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리던 어느날 (inst.) - 어쿠루브
짝사랑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外
IF - 1
만약에 조금만 더 빨리 마음을 표현했다면
아니 조금만 더 빨리 내 마음을 알아차렸다면
지금쯤 우리는 많은 것이 달라져있지 않았을까.
" 나 전역하면 김여주 소개해주면 안돼? "
" ...엉? "
" 괜찮은 친구라며. 근데 남자친구가 왜 없는지 모르겠다며. "
" ...그렇지. "
갑작스런 황민현의 말에 나도 모르게 이상한 되물음을 하고 말았다. 김여주? 내가 아는 그 김여주? 민현이가 진지한 표정으로 눈을 반짝이며 게속해서 말을 이었다. 신기했다. 연애에는 관심도 없는 줄 알았더니. 황민현에게서 김여주가 겹쳐보이는 일이 잦았는데, 민현이에게서 여주를 소개해달라는 말을 들으니 기분이 묘했다.
아, 뭐지. 이 감정은.
짝사랑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IF
" 너 진짜 참을성 없는거 알지, 옹성우. "
" 내가?! 내애애애애가?! "
" ...나는 네가 왜 사진부인 줄 모르겠다니까. "
김여주가 다 찍은 사진을 보며 내게는 시선을 두지 않은 채 말했다. 야, 참을성하면 이 옹이라고 옹! 내가 뻔뻔하게도 말하자 그제서야 김여주가 내게 시선을 주었다. 조금은 따가운 시선을.
" 아 예~ 참을옹하세요 네네~ "
김여주가 그렇게 말하며 카메라를 카메라집에 넣었다. 그렇게 참을성이 가득하신 옹성우님께서 왜 항상 사진을 찍을 때 쫑알쫑알 거리실까, 라고 덧붙이며. 순간 뜨끔했던건 사실이다. 김여주랑 항상 사진을 찍으러 가서 멋진 컷을 찍겠다고 기다리면 항상 쪼잘대는 쪽은 나였으니까. 난 그 기다림의 미학이라는 걸 잘 모르겠단 말이지.
" 왜, 그래도 좋잖아. 오디오 빌 틈도 없고. "
" 내 왼쪽 귀가 네 침 덕분에 늘 촉촉하다. 참 고맙다, 성우야. "
김여주가 그렇게 말하며 먼저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어, 야. 난 아직 정리도 못했는데. 좀만 기다려봐! 내가 주섬주섬 정리를 하자 김여주가 다시 내 옆에 풀썩 앉아 카메라 렌즈를 분리하기 시작했다. 항상 이런 식이었다. 뭐든지 한 발 늦게, 너보다 한 발 늦게 무언가를 시작하고 끝 마치는게.
나는 늘 그런 식이었다.
늘, 너보다 늦었다.
사진을 항상 같이 찍으러 다니던 우리였다. 왜인줄은 모르겠으나 언젠가부터 자연스럽게 함께 다니게 되었다. 아니, 그냥 어쩌면 처음 봤을 때부터 너랑 다녀야겠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낯설어 보이는 너와 친해지고 싶어서 안달났던 나였으니까. 그리고 항상 그 사진을 찍으러 다니면서 말을 하던 쪽은 나였고, 듣는 쪽은 너였다. 그것도 언젠가부터 자연스럽게도 당연시되었다. 그리고 내 대화의 주제는 언제나 나의 연애였다.
