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에 단 하루 24시간 동안 모든 범죄가 정당화 된다.
하루만 딱 하루만 사랑하는 동생아. 딱 하루만 버티자. 민석은 기억해내고 싶지 않은 기억들을 찬찬히 풀었다. 복도에서 들려오는 어린 여자의 목소리에 우리는 집 문을 열어주었고, 따라들어온 미친 개같은 새끼가 그 여자와 부모님을 덮쳣다. 어머니의 떨리는 속눈썹을 보고는 재빨리 안방으로 뛰어가 장롱속에 나와 여동생은 손을 잡고 숨을 죽이고 있었다. 거실과 베란다 그리고 안방이 연결된 터라 베란다 문만 조금 열면 거실의 소리가 다 들렸다. 목소리가 또렷이 안방을 울렸다. 여동생의 귀를 막아주고 나 또한 입술을 꾸욱 깨물었다. 날카로운 무언가가 철에 부딪히는 소름끼치는 소리가 들리자 여동생은 끝끝내 소리내어 엉엉 울고 말았다. 뚝뚝 떨어지는 눈물을 닦아주는 동안 그 사람이 안방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리고는…….
“베란다...문 잠갔어..?”
숨이 턱 하고 막혀 민석의 혀를 찔렀다. 여동생의 눈 초점이 이리저리 흔들린다. 뒤를 돌아보면 어떤 상황이 펼쳐질까. 5월 1일이 시작한지 어연 2시간이 지났다. 베란다를 등지고 여동생의 어깨를 잡고 있던 민석의 초점또한 강하게 흔들렸다. 여동생은 눈을 질끈 감고서 목을 뒤로 젖혔다.
“씨발”
좆같은 리벤지 데이. 시발 말이 리벤지. 사실은 살인에 가까웠다. 좋게 포장해서 복수? 아니 지금 그들은 아무 원한도 없고 관계도 없는 사람들을 무작위하게 죽여나가고 있다. 부모들은 아이들의 성적 라이벌을 하나 하나 죽여가고 어떤 또라이 같은 새끼들은 정의를 실현한다며 구두를 신고 차에타는 여성들을 죽이는 미친 새끼들도 난무했다. 그리고 지금 내가 고개를 천천히 돌렸을 때 창문에 기대어 뒷모습을 보이고 있는 사람은 우리 옆집. 착하고 성실하기로 소문난, 그리고 나와 학창시절 동기였던 김루한. 벌써부터 아랫입술이 당겨온다. 발끝이 쥐라도 난 듯 싸한것이 꼭 타버려 없어질 것 같았다. 천천히 기대있던 등을 떼더니 앞모습을 보인다. 여전히 앞머리가 네 눈을 찌르는구나. 옆집으로 이사와 얼굴을 잘 보여주지 않았다. 루한은 그저 집에 잠만 자러오는 사람과 같이 마치 여숙을 하는것 처럼 바쁜일상을 지내고 있었다. 바로 옆집에 살면 소음이라도 들릴법한데 그 흔한 물소리도 잘 들리지 않았으니 루한이 바쁘게 생활을 한다는건 한번에 알수있었다. 여동생은 이빨을 딱딱 부딪혀가며 민석의 손목을 잡았다.
“오빠, 저..저 오빠 착한 오빠잖아. 저 오빠 우,우리 도와주러 온거잖아 그렇지?”
베란다 문이 드르륵 열린다. 희게 미소를 띠며 집안으로 한 발자국 들어왔다. 민석은 그에게 시선을 거둘 수 없었다. 여동생이 말을 해도 여동생의 눈을 보지않았고 오로지 루한의 얼굴과 행동에만 눈을 돌렸다. 혹시나 흉기가 있을까봐 찬찬히 몸을 훑어보는것과 함께. 루한은 슬쩍 입꼬리 당겨 웃었다. 한참 말이 없던 루한은 민석의 목에서 침이 넘어가는 걸보고 나서야 입술을 뗐다.
“민석아, 오늘 무슨 날.”
“…….”
“너 힘도 없고 징그러운거 못 보잖아. 걔다가 사교성도 안좋아서 친구도 없고. 도와주려고. 혼자있으니 적막하니 별로네”
표정하나 변하지 않으며 말을 하는 루한의 입술에서 화사하게 웃음이 번졌다. 좋다. 의도는 아주 좋다. 그런데 루한. 도와주려면 그냥 현관문으로 들어오지 왜 베란다로 들어왔어. 마치 범행현장에서 발각돼 미친개마냥 말도 안되는 변명 늘어놓는 범죄자 같이. 리벤지 데이. 천천히 민석의 가슴언저리에서 느껴져오는 분노와 두려움이 잔뜩 섞여 알 수 없는 표정을 만들어냈다. 루한의 손가락질 하나하나 다 의심이 들었다. 왜 저런 손가락질을 하고 저런 말투로 자신에게 말을 하는가. 심지어는 왜 앞머리가 눈을 찌를때까지 자르지 않았는가. 학창시절 더러운건 죽어도 못보던 녀석이 제 앞머리를 왜 자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