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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나 프롤로그 안읽고 오신분들은 이어지는건 아니니까 걱정하진 마세요!
암호닉은 이번화부터 다시 받을게요!
백현이 영문도 모른채 감독과 조우하고 있을때, 크리스는 자신의 사무실이 아닌 회의실에서 집무를 보던 참이었다. 그러길래 누가 실장 말 무시하고 회사에 계속 그렇게 나오지 말으래? 당황했을 백현의 얼굴을 떠올리니 아주 십년까진 아니더라도 한 세달치의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헹, 변백현. 어디 땀 한번 흘려봐라. 자신도 모르게 한쪽 입술에 웃음을 띄고 있던 크리스는 갑작스레 벌컥-열리는 회의실 문에 놀라 고개를 들었다.
"너 아주 나없는데서 잘도 실실 웃고 있다?"
"...."
"왜, 밖에 있는 기지배랑 나 몰래 바람이라도? 밀회라도? 키스라도?"
"...그런거 아닌거 알면서."
"알고 있었는데 이제 좀 모르려고 그러네?"
아직도 회의실 문턱에 서서 저를 뚫어지게 노려보는 종대의 모습에 크리스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 서류가 흩어진 책상에 앉듯 기댔다.
"뭐야 너? 왜 나한테 당장 안오고 거기에 궁뎅이를 붙이고 앉아?"
"계속 너라고 하지."
"지금 내가 너한테 리스씨- 하면서 애교 떨게 생겼어?"
"굳이 애교가 아니더라도 띠동갑 애인한테 너라는 호칭은 좀 버릇없다고 생각 안해?"
"버릇? 지금 버릇이라고 했어? 너 나랑 사귀는거 아니야? 나 가르쳐? 선생님이야 니가?"
이제는 얼굴이 빨개진채 제게 소리를 쳐대는 종대를 그저 바라만 보던 크리스는 팔을 벌리고 살짝 웃었다.
"선생님이면 널 혼내기라도 하지. 난 아까워서 너 혼내지도 못하잖아."
"....말은 아주..."
"너 나한테 와서 안기는거 좋아하니까 기회를 주는거야."
"........"
"난 너만큼 어리지가 않아서. 이제 팔이 좀 아프려고 하는데."
입을 삐쭉-내민채 일곱살 떼쟁이마냥 발을 쿵쿵 구르며 다가온 종대가 내려치듯 세게 크리스에게 안겼다. 그덕에 서류가 가득 흩어진 책상에 눕다시피 한 크리스가 종대를 꽉-끌어안았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어."
"잘난 얼굴 보기가 오죽 힘들어야지. 그런데 리스씨 벌써 너무 위기감 없는거 아니야?"
"뭐가."
"내가 뭐라고 그랬어. 리스씨 얼굴 보고 사귄다고 했잖아. 그럼 그 잘난 얼굴 계속 비추면서 어필을 해야지. 날 이렇게 방치해?"
"알지. 근데 뭐 상관없지 않나."
"뭐?"
"내얼굴이 김종대 애인상이라며."
"......"
"나처럼 생기기가 어디 쉬운것도 아닌데, 불안할 필요 있나?"
"..뭐...틀린 말은 아니네."
제 가슴팍에 안긴 종대를 내려다 본 크리스는 곧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저보다 열두살이나 어린 애인은 이렇게 오늘도 알게모르게 저에게 져주고 있었다. 크리스는 다음달부터 새로이 시작되는 엑소의 해외 프로모션으로 인해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날을 보내고 있었다. 서른을 훌쩍 넘긴 제가 이렇게나 설레고 특별한 감정을 느끼게 된것만으로도 감사할 지경인데 일이 바쁘다는 이유로 아직 파릇하고 귀여운 애인을 외롭게 두는 저를 종대는 귀여운 투정만으로 참아주고 있었다.
"나 이제 한계야 리스씨."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변백현새끼는 아마 나한테 영원히 도움이 안되려나 보다."
"그거 역시 마찬가지."
"대체 프로모션인지 나발인지는 언제 끝나는거야?"
"그건 끝나고 말고 문제가 아니야. 알잖아. 이제 시작인거. 그래도 다음달부터는 좀 여유 생길거야."
"리스씨는 나보다 일이 더 좋지?"
"말도 안되는 소리."
"....변백현은 도경수 보려고 일본에서 밤비행기 타고 와서 막 삼십분 보고 다시 날아가고 막...그런단 말이야."
결국은 자존심때문에 말하지 못하고 있었던 부러움을 토해낸 종대가 부끄러운 듯 크리스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었다. 아무리 성격이 지랄맞고 불같은 김종대라도 애인한테 사랑받고 싶은 마음은 똑같다고.
"그건 내가 변백현보다 책임감이 아주 투철하기 때문이지 절대 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니야."
"......."
"뭐 변백현이 하는 사랑은 좀..."
"........"
"특별하잖아?"
그러니까 나도 그 특별한 사랑이 받고 싶다고!!!!
