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r Majesty
stigma ; 오점
“…그러는 그쪽은 누구십니까?”
“저는 제 2 후작ㄱ….아니, 황태자빈 하윤이라고 합니다.”
무의식적으로 후작가의 여식으로 소개할 뻔했던 윤이 말을 정정했다. 낯선 작위와 자신의 앞에 있는 낯선 이. 입궁한지 오래 되지는 않았지만 낯설은 느낌을 떨쳐낼 만큼은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니었나 보다. 속으로 생각한 윤이 앞에 서 있는 가면을 쓴 남자를 쳐다보고 말했다.
“저도 말했으니 그 쪽도 말해주세요, 누구십니까.”
“…….”
“누구시길래 이렇게 야심한 밤에 황태자궁을 돌아다니십…”
그 때, 앞에 서 있던 낯선 남자가 제 쪽으로 한발자국 다가왔다. 그에 몸을 한발자국 물린 윤이, 가면 사이로 보이는 눈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때는 눈도 못마주치던 이가.”
“예?”
낯선 이의 혼잣말에 아무래도 수상하다 싶어 황궁 수호대를 부르려던 순간.
“나는 김… 아니, 월아라고 불러다오.”
“예?”
“이름은 미안하지만 밝힐 수가 없구나. 내가 밝혀지면 네가 곤란해진다.”
“그 무슨… 아니, 그런데 왜 반말을 하십니까, 공자?”
뜬금없는 말에 당혹스럽기도 잠시, 계속되는 짧은 말에 기분이 상한 윤이 따지듯 묻자, 남자가 잠깐의 망설임도 없이 웃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답했다.
“죄송합니다, 태자빈 전하. 무례를 용서하시지요.”
공손해진 투에 이리 쉽게 고쳐질 줄 몰랐다는 듯 되려 놀란 윤이 당혹스러움이 묻어난 목소리로 말했다.
“아닙니다, 공자. 사정상 이름을 밝힐 수 없다면 이 야심한 밤에 황태자 궁, 특히 왜 이 근처에 계셨는지는 답해주시지요.”
당혹스러움이 묻어 있지만 강단 있는 윤이의 목소리에 태형이 웃음기 어린 표정으로 제 발치에 다가와 머리를 부비는 고양이를 보며 답했다.
“태자빈 전하께서 이 고양이한테 하는 이야기를 우연히 들었습니다. 황궁은 외로운 곳이다, 하는 말씀이 꼭 제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요. 그러니 우리,”
긴 다리로 성큼성큼 다가와 윤이의 눈 앞에서 씩 웃은 남자가 말했다.
“친해질까요. 넓고 외로운 궁, 친구라도 있으면 덜 외롭지 않겠습니까.”
친구라. 귀족가에서는 친분이 있는 사람이라도 그 사람을 친구라고 칭하지 않는다. 암묵적으로 거리를 두는 것과 비슷했다.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으로 변할 수도 있는 게 사교계의 생리였기 때문이었다. 평생을 대 후작가에서 자란 탓에 친구라고 말할 사람도 제대로 없었던 윤이에게 그가 건넨 친구라는 말은 위험하지만 가지고 싶은, 금단의 무엇처럼 느껴졌다. 그래서였을까. 처음 보는, 그것도 남자에게 수락의 말을 건넨 것은.
“좋아요, 대신 날 외롭지 않게 해 줘야해요. 나도 당신을 외롭지 않게 해 줄게요.”
