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출 예약
호출 내역
추천 내역
신고
1주일 보지 않기
카카오톡 공유
주소 복사
모바일 (밤모드 이용시)
댓글
사담톡 상황톡 공지사항 팬픽 만화 단편/조각 고르기
이준혁 온앤오프 샤이니
조이 전체글ll조회 1221l

 

 

 

 


[루민] 그레이(gray)
w. 조이

 

 

 

 

gray 1

 

 

 

 

 


굽은 허리를 폈다. 쪼그려 앉은 무릎을 양손으로 짚어 서자 손바닥 아래로 까끌한 알갱이가 파고들었다. 민석은 자리에서 완전히 일어나 그것을 양손으로 비벼 뗐다. 하얀 알갱이가 바닥으로 흩어져 내렸다. 현관문 입구 양 쪽 바닥에 한줌 소복히 쌓여 있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손을 마지막으로 탁탁 털어낸 민석이 발 옆에 놓인 소금봉지를 쥐어들었다. 드디어 내일, 이사를 오는 날이었다.

 

 

 

 

 


“네. 여기 놓아주시면 돼요!”

 


활짝 열린 베란다 창문에 온 집안이 한기로 가득했다. 이미 겨울이 지나고 봄이 찾아왔건만 그래도 아직은 추운 날씨였다. 이게 마지막이죠? 큰 플라스틱 박스를 내려놓은 남자는 이내 민석에게서 지폐 몇 장을 받고 그곳을 떠났다.

 


“하아.”

 


이제 어디서부터 해야 하나. 양 옆구리에 손을 얹은 민석이 주위를 빙 둘러보았다. 티비나 쇼파, 침대 등 큰 가구와 가전제품들은 이미 제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러나 그 외 자잘한 것들을 담은 큰 박스들이 숨을 꽉 옭아맬 정도로 거실을 메우고 있어 민석은 다시 한 번 숨을 크게 내쉴 수밖에 없었다.

 


“그래. 일단은 뭐 좀 먹고 시작하자.”

 


그러면서 그는 빨래라고 적힌 박스 하나를 끌고 뒷 베란다로 향했다. 먼저 세탁기를 돌려놓은 후 밥을 해먹는 게 더 효율적이라 생각했다. 어머니께서도 매번 그러셨고 말이다.

 

 

 

 


*

 

 

 

 

이주 전 민석은 어머니를 여의였다. 교통사고였다. 여느 때와 같은 날이었고 민석은 회사를 마치고 집으로 가고 있었다. 갑자기 멈춰선 버스, 웅성거리는 버스 내부 사람들에 민석은 의아한 표정으로 창밖을 내다보았다. 어느새 주위는 익숙한 배경으로 들어차 있었고 창밖 그 아래는 절대 몇번을 보아도 익숙하지 않을 그런 광경이 펼쳐졌다.

 


선혈이 낭자한 아스팔트와 축축하게 젖은 비닐봉지. 밖으로 굴러져 나오는 감자 몇 알이 주욱 붉은 선을 어지럽게 그어댔다. 아무도 감히 무언가를 말하지 못했고, 다만 그 옆에 누워있는 오토바이 한 대만이 그 상황을 모두 설명하고 있었다. 저의 집도 가끔 시켜먹는 어느 한 중국집의 배달 오토바이였다.

 

버스가 출발했다. 그리고 민석은 원래 제가 내려야 하는 곳에 하차했다. 가까워진 아파트 입구는 작은 이차선 도로였다. 어머니의 손 안에 든 저의 이름을 띄운 폰이 통화 연결음을 작게 울려댔다. 아마 버스 안의 민석을 발견한 그녀가 반가운 마음에 버스를 쫓아왔던 것 같았다.

 


“네. 알겠습니다. 네, 네.”

 


민석이 꺼진 통화를 확인했다. 떠오르는 것은 회사의 어느 전화번호였다. 이제 다음 주부터 그는 다시 일터에 나가야 했다. 사고에 관한 조사도 끝났고 오토바이 운전자와의 합의 또한 차질 없이 모두 해결되었다. 어머니의 장례도 무난하게 해냈다. 이혼하신 아버지가 장례식에 잠시 얼굴을 비추었으나 별일도, 아무런 감흥도 없었다. 잘 기억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아주 오래전 얘기였고.

