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의 지루한 일상에 심장도둑 '서영호'를 심어드립니다.
1.
그러니까 내가 그이...라고 해도 또라이처럼 보이진 않겠지...? 완벽한 호칭을 정할 수도 없는 그 옴므파탈 그이와 만나게 된 건 약 이 주 전쯤의 일임.
오전수업 끝내고 겨우 제정신으로 집에 오는데, 발에 뭐가 채여서 봤더니 세상에 마치 신이 내린 선물처럼 지갑이 떨어져 있는 거임... 이건 신이 나의 도덕성을 검사하기 위해서 시험에 들게 하는 건가 싶다가도 내가 착하게 살길 바랐으면 두꺼운 지갑과 얇은 몸을 줬어야지 왜 이번 생은 그걸 반대로 주시냐긔...
그냥 지나가면 다른 사람이 주워다 쓸까 봐, 아니 원래 시민의식이라는 게 투철한 나는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서 그걸 파출소에 가져다 주기로 했음. 크으 지금 생각해보면 세상에서 제일 잘 한 일.
솔직히 이 나이까지 살면서 지구대 갈 일 0이라 들어가면서 쫄았는데 경찰 선생님들이 친절하셔서 5초만에 페이스를 되찾을 수 있었음. 난 쫄보대장이니까...^^
"아, 제가 저기 횡단보도 앞에서 지갑을 주웠는데요... 헐."
혹시 돈 빼갔다고 생각할까봐 최대한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는데 앞에 웬 키 크신 분이 서길래, 또 좀 쫄았어요? 하지만 사람하고 말할 땐 눈을 보라고 엄마가 그랬단 말이야... 그래서 쳐다봤는데, 나는 정말 왜 도둑이 경찰 제복을 입고 있지 했어.
"무슨 문제라도?"
내 심장 도둑이 왜 경찰을 하고 있지? 어쩜 이러지? 어쩌면 오늘 지갑 주운 게 기가 막힌 운명 아니었을까? 그 왜 있잖아 운명인 사람은 새끼손가락에 붉은 실 그거. 나는 돈을 좋아하니까 사랑은 지갑을 탄 거지... 무슨 말이냐고요? 나도 몰라; 그냥 좋다고.
무슨 일 있냐고 따뜻하게 물어봐 주는데 진짜 전기 난로인 줄; 이번 여름이 유난이 더웠던 건 당신의 다정함이 지구를 데워서 그런 거였군... 역시 이유 없이 덥기엔 너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더라... 북극에 있는 빙하가 다 녹기 전에 제가 이 사람의 다정함을 다 받아서 중화시키면 안 될까요. 그거 내가 제일 잘할 것 같은데.
"아뇨. 아는, 아는 사람인 줄 알아서."
"그래요? 신기하네, 누구 닮았다는 소리 들어본 적이 없거든요."
당연하지... 당신 완전 원앤온리잖아... 그리고 내가 닮았다는 건 내 미래 신랑과 닮았다는 거였어... 제 남편 상이시네요. 서영호 경찰 선생님... 아 나는 고딩때 왜 쪽팔리게 옷에 이름을 박나 했는데 자기 짝 찾아가라고 그런 거였나봐 대박쓰. (아님)
"저기... 길에서 돈 주웠는데 그냥 가지면 그거죠? 점유, 이탈물..."
"횡령이요?"
"네, 그거요."
"뭐, 법적으로는 그렇죠."
"아, 그럼 찾으면 무조건 파출소에 가져와야겠다."
금속 탐지기 들고 다닐 것임. 진심임.
2.
그 날 이후에 어떤 노력을 했냐고요? 솔직히 선한 시민상 받을 정도로 노력함; 인정 못 하겠는 사람은 엄지발가락을 입에 물고 태평양을 접영으로 건너주세요. 그것도 못할 것 같으면 감히 반박하지 말라는 소리임. 왜냐면 저 진짜 열심히 찾았거든요.
"서경사님 안녕하세요!"
"아, 이름씨. 학교 갔다 와요?"
"네."
졸업반 화석 헌내기에게 학교에 썸남 제조 불가라면 교외에서 만들면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내가 저 사람에 대해 아주 면밀히 알아내고 있는 중이란 말이야... 특별한 일 없으면 맨날 비슷한 시간에 잠깐 나와서 스트레칭 하고 들어가는 걸 알아서 그 시간대에 깔짝거리다 계급까지 알아부러쓰... 이 머리로 공부 했으면, 그닥 잘 했을 것 같진 않음.
반갑게 인사 끝내자마자 갑자기 손 내밀길래 나는 또 존나 놀라서 수줍게 잡았더니 웃으면 내 심장은 누가 책임져주지. 왜 잡아? 왜 웃어, 웃었으면 책임져! 우리 엄마도 나한테 안 웃어준단 말이에요.
"아니, 손 잡자는 건 아니었는데. 이름씨 또 뭐 찾아온 거 아니에요?"
"당신을 찾아 왔, 아니, 아니요. 오늘은 없어요..."
쪽팔렸지만 손 잡는 건 좋았다, 응. 그래. 괜찮은 혼선이었다.