고양이에게 잔뜩 상처받은 목소리로 외롭다고 건네던 모습과, 당황한 눈빛으로 자신에게 또박또박 말하던 모습과는 또 다른, 귀족 특유의 오만함이 담겨있는 당당한 목소리로 하는 수락에 태형이 웃으며 손을 마주잡았다. 그렇게 낯선 남자와 외로운 여자는 친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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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밤 이후로, 매일 매일 가면을 쓴 태형은 윤이의 궁으로 찾아왔다. 해가 지고, 어둠과 함께 정적이 몰려오면 그와 함께 나타나는 태형을 기다리는게 윤이의 하루일과가 되었다. 대부분의 시간은 그저 태자빈 궁의 작은 정원을 산책하며 하루 일과라던가, 윤이 후작가에 있을 때의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보냈다. 태형이 먼저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는 일은 잘 없었다. 윤이는 많은 것을 궁금해 했다. 하지만 귀족가문에서 자랐기 때문에 모든 궁금증을 꺼내진 않았다. 종종 자연스럽게 그의 이야기를 물었지만 그가 꺼낸 이야기들은 단편적인 이야기들 뿐 이였다. 부러 자신을 알게 하고 싶지 않다는 듯 선을 긋는 태형의 행동에 윤이는 캐묻지 않고 그저 이야기들을 흘려 보냈다. 태형이 원했던 대로.
그 이전보다 윤이는 밝아진 듯 했다. 그녀를 모시는 하인들은 묘하게 바뀐 자신의 주인의 분위기에 의아해 하면서도 크게 관심을 두진 않았다. 어차피 황후에게 미움 받는 사람이었으니, 깊이 엮이고 싶지 않다는 표시였다. 윤 또한 그런 하인들의 태도에 개의치 않으려고 하였으나, 태생이 모든 주변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자라던 그녀였는지라 종종 하인들의 태도는 그녀에게 가벼운 우울감을 가져다주었다. 그런 우울감을 해소해주던 것은 자신이 돌보는 고양이와, 월아라고 불러 달라며 가면을 쓰고 자신을 찾아오는 그가 전부였다. 매일 자신의 궁을 찾아주던 그가 며칠째 발걸음이 끊어져 있었다. 그것은 곧 가벼운 우울감이 그녀를 조금씩 좀먹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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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이는 낮에는 잘 외출하지 않았다. 황후가 미인을 잡아간다는 소문이 돈 이후로 미혼의 여식이 있는 가문에서는 여식의 외출을 잘 허락하지 않았는데, 윤이의 가문은 더하면 더 했지 덜하진 않았다. 윤이의 가문이 대 저택을 가지고 있는 탓도 있었다. 굳이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저택 안 정원에서 산책하는 것이 윤이의 외출의 전부였다. 황궁에 입궁하고 나서도 황태자빈 궁 밖으로 잘 나가지 않았던 것 또한, 시녀들과 하인들의 수군댐과 눈초리가 기분을 상하게 해서도 있지만 태초부터 외출을 잘 하지 않는 환경에서 자란 영향이 컸다. 그러니까, 낮에 윤이 황태자빈 궁 밖을 나가는 일은 입궁하고 나서 처음이라는 것이다.
“황비전하께서 부르십니다.”
황비궁에 속한 시종이 와서 그리 말을 전하였다. 황비전하. 제국의 법 상 황제는 황후와 황비, 후궁을 둘 수 있는데 후궁의 수는 제한이 없지만 황후와 황비는 단 한 명뿐이였다. 권력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대부분의 황후는 귀족파에서 황비는 황제파에서 내는 게 일반적이었고 이번 대의 황후와 황비 또한 마찬가지였다. 황후의 권력이 센 탓에 다른 내궁의 일원들은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조용히 살고 있었고 황비 또한 다른 내궁의 일원들처럼 존재감 없는 듯이 살고 있었다. 그런 분이 왜 황태자의 빈인 나를 부르는 거지?
