아서.”
“하···.”
우리는 그렇게 처음 싸웠다. 성운이는 내 말이 끝나자 한숨만 깊게 쉬고 방 안으로 들어가 버렸고 나는 집 밖으로 뛰쳐나왔다. 밖은 지지직거리며 금방이라도 꺼질 것 같은 가로등 몇 개 주위 빼고는 어두컴컴했다. 나는 무서운 것도 모르고 그냥 울면서 앞으로 계속 걸었다. 얼마나 걸어온 지도 몰랐고, 그냥 벤치가 보이길래 주저앉아서 펑펑 울었다.
옹성우 말은 틀린 적이 별로 없다. 언젠가 일이 터질 것 같았는데, 미리미리 말 좀 들을 걸. 성운이가 잘못한건 하나도 없는데, 혼자 화를 내고 나와 버린 게 후회가 됐다. 나한테 화를 낼 때도 천천히 또박또박 말했던 성운이가 생각나서 더 미안해졌다. 진짜 내가 미쳤다. 내가 미쳤지. 왜 내 스트레스를 성운이한테 풀어. 혼자 자책하면서도 돌아갈 용기가 나지 않아 계속 찔끔찔끔 나오는 눈물만 닦고 있었다.
깜빡- 깜빡-
앞에서 깜빡거리는 불빛에 고개를 드니 핸드폰 후레쉬를 켜고 내가 앉아있는 벤치에서 세네 걸음 떨어져 서있는 성운이가 보였다.
뛰어 왔는지 숨을 몰아쉬는 성운이를 보니까 또 눈물이 왈칵 나오기 시작했다.“바보야. 왜 왔어.”
그렇게 모진 말을 했는데도 나를 찾으려고 이곳저곳 뛰어다녔을 성운이가 바보 같았다. 착한 바보. 그래서 울면서 잘 나오지도 않는 목소리로 왜 왔냐고 말하고 일어섰다. 차마 성운이 얼굴을 볼 수가 없어서 그렇게 말하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 성운이가 한 걸음, 두 걸음 다가왔다. 그러고는 내 얼굴을 손으로 감싸 자기 얼굴과 마주보게 했다.
성운이는 말을 끝내자마자 자기 입술을 내 입술에 가져다댔다. 그동안 쌓여왔던 모든 감정들이 한 순간에 녹아내렸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성운이를 좋아하게 되었을 때, 그리고 지금까지. 맞닿았던 입술을 뗀 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울다가 웃으면 엉덩이에 뿔나는데.”
눈물 그렁그렁한 눈으로 웃으니까 놀리는 성운이를 한 번 째려보고 성운이 품에 안겼다.
“미안해··· 화내서.”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성운이의 손길이 괜찮다는 말을 대신해주고 있었다.
따뜻해, 고마워. 성운아.
꺄악 처음 보는 박력 성운이ㅠㅠㅠㅠㅠㅠㅠ 키스했대요 ㅠㅠㅠㅠㅠㅠ 실은 민현이 감정선을 더 넣을까했는데 분량 조절 실패와 스토리가 처질 우려가 있어,,, 된다면 텍파에 넣어보겠슴뮈당 ~~~~~ 암호닉분들은 이번화 댓글 달아주시는 걸로 최종 정리할게요! 밑에 암호닉 분들 확인하셨으면 댓글 남겨주세용 ㅎㅎ
암호닉
0209 데이 뿜뿜이 강캉캉 구르밍 하핫종현 옹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