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Nocking on heaven's door
"나 왔어."
갑자기 비 오는 바람에 다 젖었어. 요새 날씨가 왜 이 모양이야, 라고 성규가 투덜대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고 보니 창문을 두들기는 빗소리가 꽤나 경쾌했다. 오늘도 멍하니 허공을 향한 우현의 시선이 익숙하면서도 낯설다. 가볍게 비에 젖은 머리를 털어내던 성규는 물에 빠진 생쥐 꼴인 자신의 모습을 우현이 보지 못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성규와 우현은 그렇게 오랜만에 서로를 마주했다.
"아까 호 쌤 왔다갔어."
"왜?"
"수술. 다음 주에 잡혔다고."
"그런데 표정이 왜 그래?"
마땅히 기뻐해야 할 일이었지만 정작 당사자인 우현의 표정은 그리 밝지가 않았다. 옷걸이에 야상을 걸어놓은 성규는 의아한 표정으로 우현의 옆에 털썩 앉아 자신의 귓불을 매만졌다. 성규의 기척을 분명히 느꼈을 텐데, 우현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야아, 라고 불러도 우현은 아무 대답이 없었다. 우현의 입이 다시 열리길 기다리던 성규는 침대에서 일어나 간이침대에 걸터앉았다. 그리고 나선 메고 온 백팩을 이리저리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우현은 침대 헤드에 등을 기대고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듯, 무심하게 눈을 내리깔고 있었다. 부스럭거리며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낸 성규는 우현의 팔을 잡고 이리저리 흔들어 댔다.
"야. 남우현."
"응."
"아- 해봐."
우현이 입을 벌리기도 전에 제가 알아서 우현의 입을 벌린 성규는, 우현의 입 안으로 무언가를 쏙 집어넣었다. 우현은 미간을 찌푸리고 입 안에 들어온 정체모를 것을 오물거렸다. 달콤하면서도 쌉싸름한 맛이 입 안을 맴돌았다. 성규는 냉장고에서 주스를 꺼내 잔에 따라 우현의 손에 쥐어주고, 우현이 주스를 흘리지 않도록 컵을 받쳐주었다. 성규가 우현이 주스를 다 마시자 손수건으로 우현의 입가를 살짝살짝 닦아주며 말을 걸었다.
"내가 만든 거야."
"뭔데?"
"초콜렛."
"맛있다."
아까보다 한결 나아진 표정의 우현을 보며 성규는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형이 이런 사람이야. 그래, 대단하다, 대단해. 우현이 큭큭거리면서 웃자, 성규는 이게 끝이 아니라며 너스레를 떨어댔다. 이번엔 또 뭔데. 흥미가 생긴 우현이 목을 앞으로 쭉 빼낸 후, 턱을 치켜들고 두리번거렸다. 이쪽으로 좀 와 봐. 더 가까이. 성규가 우현의 가는 팔목을 잡고 자신의 쪽으로 끌어당겼고, 우현은 순순히 성규의 손에 이끌려 침대에 걸터앉았다. 우현은 마치 인형처럼, 성규의 말에 맞추어 이리저리 몸을 움직여댔다. 부지런히 환자복의 단추를 하나하나 끌러낸 성규는 맨 몸의 우현을 앞에 두고 한참을 부스럭거렸다. 추워. 우현이 인상을 찡그리며 중얼거렸다. 만세 해 봐, 만세. 성규는 그런 우현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우현에게 명령 아닌 명령을 내리기 시작했고, 무어라 중얼거리던 우현은 체념한 듯 두 손을 머리 위로 쭉 뻗었다. 성규가 서툰 움직임으로 낑낑거리며 옷을 입히는 것이 느껴졌다.
"와, 잘 어울린다."
"뭐야, 이게?"
"선물."
동우에게 입혔던 것과는 느낌이 사뭇 달랐지만 나름대로 잘 어울렸다. 우현은 어리벙벙한 표정으로 옷을 만져보았다. 이거 옷이 남색인데, 우현아. 가운데에는 너 닮은 개 그림이 있어. 너 지금 보니까 진짜 개 같다. 아, 욕은 아니고. 개 닮았다고, 개. 우현을 놀리는 건지, 설명을 해 주는 건지, 성규는 싱글벙글 웃으며 우현의 옷매무새를 정리해주었다. 갑자기 우현이 두 손으로 성규의 손을 붙잡자, 성규는 당황하며 손을 빼내려 안간힘을 썼다.