윤이는 의아해 했지만 하녀들과 시녀들을 불러 치장을 부탁했다. 황궁에 들어와서는 처음인 치장이었고, 황실의 예법에 맞춰진 치장은 아무리 빈이라도 황태자의 하나뿐인 여인이라 그런지 후작가와 견줄 수 없을 만큼 화려하고 아름다웠다. 치장이 끝난 후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자신이 아니라 부정할 만큼. 가슴이 다 드러날 정도로 푹 파이고 소매와 치맛단을 장식한 레이스, 주름이 잡혀 다이아몬드로 꾸며진 남색 드레스는 절제된 화려함을 뽐내고 있었고, 그와 맞춘 목걸이와 귀걸이는 화려하게 빛나며 윤이의 아름다움을 더 부각시켜주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반 묶음한 머리카락에 꽂혀지는 장식들을 마지막으로 치창을 마친 윤이는 몇 안되는 시녀와 하인들을 데리고 황비 궁으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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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비전하, 황태자빈 전하께서 드셨습니다.”
“어서 들어오라고 하세요.”
밝지만 차분한 음성과 함께 방 문이 열렸고 앞의 테이블에 앉은 윤이 방 전체와 자신의 앞에 있는 황비를 둘러보았다. 궁 전체의 분위기와 비슷하게 , 이 방도 주인과 닮아 있었다. 차분하고 단정한, 절제되었지만 만만하지 않은 느낌. 앞에 앉은 황비가 찻잔을 건네며 말했다.
“황궁에 들어와서 공식적인 첫 외출이라고 들었어요. 황궁은 어떤가요, 괜찮은가요?”
그녀의 말은 어떠한 오만과 편견도 들어있지 않고 다정함만 담긴, 순수하게 상대의 안부를 묻는 말이었다. 윤이 찻잔을 받아들며 답했다.
“아주 넓고 화려하여 적응하려 노력 중입니다.”
가장 무난하고 간결한 답. 윤이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홍차를 한모금 머금었다.
“어….?”
“제 2 후작가에서 즐겨 마시는 차라고 하여 준비해보았어요. 황궁은 아주 넓고 화려하지만 그만큼 외로운 곳이 아닌가요. 제가 태자빈으로 입궁하여 많이 힘들어할 때 그 전대 황비전하께서도 이리하셨답니다.”
뜻밖의 장소에서 뜻밖의 방법으로 받은 위로에 윤이의 감정이 울컥, 차올랐다가 다시 가라앉았다. 별 생각 없이 머금은 차는 본가에서 자주 마시는 기문(祁門;Keemun) 차였다. 입궁하기전, 혼약이 오고가기도 전, 평화로웠던 때에 오라버니와 지금은 시집을 간 언니까지 셋이서 티타임을 가지며 웃던 때가 생각나 윤이는 가벼운 미소를 머금었다. 그 모습을 보던 황비가 다시 말을 꺼냈다.
“아까보다는 마음이 풀려보여 다행이네요. 태자비도 들이기 전 갑작스레 들인 태자빈인지라 황태자궁에서 많이 어리숙하고 시녀들 또한 그럴텐데, 궁에 말을 나눌 상대가 필요하진 않은가요?”
여전히 다정한 어투로 건네는 물음에 조금은 부담을 덜어내도 되겠다, 판단한 윤이 물음에 답했다.
“황비전하께서 추천해주신다면 더없이 가까운 이가 될 것 같습니다.”
더 없이 가까운 이라는 말에 문득 떠오른 이가 있었지만 지워낸 윤이 다시금 홍차를 마셨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황비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시종을 불러 무언가를 지시했다. 몇 분 뒤 다급한 표정으로 황비 곁에 다가온 시종이 무어라 고하자 평안하던 황비의 얼굴에 조금의 당황스러움이 비쳤다. 시종에게 무어라 말한 황비가 다시 아쉬운 투로 말했다.
“태자빈과 황자의 나이가 비슷하여 다른 귀족가의 자제들보다 친해지기 쉬울거라고 생각하여 황자를 소개시켜 주고 싶었는데… 황자가 자리를 비운 듯 하니, 그 기회는 나중으로 미루는 게 좋을 듯 해요. 미안해요, 태자빈. 대신 오늘은 저와 이야기를 나누지 않겠어요? 저는 태자빈을 처음 만나는 자리이니 태자빈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요.”
