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진의 얘기를 듣고 난 후 정국을 간호해 주다가 밤이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정국을 간호하고 있을 때도, 집에 오는 길에도, 샤워를 하고 난 이후에도 내내 석진이 해준 얘기만이 생각났다.
소년교도소에 들어갔던 건 서류에 쓰여있어서 알고 있었지만 설마 어머니를 위해 누명을 쓰고 대신 들어갔던 거라니.
내 과거를 듣고 있을 때에는 표정이 심각해지더니 정작 본인 얘기할 때에는 담담했던 석진이었다.
그나저나 조금 신경 쓰였던 부분이 있었다.
석진이 소년교도소에서 수감되었을 때 같은 방을 쓰고 있던 사람의 말이 신경 쓰였다.
'성폭행'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는 흠칫했다. 혹시 나와 연관된 사람일까, 싶어서.
주동자 새끼는 돈 많아서 살아남고 우리 같은 애들은 돈 없어서 여기 있고.
나와 연관된 사람이든 아니든 돈만 있으면 벌받아야 할 사람들도 다 분간되는구나.
그런 생각에 한숨이 절로 나왔고 침대에 누워 눈을 감으며 석진과 나눴던 대화를 곱씹어 봤다.
' 어머님 보고 싶지 않아? '
' …글쎄. 하지만 궁금하긴 해. '
분명 석진은 어머님이 보고 싶으실 거다. 두 사람이 만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다 불현듯 떠오르는 사람이 있어 감았던 눈을 뜨고 핸드폰을 들었다.
분명 그분은 알고 계실 거라는 생각에 곧바로 교수님께 전화를 걸었다.
[ 여보세요? ]
" 교수님, 저예요. "
[ 이 시간에 무슨 일이야? ]
"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
[ 뭔데? ]
" 혹시… 석진이 어머님 어디 계시는지 아세요? "
[ 당연히 알고 있지. ]
" 어디 계세요? "
교수님께 석진이 어머님이 계시는 곳을 물어봤고 잠시 후 통화가 끊기며 문자가 왔다.
그 문자는 석진이 어머님이 살고 계시는 주소였고 나는 다음날 아침이 되자마자 그곳으로 찾아갔다.
문자에 적힌 주소로 가자 두메산골에 위치한 작은 집 한 채가 나왔다.
유난히도 조용한 주변 분위기에 정말 사람이 있는 걸까?라는 의문이 생겼다.
초인종을 눌러보고 문을 두드리며 계시냐고 물었지만 조용했다.
아무도 없나, 싶으며 차로 돌아가려는데 때마침 집으로 들어오던 어떤 아주머니와 마주치게 되었다.
" 누구세요? "
" 아… 안녕하세요. 혹시 실례지만 김석진이라는 사람을 알고 계시나요? "
" …누구라고요? "
" 김석진이요. "
내 물음에 아주머니는 점점 눈이 커지더니 이내 빠르게 눈물이 고이셨다.
그 모습을 보던 나는 직감적으로 알아냈다. 저분이 석진이 어머님이시구나.
" 안녕하세요, 저는 김석진의… 친구. 김여주라고 합니다. "
심리상담사라고 소개하는 것보다 친구라고 소개하는 게 더 좋을 듯 싶어서 일부로 중간에 말을 바꿨다.
" 석진이 친구라고요? "
" 네. "
" 우리 석진이 잘 지내고 있어요? 아픈 데는 없어요? "
"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어요. "
어머님은 그 대화 이후로 계속 우시기만 하셨다. 그런 어머님을 한동안 달래드리기만 했다.
조금씩 진정이 되신 듯 눈물을 멈추시는 어머님은 내게 석진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물으셨다.
" 그 집에서 동생들이랑 싸우지 않고 사이좋게 잘 지내고 있어요. "
" 동생들이요? "
" 네. 여섯 명의 동생들이랑 같이 살고 있어요. "
" 잘 웃어요…? "
" 잘 웃고 잘 챙겨주며 우리한테 큰 힘이 되어주고 있어요. "
나의 대답에 다행이라며 다시 눈물을 보이는 어머님. 쉽게 눈물을 멈추지 못하는 어머님을 달래줄 수밖에 없었다. 얼마나 보고 싶을까…
울고 계시는 어머님의 손을 맞잡으며 눈물을 멈추실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기다리려고 했는데 금방 진정되셨는지 손을 들어 눈물을 훔치며 내게 무슨 일로 찾아왔냐며 물으시는 어머님이셨다.