 


“이제 다 정리된 건가.”

 


그렇게 해서 홀로 남겨진 집은 나온 게 벌써 이틀 전이었다. 시간 참 빠르다 라고 중얼거린 민석은 갑자기 침대 위에 풀썩 내려앉으며 웃었다. 요 며칠간 혼자 있다 보니 정말로 부쩍 혼잣말이 늘어난 게 느껴졌다. 어머니도 그러셨을까. 갑작스레 든 생각에 어디에선가 우울한 기운이 몰려와 그의 주위를 빠르게 둘러싸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마치 바통 터치를 하듯 어머니는 일을 그만두시고 저는 사회에 뛰어들었다. 과연 자신이 근무를 하는 동안 집에 홀로 남겨졌을 어머니는 무엇을 하고 계셨을지, 지난 오년동안 한번도 물어본 적이 없다는 게 그제서야 떠오르고 있었다.

 

게다가 너무 적은 양의 짐. 이삿짐을 쌀 때도 생각한 거지만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적은 어머니의 물건에 민석은 요 며칠간 짐을 정리하면서도 또 다시 생각하는 지금도 여전히 씁쓸한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이삿짐 센터의 박스 고작 하나 좀 남는 양의 물건들이 제 어머니가 남긴 모든 것이었다. 나머지는 모두 제 것이었다.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토요일에 전활 하다니.”

 


어지간히 바쁘긴 했나 보네. 또 혼잣말을 하는 민석은 일부러 그렇게 화제를 돌려버렸다. 중얼중얼. 약하고 느릿한 목소리가 작은 방안을 퉁퉁 돌아다니다 다시 그에게로 돌아왔다. 어느새 피곤한 몸은 침대 위로 길게 파묻혀 있었다. 눈꺼풀이 계속 밑으로 내려와 민석은 제 눈가를 손가락으로 몇번 문질렀다. 그러나 한번 몰려온 졸음은 그리 쉽게 가시지 않았다. 아 왜 이렇게 잠이 오지. 그동안 무리했나.. 결국 참다못한 그는 두시라는 아주 이른 오후 시간에 잠시 눈을 붙이기로 했다. 어차피 내일까지는 쭉 쉴 수 있으니까 말이다.

 

 

 

 

 

 

*

 

 

 

 

 


“어. 왔어?”

 


손을 펴 보이며 다가오는 준면에 민석은 앉은 자리 그대로 팔을 들어 그를 맞이했다. 동갑내기식 인사답게 이내 착 소리가 나며 서로 맞닿은 손바닥이다.

 


“이사했다며. 나 부르지 그랬냐.”
“도움도 안 되는데 뭐 하러.”

 


자칫 퉁명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는 말에 준면은 피식 웃으며 반응해 보였다. 하긴 니가 오죽 힘이 세야 말이지. 다 장난인 걸 알기에 할 수 있는 거였다.

 


“그래도 잠은 좀 자. 그새 다크서클이 이만큼 내려왔어.”

 


이크. 부장님 오셨다. 그외에도 오자마자 일 시작이냐 그동안 난 안 보고 싶었냐 등 몇 마디 잡담을 건네던 그는 슬슬 허리를 굽히며 자리로 가 앉았다. 모두가 일어나서 짧은 인사를 하고 민석도 그러며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동안 밀린 업무를 해야 했다.

 


‘다크서클이라..’

 


바쁘게 움직이는 손가락들 사이로 잡생각들이 스물스물 기어올랐다. 잠은 충분히, 아니 넘칠 정도로 잤건만 어쩐지 자고 일어나도 개운하지가 않았다. 오늘 아침 이상하리만치 찌뿌둥한 몸 상태를 보고 그는 침대 위에서 혼자 고개를 갸웃거렸었다.