" 12반에 걔가 저번에 갑자기 나 축구하고 오는데 초콜렛 주는거야. 자기가 만든거라면서. "
" 응. 맛있었겠다. "
" 아니 야, 그게 중요한게 아니라... 걔가 나 좋아한다고 소문이 난거있지, 그 축구하던 우리반이랑 다른 반애들한테. "
" 그렇구나... "
심드렁한 표정으로 셔터 위에 손을 올린 채 놀이터에서 뛰노는 아이들만 보는 너에게 심통이 난건지 나는 가끔 이야기를 부풀려 말하곤 했던 것 같다. 무슨 초등학생도 아니고. 네 그 뚱한 표정이 나는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그저 내 얘기에 깔깔 웃는 너를 보고 싶었던 것 같기도. 그러나 언제나 내 이야기의 8할은 연애 문제였다. 내 입으로 말하긴 좀 그렇지만 나름 학교에서 인기도 있는 편이었고, 가끔 내 친구를 통해서 무언가 전해주는 여자애들도 있었으니까. 그 이야길 왜 항상 너에게 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들어주는게 익숙한 너였기 때문일까? 너에게 말하는 것은 항상 묘하게 편했다. 그 심드렁한 표정이 싫다가도, 희한하게 마음이 편했다. 그리고 네 그 표정이 바뀐건 네가 너의 이야기를 시작했을 때였다.
나의 연애로 시작한 이야기가 너의 이야기로 넘어갔을 때 표정을 나는 잊지 못한다.
" 넌 머리에 여자친구 만들 생각 밖에 안하지, 옹성우? "
" 그럼 넌? 연애 이런거에 관심 하나도 없고 뭔 재미로 학교 다니냐? "
" 좋은 대학 가려고 열심히 공부할려고 다니는거지. 학생의 본분이 뭐냐? "
" ...어디 가고 싶은데? "
" A대. "
네 표정이 어땠는지 너는 모르겠지.
지는 노을빛 때문인지는 몰라도 네 눈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그 얼굴을 보는데 왠지 모르게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부끄러워서 그랬던걸까? 매번 실없는 연애 얘기만 하는 나와 달리 꿈과 목표를 말하는 너를 보니 내 자신이 작아져서 그런걸까?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부끄러움과 동시에 느꼈던 또 다른 기분이 있었던 것 같다. 자신의 얘기를 하며 눈을 반짝이는 네 모습이 참 예뻤다. 노을이 아니라 너를 찍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 때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오기 같은 거였다. 초등학생의 심보처럼, 내가 친구인 얘한테 왜 이런 기분을 느끼냐며 이상하게 불쾌해했다.
" 야, 너라면 갈거야. 공부도 잘하잖아. 너. "
" 으이구, 내가 잘하는지 못하는지 어떻게 아냐, 니가? "
" 딱 보면 알아. 내가 또 옹촉이라고... "
" 옹촉 같은 소리하네. 야. 지금 사진 찍자. 노을 엄청 이쁘다. "
네가 카메라를 들고 그네에서 일어섰다.
" 뭐해, 빨리 찍어. 노을 찍으러 온거잖아. 해 다 지겠다. "
" 어? 어어. "
" 하여튼... 옹성우 너 맨날 늦어. "
" ...그러니까 너랑 다니는거지. 좀 챙겨달라고. "
언제 그랬냐는 듯 나는 네 옆에 능글맞은 표정으로 섰다. 확실히 너는 나보다 성숙하고 어른스러운 면이 있었다. 내가 또래보다... 천진난만한 면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그랬던걸까. 나는 한번도 네 마음을 의심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어른스러운 네가, 늘 생각이 깊은 네가 나에 대한 어떤 마음인지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아니 그것보다 더 큰 문제였던 건 나는 내 마음을 돌아본 적이 없었다.
내가 여자친구가 생겼을 때, 네가 그런 반응을 보였던 것을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저 너는 내게 소중한 친구였기 때문에. 너는 내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잃고 싶지 않은 친구였기 때문에. 그래, 나는 굳게 믿고 있었다.
너에게 느끼는 이 감정이, 이 복합적인 감정들이 우정이라고. 멍청하게도 단 한 번도 의심할 생각을 않고 우정이라 믿었다.
바보같이.
어리석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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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받기 싫대. "
마음과는 다르게 나간 소리였다. 민현이가 엄청나게 당황해하는게 느껴졌다.