요즘 나의 취미 아닌 취미는 파출소 막내라 잠깐 잠깐만 쉬는 서경사님의 쉬는 시간을 파악해 주운 물건 전해주기임. 땅거지 아니고요, 아주 작은 물건이라도 누구한테는 지구보다 소중할 수 있잖아? 그럼 내가 찾아주면 얼마나 행복하겠어, 백원짜리가 막 엄청난 이야기가 담긴 이야기일지 누가 알아...
첫 날은 백원이었고, 그 다음은 안경이었고, 그 다음은... 뭐였지 버스카드였나. 내 동기한테 제발 길에 물건 좀 떨어트려 달라고 부탁했다가 절교 당할 뻔한 적도 있었음. 먀남다.
근데 오늘은 아무리 봐도 주워갈 게 없는 거임... 내 돈이라도 주운 척 하고 가져갈까 했는데, 그럼 돈 그냥 버리는 꼴이잖아. 아쉽게도 그 정도의 사랑은 아니었나 봅니다. 내 오천원은 안 되고 내 집은 내어줄 수 있는데. 저희 집은 어떠세요? 귀여운 나도 있어.
"그래요? 그럼 계속 손 잡고 있을까요?"
"예...?"
"원래는 이름씨가 동전도 주고, 지갑도 주고 해서 손이 안 심심했는데, 오늘은 잡을게 이것뿐이라서요."
"세상에, 말도 안 돼..."
"농담이에요. 어... 이제 들어가야 되는데, 조심해서 가요 이름씨. 내일도 별 거 없으면 손만 와도 돼요."
그 길로 튀었음. 왜냐고요? 그 얼굴을 직접 보면 아마 모두가 그랬을 거야. 미쳤어 진짜 왜 그래...? 내가 먼저 직구 날리고 주접떠는 건 괜찮지만 남이 저러는 건 심각하게 문제 있다고 생각해. 제 심장은 유리 심장이라구요... 망치로 떵떵 치면 와장창 한다니까요?
그리고 심장 맞는 거 좋아하는 마조히스트 되어버림...
3.
나라는 주접의 불씨에 기름을 때려박은 건 서영호 당신이야... 절대로 다른 말하기 없어... 라는 뻔뻔한 마음으로 멘탈을 삼조팔천번 둘러매고 오며가며 확인을 해도 없어... 하늘로 솟았는지 땅으로 꺼졌는지 모습을 보이지 않는 그대... 돌아와 모르는 사람인 척 해줄테니 돌아오라고...! 엉엉
내 삶의 낙이 모습을 보이지 않은지 일주일이 지나고 나서야 제가 만날 수 있었다 아잉교. 그 때가 8시 넘어가고 있어서 약간 어두웠는데요? 난 그이를 시각이 아니라 촉으로 찾는 거라 횡단보도 앞에서 누가 옆에 섰을 때 본능적으로 알았음. 아니 이 기분은...!
"와 서경사님이다!"
문제는 내가 존나 취해있었다는 것... 아니 하필이면 친구들이랑 노익장을 뽐내겠다며 술을 들이부었던 날 마주치고 그런담... 다시 생각해도 내 자신 머리채 잡고 싶음; 썸인지 쌈인지도 모르는 사랑사람 앞에서 추태 부려보신 적 있읍니까. 전 있읍니다...
"우와 여기서 뭐해요..."
"저 퇴근하는 길이죠."
"우와, 퇴근도 해요?"
"그럼요. 이름씨 술 많이 마셨어요?"
"아니여 저 괜찮은뎅... 아 맞다! 제가! 얼마나 찾았는데요..."
"나를요?"
나 넘어질까봐 존나 불안한 눈으로 바라보던 그 눈빛을 내가 기억해. 나 그런 거 기억 짱 잘함. 4D로 기억중. 제 머릿속에서 아이맥스로 상영중입니다~ 제 주정 장면은 편집~ 후... 다시 생각해도 쪽팔리네... 내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과... 그걸 지켜보는 (할많하않)
"무단 침입 신고하려구 제가 엄-청 찾았그든요..."
"무단 침입이요? 이름씨 집에?"
"아녀! 제 마음에! 범인은 서경사니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ㅆ1발 개 미친...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ㅜㅜㅜㅜㅜㅜㅠㅜㅠㅜ 누가 나한테 맨인블랙 그 기억지우는 막대기 좀 주세요 제가 영혼을 팔아서라도 살게요 제발 제발료...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어. 난 수치를 잘 참는 줄 알았는데 no...
존나 웃긴 건 그 사람이 또라이 보듯이 본 게 아니라 존나 터져서 한참을 내 어깨를 붙잡고 웃었다는 거임. 그 때는 왜 잡아... 왜 잡아요ㅠㅠㅠ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까 웃느라 시야에서 놓칠 때 혼자 탈주할까봐 그런 듯; 한 번만 더 술 마시면 마빡에 레터링 할 거임. no 알코호올.
"아, 그랬구나. 그거 큰일이네요 진짜."
"맞져 되게 큰일인데 말할 곳이 없어가지구 제가,"
"근데 어쩌죠, 돌려줄 생각은 또 없어서."