 

방향을 잘못 잡았나. 아닌데 침대머리는 동쪽이 맞는데? 잠자리가 문제였나 싶은 그는 혹시나 베개가 너무 높지 않았나 생각도 했다. 그런데 그럴 리가 없었다. 예전부터 쭉 써왔던 것이고 뒷목이 아프다거나 어깨가 결리는 느낌 또한 없었다. 한참을 생각하던 그는 눈앞꼬리를 문지르며 팔 안쪽으로 슬쩍 입 부근을 가렸다. 하품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벌써 눈꼽도 끼고.’

 


손에 묻어난 걸 본 민석이 제 자리 오른쪽 구석에 위치한 정사각형의 작은 휴지곽에서 내용물을 뽑아 그것을 닦아냈다. 그러는 중 모니터 화면 귀퉁이에 네모난 창이 하나 떠올랐다.

 


- 있다 저녁콜?

 


뭔 아침부터 저녁얘기야. 그새 피식 웃어버린 민석이 표정을 가다듬으며 답을 써내려갔다.

 


- 알콜이겠지
- 역시 척하면 척 암튼 콜?

 


콜. 짧게 답한 민석이 다시 업무 일을 손에 쥐었다. 그동안 너무 피곤했던 탓일지도 모른다며 그는 이참에 준면과 술을 마시고 아무 생각 없이 쭉 뻗어 자야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공교롭게도 내일이 휴일이었다. 하루출근에 하루휴무. 그럴 바에야 월요일로 당겨 쉬면 좀 좋냐며 그날 저녁 준면은 술을 마시며 좀 오랫동안 툴툴댔다.

 

 

 

 

 


*

 

 

 

 

 


잠자리가 문제가 아니었다. 침대를 돌려보고 옮겨보고 베개, 이불, 심지어 베개 커버까지 여러 가지로 바꿔보았다. 그런데도 그것은 멈추지 않았다. 흐릿했던 것은 이제 심지어 선명해지고 있었다.

 


“진짜 모르는 사람이야?”
“..그렇다니까.”

 


푸욱 한숨을 쉬는 민석은 피곤하다는 듯 눈언저리를 손바닥으로 쓸었다. 벌써 일주일째 같은 상황에 준면은 마땅히 도울 길이 없어 손에 든 자판기 커피만 몇 번 홀짝였다.

 


“대체 뭘까. 누군데 자꾸 내 꿈에 나오지?”

 


중얼거리듯 말하는 민석은 어떤 남자를 떠올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게 남자인 줄도 몰랐다. 하얗고 흐릿한 형상이 그저 꿈에 나타나 앞에서 머물다 사라지기를 반복했을 뿐이다. 그러던 것이 날이 갈수록 사람의 것을 하기 시작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민석은 그게 제 어머니가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직 어머니를 여읜지 삼주가 채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혹시나 못 다한 얘기를 하러 오신 걸까. 딱히 미신이란 걸 믿는 건 아니지만 만약에 라는 것이 있었다. 그런데 그게 어머니가 아니라 생판 듣도 보도 못한 낯선 남자라니.

 


“혹시 그런 거 아냐? 그 왜 막 예지몽 같은 거.”

 


그래서 데자뷰도 느끼잖아. 사람들이 어 이 장면 어디선가 본 것 같은데 하면서. 너도 그런 적 있지 않아? 커피를 다 마신 준면이 종이컵을 휴게실 쓰레기통에 던져 넣으며 말했다. 전에 몰랐던 사람이면 앞으로 만날 사람일 수도 있어.

 


“정말 그럴까?”
“그래. 그러니까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마. 또 누가 알아. 니 운명의 상대일지.”
“너 내 말 뭘로 들었냐. 어떤 남자라니까.”

 


그럼에도 으쓱 어깨만 올렸다 내리는 준면이다. 어쩌면 너를 너무나도 연모하는 사람일지도 모르지. 어머 민석이 형 너무 멋있다 그런데 난 남자. 절대 가까이 갈 수 없겠지? 그럴 바에야 꿈에서라도 내 못 다한 사랑을 이루리..

 


“소설을 써요 소설을.”

 


으이그. 자리에서 일어난 민석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준면을 흘겨보며 발걸음을 옮겼다. 아니 그러니까 내말은,

 


“그러지 말고 좀 좋은 쪽으로 생각해 보란 말이야.”

