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세훈은 공허한 눈으로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바다 너무 이쁘지않아요??????저 바다 엄청 오랜만에 보거든요!!!!!!!파도!!!파도!!!!" 세훈은 인생에 하루를 돌릴 수 있다면 어제로 돌리고싶었다. 그냥 싫다고할걸. "뭐해요??? 무슨 생각해요??? 우리 가까이가서 보면 안돼요???" 정말 말많다. 보미의 성화에 억지로 끌려온 집 앞 바다엔 돌과 바위가 너무 많아 여름인데도 놀러 나온 사람이없다. 뭐가 저렇게 신날까. 어젠 그렇게 서럽게 울더니. 혼자 막 소리를 지르며 뛰어다니는 보미를 보니 웃음이 난다. 쟨 22살 될때까지 뭘한거야. 키만 자랐네. "저 집에 갈래요." "아 안돼요!!!! 같이 와주기로 해놓고!!! 바닷가 안와봤다면서 왜 구경안해요!!" "관심없어요." "에이," 약간은 김빠진 표정이지만 그래도 싱글벙글 웃으며 뛰어다니는 보미의 꼴이 딱 강아지다. * "세훈씨." 여름 해가 저물고 있다. 여름 해는 늦게 지는데, 대체 낮에 나와서 이 바다를 몇시간이나 걸은건지 알 수 없다. "왜요." 발이 저리다. 윤보미는 피곤하지도 않은가. "왜 또 화난 표정이에요?" 갑자기 후회가 밀려온다. 어제 그냥 내보낼걸. "아닌데요." 문득 그런생각이 들었다. "우리 이제, 말 놓으면 안돼요?" "안되는데요." "아 왜~ 놓자고~ 오세훈~" "안된다고." "어! 놨어놨어," 내가 너무 오세훈에 익숙해져버렸다고. "...집에 갈래." "이제 가자!!오늘 집에 아줌마 없는데 뭐 사먹으러갈래??" "마음대로" * "치킨을 무슨 두마리나 시켜?" "야!! 1인 1닭은 진리야!! 너 안먹으면 내가 두마리 먹을 수 있어." "돼지냐." "뭐?죽을라구," 화를 내면서도 닭 두마리를 상상하니 보미의 얼굴엔 행복이 만연하다. 제일 좋아하는 치킨집이 멀어서 배달은 안된다그러고, 같이 먹을 사람도 없어서 가서 먹지도 못했는데. 소원성취! "맛있게 드세요." "아!!!!완전좋아!!!!!" 전투적으로 다리를 집는 보미의 얼굴이 황홀경에 빠져있다. 넌 어떻게 변한게, 하나도 없냐. 야무지게 발라먹는 보미의 모습에 보는 사람도 배가 부른것같다. "근데 있잖아," "응" "넌 언제부터 여기서 지냈어?" 얼마나 됐더라. "2년정도.." "그럼 너 학교 안갔어?" "..." 못마땅해진 세훈의 표정에 보미가 아차 싶었다. "아니 안좋은 뜻으로 한 말이 아니라~.. 궁금해서.. 101호 오빠는 고시준비하잖아, 근데 너는....왜...왔나....해서....." "그냥." "어?" "그냥 왔어." 그냥? 전혀 충분한 대답이 못되지만 보미는 더 이상 학교 얘기는 묻지 않기로한다. "그러면 있잖아," 또 뭐냐는 듯한 세훈의 얼굴에 보미가 입을 열면서도 눈치를 본다. "군대...는..." "...." 짜증이 자다 깨웠을 때 만큼 만연한 표정이다. "아니야!!!그냥!!됐어 빨리 너, 치킨먹어, 식겠네." "너 다먹어." "야아 내가 솔직히 두마리를 어떻게 다 먹냐? 물론 먹을수는 있는데.. 나 다이어트 중인데, 어?" 다이어트 중이면 먹지를 말던가, 하고 젓가락을 놓는다. 정곡을 찔린 보미의 얼굴이 뾰루퉁해졌다. "에이씨, 아줌마! 이거 다 포장해줘요!" 세훈을 노려보며 양념이 묻는 손가락 끝을 빤다. "야 너 진짜 왜 안먹어! 같이 먹는 사람 무안하게," "난 치킨 안좋아해." "치킨 안좋아하는 사람이 어딨냐?" "여기." 당연하듯이 치느님을 무시하는 세훈을 보자 보미는 화가났다. 치킨을 안좋아하는 사람이 어딨어? 식성도 더럽게 이상해요, 하다가 보미는 문득 치킨을 싫어하던 한 사람이 생각났다. 