미안함을 담은 그녀의 말에 이해한다는 뜻으로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윤이 천천히 궁 밖, 자신이 살던 후작가 저택과 도성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맞는 외롭지 않은 낮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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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비는 아주 다정하고 사려깊은 이였다. 가문의 배경도 있지만 인품이 훌륭하여 궁안의 모든 사람이 황비를 좋아하니 아무리 내궁 최고의 자리에 있는 황후라도 감히 어떻게 하기 힘들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을 판단하여 자신에게 득인지 실인지 판단하려고 하는 버릇이 이렇게 또 나타났다는걸 느낀 윤이 자신을 배웅하는 황비에게 조금의 미안함을 담아 인사하고 황비궁을 나섰다. 벌써 해가 지고 있었다. 달이 뜬 하늘을 며칠째 얼굴도 보여주지 않는 월아가 생각났다. 바쁜가. 고작 삼 사일 밖에 되지 않았지만 자신의 말을 묵묵히 들어주던 그가 생각나 윤이는 궁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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슥, 스윽.
탁, 타다닥.
이게 무슨 소리지. 하지 않던 외출을 하고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쓴 탓인지 금세 피곤함을 느낀 윤이는 태형을 기다리던 것을 끝내고 잠자리에 든 참이었다. 오늘은 고양이랑도 많이 못 놀아줬네. 내일 많이 놀아줘야겠다. 점점 자신을 잠식하는 곤함에 몸을 맡기고 완전히 빠져들 무렵, 정원에서 낯선 이의 소리가 들렸다. 그 순간 윤이의 온 감각이 예민해졌다. 누구지, 위험한 자 인가. 이 궁 안에서 자신을 좋아하는 이보다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 이가 더 많다는 것을 아는 윤이는 침대에서 일어나 가벼운 겉옷을 걸치고 방문을 열어 정원으로 나갔다. 하지만 그 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바람 소리라고 하기에는 인기척이 분명했는데. 아무도 없는 정원을 가만히 응시하던 윤이 고양이가 사라졌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여기에 와서 정을 많이 주던 아이인데. 윤이는 맨발로 정원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고양이를 찾았지만,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때였다.
“이 아이를 찾는거에요?”
“예, 응, 으어아으응?!?!?!?!??!”
낯선 이의 목소리에 쪼그려 앉아있던 윤이 뒤를 돌아보곤 괴성을 질렀다. 정복을 입지는 않았지만 누가 봐도 나 황자요, 하고 온몸으로 나타내는 남자가 킬킬 웃으며 장난기 가득한 얼굴을 하고 한손으로 고양이를 안고 허리를 숙인 채 주저 앉은 자신과 눈을 맞추고 있었다. 정해진 시녀와 하인들을 제외하고는, 아 또 한사람을 제외하고는 출입하지 않는 궁에서 또 다시 낯선 사람을 만나니 놀라는 건 당연했고, 그 사람이 남자에 황자인 것 같은 예상을 들게 하는 사람임은 윤을 더 놀라게 하기 충분했다.
“여기, 이 궁에 사는 사람이면, 황태자빈 전하?”
“아, 음, 네. 맞아요. 황태자빈 하윤이에요. 그쪽은…황자 전하?”
겨우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흙 묻은 옷을 털어내며 답했다. 자신의 질문에 씩 웃으며 그가 말했다.
“역시 후작가의 여식 답네요. 맞아요, 황비 소생 궁의 유일한 황자 전 정국이라고 해요. 이 아이는 태자빈 전하께서 키우는 아이인가요?”
“네 맞아요, 어떻게 황자 전하께서 그 아이를 데리고 있는건지… 고양이는 낯을 많이 가린다고 하던데.”