" 어...? 아... 그래? "
" 응. 남자친구 사귈 마음이 없대. "
" ... "
" 가볍게라도 받아보라니까 싫대. "
거짓말이었다. 새빨간 거짓말. 나는 김여주에게 물은 적이 없다. 민현이라는 괜찮은 친구가 있는데 소개 받아보지 않을래? 라는 말 같은거 한 적이 없다. 입 밖으로 꺼낸 적이 없다. 너무나 당당하고 술술 나오는 거짓말에 내 자신도 흠칫했다.
" ...어쩔 수 없지, 뭐. "
민현이가 체념한 표정으로 살짝 웃으며 내게 말했다. 응, 그래. 어쩔 수 없네. 내가 그렇게 말하고 민현이의 어깨를 두드리자 민현이가 나를 불렀다. 저어, 성우야. 하고 조금은 무거운 목소리로.
" 왜? "
" ... "
민현이가 할 말이 있는지 눈알을 도르르 굴리다가 아랫입술을 혀로 쓸었다. 뭔데, 할 말 있냐? 내가 퉁명스레 묻자 민현이가 아니라는 듯 아까 내가 그랬던 것처럼 어깨를 두어번 두드렸다.
" 아니다. 아무것도 아냐. 나 다음 수업 때문에 가볼게. "
" ...뭐야, 황민현. 싱겁게. "
민현이가 끝내 아무 말을 않고 돌아섰다. 아쉬워서 그런가? 항상 민현이와 여주가 겹쳐보여서 둘이 꽤나 잘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래서 어쩌면 김여주와 황민현이 잘 어울리는 한쌍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이상하게 민현이가 소개를 해달라는 말을 듣자 알 수 없는 불쾌감이 치밀어 올랐다. 아주 조금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교복을 입고 학교를 내 집 안방처럼 쏘다니던 때와 다르게 작은 의심이 피어올랐다. 내가 정말로 김여주를 친구로 보고 있는건지. 위험한 생각이었지만... 그렇지 않고서야 내가 왜 그런 감정을 느끼고 민현이에게 왜 이런 말을 했는지 설명되지가 않았다.
[ 옹 ]
[ 오늘 영화 네가 쏘기로 한 거 ]
[ 안 잊었지? ]
[ 팝콘은 내가 쏨 ]
...이것봐. 그렇지 않고서야 네 카톡에 내가 이렇게 미소를 짓는게 설명되지가 않는다니까.
" 야, 김여주!! "
늦었다. 너랑 만나는 시간은 늦고 싶지 않았는데. 항상 너보다 늦은 나여서 약속시간에는 꼭 먼저 오고 싶었던 나였다. 오늘은... 나름대로 멋을 내느라 조금 늦었지만. 숨을 몰아쉬며 네 앞에 멈춰섰다. 너의 반짝거리는 로퍼가 눈에 띄었다. 천천히 숨을 고르며 고개를 들자 보이는 것은 새삼 익숙하면서도 평소와 다르게 조금은 화장이 더 진한 너다.
" 천천히 와도 된다 그랬잖아. 아직 영화 시간 남았다고. "
" 그래도 약속 시간에 어떻게 늦냐... 그것보다 너 오늘 어디 갔다 왔어? "
" ...왜? "
" 아니... 평소랑 다르게 좀 예... "
나도 모르게 예쁘다는 말이 튀어나갈 뻔 했다. 친구 사이에 이 정도 말은 할 수 있는 것 같은데 나는 그 말을 애써 삼키고야 말았다. 괜히 오해할 것 같으니까. 조금씩 인정을 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내가 너를... 친구가 아닌
" ...아니 평소랑 다르게 좀 꾸미고 왔길래. "
" 예쁘다는 소리 해주면 덧나냐? "
" ...그... 뭐 좀... 예쁘네, 어어. 예뻐. "
" 누워서 절 받기네. "
" ... "
장난처럼 넘기는 네 말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조마조마했다. 정말로 나는 더이상 너를 우정이라는 감정으로 바라보는게 아닌걸까? 그런 생각을 하며 묵묵히 너의 뒤를 따라갔다. 그러다가 문득,
" 옹, 너 카라멜 팝콘 먹을거지? "
고개를 들고 나와 눈을 마주치는 네 모습이 새삼 예뻐서
" ... "
" 야, 옹성우. "
나도 모르게 얼굴이 달아오르는 기분이 들어서
" 어? 어어어, 나 카라멜 팝콘... "
" 뭐야. 갑자기. 저 팝콘은 카라멜로 주시구요, 콜라 하나랑 사이다 하나요. 너 사이다 마실거지? "
" ... "
" 야야, 옹성우. "
갑자기 심장이 터질 것 같이 빨리 뛰어서
" 어...어어. 사이다... 고마워. "
" 오늘따라 왜 이래, 얼이 빠져가지고. 옷만 이쁘게 입고 오면 다냐? "
나도 모르게 그 생각을 떠올릴 수 밖에 없었다.