가끔은 맹목적인 변백현의 사랑을 받는 도경수가 눈꼴시리지만 부럽다고 생각이 드는 요즘의 종대였다. 대체 내가 왜 그런 백치미 새끼를 부러워 해야하는거야? 어? 난 아직까지도 어리고 파릇하고 인기만점인 게이바 마성의 키신 김종대라고! 종대는 크리스의 품에 안겨서도 채울 수 없는 조금의 갈증을 느꼈다.
조금만 책임감을 덜고 사랑에 눈이 멀어준다면 좋겠는데...제 잘난 애인은 그러기엔 너무 이성적이고 냉철한 남자였다.
"...경수랑 한번 얘기해볼게요."
어렵사리 입을 연 백현의 대답에 감독은 알았다고 웃으며 백현의 어깨를 한번 두드린채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소파에 다시 앉은 백현은 괜히 입술을 감쳐 물다가 머리를 헝클었다. 곧 주머니에 있던 휴대폰을 꺼내 액정 가득히 웃고 있는 경수의 얼굴을 손가락으로 한번 쓸었다. 그리고선 방금 전에 나눴던 감독과의 대화를 다시 한번 곱씹었다.
'백현씨, 혹시..타오 기억해?'
간단한 안부를 묻고난 다음, 자리에 앉아 감독이 건넨 이야기는 아주 뜻밖의 것이었다. 잊을 수도 없거니와 생생히 기억나는 어린아이의 얼굴에 백현은 당연하다는듯 고개를 끄덕였다.
'..타오가 그...고아원에 있는 것도 알고있어?'
자신에겐 엄마가 없다며 병실앞에서 울던 아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런데...고아원?
'자꾸..경수씨를 찾나봐. 엄마 보고싶다면서.'
힘들게 마음을 열었던 타오가 느꼈을 처음의 모(母)정.
'물론 백현씨도 가끔 얘기한다더라. 하하.'
제게서 경수를 차지하려 애쓰던 재 허리춤에나 오던 작은 아이.
꽤나 깊은 생각에 잠긴 백현을 바라보던 감독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내가 생각을 좀 해봤어. 안그래도 아직까지 백현씨랑 경수씨 재출연 요청이 끊이지 않기도하고...우리 프로그램도 개편맞이로 육아일기 형식으로 한커플 투입 예정이거든.'
'........'
'그래서 말인데....'
'.......'
'백현씨랑 경수씨가 타오 한번 키워볼 생각없어?'
'....네?'
'아, 물론 제안이야 제안. 아직 캐스팅 목록에 경수씨랑 백현씨 넣진 않았어 나 혼자 생각이야. 좀 꺼려지면 거절해도 전혀 문제없고.'
'........'
'어려운 제안인거 아니까 충분히 고민하고 연락줘.'
사실은 아직까지도 가끔 밤에 잠들기 전, 애들은 잘 지낼까? 하며 제게 묻는 경수가 생각났다. 마음 약한 그를 알기에, 굳이 타오가 친엄마가 없다는 사실을 숨겼었는데...백현은 두손으로 마른세수를 했다. 점점 자라나는 제모습을 두려워하던 변백현을 알고 조용히 다시 뒤로 숨어주던 도경수. 타오의 사정을 이야기한다면 또 얼마나 마음 아파할까 백현은 걱정이었다. 여론이 가라앉은지도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 다시 대중들에게 우리의 연애를 노출해도 되는걸까. 백현은 조용히 한숨을 삼켰지만 이미 알고있었다.
어차피 고민하면 뭐할까. 도경수가 하자는대로 할 수 밖에 없을텐데.
"응, 백현아."
-회사야?
"아니. 종대가 갑자기 미팅 취소해서 나 그냥 집에 가려구."
-새끼가 사람 똥개훈련시키나 그럼 진작에 말했어야지. 장난해?
"..그렇긴한데..종대 되게 급해보여서 그냥 알았다고 했어."
-그럼 그냥 거기있어.
"응? 왜?"
-왜긴 왜야. 너 데리러 가려고 그러지.
"너 벌써 다 끝났어?"
-어. 전화하면 나와. 회사 앞으로.
"알게쪙."
-..도경수.
"응?"
-......
"왜 백현아?"
-아니..사랑한다고.
"뭐야아-이미 알고 있거든?"
-알아도 또 들어 임마.
"...."
-사랑해.
".....백현아?"
-조금만 기다려.
제가 먼저 끊길 기다리는 백현을 알아 조용히 먼저 종료버튼을 누른 경수는 조금 의아해졌다. 백현이가 무슨일 있나? 평소에도 입에 달고사는 사랑한다는 말인데...그나저나 종대는 무슨일인데 그렇게 급하게 갔을까. 오랜만에 생각스킬을 시전했더니 벌써 피곤한것 같기도 하고. 에이-나도 변백현 사랑하지 뭐.
어깨를 한번 으쓱한 도경수는 이제 오늘 저녁은 백현과 뭘 먹을까 하는 고민을 시작했다. 역시 단순한게 최고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