“밤 산책….이라고 해둘게요. 밤산책을 하고 있는데 배가 고팠나봐요, 제 발치에 와서 우는 아이에게 고기 조금 내어주니까 잘 따르던데요. 어디서 왔나, 주인을 찾아주고 있었어요. 그나저나 황태자빈 전하,”
고양이를 쓰다듬다가 자신에게 건네려 다가오던 정국이 멈칫, 한다. 그제서야 제 차림새를 내려다 보니 주저 앉아있다가 급하게 일어나느라 걸치고 있던 겉옷은 벗겨져 있었고, 그 때문에 살갗이 비칠 정도로 얇은 잠옷에 몸의 선이 다 드러난 채였다. 순식간에 윤이의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제 2 후작가의 여식에, 황태자빈인 자신의 지위에 걸맞지 않은 부끄러운 차림새였다는 것을 인지했기 때문이다. 유난히 밝은 달빛에 다 드러난 윤이의 표정을 보던 정국이 장난기 가득한 표정을 하곤 고양이를 윤이의 품에 안겼다. 그리고,
“어, 으응? 황자 전하, 뭐하시는거에요?!?”
그대로 윤이의 몸을 들어올려 안아 방안으로 옮겼다. 맨발인데 이 편이 낫지 않을까 해서. 방 안 의자에 앉힌 정국이 놀란 윤이의 얼굴을 보고 변명하듯 말했다. 불을 켜지 않아 창에 들어오는 달빛만 방 안을 비추고 있어 꽤 어두운 실내에 앉아있던 윤이 꼬물꼬물 움직여 겉옷을 가져와 제 몸에 덮었다. 어색한 정적이 흐르고 잠시간 생각하던 윤이 몸을 일으켜 불을 켜고 간단한 티 세트와 과자를 내왔다. 어짜피 야심한 밤에 내보낼 수도 없고, 무엇보다 낮에 만날 뻔했던 정국에 대해 호기심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인적이 드문 궁이라 누가 볼 수도 있다는 우려도 없었기에 자연스럽게 정국을 앉게 한 뒤 차를 건넸다.
“여기까지는 어떻게 오셨습니까? 황태자궁에서도 구석진 곳인데.”
“워낙 돌아다니기를 좋아해서, 길 잃을 걱정은 안하고 이리저리 다니다 보니 여기던걸요.”
“아, 그래서 낮에 황비전하께서 찾으셨을 때도 안계셨구요?”
웃음기 섞인채로 묻는 말에 정국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황태자빈께서 어떻게 아세요?
“오늘 낮에 황비 전하를 뵈러 갔거든요. 황비전하께서 저와 음…황자 전하를 친하게 지내게 하고 싶다고, 부르시려고 하셨는데 자리에 안계셔서 미뤄졌거든요. 이렇게 마주치게 되니, 우연이네요.”
정국을 놀리듯이 말하는 윤에 정국의 귀가 붉게 물들었다. 처음의 그 말 잘하고 자신을 불쑥 안아올리던 황자는 어디 가고 숫기 없고 귀여운 막내 동생 같은 모습에 윤이 맑게 웃었다. 놀리는데 신이난 윤이의 이런 저런 말에 뭐라 대꾸도 못하고 있던 정국이 말했다.
“계속 황자 전하라고 부르실건가요, 황태자빈 전하?”
“아? 당연한 호칭 아닌가요?”
윤이의 말대로 당연한 호칭이었지만 정국은 왜 인지 모르게 이 여자와 가까워지고 싶었다.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판단이 아니라 그냥 본능 같은거었다. 몇마디 나누지 않아도 주변사람을 밝게 해주는 사람. 이 사람에게 내가 편해지고 싶다, 이 사람이랑 가까워지고 싶다. 그런 생각이 정국의 머릿속을 지배했다. 그래서 평소의 정국이라면 하지 않는 말들을 늘어놓았다.
“어머니께서도 저희 보고 친해졌으면 좋겠다고 하시고, 제가 알기로는 저와 황태자빈 전하가 동갑이니 황태자빈 전하는 어떨지 몰라도 저는… 말 놓고 이름을 불렀으면 하는데요. 아시다시피 황궁사람들과는 그럴 수 없지 않습니까.”