" ...오늘 좀 예쁘냐, 나? "
" 징그럽게 뭘 그런걸 물어. "
인상쓰는 네 모습마저도 사랑스러운걸 보니 나는 너를
" ... "
" 갑자기 뭐야, 혼자 심각해져가지고. "
친구가 아닌 여자로 보고 있구나.
" 팝콘이랑 콜라, 사이다 나왔습니다~ "
내가 너를...
" 옹, 들어. 빨리. "
" 어.. 이리 줘. "
좋아하고 있었구나. 하는 그런 생각이.
그 생각이 드는 순간 네 얼굴을 봐도 내 얼굴이 달아오를 것 같았고, 왜 진작에 나는 너를 좋아한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하지 않았을까 하며 과거의 나를 자책하기도 했다. 네가 예뻐보이기도 하고, 너를 보지 않으면 답답한 순간이 꽤나 있었는데도. 고등학생 때부터 나는 너에게 친구 이상의 감정을 품고 있었던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도 지는 노을 앞의 반짝이는 너의 모습을 잊지 못하는걸 보면.
갑자기 달라진 나의 태도를 눈치 빠른 네가 알아채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했다. 괜히 만나자는 말에 피하기도 하고, 자꾸만 무슨 일이 있다는 핑계를 대기도 했다. 네가 서운해하는게 이까지 느껴졌지만 이러지 않으면 너한테 들킬 것 같았다. 그럼 너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내게 말할 것 같았다. 이성적으로 항상 조언을 해주던 그 때처럼.
우린 친구잖아. 하고.
" 요즘 무슨 일 있어? "
학식을 먹다말고 고개를 들어보니 밥을 거의 먹지 않은 민현이가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고개를 내젓고 다시 밥을 먹자 민현이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 ...옹성우. 너 무슨 일 있잖아. "
김여주랑 황민현은 닮았다. 이렇게 눈치가 빠른 것까지도. 얼마 전, 여주를 소개해달라던 민현이의 모습이 생각나 답을 하지 않았다. 괜한 심통이었다. 고등학생 옹성우가 초등학생처럼 심통을 부렸던 것처럼 지금도 부리는 그런 심통.
" ...김여주 때문이지? "
잠시 아무 말이 없이 밥을 먹는 듯 하더니 민현이가 아무렇지 않게 툭 던진 말이었다. 그 말에 나도 모르게 흠칫하자 민현이가 맞네. 하고 작게 중얼거렸다. 그 후로 민현이는 아무 말도 없었다. 이제는 내가 숟가락질을 거의 하지 않고 있었다. 민현이는 늘 그렇듯 무표정한 표정으로 밥만 먹을 뿐이었다. 황민현이 뭘 알고 저런 말을 하는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 ...뭐야. 황민현. "
내가 아무렇지 않게 묻자 민현이는 내게 눈길도 주지 않고 밥만 먹을 뿐이었다. 조금 전 나처럼 심통이 난 사람마냥. 황민현한테는 김여주에 대한 내 감정을 말한 적이 없다. 그런데 왜 저런 말이 나온거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 그냥 찔러본건데? "
황민현이 밥을 다 먹고서 씩 웃으며 내게 말했다. 뭐? 야, 황민현. 내가 다급히 학식판을 들고 일어선 민현이의 뒤를 쫓아가자 민현이가 여유로운 표정을 지으며 나를 흘긋 쳐다보았다.