 


나쁠 것 없잖아. 준면이 뒤에서 어깨동무를 해오며 말했다. 글쎄. 나도 그랬으면 좋겠는데.. 속으로 생각한 민석은 준면과 함께 휴게실을 빠져나와 원래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다른 직원들 또한 모두 제자리를 찾아가 다음 업무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책상 앞에 앉자 급 몰려오는 피곤에 민석은 나도 커피 한 잔 마실 걸 그랬다며 뒤늦은 후회를 했다. 하지만 둘러본 주위는 벌써 업무처리에 들어가 일 삼매경에 빠진 사람들이었다.

 

민석이 눈덩이를 손등으로 한번 문질렀다. 너무도 피곤했다. 하루도 빠짐없이 꿈을 꾸는데 정신이 멀쩡한 게 더 이상한 거였다.

 

 

 

 

 

*

 

 

 

 

 

오늘은 제 이름을 부르기까지 했다.

 


민석아.

 


너무도 생생한 목소리에 민석은 지금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내 이름은 어떻게 아는 거지. 그 사람 정말 날 알고 있는 사람인건가. 잠시간의 고민은 그게 꿈이기에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끝이 났다. 꿈에서야 모든 게 내 맘대로 였고 또 내가 모르는 것 또한 없으니까. 하지만 그것 또한 말이 안 됐다. 그렇다면 왜 그 남자는 내가 알려 해도 깨달아지지 않는 거고, 또 어째서 매일같이 그는 내 꿈에 나오는 건지. 그 어떤 걸 갖다 대봐도 설명되지 않았다. 거기엔 확실히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었다.

 

게다가 그 사람은 꿈이라고 치부해 버리기엔 너무나도 현실 같았다. 표정도 보이고 목소리도 들리고. 보통 꿈을 꾸면 목소리는 잘 못 듣는다던데 민석은 그의 목소리를 똑똑히 기억해 낼 수 있었다.

 

몽글몽글. 목화솜을 둘러싼 듯한 부드러운 감촉. 귓가에 스치던 목소리를 들은 건 며칠 전 첫 안부를 물었을 때다. 밥은 먹었어? 오늘 어땠어? 짧은 물음에 민석은 제가 뭐라 답했는지 잘 생각이 나지 않았다. 아마 제 느낌으로는 아무 말 없이 그의 얼굴을 바라보고만 있었던 것 같았다. 그러자 다음부터 남자는 더 적극적으로 제게 다가왔다. 그래서 나온 말이,

 


‘민석아. 나랑 한강 안 갈래?’

 


바로 어젯밤 들은 말이다. 그러면 또 저는 한강에 와있었다. 제 꿈인데도 제 의지와는 상관이 없었다. 이렇게 눈을 떠 침대 위에 걸터앉으니 드는 생각이었는데, 심지어 어젯밤 꿈에서는 그와 저, 둘만 있지도 않았다. 그전까지는 어느 빈 공간에 둘만 존재하여 서로를 마주보고 있었는데 말이다.

 

마치 현실세계처럼, 자전거도 있고 자동차도 있고 또 저들끼리 수다를 떨며 지나가는 친구나 연인들도 그곳에 있었다. 민석의 꿈속에. 그리고 저는 남자와 함께 그 사이를 거닐었다. 얼굴 위로 촉촉한 바람이 와 닿았고 흐르는 강물은 반짝이는 햇살이 수놓아 져 아름답게 빛났다.

 


‘꿈속의 세계가 점점 더 구체화 돼 간다.’

 


민석은 순간 흠칫 몸을 떨고 말았다. 먼 곳을 바라보던 시선이 이내 그의 발끝에 다다랐다. 그러고 보니 주말에 비랬나. 어두운 실내에 발끝과 방바닥의 경계가 모호했다. ..정작 진짜 현실은 이렇게 흐릿해져 가는데. 피곤한 표정의 민석이 제 얼굴을 한번 쓸어내렸다. 손바닥 위에 닿는 거칠거칠한 두 볼이 그동안 그가 얼마나 꿈에 시달렸는지를 알려주고 있었다.