"형."
"어, 왜."
고마워.
얼떨결에 우현의 품 안에 안긴 성규는 그대로 굳어 어쩔 줄을 모르다가, 허공에서 방황하는 손을 들어 우현의 등을 끌어안았다. 쿵쿵거리는 심장소리가 온 몸에 전해지는 듯 했다. 옷 선물해 준 게 그렇게 고마운 일인가. 성규는 우현의 마른 등을 쓸어내리며 쓸 데 없는 생각을 해댔다. 한참을 어정쩡한 자세로 서로를 끌어안고 있는 와중에, 우현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렸다.
"가끔 생각해."
"무슨 생각."
"날 위해서, 누군가 형을 나한테 보내준 게 아닌가 하고."
"야, 넌 그런 오그라드는 말을…."
우현의 손에 더 힘이 들어왔고, 성규는 볼이 확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우현의 머리칼이 성규의 볼을 간지럽혔다. 남우현은 심장을 떨리게 하는 재주가 있어. 성규는 두 눈을 꼭 감았다.
*
We were both young, When I first saw you.
I closed my eyes And the flashback starts, I'm standing there.
*
'비 억시 오네.'
'….'
'안 드오고 뭐하노. 우산도 없이.'
성규보다 한 뼘 정도 키가 큰 소년이 까만 우산을 성규의 머리 위로 들어올렸다. 하지만 이미 내리는 비를 온 몸으로 맞은 뒤라 앞머리가 이마에 찰싹 붙어 있었다. 소년은 혀를 쯧쯧, 차며 그네에 앉아있는 성규의 앞에 쭈그리고 앉아 성규와 눈을 마주했다. 소년은 덜덜 떨고 있는 성규의 어깨에 들고 있던 담요를 걸쳐주었다. 꼬라지가 그게 뭔데. 지금 이모가 얼마나 걱정하는지 아나. 보청기 고장 났다고, 얼마나 걱정하는지 아나. 소년은 한 음절, 한 음절을 또박또박, 입을 크게 벌리면서 말했다. 하지만 성규는 여전히 물끄러미 어느 한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소년은 한숨을 푹 내쉬고 한 손으로 성규의 어깨를 잡아 흔들었다.
'기다려도 안 온다.'
성규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마, 쫌. 성규는 그네에서 내리고 소년의 옆에 쭈그리고 앉았다. 그리곤 손에 들고 있던 나무막대기로 흙바닥에 무어라 글을 쓰기 시작했다. 소년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성규의 손이 움직여 만들어내는 글씨에 집중했다. ㄴ, ㅏ, ㅁ….
'남우연?'
'으, 어.'
'사람 이름이가? 갸가 누고?'
성규가 고개를 끄덕끄덕 거렸다. 이내, 나무를 가리켰다가 하는 등 이것저것 손짓발짓을 해댔다. 입을 헤 벌리고 성규의 몸짓을 지켜보던 소년은 골똘히 생각에 잠기더니 무언가 생각난 듯, 자신의 이마를 탁, 쳤다.
'그, 감나무 할무이 집.'
'으, 응.'
성규가 다시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소년은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우야꼬. 갸, 어제 서울갔다 카더라. 만나기로 했나. 소년의 말에 성규는 적잖이 충격을 받은 표정이었다. 왜, 왜. 더듬더듬 거리며 나온 말은 빗소리에 묻혀 잘 들리지 않았다. 소년은 검지로 성규의 눈을 가리켰다.
'단디 들어라.'
'응, 응.'
'눈 병신됐다 카더라.'
그것이, 10년 전의 그 날.
*
"형."
"응."
"원래 이 시간에 없잖아."
"그냥, 오래 있어도 돼. 싫어? 갈까?"
"아니. 가지 마."