" 그냥 찔러 본거 아닌거 같은데? "
" 그냥 찔러본거래도? "
" ...너 내가 지금 김여주 소개 안 시켜줬다고 이러는거야? 그건 걔가 받을 생각이 없었다고 내가 분명히... "
" 걔가 왜 소개를 안 받는데? "
" ...뭐? "
" 이 때까지 왜 소개를 다 안 받았는데? "
민현이가 태연하게 학식판을 정리하며 내게 물었다. 얼떨떨한 표정으로 학식판을 여전히 든 채로 민현이 뒤를 졸졸 따라다니자 뒤에서 아줌마의 외침이 들렸다. 학생! 판은 내고 가야지!
" 아, 죄송합니다. "
다급하게 판을 반납하고 나서 물을 마시는 민현이 옆으로 다가가자 민현이가 내게 물잔을 건넸다.
" 걔 옆에 누가 있는지 한번만 생각해봐, 성우야. "
" ... "
" 너 나한테 소개해주기 싫어서 안달 난 사람 표정 아직도 못 잊겠어 나는. "
민현이가 그렇게 말하며 먼저 간다. 하고는 식당을 빠져나갔다. 내 손에 쥐어진 물잔을 보며 방금 전 민현이가 한 말을 곰곰이 생각해봤다. 그냥 쉽게 말해줄 것이지 뭘 저렇게 배배 꼬아서 말해줘? 잠시만, 그럼 황민현은 알고 있었던거야? 내가 소개해주고 싶지 않았단걸...? 역시 황민현은 눈치가 빠르다. 누구처럼. 딱 김여주, 걔처럼.
짝사랑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IF
너에 대한 내 마음을 깨달은 후에, 나는 평소처럼 장난스럽게 연락을 할 수가 없었다. 너는 생각보다 큰 존재였다. 쉽게 내 마음을 표현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였고, 그것이 날 두렵게 만들었다. 그러다가도 자꾸만 너는 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을 할까, 그런 바보같은 궁금증에 혼자 기대감을 품기도 하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너에게 연락을 잘 하지 못했다. 시시콜콜한 얘기로도 카톡을 하던 우린데, 나의 말이 줄자 자연스레 연락 횟수도 줄어드는 것 같았다. 너는 너대로 바빴으니 이해했지만 이대로 멀어지는건 아닐까 덜컥 겁이 나기도 했다.
" 커피 나왔습니다. "
그래서 큰 맘 먹고 찾아간 카페였다. 네가 알바하는 그 카페. 비가 꽤 왔지만 그런거 따위 신경 쓰지 않고 집을 나섰다. 연락도 없이 불쑥 나타나자 니가 얼떨떨해하는게 느껴졌다. 여기까지 웬일이야? 너의 말에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해보이며 씩 웃고 말했다. 그냥. 커피 마시고 싶어서. 내 말에 넌 못 말린다는 듯 웃곤 자연스럽게 아이스 카페라떼로 주면 되지? 하고 묻는다. 고개를 끄덕이고 대충 네가 잘 보이는 자리에 앉아 나에게 줄 음료를 만드는 너를 보면서 또 주책맞게 가슴이 뛰는게 느껴졌다. 미쳤다고 생각했다. 자각을 해버리니 더 크게 와닿았다. 아니라고 생각했던, 의심만 했던 작은 불씨가 커다란 불길이 되어 내 주위를 휩싸는 것 같았다.