 

이러다간 한낱 꿈에 현실을 먹혀버리는 건 아닐까, 어쩌면 이게 말로만 듣던 잠 귀신, 혹은 몽마라고 부르는 그런 것이 아닐까. 떠오르는 얼굴이 그 고민을 단단히도 뒷받침해주었다. 꽤나 예쁘장하고 곱상했던, 미인상의 얼굴.

 

민석는 인터넷 창을 켜서 잠시 검색을 해보았다. 잠 귀신에 대처하는 방법, 몽마란 무엇인가 등등. 딱히 도움이 될 만 한 건 없었다. 무당을 찾아가 보라니. 허탈한 웃음을 지은 민석이 그만 자리에서 일어나 냉장고 앞에 섰다.

 


“..물이 없네.”

 


다시 냉장실 문을 닫은 민석은 식탁의자에 걸쳐진 얇은 외투를 집어 들었다. 팔을 끼워 넣고 주머니에 든 지갑을 확인한 그는 현관문 앞으로 가 슬리퍼를 꺼내 신었다. 복도식 아파트는 밖으로 나오자마자 흐릿한 하늘로 그를 맞이했다. 비 오기 전에 갔다 와야지. 아파트 단지 입구부근에 있던 작은 슈퍼마켓이 어렴풋하게 떠올랐다. 혼자 살게 된 이상, 정수기 대신 먹는 물을 미리미리 준비해둬야 했다.

 

아직은 익숙치 않은 생활패턴이다.

 

 

 

 

 

 

*

 

 

 

 

 

 

“저, 저기..”

 


당황한 목소리가 나왔다. 그도 그럴 게 민석은 지금 아침 일찍 출근을 하기 위해 아파트 중앙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처음 보는 사람이 그의 팔을 꽉 쥐고 옴짝달짝 못하게 하고 있었다. 이것도 꿈일까. 하지만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어깨 위의 피곤함이 그 증거였다. 엘리베이터 층수는 가까워지고 잡힌 팔은 어느새 살이 새하얗게 질려 피가 통하지 않았다.

 


“이것 좀..”

 


밀치려면 밀어낼 수도 있었다. 그러나 민석은 그러지 않았다.

 


“괜찮겠어?”
“네?”

 


한눈에도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할머니가 민석을 향해 물었다. 그렇게 한마디를 뱉은 그녀는 또 한참을 심각한 표정으로 가만히 민석의 얼굴을 들여다봤다.

 


“힘들지 않냐고.”

 


대체 무슨 말을 하시려는 걸까. 민석이 미간을 조금 좁혔다. 내려다 본 팔은 여전히 저를 꽉 붙든 채였다. 그녀는 아직 자신을 보내줄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엘리베이터가 띵 소리를 내며 도착을 알렸다. 바쁘니 이제 그만 놓아달라고 말해야 했다. 그런데 민석은, 다시 그 노인을 얼굴을 쳐다보는 순간 아무 말도 꺼낼 수 없었다.

 

나이가 들어 쪼글쪼글해진 입술, 군데군데 하얗게 세 버린 머리카락, 마찬가지로 함께 빛을 바랜 회색 눈썹. 그리고 내려온 눈꺼풀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부리부리한 무서운 눈매. 색이 바래 연한 회색빛을 띠는 그 눈은 마치 어릴 적 어머니를 따라 갔던 어느 점집에서 보았던 것과 같은 것이었다. 살쾡이 같이 음험하게 빛나는 두 눈동자.

 


“...제가 힘들어 보이나요?”

 


범상치 않은 그녀의 모습에 민석은 저도 모르게 노인을 향해 물었다. 무슨 대답이 나올까. 어쩐지 오금이 저리고 목 뒤로는 뜨거운 침이 넘어갔다. 그러나 그녀는 민석이 한 질문과는 전혀 상관없이 자신의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사람은 모름지기 구분 지으며 살 줄 알아야 하는 것이야.”