그런 어머님을 보며 조금 뜸 들이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떼어냈다.
" 석진이… 보고 싶지 않으세요? "
" 석진이는 절 원망하고 있을 거예요… "
" 그럴 리가요… "
" 알고 계실지 모르겠지만 사실 저는 애 아빠를 죽인 살인자예요. 저 대신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갔다 나온 애예요. 그래서 절 보고 싶어 하지 않을지도 몰라요. "
" 아니에요 어머님, 석진이도 많이 보고 싶어하고 있어요. "
" 석진이가 저를요…? "
" 네. 비록 제게 그런식으로 얘기 한 건 아니지만 누구보다 어머님을 보고 싶어 하고 있어요. "
" … "
" 혹시… 만나보실 생각은 있으세요…? "
" 저야 늘 보고 싶죠… "
씁쓸한 웃음을 보이며 고개를 떨구는 어머님을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둘을 만나게 해주고 싶다고.
" 어머님, 제가 석진이와 만날 수 있게 도와드릴게요. "
" 그게 가능할까요…? "
" 당연하죠. 어머님께서는 너무 걱정 마시고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
"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해요… "
나의 말에 연신 감사하다며 고개를 숙이는 어머님이셨고, 나는 그런 어머님께 아니라며 손을 더 꼭 잡아주었다.
석진의 어머님을 만나고 숙소로 오는 길 내내 석진에게 어떤 말을 해야 할지 고민했다.
그 고민은 숙소에 도착해 현관 앞으로 들어설 때까지 계속되었다.
비밀번호를 누르려고 손을 올리는데 동시에 현관문이 열리며 남준이 나왔다.
" 어… 어디 가? "
" 네. 잠시 갔다 올 데가 있어서요. "
남준의 대답에 대화 대신 옷차림새에 눈이 갔다.
" 갑자기 웬 정장이야? "
" 중요한 곳에 가는 거라서요. "
" 어디 가는 건지 물어봐도 돼? "
나의 물음에 미소를 지어 보이더니 같이 갈래요?라고 묻는 남준이었다.
어디 간다고 정확히 얘기해주지 않는 남준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남준을 따라서 간 곳은 전에 내가 한번 들렸던 꽃집이었다.
남준은 30송이의 하얀 장미를 사더니 역전으로 향했다.
역에 도착한 남준은 순천행 기차표 2장을 뽑았다.
" 우리 어디 가는 거야? "
" 대전이요. "
" 대전? 대전은 무슨 일로 가는 건데? "
" 아주 중요한 분을 만나야 해서요. 걱정 마요, 금방 돌아올거예요. "
그 말을 하며 먼저 플랫폼으로 내려가는 남준이었고, 그런 그의 뒤를 따라 내려갔다.
***
기차를 탄지 1시간 만에 대전에 도착한 우리는 곧바로 택시를 타고 어딘가로 향했다.
택시를 타고 갈수록 주변에 있던 건물이 하나둘씩 보이지 않게 되더니 조금씩 나무와 숲이 모습을 드러냈다.
고개를 옆으로 살짝 돌려 남준의 얼굴을 보는데 뭔가 깊이 생각하는 모습에 말없이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10분 정도 택시를 타고 오니 추모공원이 나왔다.
" 중요한 분을 만나는 곳이 여기야? "
" 네. "
남준의 대답과 동시에 그가 들고 있던 꽃으로 시선이 갔다.
그러다 설마…싶으며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다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런 날보다 생긋 웃더니 익숙하게 공원 위쪽에 위치한 산소 쪽으로 올라가는 남준이었다.
말없이 남준의 뒤를 따라 올라가는데 어느 산소 앞에 서더니 제단 위에 하얀 장미가 들은 꽃다발을 조심스럽게 올려놓는 모습이 보였다.
조용히 그의 옆에 서서 비석에 적혀있는 이름을 확인했다.
