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린다.
그녀를 찾아간다.
그러나 그녀는 없다.
나는 이렇게 뒤늦게야...
소리 내어 널 부른다.
[찬열 시점]
3년 전,
아 씨, 지각이다.
쓰린 속을 붙잡으며 일어나자마자 더듬거려 찾은 핸드폰은 야속하게도 8시 반을 가리킨다.
"야 변백현. 나 깨우랬지."
인간 모닝콜이래나 뭐래나 말도 안되는 핑계를 대면서 자기 집까지 끌고 가 술을 먹이던
내 친구란 놈은 누가 잡아가도 모를 정도로 곤히 자고 있다.
이런 놈을 믿은 내가 병신이지.
얄미운 친구 놈의 엉덩이를 몇 번 발로 차주고는 서둘러 출근 준비를 했다.
해장할 여유조차 없어서 대충 세수랑 양치만 하고 나가려는데
머리에 까치집을 지어올린 변백현이 일어난다.
"..어우..야...미안하다."
"너랑은 다시는 술 안 마신다 내가."
"아 미안하다고오~ 나가면서 해장하고 가."
"해장은 무슨. 지금 가도 한 소리 듣게 생겼는데."
미안해 죽겠는 표정을 하고, 사과하는 변백현을 뒤로 하고 집을 나왔다.
나오자마자 열심히 차를 찾아보았지만,
내 차는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문득, 어제 밤 술집 근처에 차를 주차해 놓고는,
술을 잔뜩 마시고 끌려가듯이 택시를 타고 그 자식 집으로 왔었다는 게 생각이 났다.
아오, 변백현 저걸 그냥.
하는 수 없이 택시를 잡으러 큰 길 가로 나가려는데,
어디선가 은은한 커피 향이 내 코 끝을 스쳤다.
잠이나 깰 겸, 커피 한 잔 사들고 가야겠다는 생각으로
커피 향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이윽고, 아기자기한 분위기의 한 카페에 도착한다.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이 카페의 주인인듯한 여자가 로스팅 기계를 만지다 말고 나를 쳐다본다.
"아. 혹시 아직 영업 시간이 아닌가요?"
"아..네.. 그렇긴 한데... 테이크 아웃이시면 그냥 드릴게요!"
잠시 당황한 듯하더니 이내 환하게 웃으면서 잠시 기다려 달라는 그 미소에,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다.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는 계산대 앞에 서서 기다리는데,
나도 모르게 자꾸 그 카페 주인 쪽으로 시선이 갔다.
은은한 금 빛이 맴도는 갈색 머리를 한 갈래로 묶고서는
뭐가 그렇게 기분이 좋은지 흥얼거리며 커피를 내리는 그녀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자꾸 눈이 가서
흘끔흘끔 쳐다보다가,
"다 됐습니다." 하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서 고개를 돌렸다.
"손님, 저 팔 떨어져요~" 웃음섞인 목소리로 건낸 말에 다시 그녀 쪽을 보니,
그녀가 컵 두 잔을 내 쪽으로 내밀고 있었다.
"아..네.. 죄송합니다.." 하며 일단 엉겹결에 받아들고는 멍하니 있다가 생각해보니 두 잔이여서
"어..근데 왜 두 잔이에요?" 라고 물었다.
"아.. 기분 나쁘셨으면 죄송한데.. 아까 보니까 속이 좀 쓰리신 것 같아서요....
바로 커피 드시면 속 망가지실까봐, 꿀물 좀 타서 드렸어요~ 이거 마시면 속이 좀 풀리실 거에요."
내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카페에서 머무는 내내,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나보다.
그 모습을 보고, 내가 속이 아플 것이라는 걸 예측하고 배려해준 그녀의 따뜻한 마음에, 그 미소에,
나도 모르게 반해버렸던 것 같다.
더 머물렀다가는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를 것 같아서
빠르게 빠져나와 택시를 타고, 택시 안에서 그녀가 준 꿀물을 입에 가져다 대는데,
계속 피식피식, 웃음이 났다.
내 나이 스물 아홉에, 아직도 누군가에게 설렐 수 있구나.
나는 생각했다.
내가 그녀에게도..... 설레이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틈 날 때마다 시간을 내어,
그녀를 보러 카페를 찾아갔다.
그러던 어느 날, 유독 기분이 좋아보였던 그녀에게 용기내어 말을 걸었다.