 


구분? 뭘 구분하란 말이지? 민석은 그걸 당최 알아들을 수 없었다. 곤란할 적마다 슬쩍 뒷목을 쓰다듬는 버릇에 꽉 붙들린 팔을 그만 잊고 그것을 움직이려 했다. 그러자 노인은 다시 한 번 더 민석의 팔뚝을 거세게 고쳐 잡았다. 간 것과 올 것은 공존할 수 없어. 그 악력에 민석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아까까지와는 또 다른 힘이다. 커다란 눈이 겁에 질린 모양을 했다.

 

제 아무리 힘센 권력가나 재력가라도 그것만은 이루지 못해. 심지어 그들도 이루지 못하는 걸,

 


“너 같이 하찮은 인간이 함부로 그 경계를 흐리려다간 분명 큰일을..!”
“어머니!”

 


툭 떨어진 손과 함께 민석은 그제야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짧은 시간 이마 위에는 투명한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혀 있었다. 마치 리모컨 버튼을 꾹 눌러버린 듯 순식간에 커진 목소리가 복도에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다.

 


“어머니! 제발 혼자 나가시지 말라고!”
“큰 일을!!”

 


오십 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가 노인을 돌려세웠다. 그럼에도 전혀 말귀를 못 알아듣고 제 말만 하는 그녀에 여자는 이제 노인의 어깨를 감싸 다그치듯 앞뒤로 흔들어댔다. 실핏줄을 다 드러낼 태세로 뒤로 한껏 까뒤집힌 두 눈이 한참 후에야 원래의 자리를 되찾아갔다. 그리고 그녀는 이번엔 마치 겁에 질린 사람처럼 양손을 덜덜 떨어대기 시작했다.

 


으으.. 큰일을.. 큰..일을....

 


중얼중얼. 느려터지고 의미 없이 계속 반복되는 잡소리들. 그것은 꼭 버퍼링에 걸린 음악소리였고, 오래돼 늘어져 버린 카세트 테이프였으며, 또 무언가를 부르는 옛날의 어느 비디오 테잎이었다. 방금까지와는 너무 다른 모습에 민석은 저를 향해 크게 호통 치던 노인이 과연 눈앞의 그녀가 맞는 것인가 모든 광경을 지켜보았음에도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할망구가 노망이 들었으면 조용히 방에나 처박혀 있을 것이지. 왜 자꾸 기어 나와. 나이든 여자가 노인의 등을 두들기며 작게 짓씹듯 말했다. 들릴듯 말듯 개미만한 목소리는 분명 애타게 어머니를 외치던 것과는 또 다른 말투였다. 노인은 고개를 하늘 높이 쳐들고 좌우로 머리를 흔들었다. 흐트러진 머리카락이 공중을 부유했다.

 

그렇게 한참의 실랑이 끝에 두 여자는 힘겹게 저들의 집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엘리베이터를 기점으로 민석의 집과는 정반대의 복도방향이었다.

 


‘큰 집도 아닌데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구나.’

 


가슴을 진정시킨 민석이 그 뒷모습을 쳐다보며 생각했다. 인사 따위야 처음부터 받을 생각도 못했기에 그런 그녀들의 행동이 전혀 무례하게 생각되지 않았다. 그나저나, 이십 평이 채 되지 않는 평수는 분명 일이인 가정을 위한 공간이었건만. 그래도 자식이 독립한 가정이라면 삼인정도야 괜찮을지도 몰랐다. 아마 남편쪽 어머니겠지? 나이 든 며느리와 노망 든 늙은 시어머니라니. 민석이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저 집도 꽤나 축축한 분위기를 지니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증거로 그녀들이 머물다 간 자리에는 그들 특유의 스트레스와 감정이 한데 엉켜, 잔재처럼 바닥 위에 덮어 내렸다

 


“아 맞다. 출근!”

 


갑작스레 머릿속을 스치는 것에 민석이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엘리베이터는 다시 일층에 되돌아가 있었다. 으으 빨리 빨리. 이러다 지각하게 생겼다며 민석은 안절부절 전광판을 올려다보았다. 관자놀이 옆으로 미처 닦지 못한 식은땀이 주르륵 길게 선을 그으며 떨어졌다.