" 샷은 하나만 넣었어. "
" 오, 역시. "
나에게로 다가오는 너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네가 건넨 커피잔만 뚫어져라 쳐다봤다. 너는 묘하게 달라진 내 태도를 아는지 모르는지 아무 말도 없이 내 앞에 서있기만 했다. 한참을 아무 말도 없는 네가 이상하다싶어 고개를 올리자 네가 무슨 말을 하려는 듯 우물쭈물 하는 모습이 보였다.
" ...할 말 있냐? "
나도 모르게 튀어나간 말이었다. 그 말에 네가 당황한 듯 눈알을 굴리더니 아니.. 별건 아닌데... 하고 멋쩍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 ...나 소개팅 해. "
" 뭐? "
속에서 나온 말이었다. 생각을 하기도 전에 놀라서 먼저 나간 말이었다. 애꿎은 빨대만 휘휘 젓다가 손을 멈추자 네가 그제서야 놀란 내 반응을 알아보고선 다시 멋쩍게 웃었다.
" 그냥... 너 다섯번이나 소개팅 해준다고 그랬는데 내가 다 안 받는다고 했잖아... 그래서 말하는거야, 그래서. "
" ...갑자기 왜? "
" ...어? "
" 아니... 내가 해준다고 할 때는 다 싫다며. 근데 갑자기 왜? "
멘붕이었다. 갑자기 소개팅을 한다는 너의 말에 내 모든 사고회로가 정지된 것 같았다. 민현이가 소개해달라고 했을 때도 기분이 묘하게 안 좋았는데, 네가 직접 네 입으로 소개팅을 한다고 하니 그냥 짜증이 확 올라왔다.
" 그 내 동기가... 하도 부탁을 해서. 나 소개해달라고 사정사정 했대. "
" ... "
" 너한테 안 말해주면 네가 서운해할까봐. 자기가 해준건 다 깠는데 딴 사람이 해준건 받는다고... "
네가 내 눈치를 보다가 손님이 온 소리에 카운터로 갔다. 그제서야 내 시선이 너로 향했다. 내가 좋아하는 너는, 김여주는 예쁜 사람이었다. 나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눈에도 충분히 예쁜 사람. 나는 그걸 잊고 있었다. 너와의 관계가 끊어질까봐 무서워하다가 네 옆에 다른 사람이 생기는 걸... 나는 볼 자신이 없다. 그게 더 힘들 것 같았다. 생각해보니 너는 나와 안 이후로 남자친구를 한 번도 사귄 적이 없었다. 그래서 더 상상이 가지 않았고, 그래서 민현이가 소개해달라는 말을 했을 때 울컥 화가 치밀어 올랐던 것 같다.
참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너를 잃을까봐 두려워하면서도 네 옆에 다른 사람이 있는건 죽어도 보기 싫은 이 마음이 참 이기적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나는 네가 만들어 준 카페라떼를 한 모금도 마시지 않고 카페를 나와버렸다. 복잡했다. 이제 내게 남은 선택은 하나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마음을 표현하는 일.
내가 너를 좋아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
" 하아... "
만약 이 말을 듣는다면 너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놀란 눈을 하고서 아무 말도 않다가 어색하게 집으로 돌아가고, 우리는 그 후로 연락을 하지 않을까? 버스를 기다리며 네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생각하다 문득 내 앞에 선 버스를 보고 너와의 첫만남이 떠올랐다. 그 때는 내가 이렇게 될 줄 몰랐지. 그 때는 우리가 이런 사이가 될 줄 꿈에도 생각 못 했지.
[ 왜 인사도 안 하고 가냐 ]
[ 사람 섭섭하게 ]
[ 커피는 또 왜 안 마시고 가는데? ]
투정이 담긴 네 카톡을 보고 나는 다시 한숨을 뱉었다. 빗소리에 섞여 내 한숨소리가 묻혔다. 세차게 내리는 비가 휴대폰으로 튀어 네가 보낸 카톡의 글자를 번지게 만들었다. 손으로 액정을 한 번 닦아내고나서도 나는 네가 보낸 카톡에 답을 하지 못했다. 이 와중에도 카톡 하나에 반응하는 내가 너무나 이기적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나는 타야 하는 버스도 타지 못한 채 그 버스 정류장에서 계속해서 생각에 잠겼다. 너에게 여전히 답을 하지 못한 채로.