"오늘.. 유난히 더 기분이 좋아보이시네요."
"아.. 그런가요? 헤헤.. 오늘 비가 온다고 해서요."
"아...비 오는 걸 좋아하시나봐요~"
"네!~~~ 엄청요 헤헤"
그래서 카페 이름이 레이니 데이.... 라는 내 말에 수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주는 그녀에게,
언제든 비가 되어 그녀를 환하게 웃게 해줄 수 있는 구름 같은 존재가 되어주고 싶었다.
그런 내가,
그녀의 웃음을 앗아가버린 우산이 되어버릴 줄은.
꿈에도 몰랐다.
1년 전.
[어디야? 오늘 카페 안 올 거야?]
[요즘 많이 바쁜가보다. 힘내~]
[바빠도 카톡 하나만 해주지...]
[나만 오빠가 보고 싶은가 보다.]
[비 오네...]
..내가.. 너한테 질려버린 걸까.
내가 나쁜 놈이었다.
언제나 한없이 다정한 너를, 같은 자리에서 나만 보고 나만 기다리는 너를,
나는 너무 쉽게 생각했던 것 같다.
3개, 5개, 10개, 14개. 갈수록 불어나는 카톡 창의 숫자를 보며 화가 치밀어 올랐다.
너는 너무 미련하다.
누가 봐도 미울 나에게 화 한 번 내지 않고 기다리는 너는 정말...
홧김에 클럽에 들어갔다.
아무렇지 않게 술을 마셨고, 다른 여자와 키스를 했다.
처음 만난 그 여자와 모텔을 가려고 클럽을 빠져나와 차에 타서 그 여자를 보는데,
씨발, 니 얼굴이 그 여자의 얼굴에 겹쳐보였다.
화가 났다.
“씨발, 너 내려.”
내 말에 황당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는 욕을 하며 내리는 그 여자를 뒤로 하고,
곧장 너의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너에게,
몹쓸 짓을 하고 말았다.
미쳤구나 내가.
그렇게 너를 강제로 범하고 나서 정말 많이 후회했었던 것 같다.
사과하고 싶어서 몇 번 용기 내어 찾아간 너의 가게는, 너의 집은
닫혀버린 너의 마음처럼, 나를 향해 굳게 닫혀 있었다.
여전히 내 핸드폰 액정 속에서 나를 향해 환하게 웃어주고 있는 너에게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사죄했다.
미안해, 미안해.
돌아와 줘........
입 안에서 계속 그 말이 맴돌았지만,
영영 니가 돌아오지 않더라도 나는 할 말이 없었다.
내가 나빴으니까. 내가 죽일 놈이었으니까.
...그래도... 돌아와 주면 안될까.
너무 늦어버린 걸 알지만, 그래도.
매일 밤마다 이렇게 기도하며 잠든다. 나는.
그리고 현재.
그녀를 위해 내 마음을 정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만약 그녀가 다시 돌아와도 날 잊고 편하게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내가 먼저 그녀를 놓아줘야한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그녀를 잊고 지낸지 어언 1년이 다 되어간다.
사실 완전히 다 잊은 건 아니었지만, 지금처럼 이렇게 애써 외면하며 살면, 잊혀질 줄 알았다. 잊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하필 그 날, 거지같게도,
“어, 너 그 커피..”
“아, 부장님! 이거요? 새로 이사한 집 앞에 있는 카페에서 테이크아웃해온 거 에요! 여기 커피 맛이 죽여서 반해버렸잖아요, 제가. 커피 향 좋죠?”
얼마 전 우리 부서로 옮겨 온 여직원이, 그녀가 사랑해 마지않던 카페의 로고가 박힌 커피 잔을 들고 온 것이다.
그녀가 나에게 매일 내려 주던 ‘탄자니아 AA’의 향이 코 끝을 알싸하게 스쳐 지나갔다.
“..그 카페 주인이 혹시 여자야?”
“어, 네! 어떻게 아셨어요, 선배? 네, 여자 분이 사장님이시래요.
개인 사정으로 거의 한 7개월 동안 문을 닫았다가 다시 시작한지는 3개월 정도 되셨다고 하더라고요.”
쿵, 하고 심장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진짜 그녀일까. 그녀가 다시 돌아온 것일까.