 

민석은 팔뚝으로 땀을 닦으려다 문득 고개를 내렸다. 심히 구겨진 소매자락이었다. 툭툭 두어 번 그것을 털어낸 그가 가방에서 휴지 몇 장을 꺼내 이마를 닦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몇 발짝 걸어간 그는 그 가운데 선 다음 앞을 향해 몸을 돌렸다. 민석은 그때 몰랐다. 그때 그 특유의 감정과 스트레스 덩어리가 어느새 그의 어깨 위에 기어올라 피곤함과 함께 축적되어 버렸다는 것을 말이다. 곧 그를 실은 네모난 철제 박스는 조금은 빠른 속도로 아래를 향해 떨어졌다.

 


한바탕 소란을 겪은 복도는 어느새 조용한 적막만이 있었다. 모두가 사라진 공간엔 더 이상 소음을 일으킬만한 것은 없었던 탓이다.

 

 

 

 

 

gray 1.

 

 


 

 

 

 

--

안녕하세요 조이입니다

금방 데려왔네요

사실 이글은 정말 백퍼센트!

제 만족으로 쓰는 글이라 조금씩 연재될 것 같아요

분량도 평소보다 적어요

대신 그리 길지 않은 이야기라

스토리는 절반 이상 나왔구요

금방 끝날 것 같긴 합니다

 

이거 말고 또 준비하는게 하나 있긴 한데

진짜진짜 귀여운 건데ㅠㅠ

하면 진짜 재밌을 것 같은데ㅠㅠ

사전조사가 필요해요..

맘같아서는 또 다른 내가 빨리 그걸 써줬으면

하는 바람까지 들 정도랄까..

얼마안가 맛보기가 올라올 지 몰라요

하아 하던거나 마저 끝내지..

 

암튼 그렇습니다

아 그리고 gray는 불맠 없어요

아마 끝날 때까지 한번도 없을 거예요

 

안녕히 계세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설정된 작가 이미지가 없습니다


 
비회원도 댓글을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작품을 읽은 후 댓글을 꼭 남겨주세요,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독자1
헐진짜재밌어요ㅠㅠㅠㅠㅠㅠ 다른서계의루한이가민석이를부르는건가요ㅠㅠㅠㅠ 뭐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완전재밌잖아요ㅠㅠㅠㅠㅠㅠ
10년 전
조이
아고.. 일주일이 더 지나서야 답글을 다네요ㅠㅠ 재밌다니 다행입니다ㅠㅠ 민석이가 루한이를 알아가는 과정이 스토리가 될 것 같아요
10년 전
독자2
헐...소재가겁나신기해녀...루한이가뭐지.....
10년 전
조이
조금 그렇긴 하죠? 친구가 팬픽에선 없었던 소재 같다고 하더라구요 흔하진 않아서 인지 쓰기가 좀 까다롭네요
10년 전
삭제한 댓글
(본인이 직접 삭제한 댓글입니다)
10년 전
조이
몽블랑님!! 제가 왔어요! 암호닉 신청은 당연히 되구요! 으앙 또 이렇게 와주셨다니ㅠㅠ 루민이들 하아 레인보우는 어쩌고 저는 이럴까요 사실 빨리 플요아를 끝내고 레인보우를 적으려 했으나.. 플요아가 끝이 안나요ㅠㅠ 으엉 어떡해 얼마나 더 해야 하는거야ㅠㅠ gray는요 루한이가 뭔지 밝혀지는 순간 벌써 절반은 온 겁니다ㅋㅋ 짧은 내용이니까요
10년 전
독자5
와 작가님 역시 기대를 저버리시지않는 와진짜 대박ㄱㅋㅋㅋ원래도신알신됭ㅅ엇지만 또 주목할만한작품이 나왓넉요
10년 전
조이
ㅠㅠ주목해주신다면 저야 너무 감사하죠ㅠㅠ 제 만족 하나를 위해 나온 글인데ㅠㅠ 그래서 조금씩 느리게 나올 것 같습니다 관심 감사드려요
10년 전
독자6
헐 대박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뭔가 좋아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뭘까ㅠㅠㅠㅠㅠㅠㅠ왜 꿈속에 나오는걸까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근데 gray를 저만 gay로 봤나요.. 왜그랬을까요..
10년 전
조이
gay라니ㅋㅋㅋㅋ 저 너무 웃겨서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서 제목 좀 바꿨습니다 한글로 그레이라고 딱 적어놨어요! 그런 오류가 생길 줄은 몰랐네요ㅋㅋ
10년 전
독자7
헐 대바규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암호닉 받으시나여?? ㅠㅠㅠㅠㅠㅠㅠ 받으신다면 [안예쁨]으로 ㅠㅠㅠㅠ
10년 전
조이
안예쁨님ㅠㅠ 신청 되셨어요ㅠㅠ 암호닉 해주신다면 저야 넙죽하고 받겠습니다ㅠㅠ 정말 감사합니다
10년 전
독자8
헐 뭐지ㅠㅠㅠㅠㅠ듀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할머님은 민석이에게 뭘 알려준걸까여...
10년 전
조이
할머니뿐만 아니라 중간중간 스쳐지나가는 것들이 모두 그냥 지나가는게 아닐 수도 있어요 잠시 생각해 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ㅎㅎ
10년 전
독자9
소재가엄청신선해요!!꿈의정체는무엇일까여...?
10년 전
조이
친구도 그러더라구요 팬픽에 없던 소재라고.. 저도 못 본 것 같긴 한데 그래도 소설이나 다른 방면으론 아예 없는 얘기는 아닌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10년 전
독자10
와…! 완전 신세계 작가님 제가 정말로 사.. 사랑합니당♥
10년 전
   