내 옆에 있어. 어디 가지 말고. 우현이 성규의 옷자락을 붙잡고 헤헤 웃었다. 바보 같기는. 성규가 우현의 입을 가지고 손가락으로 장난을 치며 킬킬 웃었다. 침대에 누운 우현의 두 눈이 감길랑 말랑 했다. 수술하기 전에 검사할 게 있다며, 하루 종일 의사에게 끌려 다닌 것이, 지쳤던 모양새였다. 잠들만 하면 성규에게 말을 걸곤 하는 모습이 꽤나 불쌍해보여, 성규는 간이침대에 걸터앉아 이불을 우현의 목 끝까지 올려주었다.
"그냥 자라. 자. 쳐 자."
"우리 형은 말도 참 예쁘게 하지."
"노래 불러줄게."
그러니까 그냥 자. 와, 진짜? 라며 우현이 탄성을 내지르기가 무섭게, 성규의 목소리가 조용히 울려 퍼졌다.
"knock, knock, knocking on heaven's door…."
"형은 천사인가 봐."
날 위해서, 누군가 내려준.
성규를 따라서 노래를 부르던 우현이 잠잠해지자, 성규는 노래를 멈추었다. 커튼 틈 사이로 새하얀 달빛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곤란한데."
너와 내가,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내가 너를 떠날 수 없을 테니까.
*
어머니도 없고. 오늘은 형과 단 둘이 얘길 나눌 수 있는 좋은 날이라고 생각했다. 어릴 적부터 삐뚤어진 형의 속내를 잘 알고는 있었다. 그런 형이 우현이 싫기는 매한가지였다. 그래도 붙임성 있게 형을 대하다보면 언젠가는 마음을 열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다. 결국 눈이 멀고 나서 든 생각은, 형과 화해를 해야겠다는 것이었다. 두 형제는 서로 얼굴을 마주할 기회가 없었다. 우현이 다가가기만 해도 발작을 하는 시늉을 내며 엄마의 손을 꽉 붙들고 있던 형이기에, 우현은 아예 마음을 접었었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형도, 아버지도, 모든 것을 이해해줄 것이라 생각했다.
우리는 대화가 부족했고 서로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난간을 붙잡자마자 온 집안에 울려 퍼진 가정부의 비명소리를 듣자마자 등골이 싸해졌다. 예감이 좋지 않았다. 우현은 허둥지둥 급한 마음에 계단을 두 칸씩 밟아 올라갔다. 잘못해서 구르기라도 하면 큰일이 날 것은 알고 있었으나, 몸의 반응이 더 빨랐다. 2층에 도착한 우현은 들이마시던 숨을 흡, 하고 멈췄다. 역한 피비린내가 희미하게 감돌고 있었다. 앰뷸런스. 불러요. 빨리. 우현이 가정부를 향해 소리쳤고, 그녀는 쿵쾅거리며 1층으로 뛰어 내려갔다. 냄새가 풍기는 것은 욕실 쪽이었다. 안전 바를 잡고 움직이던 우현은 욕실 문 앞에 앉아 조용히 형을 불렀다.
"형."
"…으…."
"우린 왜 이렇게 됐을까?"
도대체 무엇이 형을 그렇게 만들었을까? 간간히 들려오는 신음소리는 우현을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네 편지 말이야."
"…."
"내 방 책상, 첫 번째 서랍에 있어."
우현의 고개가 천천히 들어 올려졌다. 울지 마, 바보야. 다정한 형의 목소리가 들리자 우현의 눈에선 굵은 눈물방울이 한 두 방울씩 떨어져내렸다.
"미안해. 그 편지…. 네가 읽기 전에 내가 먼저 읽었는데."
"으으…."
"사람이 우연히 세 번 만나면 운명이라잖냐."
너랑, 걔도. 그렇지, 않을까, 문장이 토막 나며 헉헉대는 형의 숨소리가 들렸다. 형의 생명은 삽시간에 꺼져가고 있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이 미웠다. 우현은 안전 바를 잡고 일어섰다. 욕실로 향해 발을 내딛으려는 순간, 아버지가 우현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늦었다."
"아버지!"
우현은 아버지의 팔에 매달려 발악을 하기 시작했고, 아버지는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미안해. 피범벅이 되어, 입을 벙긋거리는 저 모습이 애처로웠다.
~암호닉 신청은 이번 편이 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