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우리는 아직 끝나지 않았지 05
남순은 양 손을 바지 호주머니에 찔러 넣고 학교 복도를 걸어갔다. 졸업한지 꽤 된 학교였고 모델 활동으로 바빠서 나중에는 다시 찾아오지도 못한 학교였는데 내일이라도 바로 교복을 입고 등교를 해야 할 듯 익숙하기만 했다. 순간 그를 가득 채우고 있던 머리 아픈 고민들이 잊히는 듯 했다. 남순은 기분 좋게 교무실 문을 열었다.
교무실 안에는 대부분의 선생님들이 수업에 들어가 세찬 혼자 남아있었다. 남순이 들어서자 서류를 뒤적거리던 세찬이 그를 발견하고는 의외라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어이고 오래간만이다 고회장?”
“어, 예. 간만이네요. 정쌤은요?”
“수업 들어가셨는데?”
수업 안 들어가셨다며 박흥수 이 삐리리야. 남순은 속으로 흥수를 한번 씹고는 형식적 미소를 날리며 세찬을 바라보았다. 그 표정에 세찬이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너 연예인 되고 그 묘한 표정만 진화됐다? 그나저나 이렇게 막 공공장소에 나와도 되는 건가 쓰나미상?”
아니 이 사람이 진짜. 남순이 세찬 옆에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안 그래도 그 놈의 쓰나미 때문에 죽어나는데 진짜 이러실래요?”
“그러게 잘 좀 살지”
“그러니까, 그걸 지금 와서 후회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잖아요”
세찬은 고개를 숙이는 남순을 잠시 동안 바라보다가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온 김에 푹 쉬었다 가라. 정선생님도 만나고 엄선생님도 만나고. 물론 종치고 애들 몰려들면 이게 쉬는 건지 전쟁턴지 구별은 안갈 테지만”
남순은 그 위로인지 놀림인지 모를 세찬에 말을 들으며 한숨을 쉬고야 말았다.
“원래 박흥수 핸드폰 주러 온 거거든요? 아 근데 이놈이 정쌤 수업 안 들어가셨다고 해서 잠깐 보고 가려고 올라온 건데 이럴 줄은 몰랐죠.”
“야 고남순. 너 2년 동안 담임한건 난데 왜 정선생님만 찾나?”
남순이 그 말에 허허 하고 웃으며 진짜 몰라서 묻는 건 아니죠? 하고 장난스럽게 되묻는다. 그에 세찬이 따라 웃으며 말했다.
“진짜 변한 게 하나도 없네, 고회장. 변한 게 없어서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모르겠다만”
“선생님도 하나도 안변했는데요. 물론 그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저도 모르겠다만”
그렇게 두 사람이 마주보고 뭔지 모를 웃음만 하하하, 하고 웃고 있을 때 종이 울렸다. 순간 굳어진 남순에게 세찬이 놀리듯 웃으며 말했다.
“너 이제 애들 몰래 학교 빠져나가긴 글렀다”
“재밌으세요?”
남순이 툴툴거리며 모자를 더 눌러썼다. 그리고 교무실이 열리며 선생님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기겁하며 고개를 확 돌리는 남순을 보며 세찬은 킥킥거리며 웃었다. 앞서 들어온 선생님들이 범죄자 마냥 모자를 쓰고 안절부절 못하는 남순을 이상하게 보며 지나가는데 어슬렁거리며 교무실에 들어선 흥수가 남순을 보고는 기겁하며 다가갔다.
“야 너 왜 아직도 여기 있어?”
“여기 앞에 계신 강세찬 선생님 덕분에”
“내가 뭐?”
“선생님이 계속 말 시켰잖아요!”
“이거 웃기는 놈일세!”
흥수가 투덕거리기 시작하는 세찬과 남순을 말리며 말했다.
“지금 둘이 이럴 때가 아닐 텐데요? 고남순 너 이러다가 애들한테 걸리면 학교 못나간다?”
“이러다가가 아니라 이미 못나가겠다. 저기 봐라 애들 몰려든 거”
그 말에 남순이 사색이 되어 뒤를 돌았다. 그리고는 교무실 창문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아이들을 발견하고는 고개를 다시 돌려버렸다.
“어떡하지?”
남순이 애처롭게 흥수를 바라보았다. 흥수는 쯧쯧 혀를 찼다.
“그러게 매니저 말 좀 듣지”
“난 진짜 수업 끝나기 전에 나가려고 했다고!”