그때 산소에 시선을 고정한 채 날 향한 남준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 제가 보육원에 있을 때 유일하게 내 편이셨던 선생님이세요. "
" …보육원? "
" 저는 어렸을 때 따돌림을 심하게 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 마음고생이 되게 심했었어요. "
" … "
" 제가 일곱 살 때 보육원에 새로운 선생님이 오셨는데, 그때 절 많이 도와주신 분이 바로 이분이세요.
선생님은 되게 절 아껴주시고 잘해주셨는데 그때 그 모습이 딱 지금의 누나 같았어요. "
" 나…? "
내 물음에 남준은 고개를 돌려 날 내려다보며 생긋 웃어 보였다. 그러다 이내 올라간 입꼬리가 천천히 내려오는 모습으로 변하였다.
" 근데 제가 열세 살이 되던 해에 선생님은 비 오는 날에 교통사고로 돌아가시게 되셨어요. 사실 그날이 선생님의 생일이셨는데… "
" … "
" 이젠 선생님의 생일뿐만 아니라 기일까지 챙기게 되었어요. 오늘이 바로 그날이고요. "
" … "
" 사실 그동안 한 번도 찾아뵙지 못했었어요. "
" 왜? "
" 선생님을 뵐 낯이 없었거든요. "
그 말을 하며 남준은 고개를 숙였다.
" 제가 떳떳하게 살아오지 못해서요. "
" … "
" 누나, 제가 어쩌다 한 선생님은 만나게 되고 그 집에 들어가게 된 줄 아세요? "
" … "
" 표정을 보니 이미 들었나 보네요. "
" …일부로 캐내려고 하지는 않았어… "
" 상관없어요 이젠. "
" … "
" 누나한테 사실대로 다 말해줄 거거든요. 선생님한테도 그간 제게 있었던 일들을 말해주고 싶고. "
방금 내가 잘못 들은 건 아닌가 싶어 남준에게 다시 물어봤다.
사실대로 말해준다고? 그러자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과거를 내게 알려주었다.
내게 해준 남준의 과거사는 석진만큼 충격적이었다.
보육원에서부터 마약 밀매, 그리고 교수님을 만나 지금의 애들과 함께 지내기까지.
그동안 나만 힘들게 살아온 줄 알았지만 각자 살아온 방식이 다를 뿐 받아온 상처는 상상 그 이상들이었다.
남준의 얘기를 듣는 내내 마음이 아팠던 나와는 다르게 남준은 중간마다 피식 웃으며 얘기를 이어갔다.
예전에는 정말 살기 힘들었을 텐데 지금은 많이 호전되어 이런 얘기를 내게 해줄 수 있는 남준이 그저 고마웠다.
" 그런 얼굴로 보지 마요. 저 이제 정말 괜찮으니까 이런 얘기해주는 거예요. "
" … "
" 그러니까 그렇게 보지만 말고 잘했다고 칭찬 좀 해줄래요? "
" …잘했어 남준아. "
나의 말에 다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마주하는 남준이다.
" 선생님이 칭찬해주던 날이 생각나네요. "
그날 남준은 내게 과거사를 얘기해주며 새롭게 시작하기로 했다.
남준은 그날 이후로 조금씩 인생에 변화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조용히 침대에 기대 책을 보는 윤기.
책장을 한 장씩 넘기며 집중해서 책을 보는데 문득 그녀의 얼굴이 떠올랐다.
시선을 들어 허공을 보던 윤기는 천천히 책을 덮었다.
' 혹시 기억나요? 첫 만남 때와 계단에서 절 밀었던 그날이. '
얼마 전 다 함께 계곡으로 여행 갔던 날, 그네에 앉아있던 윤기의 옆에 앉아있다 지난날에 대해 묻는 그녀가 생각났다.
그날 일은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땐 정말 마주하기 싫었고 하루빨리 이 집에서 나가길 바랐으니까. 하지만 그녀는 지금까지 꿋꿋하게 버텨왔다.
그가 그녀를 보는 시야가 달라지기 시작했던 전환점은 바로 자신의 방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보게 된 이후였다.
지금까지 그들의 집에 왔던 여자들과는 조금 다른 모습을 보여줬던 그녀.
그런 그녀의 행동은 윤기마저 당황하게 만들었다.
그때 이후로 그녀가 어떻게 행동하는지 묵묵히 지켜보기만 했다.
