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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O/세종] 차가운 숨 15

 

w. 발발

 

 

 

유진은 곧 늘어져있던 몸을 바로하고 조수석에 놓인 핸드백에서 립스틱을 꺼내어 입술에 발랐다.
워낙 미인이고 동안이여서 진한 화장을 하지 않아도 되었지만, 괜히 더 꾸미게 되었다.
어차피 준이는 저를 못 알아볼텐데.
시동을 켜고 출발한 유진은 초조함으로 저도 모르게 입술을 자꾸만 깨물었다.
성의껏 발랐던 코랄빛 립스틱은 이미 지워진 상태였다.
하지만 유진은 립스틱은 전혀 생각도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유진은 종인이네 학교로 가고 있었다.

 

 

 

레스토랑에서 그 글을 읽고난 뒤, 유진은 그야말로 온 세상 사람들의 슬픔을 떠안은 듯이 울었다.
저녁시간이라서 레스토랑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맛있게 식사를 다 하고 여유롭게 와인까지 마시며 인터넷을 하던 아리따운 동양여성이 갑작스럽게 통곡을 하니 식당사람들이 깜짝 놀라 너도나도 유진곁으로 다가왔다.
그들은 노트북액정을 부여잡고 몸까지 떨며 우는 유진을 끌어안아 진정시키며 과연 무슨 내용일까 화면을 들여다보았지만, 한글을 읽고 이해할 턱이 없었다.
그저 달래면 달랠수록 더욱 서럽게 우는 유진을 꼬옥 안아주며 다독여줄 뿐이였다.
유진을 잘 아는 레스토랑 사장은 구급차를 부르기까지 했다.
유진의 맞은편에서 식사를 하던 중국인 노부부는 '단장(斷腸)'을 외치며 혀를 끌끌 찼다.
세준이였다. 종인이라는 그 아이는 세준이가 분명했다.
첨부된 사진 속 짝짝이 손싸개도, 혈액형도, 나이도 세준이가 틀림없었다.
유진은 한참만에 진정을 하고 집에 돌아와 급히 게시자에게 쪽지를 보냈다.
저를 위로해주던 많은 사람들에게 감사인사를 전할 여유도 없이 미친여자처럼 짐을 싸서 식당을 나왔던 것 같다.
나중에야 값도 지불하지 않고 헐레벌떡 나왔다는 생각이 들어 며칠 후에야 밥을 먹으러 갈겸해서 레스토랑을 찾았지만, 오랜 단골인 유진을 이해해준 사장님은 전의 식사값까지 지불하는 유진의 손을 물렀었다.
제가 뭐라고 쓰는지는 저도 몰랐다.
그냥 떠오르는데로 마구잡이로 썼다.
손이 덜덜 떨려서 몇번씩이나 오타가 났지만, 수정할생각도 못하고 그대로 전송했다.
제발 지금 카페에 접속해있기를 간절히 빌면서 글을 읽고 또 읽었다.
눈물이 노트북자판으로 떨어져 키스킨을 타고 책상으로 흘러내릴 정도로 울었다.

 

'딩동'

 

쪽지알림이 왔다.
유진은 조건반사처럼 쪽지를 클릭했다.
'준이엄마'의 쪽지였다.
쪽지에는 아무 내용도 없이 그저 휴대폰번호만 적혀있었다.
유진은 곧바로 마우스 옆에 있는 휴대폰을 집어 적힌 번호를 입력했다.
번호를 입력하는 것은 빨랐지만, 통화를 누르는 것에는 시간이 걸렸다.
몇 초를 손가락만 왔다갔다하던 유진은 통화를 눌렀다.

 

"여보세요."
"..."
"안녕하세요... "
"....안녕하세요."
"네.. 준이 친어머니시죠?"
"...흐읍.. 흑흑.."
"일단,,, 정말 감사드립니다... 우리에게 아들을 주셔서.."
"흑흑... 고..흑..고맙습니다... 흐흑..."
"우리 종인이 원래 이름은 뭐였나요..."
"흡.. 준이요... 세준이.. 흑흑...오세준이요..."

 

종인이 출생신고서랑 가족관계증명서랑 신분증이랑, 가지고 계신 나머지 손싸개 등등 뭐 다 보내주세요.
기분나쁘실지 모르겠지만,, 제일 잘 아시다시피 두 번 상처주기 싫은 게 부모 마음이잖아요....
메일로 보내시고 바로 전화주세요. 그 때 어떻게 하실지 의논해요..