짝사랑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IF
[ 수요일에 하기로 했어 ㅋㅋㅋ ]
[ 근데 좀 떨린다... ]
[ 이럴 줄 알았으면 니가 받아보라고 한 소개팅 나가나 보는건데 ㅋㅋㅋㅋ ]
[ 연습삼아서 ㅋㅎㅎㅋㅋㅋㅋㅋ ]
내 애타는 속은 아는지 모르는지. 소개팅은 언제 하냐고 간신히 돌려 물었더니 온 대답이었다. 그리고 나는... 개도 안 걸린다는 여름감기에 걸리고야 말았다. 엊그제 너무 오래 밖에 있어서 그런건가.
[ 근데 너 ]
[ 몸은 괜찮아? ]
[ 아줌마가 그러시던데 ]
[ 너 감기 걸렸다고 ]
[ 것도 엄청 심하게 ]
우리 엄만 언제 만났냐 ㅋㅋㅋ
별로 안 심한데
ㄱㅊ 또 강철옹 아니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카톡을 보내고 눈을 질끈 감았다. 차라리 아픈게 나은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자꾸만 드는 김여주에 대한 생각이 안 날 수도 있으니까. 그냥 아파서 골골대다가 잠을 푹 잘 수나 있으니까. 그런데 그러면 뭐하냐고. 이렇게 연락을 하면 또 생각이 나는데.
[ 아줌마가 김치 주셨어 ㅋㅋㅋㅋ ]
[ 왜 너 안 보냈냐고 물으니까 아줌마가 너 ㅇㅏ프다고 그러시던데?? ]
[ 강철옹은 무슨 ㅋㅋㅋㅋㅋㅋ ]
네 카톡에 또 입꼬리가 올라간 나를 보고 나는 절망할 수 밖에 없었다. 소개팅은 당장 내일 모레인 너와 그런 너를 좋아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파서 누워 있는 나. 감기가 걸릴 정도로 오랜 시간 동안 비가 오는 버스 정류장에서 혼자 고민하고 또 고민하다가 내린 결정은 결국 그 전에 든 생각과 같았다.
너에게 내 진심을 말하는 일.
너에게 내 마음을 고백하는 것.
" 그럼 소개팅 나가지말고 내 걱정이나 해주든가... "
너에게 차마 보내지 못한 카톡을 입으로 중얼거리고 홀드 버튼을 눌러버렸다. 그렇게 하자고 마음을 먹었으면서도 나는 결국 솔직하게 뱉어내질 못한다. 무서웠다. 우리의 이 관계부터 시작해서 그 말을 들었을 때 네가 보일 반응, 표정, 그 모든게. 네가 나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어쩌면 쉽게 깨져버릴지도 모를 연인관계를 바라면서 더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이런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되는 거였다. 그 영화관에서 네가 예뻐보인다는 생각이 내 착각이라고 단정지었어야 했다.
보고싶다
카톡 창에 보고싶다 라는 네글자를 썼다가 지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순간마저도 너를 원하는 내가, 너를 보고싶은 내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내가 병신같았고 이기적이라 생각했다. 너는 내게 소중한 친구이자, 나도 모르게 시작하고 있었던 짝사랑의 상대였다.
장난기 많고 놀기만 좋아했던 나를 완전히 마비시켜버린, 너는 언젠가부터 나를 뒤흔드는 강력한 존재가 되어있었다.
