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에 입학했다. 세훈은 형하고 붙어있을 시간이 줄었다며 아쉬워 했다. 하지만 세훈은 내 하교 시간에 맞춰서 우리 학교 교문 앞에서 항상 날 기다렸다. 다른 아이들이 가끔 수근대며 우릴 쳐다 보기도 했지만, 난 그저 그런 세훈이 너무 좋았다. 나에게 친절하고 장난끼 많은 밝은 세훈의 모습을 보고만 있어도 나까지 덩달아 행복하게 만드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엄마가 예전에 살짝 사채로 대출 받았던 돈을 갚아야 할 날이 다가왔다. 나는 조금이라도 엄마를 도와야 겠다는 생각에 여기 저기 아르바이트를 구하러 다녀 봤지만, 모두 하나같이 나 처럼 어린 아이는 쓰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었다. 방법이 없었다. 친가 쪽 사람들과는 이미 연을 끊은지 오래였고, 그 큰 돈을 짧은 시간 내에 구하는 것은 무리였다. 기한을 조금 더 미뤄달라고 사정하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었다. 그런데 그런 나에게 그 날 반장의 지갑 속 돈은 꽤나 큰 유혹이 됐다.
"엄마가 학원비 내라고 돈 주셨어."
"야, 그냥 이거 너가 가져! 학원비는 냈다고 뻥치고!"
"넌 그게 말이라도 된다고 생각해?"
킬킬대며 말장난을 주고 받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내 귓가로 들려왔다. 처음엔 아무렇지도 않게 흘려들었지만 1교시, 2교시…. 점점 시간이 흐를수록 그 돈을 가지고 오면 조금이나마 엄마에게 보탬이 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평소 세훈과 문구점이나 슈퍼 등을 돌아다니며 조금씩 물건을 훔쳐본 경험이 있었기에 별다른 죄책감을 느끼지 못했다. 하느님도 내 사정을 이해해 주실 것이라, 그렇게만 생각했다.
아이들이 사라진 돈에 대해 입을 모으는 순간,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려 애썼다. 나만 입 꾹 닫고 있으면 아무도 모를 일이야…. 반장네 집은 잘 사니까, 이 정도 돈이 없어진 것쯤이야 별 일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빨리 흘러 학교가 얼른 마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오늘은 세훈이 피아노 학원을 가는 날이었기 때문에 학교까지 데리러 오지 못한다고 문자를 남겼다. 집에 라면이 다 떨어졌으니, 라면이라도 한 박스 사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창 밖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들을 물끄러미 쳐다 봤다.
"그거…."
범인에 대해 이야기하느라 시끌벅적한 아이들 소리 틈으로 작지만 무게감 있는 목소리가 비집고 흘러나왔다. 창 밖을 쳐다보던 시선을 거둬 그 목소리의 주인을 쳐다보았다. 우리 반의 실세, 김종인이었다. 말은 한 번도 나눠본 적이 없었지만, 아이들의 말을 들어보면 착하고 의젓한 아이인 듯 했다.
"일 크게 만들지 말고, 그 돈 내가 줄게."
"……뭐?"
"그니까 없던 일로 치고 너도 그 돈으로 학원비 내면 되잖아. 나 괜히 가방 검사 같은거 하고 시간 버리기 싫어. 피곤해."
아, 저 아이에겐 이 돈이 그렇게 쉽구나…. 씁쓸함이 마음 속에 번졌지만 이렇게 사건이 일단락되는 것은 참 다행이라고 생각되었다. 덕분에 아이들은 지갑을 훔친 범인에 대해서는 싹 잊은 듯 했고, 그저 영웅 김종인에 대한 얘기만을 줄줄이 늘어놓을 뿐이었다. 그렇게 나는 모든 사건이 끝이 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이것은 또 다른 사건의 시작에 불과했다. 나는 이 날 이후로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 더 이상의 도경수는 진짜 도경수가 아니었다. 김종인의, 김종인만의 도경수가 되어 버렸다.
종인에 집에서 나온 나는 손에 쥔 흰 봉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내가 방금 무슨 짓을 했는지조차 실감이 나지 않았다. 살짝 아려오는 뒤에 인상을 조금 찌푸려 졌다. 눈물이 흐를 것만 같았다. 나 이렇게 살아도 되는걸까…? 집으로 오는 내내 손에 들린 봉투가 신경이 쓰였다. 내가 기집애도 아니고, 그걸 한다고 닳는 것도 아니고…. 어쩌면 해 볼 만한 거래라고 생각됐다. 하지만 아직까지 확신은 서지 못했다. 만약 김종인이 더 무리한 것들을 요구해 온다면…? 우리 반에서 꽤 높은 신뢰를 받고 있는 종인이었기에 나의 한 마디에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곤 생각 되었지만 그 누구도 나의 말을 믿어줄 사람은 없을 것이 뻔했다. 게다가 내 입으로 직접 이런 일들을 말할 수 있을만큼 내가 대담한 녀석도 아니었을 뿐더러 이미 돈까지 받았으니, 나는 더 이상 피해자가 아니었다.
