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세상을 볼 수 있도록 주어진 눈은 두 개 지만, 나를 지켜보는 세상의 눈은 무수히도 많다.
이렇게 해. 저렇게 해. 이건 해야 해. 하지 말아야 해. 남자는 여자를 좋아하고, 여자는 남자를 좋아해.
그런데 진리야, 너도 여자고 나도 여잔데
나는 왜 네가 좋을까?
ㅇㅕㄱㅗㅅㅐㅇㅇㅕㄴㅇㅐㄷㅏㅁ
# ㅇㅏㄷㅏㅈㅣㅇㅗ
멈출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가파른 내리막길을 향해 달렸다. 그 도착지 어디쯤엔 네가 있겠지. 하는 태평함이 마임에 돋아난 양심의 윤리를 짓밟는다.
그리고 네가 건넨 인사를 받았다. '안녕.'
사실 너를 보는 내 마음은 안녕하지 못하다. 단지 인사를 나눴을 뿐인데 호흡의 박자를 놓쳐버리고 말았다. 숨을 어떻게 쉬더라. 또 감정을 속으로 꾹꾹 눌러 담고 있지만 언제 넘쳐흐를지 몰라 아슬아슬하다. 그렇게 무던히도 남모를 노력을 한다.
"전부터 친해지고 싶었어. 난 진리야 최진리! 넌 수정이 맞지?"
네가 그 노력들을 소용없게 만들고 있지만. 난 아무래도 좋았다. 조금은 촌스럽다고 여겼던 내 이름이었는데. 동그랗게 오므렸다 폈다 입술의 작은 주름 하나까지 열심히 움직이며 맑은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부르는 너를. 네 앞에서. 아, 머리가 어지럽다.
"혹시 같이 앉을 친구 없으면 네 옆자리에 앉아두 돼?"
"……그러든가."
애초에 너 아니었으면 누구에게도 허락하지 않을 자리니까.
*
연분홍색 고향이 필통엔 무엇이 들었기에 저리도 빵빵할까. 필기한 것을 보니 알록달록 색이 많기도 하다. 한참 필통을 뒤적이다가 검은색 펜 하나를 꺼낸다. 그리곤 뿌듯한지 웃음을 지어 보인다. 입 꼬리가 올라가 자연스레 저 동그스름한 하얀 볼도 올라간다. 눈 꼬리는 접혀서 아래로 쳐진다. 그 조화가 뇌리 속에 깊게 박힌다. 이 아이의 싱그러움이 내 신경 세포를 자극한다. 나는 너의 행동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눈에 다 담는다.
한 손엔 펜을 꼭 쥐고 다시금 필통을 뒤적거린다. 이번엔 찾는 게 쉽게 나오지 않는 건지 입술이 살짝 부루퉁하게 튀어나온다.
"아…없다."
"뭐가?"
"으응, 아냐……기다려봐."
문제집 맨 뒷장 여백의 페이지를 조금 찢고 무언갈 열심히 적어 내려간다. 가만히 하는 행동을 보고 있자니 가지런한 머릿결과 동그란 뒷통수에 손이 갈 것만 같아 눈을 질끈 감았다. 검은 우주에 최진리가 별과 함께 둥둥 떠다닌다. 잡고 싶어 손을 뻗었지만 금방 흩어지는 잔상에 금새 우울해 진다.
아다지오, 아다지오. 입 안에서 곱씹어 본다. 아다지오는 천천히, 그리고 매우 느리게.
그렇게 내 마음이 너한테 전해졌으면 좋겠어. 놀라지 않도록. 널 좋아하는 날 미워하지 않도록.
"자, 지금 핸드폰 내서 없잖아. 대신 잃어버림 안 돼. 알겠지?"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자 직접 내 손을 펼쳐 쥐어준다. 무엇인가 하고 보니 11개의 숫자가 가지런히 적혀있다. 글씨체도 자길 닮아 동글 동글하네. 글씨를 감상하고 있다가 이게 진리의 번호임을 안 것은 몇 초 뒤였다. 시간도, 세상도 모두 멈춘 듯 하였으나 내 맥박만은 거세게 뛰고 있다.
"꼭 문자하세용."
나는-속으론 좋아 죽겠는데 겉으론 그걸 숨기느라 표정관리를 해야해서 더 죽겠다- 혹시나 쪽지가 찢어질까 조심 조심 치마 주머니 속에 넣었다.
그리고 손끝에 닿은 휴대폰을 더 깊숙이 눌러 내렸다.
누르지 마세요 |
사람들은 참 이상해. 하지말라면 더 해. 그래서 수정이도 진리를 좋아한가봉가 그런 의미에서 신알신 하지 마! 댓글 달지 마! (반어) (찌질) 참, 오늘의 포인트는 잔망스러운 진리랍니다. 예쁘지 않아요? 전 예뻐 죽겠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