비회원도 댓글을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작품을 읽은 후 댓글을 꼭 남겨주세요,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분류
  1 / 3   키보드
필명날짜
      
      
      
      
      
동방신기 [유수/윤재] Time to time 019 w 01.24 03:25
인피니트 [인피니트/현성] 피로 맺어진 사랑026 스트로&라볼 01.24 03:11
인피니트 [인피니트/현성] 49일간의 사랑(01)8 라볼 01.24 01:57
빅뱅 [탑뇽] Papa*038 A+G 01.24 01:43
기타 [병맛유수] 치킨과 피아노와 그들의 갈등6 익잡녀 01.24 00:55
인피니트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 22 아카페라 01.23 23:12
기타 형이랑 나랑 사기는얘기6 (부탁받은 후기)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58 ^^ 01.23 22:40
기타 [유수] 병아리와연애 022 썸씽 01.23 21:17
기타 오빠와 나의 뜨거운 첫만남!!23 호이호이 01.23 15:58
인피니트 [인피니트/현성] 49일간의사랑(00. proglue)12 라볼 01.23 15:21
기타 [공영] 쓰다만 글3 기타1인 01.23 15:14
인피니트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 8 둥둥 01.23 14:06
인피니트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 9 쓔지 01.23 13:54
기타 [규수] 파라다이스 팬싸인회2 스텔라 01.23 04:07
인피니트 [열수] 남고생X여고생8 J 01.23 04:01
인피니트 [인피니트/현성] 피로 맺어진 사랑0112 스트로 01.23 02:56
샤이니 샤이니) FAME2 01.23 01:05
기타 [유수] 병아리와연애 015 달뻘 01.22 23:29
블락비 [블락비/다각] The Creep 5-1,616 디알 01.22 17:56
기타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 22 호이호이 01.22 17:54
인피니트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 18 둥둥 01.22 16:04
인피니트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 40 Riate 01.22 06:47
인피니트 [인피니트/현성] 피로 맺어진 사랑(Prologue)15 스트로&라볼 01.22 01:43
샤이니 [샤이니/미정] 야망 (00)10 램빛 01.22 01:17
인피니트 [수열] 너는 펫 023106 수열앓이 01.22 00:47
인피니트 [INFINITE] 신들의 세계 ; Find 0425 쿨물 01.21 23:14
인피니트 [인피니트/규수] 아저씨, 아저씨 下14 Azia 01.21 20:32
전체 인기글 l 안내
6/28 8:18 ~ 6/28 8:20 기준
1 ~ 10위
11 ~ 20위
1 ~ 10위
11 ~ 20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