모두에게 진심 어린 모습들을 보여주던 그녀의 모습에 윤기는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그녀에 대한 경계심을 풀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계곡도 함께 갔던 것이고 펜션에서 그녀와 마주쳐도 피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그 여자가 이 집으로 온 지 거의 4개월째네.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던 윤기는 1층 거실에서부터 들려오는 웃음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1층에는 아마 자신을 제외하고 모두가 함께 있을 것이다. 그녀도 포함해서.
잠시 생각에 잠기던 윤기는 들고 있던 책을 침대 위에 내려놓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문 앞으로 걸어가 손잡이를 잡은 채 가만히 있었다.
이 문을 열고 나갈까 말까 고민하고 있는데 1층에서 지민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 누나 거기서 뭐 해요? 설마 윤기형 방에 들어가려고요? "
" 저녁 준비 다 됐으니까 불러야지. "
" 같이 안 먹을 거 같은데… "
" 그래도 물어봐야지. "
" 그럼 제가 물어볼게요, 누나는 그냥 내려와요. "
" 어… 아니, 괜찮을 거야. "
" 안 괜찮을 거 같은데… "
" 괜찮아. 어차피 나는 이제 가야 하니까 인사라도 해야지. "
방문 앞 난간에서 대화하고 있는 것인지 1층에 있는 지민이의 목소리보다 그녀의 목소리가 좀 더 선명하게 들려왔다.
최근 들어 그녀는 윤기에게 적극적으로 행동하고 있었다.
지나가다가 눈이 마주치면 웃으며 인사하고 가끔 먼저 말을 걸기도 하고.
윤기 역시 그런 그녀를 아주 무시하지는 않았다.
예전보다 그녀와 눈을 마주하는 시간이 길어졌고 먼저 인사를 하면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며 맞인사를 해 보였다.
윤기의 마음이 조금씩 변해가고 있었다.
" 먼저 주방에 가 있어. "
그녀의 말에 가만히 있던 윤기는 잡고 있던 손잡이를 돌려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 손을 들어 노크를 하려던 그녀가 자신의 앞에 서 있었다.
갑자기 열린 방문에 놀란 듯 그녀의 얼굴은 조금 놀란 표정으로 지어져있었다.
그 모습에 윤기는 피식거리며 웃음이 나왔다.
" 어… 어… "
" 뭐 해? "
" 어… 그… 저녁 먹으라고… "
윤기의 물음에 그녀는 어안이 벙벙해진 얼굴로 조심스럽게 대답하였다.
그러다 이내 정신을 차린 듯 원상태로 돌아온 얼굴로 이어 말하는 그녀였다.
" 저는 이제 집으로 돌아갈 거예요. 식사 자리에선 저는 없을 거니까 편하게 애들이랑 같이… "
" 집에 간다고? "
" 네… "
그녀의 대답에 잠깐 허공으로 시선을 보내는 윤기. 잠시 말없이 생각하는 모습을 보이더니 다시 그녀의 얼굴을 보며 입을 여는 윤기였다.
" 그냥 있지. "
" …네? "
" 바쁜 거 아니면 저녁 먹고 가라고. "
" 그럼 윤기씨는… "
" 나도 있을 거야. "
그 말을 하며 그녀를 지나쳐 1층으로 내려가려는 윤기.
윤기의 말에 잠시 멍하니 서 있더니 천천히 고개를 돌려 계단을 내려가고 있는 그를 보는 그녀였다.
그런 그녀의 시선을 느낀 듯 1층으로 내려가던 윤기는 잠시 자리에 멈추더니 그녀를 보지 않은 상태로 말을 이어나갔다.
" 나도 처음부터 여자를 싫어한 건 아니라고 했었잖아. "
" … "
" 잊은 건 아니겠지? "
윤기는 그 말을 끝으로 1층으로 내려가 주방으로 들어갔다.
모두가 주방에 모여있었지만 여전히 그의 방 앞에 서 있던 그녀는 멍하니 서서 좀 전에 윤기가 자신에게 했던 말을 곱씹어 봤다.
그러다 서서히 그의 말이 이해가 된 듯 그녀의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다.
위험한 방탄소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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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밤은 되게 선선하고 시원하네요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시원했으면 좋겠네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