그 때부터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가면 안 된다는 이성과 얼굴만 보고 올까하는 감성이 내 머리 속에서 끊임없이 충돌했다.
그리고는 결국, 나도 모르게 나는....... 그녀의 카페 앞에 서 있었다.
아직도 넌.. 비를 좋아할까?
쏟아지는 비를 보며, 아이처럼 좋아했던 너의 모습을 떠올려본다.
그렇게 한참을 서있는데
가게 불이 꺼지더니 누군가가 문을 걸어 잠그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였다.
언뜻 보기에도 촉촉하게 젖어있는 눈가에, 신경이 쓰였다.
내가 남긴 상처때문에 수도 없이 많이 울었을 너였음을 알기에 다가서지 못하고 계속 망설였다.
그렇게 한참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그녀가 우산도 쓰지 않은채로 비를 다 맞으며 뛰어간다.
한 발짝 내딛을 때마다 젖어가는 너의 어깨에, 마음이 아파서
나도 모르게 달려가 우산을 내밀었다.
우뚝 멈춰선 네가 내 쪽으로 뒤를 돌았을 때,
너의 표정이 너무 아파보여서... 그대로 안아주고 싶었다.
간신히 마음을 다잡고는,
"돌아왔네, 걱정했..."
하고 말을 건내는 순간,
네가 뒤돌아서 뒤 한 번 돌아보지 않고 뛰어갔다.
나를 남겨두고 떠난 너를 멍하니 서서 바라보고만 있다가,
나도 모르게 택시를 탄 너의 뒤를 뒤쫓아갔다.
무너져 내릴 듯한 표정을 하고서는 누군가에게 전화를 거는 너의 모습을 차 안에서 지켜보면서
계속 중얼거렸다.
박찬열, 이 미친놈.
그렇게 자책 하다가 다시 네 쪽을 쳐다보는데,
네가 천천히 주저앉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깜짝 놀라서 나도 모르게 문을 열고 너에게로 달려가려는데,
누군가가 너를 붙잡고 꽉 끌어 안는 모습에 그대로 발걸음이 멈췄다.
"누나, 놀랐잖아요."
"세훈아...세훈아...."
자연스럽게 그 남자에게 안겨 펑펑 눈물을 쏟는 너를 그저 바라볼 수 밖에 없는 내가... 한심했다.
저 눈물을 내가 닦아줄 수 없어서. 내가 안아줄 수 없어서.
화가 났다.
내가 너에게, 상처라는 것을 안다.
지우고 싶은 과거라는 것도 안다.
그런데도 나는 네가 욕심이 난다.
나는 왜 너의 소중함을 이제야 알게 되었을까.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생각한다.
어떻게 해야 네가 나에게 돌아올 수 있을까.
작가의 말 |
안녕하세요 우쮸쮸쮸 입니다 :) 글의 제목이나 BGM에서 예상하셨듯이 이번 수록곡 Thunder의 가사를 듣고 제가 생각난 대로 연상해서 써 본 글이에요~ 쭉 보셔서 아시겠지만, 여주의 과거남이자 연상남인 찬열이와, 여주의 새 남자이자 연하남인 세훈이의..... 대립구도로......ㅎㅎㅎ... 글을 이어가 볼까 해요^^....ㅎㅎ... 지난번에 찬열이를 너무 나쁜놈 만들어서 괜히 찬열이 얼굴 볼 때마다.. 죄책감이...드는 건.. 왜 일까요 하하...... 쬐..끔 나쁜놈이긴 하지만 회상씬이나 앞으로의 모습 들을 통해 결코 미워할 수 없는 나쁜놈..? 으로 만들어 드릴게요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아 참! 그리고 암호닉은 제가 연재하는 다른 글과 상관없이 따!로! 받을게요~ 혹...시... 제 발로 쓴 글에... 암호닉 신청해주실 분이 계시다면...신청해주세요! ♥ 감사합니당 *_* 사랑해요~~~~~~~~~~~~~~ |
제가 연재하고 있었던 '교환학생 썰'은 당분간 연재를 좀 미루어야 할 것 같아요. 글을 써보려고 했는데, 떠올리면 떠올릴수록 마음이 너무 아파서요. 제 마음이 진정되면, 그 때 다시 오도록 하겠습니다. 교환학생 썰을 아껴주셨던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말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연재를 중단하는 것은 아니니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감사합니다.교환학생 썰에 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