그 황궁 사람들에 자신은 포함되지 않는건가. 고개를 갸웃 저은 윤이 늘 그렇듯 빠르게 계산하려다가, 앞에서 해사하게 웃는 정국을 보고 계산을 멈췄다. 막내 동생 같은 귀여운 얼굴에 계산적인 판단을 하기 미안해졌기 때문이었다. 잠깐 고민하던 윤이 낮에 만났던 황비 전하를 생각하곤 정국의 말에 답했다.
“좋아요, 정국…아. 사람들이 있을 때는 무리겠지만 둘이 있을 때는 편하게 해요.”
“그러자, 윤아.”
중간이 없어. 아까의 숫기 없던 모습은 또 어디가고 처음에 봤던 모습처럼 씩 웃으며 제가 준 차를 마시는 정국을 보며 윤이는 생각했다. 그래도 나쁘다는 느낌 보다 꽤 괜찮은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어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야심한 밤의 티타임은 이렇게 흘러가고, 그렇게 윤이는 궁에 조금씩 뿌리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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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담을 뭐라고 썼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간단하게 황궁과 그 주변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따로 편수로 내기에는 지루해지고 흐름을 깰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서, 책이었다면 부록 정도로 첨가했겠지만 글 연재 특성상 그렇게 할 수는 없으니까요. 더보기를 클릭하셔서 읽어주시면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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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궁은 제국의 수도 중심에 있습니다. 내궁과 외궁 = 외성으로 나뉘는데, 정확히 하자면 내궁이 황궁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황실 사람들이 사는 곳이고 크게 황제궁, 황후궁, 황비궁, 황태자궁, 그리고 황실 정원으로 나뉩니다. 황제궁은 황제가, 황후궁은 황후가, 황비궁은 황비가 거처하는 곳입니다. 정국은 황비 소생 황자인지라 황비궁 안에 자신의 처소에서 살고 있어요. 그외의 후궁들은 말 그대로 후궁, 뒷쪽에 위치한 작은 궁들에서 살아갑니다. 황태자 궁은 황태자와 그 식구들, 황태자 비와 황태자빈이 사는 곳입니다. 황제궁과 황후궁 다음으로 규모가 큽니다. 황태자 궁안에 황태자빈궁과 황태자비궁이 있다고 생각하시면 편하겠습니다. 황태자빈궁과 황태자비궁은 정해져있는 곳이 아니라 황태자빈과 황태자빈이 들어오면 이 궁을 써라, 식으로 배정되는 것인데 이번 황태자빈은 황태자 궁 안에서도 외진 궁을 배정받았습니다. 황태자궁에 딸린 정원과 황실 정원과는 가까운 편입니다. 그리고 외성, 이라고 불리는 외궁은 제국 내 4개의 공작가와 4개의 후작가의 저택이 각각 있습니다. 동북서남 순서로 1, 2, 3, 4 공작가가 있고, 대각선 방향으로 1,2,3,4 후작가가 있습니다. 왜 같은 귀족인데도 외궁 안과 밖에 저택이 있냐고 하면 저 8개의 귀족가가 제국의 핵심귀족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본가인 제 2 후작가도 외성 안에 위치해있습니다. 사람 사는 곳이니 상점들과 뭐... 사람 사는 도심에 있는 대부분의 것들은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외성 밖은 그 외의 귀족가와 평민들이 사는 곳입니다. 이곳에서 본격적인 상업시설, 편의시설 같은게 다 있습니다. 공원도 있도 광장도 있고... 특별한 경우 시장도 열립니다. 그리고 외성의 뒷편, 북쪽에는 그렇게 낮지많은 않은 언덕이 있습니다. 산이라고 하기엔 애매한 그런 언덕이요. 이렇게 간단한 제국의 수도 소개를 마치겠습니다. 더 덧붙힐 부분이 있으면 추후에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