유진은 곧바로 그녀에게 모든 서류를 보냈다.
필요한 서류는 이런 날을 간절히 바라면서 꼬박꼬박 떼어놨었다.
그러나 전화를 하진 않았다.
메일에 그냥 한국에 가서 세준의 얼굴만 보고 돌아올 것이라고, 그리고 세준이 대학에 입학한 뒤에 정식으로 찾아뵙고 세준이 앞에도 나타나겠다고 간단히 적었다.
답장은 금방 왔다.
아마 유진만큼이나 초조했을 그녀는 메일을 계속 확인하고 있었을 것이다.
답장 역시 간결했다.
서류 다 확인했다고, 배려해줘서 고맙다고. 그럼 조만간 반가운 얼굴로 만나자고.
마지막 줄은 세준이의 학교와 반이 적혀있었다.

 

 

 

학교가 눈 앞에 있는데, 신호가 쓸데없이 길었다.
초조함속에 유진은 손가락으로 핸들을 일정한 템포로 두드렸다.
신호가 바뀌었다.
그런데 페달이 밟히지 않았다.
바로 50m 앞에 세준이가 있는데, 발이 말을 듣지 않았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신호가 안바뀌어서 답답하지 않았나.
뒷 차가 참을성의 한계를 느꼈는지 빵빵댔다.
일방통행로라서 반댓차선으로 추월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였다.
빵빵대는 소리는 거세졌지만, 그럴수록 유진의 머릿속을 하얗게 물들었다.
당장 만나서 울며불며 신파찍을 것도 아니고, 그저 몰래 얼굴만 보려는 것인데 왜 이렇게 가슴이 두근대고 앞이 까매지는지...
유진은 두 눈을 꽉 감았다 뜨며 정신을 다잡았다.
뇌에서 발을 움직이라고 신호를 보냈지만, 처음 걸음마를 배우는 아기처럼 몸은 굼뜨기만 했다.
유진은 목석같은 다리를 억지로 움직였다.
그리고 마침내,
학교에 도착했다.

 

 

 

또각또각
복도에는 유진의 구둣소리만이 존재했다.
수업시간인지 복도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교실의 문들을 지날 때마다 선생들의 목소리와 소리죽여 재잘재잘 잡담을 하는 아이들이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릴 뿐이였다.
3학년 교실은 마지막층인 5층이였다.
유진의 발걸음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느렸는데, 그 것은 하이힐때문도 아니였고, 유진이 사십대 중반의 관절염이 시작될 아줌마라서가 아니였다.
층올 올라갈수록 걸음은 느려졌다. 아니, 세준에 가까워질수록 걸음이 느려졌다.
유진은 누가보면 5층까지 올라오는 것이 그렇게나 힘들까라고 생각할 정도로 떨리는 숨을 고르고 있었다.
세준이 있다는 반은 계단의 바로 앞에 있었다.
유진은 교실 뒷문으로 다가갔다.
혹여나 구둣소리에 수업을 하던 선생이 나올까봐 구두를 벗었다.
뒷문은 유진이 올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듯이 십센티 정도 열여있었다.
유진은 문에 몸을 숨기고 열린 문 틈으로 얼굴을 숙였다.
교실벽은 온통 입시정보벽보로 가득했다.
서로를 응원하는 메시지가 한 가득 적힌 보드판도 보였다.
교실 앞 교탁에서 학생 하나와 작은 목소리로 상담을 하는 선생이 보였고, 아이들은 모두 자습 중인 듯 했다.
뒤집기 한 번 못보고 헤어진 세준이 입시생이라는 것이 낮설었다.
세훈이가 19살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세준이는 그렇지 않았다.
유진의 기억 속 세준은 여전히 갓난아기였다.
중간중간 수다를 떠는 아이들도 있었고, 지쳤는지 자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 사이에서 유진은 세준을 찾고 있았다.

 

"오세훈, 괜찮으면 지금 상담할래?"
"네."

 

뜻밖에도 세훈이가 있었다.
유진은 세훈이 중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해외파견을 시작했기에, 한 번도 제대로 아이의 학교생활에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역시나 세훈이 몇 반인지 몰랐는데, 이 반이였다.
그렇다면, 세준이와 세훈이가 같은 반이라는 소리다.
서로가 존재를 알고 있다.
어쩌면 아주 친한 친구일 수도 있다.
유진은 방망이질 치는 가슴을 부여잡았다.
하늘에서 이렇게 도와줬는데, 몰랐다니.
제가 조금만 아이에게 관심이 있었더라면 더욱 빨리 세준을 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또 한 번 자신의 우둔함에 자책했다.
인간은 후회하는 동물이라는데, 이 순간 자신이 인간이라는 것에 몹시 화가 났다.
유진의 눈동자는 세훈에게 집중되었다.
우연히 만난 아들이 반가웠고, 그보다 어쩌면 세훈 쪽에 세준이 있을지도 모른다.
세훈은 바깥쪽에 앉아있었고, 안 쪽에 앉은 제 짝과 잠시 이야기를 하다가 일어나 교탁으로 걸어나갔다.
그런 세훈을 미소 띈 얼굴로 바라보는 가려졌던 짝은 세준이였다.