“알았다 알았어. 근데 나한테 해결책은 묻지 마라. 도망치는 건 네 특기지 내 전문이 아니야”
순간 남순은 흥수의 멱살을 잡고 흔들고 싶은 충동을 느꼈지만 가까스로 참아냈다. 그때 인재가 시끄러운 교무실 앞을 의아해 하며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남순의 뒤통수를 발견하고는 외쳤다.
“남순이니?”
그리고 그 외침에 아이들이 더 요동쳤음은 당연했다. 인재는 당황한 듯 두리번거렸다. 남순이 그런 인재를 보고는 벌떡 일어나 인사했다.
“쌤 오랜만이에요”
“응 오랜만이긴 한데 너 괜찮니?”
그녀답게 다짜고짜 안부를 물어오는 인재에게 남순은 웃어보였다.
“에이 이정도 일에 안 괜찮으면 어떡해요. 그나저나 저 쌤 보러 잠깐 올라왔던 건데 일이 커졌네요.”
“그러게. 애들이 어떻게 알고 왔지? 일단 나가야 할 텐데”
남순은 잠시 고민하다가 별안간 모자를 벗고 학생 무리를 바라보았다. 그에 학생들이 소리를 지르며 온갖 말을 외쳐대기 시작했다. 그러자 남순이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일순간 사방이 조용해졌다. 그 관경에 흥수가 말했다.
“저거 완전 꾼 다됐네.”
“너 내 친구 맞냐 박흥수”
“머리 헝클어졌다 고남순”
남순이 급히 머리를 정돈했고 흥수가 웃음을 터트렸다. 남순은 흥수 등짝을 한번 때리고는 말을 이었다.
“애들아 너희가 알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승리고 출신이거든. 잠깐 선생님 보러 왔는데 이렇게 교무실에 몰려들면 선생님께 내가 죄송하잖아”
“저기 박쌤이 오빠보다 쌤이 더 잘생겼데요!”
“오빠! 그거 진짜에요? 루머죠?”
“대답해줘요! 그냥 루머죠?”
남순은 어색하게 웃기만 했다. 흥수가 한숨을 쉬며 남순을 자신 뒤쪽으로 밀며 말했다.
“안 그래도 피곤한 애 힘들게 하지 말고 수업 들어가라. 조금 있으면 종치겠다.”
“아 쌤! 진짜 이러시기 에요?”
“뭐가 이러시기냐. 빨리 들어가라고 했다.”
“그래 빨리들 못 들어가나?”
평소와는 다른 흥수와 전설의 엄포스까지 동참하자 아이들이 슬슬 해산하기 시작했다. 남순은 미안한 표정으로 교무실을 향해 고개를 꾸벅 숙였다.
“죄송합니다. 본의 아니게 패를 끼쳤습니다.”
“자기 모교 찾아오는 게 무슨 잘못이에요. 괜찮아요. 뭐 눈 호강도 좀 했고요”
남순이 허허 하고 웃었다. 그리고 흥수에게 팔을 두르며 말했다.
“근데 흥수야. 너 애들한테 나보다 니가 더 잘생겼다고 말하고 다녔냐?”
“집에 좀 가라 남순아”
남순이 흥수의 어깨를 툭 치면서 다시 모자를 썼다. 그리고 다시 수업 시작종이 쳤다. 교무실이 다시 수업 들어갈 준비로 바빠졌다. 남순이 인재에게 물었다.
“선생님 수업 있으세요?”
“아니 다음교시는 비는데. 잠깐 얘기하다 갈래?”
“저야 뭐 선생님 만나러 온 건데요 뭐.”
인재가 웃으며 의자에 앉으며 남순에게 역시 의자 하나를 밀어주었다. 흥수는 수업을 하러 나가려다 남순을 툭툭 치며 말했다.
“그럼 좀 이따 가라. 다시 종치기 전에”
“집에서 봐”
“아 오늘 저녁은 김치찌개”
“뭐 끓여놓으라고?”
“삼겹살 넣어서”
그리고 흥수는 교무실을 빠져나갔다. 교무실에 남은 인재와 남순, 이 오랜만에 만난 사제지간은 서로 눈을 마주치고는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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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기다리신분 있나요? 없죵?ㅋㅋㅋㅋ
어쩄든 뭐 저는 내일 부터 이박삼일 설이라 못 올릴 가능성이 높아서 올려요
비랑님, 이경님, 몽쉘님, 바삭님, 꼬꼬마님, 오징어님, 이진기님, 남순고남순님, 흥순홀릭님, 31님, 사탕님, 수열분자님, 미미님, 콘칩님, 꺆님, 깡주님, 맷님
감사하구요
댓글달아주시는 분들, 추천해주시는분들, 읽어주시는 분들 제가 모두 격하게 사랑하는거 아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