어느 새 집 앞에 다다랐다. 집 앞 현관에 살짝 쭈그려 앉은 사람의 형체가 보였다. 단번에 세훈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시간을 확인해 보니 벌써 7시였다. 이 앞에서 2시간이나 기다렸을 세훈에게 미안했다. 고개를 푹 숙인채 졸고 있는 세훈을 툭툭 건드렸다.
"세훈아…?"
"어, 형. 이제 왔어요…?"
"응. 형 알바 하고 왔어…."
어느 누구도 받아주지 않는 나를 종인이 받아준 것이라고 생각했다.
"배고프지? 형이 떡볶이 사 줄게. 가자!"
해맑게 웃는 세훈을 보고 나는 내 결정에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의 웃는 모습을 볼 수만 있다면, 내가 어떻게 되든 그것은 아무 상관이 없노라고….
경수가 그렇게 저를 지나쳐 갈 때 차마 붙잡을 수가 없었다. 당장이라도 울 것만 같은 표정에 달려가 달래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그래선 안됐다. 안 그래도 요즘 많이 힘들텐데 괜히 나까지 경수를 더 괴롭히는 것만 같았다. 먼저 달려가 미안했다고, 말이 잘못 나온 것이었다고 말하면 됐지만 그러지 못했다. 내 자신에게 화가 났다. 내가 도경수 하나 지켜주지 못할 정도로 나약한 놈이었던가…. 손에 쥐고 있던 얼음 팩을 바닥으로 내 던져 버렸다.
사실 알고 있었다. 종인이 일부로 나를 다치게 하는 것을. 아무리 눈치가 없는 녀석이라도 그 정도까지는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행위는 경수가 없는 자리에선 더욱 심해졌다. 급식실에서 내게 식판을 쏟는다던가, 빌려간 교과서를 잃어버렸다며 돌려주지 않은 적도 한 두번이 아니었다. 처음엔 그런 실수를 원체 하지 않던 녀석이라 살짝 의심이 가긴 했으나, 내가 괜히 그 날 이후로 종인에게 편견을 갖게된 것 같아 금새 그 생각은 접었다. 그런데 체육 시간, 공을 몰고 가던 내가 종인의 다리에 걸려 넘어지는 순간 나는 종인의 작은 목소리를 들었다.
'도경수…!'
종인의 입에서 도경수라는 이름이 나왔다. 그 순간 김성재가 종인에게 있던 공을 채가더니 빠른 속도로 우리 쪽 골문을 향해갔다. 종인이 '어, 미안하다….' 하며 내게 손을 건넸다. 다리가 욱씬거렸다. 살짝 삐끗한 모양이었다. 종인의 손을 잡고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종인의 등 뒤로 당황한 듯한 표정의 도경수의 얼굴이 보였다. ……방금, 김성재…? 급하게 몸을 일어켜 김성재를 쫓아 무작정 뛰기 시작했다. 방금 접지른 발목 때문에 속도가 조금 더디긴 했지만 전 속력으로 뛰었다. 다행히도 김성재가 중간에 우리 팀한 아이에게 잡힐 뻔해 김성재와의 거리는 점점 가까워 졌고, 김성재가 도경수에게 가기 전 뒤에서 김성재의 발 부분으로 슬라이딩했다. 김성재와 내가 동시에 운동장 바닥으로 넘어졌다. 팔도 욱씬거렸고, 방금 슬라이딩을 한 오른쪽 발목이 아까의 통증과 덧 대어져 아릿해졌다. 윽, 발을 살짝 감쌌다. 도경수의 당황한 듯한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도대체, 너희 무슨 사이인거야…?
집으로 돌아와서도 한참이나 고민했다. 섹스를 하지만, 사랑하는 사이는 아니다…? 그 날 보충학습실에서 본 장면이 다시 머릿속에 떠올랐다. 지워버리려 눈을 꾹 감아도 잊혀지지 않았다. 이렇게 혼자 고민한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정정당당하게 종인에게 물어봐야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절뚝이는 다리를 끌고 급하게 옷 가지를 걸치고 집을 나왔다. 실로 오랫만에 종인의 집을 향하는 것이었다.