 

"세..준아..."

 

세준이는 제 아빠를 닮아 피부가 구릿빛이였다.
어깨도 딱 벌어지고, 긴 다리를 옆으로 쭉 뻗고 앉은 모습만 봐도 키가 세훈이만큼 크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이란성 쌍둥이라 갓난아기일때부터 세훈과 쏙 빼닮진 않았지만, 저렇게 입을 옆으로 당기며 웃을 때 접히는 눈가나, 동그란 귓바퀴, 크고 곧은 손가락 등이 멀리서 봐도 세훈과 닮아있었다.
특히 저 입술과 코는 제 아빠를 쏙 빼닮았다.
세훈은 저를 닮았는데, 세준은 제 아빠를 닮아있었다.
지금 얼굴을 봐서가 아니라, 정말로 길을 가다가 스쳐지나간다해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앞에서 선생과 상담 중인 세훈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표정이 세훈이와 많이 친해보였다.
역시 핏줄이 당기기는 한가보다.
유진은 세준을 잃어버리고 나서 세준을 키워줄 누군가에게 고마워하면서 핏줄, 혈연 따위에 연연하지 말자고 생각했었다.
세상 모두가 그렇게 느껴도 자신까지 그러면 세준이에게도 적용될까봐.
그런데 이렇게 세훈과 세준을 보니, 그런 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니라는 것을 실감했다.
그렇게 잠시 세훈을 주시하던 세준은 이내 시선을 거두고는 자기 공부에 집중했다.
흔들림하나 없이 그새 공부에 집중하는 모습이 대견했다.
이런 단편적인 모습만 보아도 세준이가 참 바르게 컸다는 것이 보였다.
세준이는 한 살에서 풀쩍 점프해서 열아홉이 된 것이 아니다.
제가 알지 못하는 세준이의 성장이 안타까웠다.
통화했을 때의 점잖고 신중했던 세준이 엄마의 목소리와, 잠깐 봤을때의 세준이를 보면, 세준이가 남부럽지 않게 잘 컸다는 것쯤은 알 수 있었지만, 가슴아픈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어린 것이 제가 입양아란 것을 알고 얼마나 외로웠을지, 속으로 혼자 얼마나 눈치를 봤을지..
물론 전혀 그래보이진 않지만, 아주 그렇지 않다고는 확신할 수 없었다.
막히는 문제가 있는지 세준은 샤프를 꽉 쥐고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그 행동은 저를 닮아있었다.
유진은 순간 발등에 떨어진 차가운 물방울에 놀라 걸음을 떼었다.
뺨을 만져보니 눈물 한 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의식하고 나니, 눈물이 줄줄 흘러나왔다.
계속 세준이는 훔쳐보면 주체못할 것 같았다.
유진은 마지막으로 세준의 머리카락 끝부터 발 끝까지 꼼꼼히 눈에 담고는 눈에 맺힌 마지막 눈물이 흐를새라 얼른 닦았다.
눈물이 흐르면, 18년만에 담아놓은 세준이의 예쁘고 멋진 모습이 눈물과 함께 사라질까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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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이예요! 늦게 와서 죄송해요ㅜㅜ 16화 금방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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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드디어 엄마가 종인이를 찾아왔네요 잃어버린아들을 찾은건 정말 다행이지만...어째 가슴한켠이 무겁네요ㅜㅜㅜㅜㅠㅜㅜㅜ 한번더 읽으러 올라갑니다...두번읽어야죠...세번...ㅠㅠㅜㅠㅠㅠ
10년 전
발발
ㅠㅠ읽을수록답답하실텐데ㅠㅜㅜㅜ흐앙ㅜㅜ
10년 전
독자2
오랜만이예요 작가님:) 4월이 되어서도 계속 어쩜이리 바쁜건지 이제야 와서 댓글 다 스큅하고 읽고 왔네요.아 진짜 앞으로 전개가 어떻게 될지 정말 궁금해요. 이아이들이 어떻게 자신들의 사랑을 지켜나가게 될지, 너무 궁금하네요. 이제 좀 한가해 지길바라며 꼭뵈요 작가님:)
10년 전
발발
힝저도4월시작부터주말도없이계속바빠서업뎃못했어요ㅜㅜ기다려주셔서감사합니다ㅜ!! 저도독자님도이젠좀여유로워지길...☆
10년 전
비회원도 댓글을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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