열이 펄펄 끓는 지금의 나의 모든 신경마저도 너에게 곤두설 정도로 강력한 그런 존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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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안녕하세요!!!! 빨리 왔죠?!?!?!?!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14편 그러니까 마지막편 초록글 너무너무 감사해요 ㅠㅠㅠㅠㅠ 1편부터 마지막화까지 정말 과분할 정도로 많은 사랑을 받은 것 같아요 ㅠㅅㅠ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ㅠㅠㅠㅠ! 오늘은 예고한대로!! 짝용필의 외전이죠 만약 성우와 여주가 잘 됐다라면...? 이라는 이야기의 첫화입니당 ㅎㅎㅎ 제 생각으로는 2-3편 정도 안에서 끝날 것 같아요. 그러면 정말로 짝용필은 여러분들과 이별을... 하게 되네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그렇다고 해서 다음 편이 늦게 오거나 하는 불상사는 만들지 않을테니까 너무 걱정들 마세요 ㅋㅋㅋ (이미 늦은 전적이 있는 작가라 할 말은 없지만요,,, 믿어주세요...ㅎ) 짝용필 본편에서는 성우가 여주에게 민현이를 소개해주는데... 여기서는 완전히 바꼈죠? ㅋㅋㅋㅋㅋㅋ 성우가 조금만 더 빨리 마음을 알아차렸고, 조금만 더 빨리 표현했더라면 달라졌을거라는 생각에 그 부분부터 내용을 바꾸어 보았답니다..! 그 외에는 다 같은 흐름으로 이어지고 크게 달라지는 부분은 없을 거에요 ㅎㅅㅎ 여주가 민현이를 모른다는 것 외에는...! 이 부분을 시작점으로 잡은 이유에는 민현이도 한몫했어요... 민현이랑 여주랑 그렇게 잘 돼가고 있는 상황에서 성우가 훅 들어오면 민현이가 너무... 짠내가 폴폴..ㅠㅠㅠㅠㅠㅠㅠㅠ 또 여주가 아닌 성우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진행될거에요~ 아마 뒷 부분에는,, 우리 여주의 마음이 나올 수도 있겠지만 이미 독자님들은 여주 맘 다 아는 것...ㅠㅠ 둘이 지금 쌍방인데 둘만 몰라 ㅠㅠ 어남옹분들이 정말 많이 슬퍼하셨는데... 이걸로나마 그런 기분을 달래셨으면 좋겠습니다! ㅎㅎㅎ 항상 재밌게 읽어주시는 독자님들, 예쁜 댓글 달아주시는 독자님들, 추천 눌러주시는 독자님들 모두모두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진짜 여러분 덕에 힘내서 더 열심히 써요... 기대에 부응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ㅎㅎㅎㅎㅎ! 그리고 암호닉 분들!!!!! 정말 죄송하고,, 쏴랑해요 빵야빵야 암호닉 호두 / 옹옹 / 요뎡 / 옵티머스 / 민트초코 / 콜국 / 푸름 / 빈럽 / 쩨아리 / 헬로키티카 / 꾸쮸뿌쮸 / 여름 / 루쇼 / 다녜리 / 뀨뀨 / 류제홍 / 포뇨 / 옹히 / 애플파이 / 여름동화 / 1111 / 밍밍 ♥ / 뚜기 / 두부 / 흰둥이 / 배배 / 갸똥이 / 윤윤이 / 충성황제 / 쥬쥬 / 옹기종기 / 즈쿠 / 0622 / 햄아 / 1232 / 김짼 / 빵 / 핑핑핑핑 / 자몽솜사탕 / 1217 / 강낭콩 / 진짜대박리얼옹 / 옹옹옹 / 오늘도행복해 / 지오 / 쟈몽 / 황갈량 / 짝지 / 봄꽃 / @불가사리 / 별두개 / 깡다 / 옹웅 / 별빛하늘 / 성우미녀 / 포뇨부기 / 봄파카 / 옹왕 / 민꾸꾸 / 후렌치후라이 / 민꽃 / 000 / 새벽달빛 / 행자 / 0215 / 녤꽃 / 하나둘셋 / 보호 / 러버 / 설빙 / 마이쮸 / 포로리 / 나침반 / 황제 / 페이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