그 뒤의 기억은 아주 조각조각으로 남아있는데 평생 안 돌려줘도 된다며 다 가지라고 주접떨다 횡단보도 불 켜지니까 엇, 저 집에 가야 돼요! 안녕히 계세요! 하고 존나 빨리 집에 옴. 사랑과 음주도 막을 수 없는 귀소본능...
하! 달이 밝네, 죽고 싶타하...
4.
그 이후로 내가 존나 피해다님. 아니 솔직히 피할만 하잖아 이건 사람이 목숨...만큼 빡센 가오가 걸린 일이라구요. 마! 내가 가오가 없지 사랑이 없나! 드라마 보다 경찰서 나오면 심장 잡고 앓아눕는사람 ㄴㅇㄴ... 나의 불찰로 견우와 직녀가 되다니 (아님) 말도 안 돼... 이건 신의 장난이야. 지갑부터가 신의 장난이야...
역시 인생은 썸이 아니라 쌈이었구나-를 주입식으로 뇌에 쳐박으며 상사병을 이겨낸지 4일 정도 됐을 때 내 일생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빡치고 무서운 일이 생김. 호호 지금도 그 때 생각만 하면 주먹이 저절로 쥐어지는 게 다시 돌아가면 원터치 포강냉쓰 가능.
과제 폭풍에 휘말린 사람은 쉽게 집에 갈 타이밍을 놓치곤 하지... 자취방에서 자고 가라는 동기의 선처 애써 무시하고 -잠은 집에서 자야 되는 사람- 지하철 막차 겨우 붙잡아 탔는데 그냥 늦으면 친구네서 주무세요 모두들. 땅은 좁고 세상은 넓지만 또라이는 면적 따지지 않고 분포하는 법이니까요. 국가는 또라이 방역 안 하고 뭐해...?
지하철에서 내렸는데 웬 아저씨가 ㄹㅇ 친근하게 말 거는 거임; 아니 제가 또래처럼 생기긴 했어도 이렇게까지 친근하게 말을 걸어버린다고요? 느낌이 쎄한 게 존나 소름돋아서 대충 무시하고 집에 가는데 계속 쫓아와ㅠ 왜 그래 진짜 당신이 고양이면 놀아줬겠지만 당신은 고얀놈이잖아 그냥...
지하철 나와서까지 쫓아와서 결국엔 점점 빨리 걷다가 달렸음. 집까지 쫓아오면 어떡해ㅠ 내 집은 나만 알아야 돼ㅠ 근데 뛰면서 생각해보니까 나 달리기 개못하잖아? 그리고 내가 뛰니까 놀아준다고 생각했는지 자기도 뛰어 야 진짜 미쳐 돌아버리는 거지...
잡힌다 잡힌다 싶었는데 갑자기 누가 턱 붙잡아서 당기는 거임. 소리 지를 줄 알았는데 너무 놀라서 억 소리도 못하고 확 돌아서 얼굴 봤는데 (미래)내 사람이 왜 여기서 나오지?
"이름씨 괜찮아요?"
"서, 서경사님?"
"응, 나예요."
그 말 듣자마자 막 눈물 날 것 같고 다리 힘은 있는대로 풀리고 나 진짜 앞으로 오함마 들고 다닐 거라고 다짐하게 된 계기... 끄덕.
그 고얀놈은 계속 뛰어갔는지 사라져 버리셨고요? 제 멘탈을 들고 튀어버리셔서 제정신으로 돌아오기 힘들었다 아잉교... 다음에 우연히 만나면 오늘 뛰느라 힘드셨을테니 긴 잠을 선물해드리리.
아무튼 내가 그 상황에서 눈물이 앞을 가렸지만 콧물은 애써 참은 이유는 서경사님이 나를 소중히 안아 토닥토닥 해주셨기 때문이에요? 저 원래 눈물빼면 콧물도 빼는 사람인데 거 참 그럴 순 없잖아요. 그이 옷은 눈물로 젖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괜찮아요, 이제 없어. 괜찮아."
당신... 약간 알로에인가...? 진정효과가 장난이 아닌데...
이 일이 있고 나서 두 가지 정도 변화가 있었는데요? 하나는 내가 진짜로 오함마를 들고 다니고 싶었으나 무거웠던 관계로 호신용 몽키스패너를 장만했다는 점이고요, 또 하나는
"서경사님 저 집에 왔어요, 오늘도 늦게 끝나요?"
"어... 여덟시 좀 넘으면 끝날 것 같아요."
매일 전화하는 사이 됐다는 것. 인간승리 그것은 나를 두고 하는 말이지. 누군가 진정한 성공의 삶을 말해달라고 하면 빌게이츠도 아니고 마크 주커버그도 아니고 고개를 들어 나를 보게 해... 유후...
-오늘 글 제목 역대급으로 이상한 것 같아요.
-실제로 경찰 선생님들 저런식으로 괴롭히면 안 됩니다.
-마지막에 쫓아오는 아저씨는 경험담임. 죽는 줄 알았어요? 모두들 밤 늦게까지 다니지 맙시다. 또라이는 사람 가리지 않고 덤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