언제 우리의 사이가 이렇게 된 걸까. 종인의 으리으리한 집 앞에 서서 초인종을 눌러야 할지 고민하고 서 있었다. 옛날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온 종인의 집이었지만, 이제는 너무나 낯설어졌다. 숨을 내쉬고 초인종을 누르려 손을 올리려는 순간 누군가 내 어깨를 두 어번 툭툭 쳤다. 깜짝 놀라 황급히 뒤를 돌아 보자 종인의 어머니가 서계셨다.
"어, 어어…. 아, 안녕하세요."
고개를 숙여 꾸벅 인사를 하자 종인의 어머니가 고개를 끄덕이셨다. 예나 지금이나 고상한 차림새와 도도한 표정은 여전했다. 짙은 표정에 코를 쏘는 향수 냄새와 어깨에 걸쳐진 고급스러운 스카프가 괜히 주눅들게 만들었다.
"너, 백현이 아니니? 오랫만이구나…. 종인이 보러 왔니?"
그 때, 종인의 어머니 뒤로 검은 외제차에서 종인의 아버지가 내렸고, 뒤이어 하얀 가운을 입은 사람이 뒷자석에서 내렸다. 내가 대답을 않고 그들을 바라보고 있자 종인의 어머니가 호호, 하고 웃으며 말씀을 이어가셨다.
"이거 어쩌지…. 오늘 종인이는 못 만날 것 같구나. 일이 조금…, 있어서 말이지."
"아, 네…."
"다음 번에 찾아와줄래? 미안하게 됐구나…."
"아, 아니예요. 안녕히 계세요."
급하게 인사를 마치고 종인의 집을 뒤로 하고 빠른 걸음으로 우리 집으로 향했다. 제가 잘못 본게 아니라면 하얀 가운을 입고 있던 사람은 의사인 듯 했는데…. 그리고 종인의 부모님은 해외에 있는 시간이 많고 워낙 바쁘셔 집에 있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는데 그런 두 분이 같이 집에 내려오셨다…. 찝찝했지만 별 일 아닐 것이라고 나를 타일렀다. 그럼. 김종인이 얼마나 건강한 녀석인데….
로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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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로션입니다!ㅎㅎ 일단 생일 축하해주신 모든 분들 감사드려요 @ㅠ^ㅠ@ 덕분에 생일은 잘! 보냈답니다! 행복해요!!
이제 정말 결말이 코 앞이네요ㅠㅠ..벌써부터 헤어질 생각에 슬퍼오네요.. 전 아직도 백일몽이 너무 좋은데ㅠ^ㅠ..
그, 근데 위로 올려 다시 읽어보니까 오늘 분량..최고네요.. 왜 이렇게 짧죠.. 죄송해요....ㅠ ㅠ...
결말이 나면 그 동안 썼던 것들 다듬어서 텍스트 파일로 만들고, 외전까지 해서 메일링 할 예정이예요! 암호닉 정리되신 분들 너무 죄송해요.. 꼭 조만간 다시 신청 받을게요! 약속!
언제나 좋아해주시는 분들, 너무나 힘이 되고 감사합니다! 그리고 별 것 아닌 블로그까지 오셔서 댓글 남겨주시는 분들도!ㅠㅠ..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하트하트!!
2차 암호닉 우유 낭랑찬혤 토너 변기덕 카디공주 엘모 이니스프리 지나가던 나그네 봉지 개구리 콩콩이 몽쉘 찌롱이 르에떼 꽃게 남빠 쿠쿠 황쯔타오 이경 도경아 김기범 핫삥꾸 김준면 김종대 수연누나 도도하디오 새싹 나니 커피 됴됴해 정한해 스마트폰 딸기쨈 도라지 치즈 차니 건강쌀 오일 내남성김성규 린다 됴들됴들 뿌뀨뿌뀨 쿠션 변백현발바닥 bs듀엣 몽텐 여어- 수염 앙금 워더 김종인워더 빵떡 배추 녹차 라면 용자 됴종이 도경수 빙구 혼전순결 스킨 바나나 장예흥 방울 아이폰 용가리 사물카드 토끼 꽥꽥 라벤더 이야됴 스킨 딸기밀크 귤 동글이 불로장생 김첨지 수분크림 호현 카디백만세 킬러 푸존 상츄 가란 +) 예전에 암호닉 있었는데 사라진거면 정리 당하신 거에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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