맞다, 너도 치킨 싫어했었지. 5 세훈이 한창 그림에 몰두해있는 12시 29분, 방음이 안되는 집의 특성은 세훈에게 대재앙을 몰고왔다. "오세훈!" 똑똑,하고 103호쪽 벽 너머로 윤보미의 소리가 들린다. 세훈의 미간에 주름이 하나 접혔다. "왜." "나 완전 큰일났어! 대박! 빨리와줘! 어떡해!" 한숨을 쉬고 일어났다. 그리고 역시나 103호에 들어서자 들리는 말은 "나 불좀 꺼줘." "그만좀 하지?" 탁,하고 불이꺼지자 보미는 땡큐~하고 얄밉게 이불속으로 들어간다. 부르는데 안가보기도 뭐하고, 항상 다급하게 부르니까 혹시나 안갔다가 진짜면. 하는 생각에 오세훈은 절대 양치기 소년의 마을 사람들이 될 수 없었다. 의자에 털썩 앉은 세훈은 자신의 캔버스속을 바라봤다. 까만색과 빨간색으로 칠해져있는, 뭔지 알수는 없는데 다만 끔찍한 느낌을 주는 저 그림. 세훈은 흠, 하더니 흰색 아크릴로 캔버스를 덮어버렸다. * 오랜만에 깊게 잠들었다. 아마 평생 저녁시간에 잠들일은 없을 줄 알았는데. 왠일로 오늘밤은 니가 찾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새벽녘에, 어스름한 분위기에 일어났다. 눈을 뜨면 보이는 거울속에도, 내 모습이 끔찍해보이지 않았다. 기분이 좋았다. 화장실문을 열고 들어가 세면대에 물을 받았다. 세수를 하다 문득 거울을 보니, -내가 안 올줄 알았구나? 오세훈, 니가 와있다. 움직 일 수 있었다. 뭐야, 지금. 이거.. 꿈 아닌데. -맞아, 이거 꿈아니야. 니 현실이야. 손이 떨렸다. 세면대의 물이 고이다 넘쳐 옷을 적시고 있었다. 밤엔 니 얼굴이 또렷하게 안보였는데, 지금은 너무 선명하게 보여 고통스럽다. 뒤를 돌아도 거울속에 니가 선명하게 비친다. 니 하얀, 아니.. 창백하지만 까만 얼굴에 시뻘건 너의 입술. 풀어헤친 머리. 그리고 눈이 없다고 여길만큼 파였지만 나를 정확하게 응시하는 눈동자. -너 나를 꿈속에나 나타나는 귀신쯤으로 생각했어? 오세훈, 실망이네. -..... -왜 오늘은 아무말도 못해? 손도 떨고있네. 입술이 떨렸다. 다리에 힘이 풀려 넘어질 것 같은데, 넘어지질 않아 아래를 쳐다보니 아래에도 니가있다. -무슨 생각 하는거야? -너 제발.. -뭐? -제발... 사라져줘 -사라져? -제발......... -안돼, 너도 알잖아 내가 너인거. 그렇게 난 그곳에서 무너졌다. * "오늘은 왜이렇게 다크써클이 장난이아니야?" "....." 아침은 뛰어넘고 점심쯤에야 깨어난 세훈은 저녁이 되서야 밖에 나타났다. "뭐한다고 잠을 못잤대? 어, 근데 이거뭐야," 보미가 호들갑 떠는 부분을 보니 팔 어딘가가 베여있다. 언제 베였더라. "야, 완전 크게 베였는데?? 이거 약발라!" "...어." 윤보미의 얼굴을 똑바로 마주보기가 힘들었다. 왜냐면, 보미의 등 뒤에 니가 날 쳐다보고 있으니까. * 어김없이 열두시 반쯤이 되자, 103호에서 또 오세훈~오세훈~하고 불러온다. 장난에 실증이 난 세훈은 대답도 없이 가 불을 탁 끄고 나온다. 땡큐-하는 목소리가 벽 너머로 들려온다. 쟤는 다리가 없어 팔이없어. 한참 보이던 너의 모습이 갑자기 보이지 않는다. 안심해야하는데, 오히려 불안하다. 또 다시 의자에 앉아서 캔버스를 바라본다. 하얗게 덧칠해버려서 아무것도 없는 빈 캔버스. 한참 하얀 면을 응시하다, 세훈은 연필을 들고 스케치를 하기 시작한다. 작게 똑똑똑, 하고 103호에서 또 호출이 온다. 이번엔 또 뭐야, 불도 꺼줬더니. 하루에 두 번은 안된다는 생각으로 세훈은 그림에 열중했다. 그런데 평소완 달랐다. 오세훈,하는 장난스런 목소리도 없이 너무도 작게 두드리고있었다. 마치, 구해달라는 듯이 벌떡 일어난 세훈은 당장 103호로 뛰어갔다. 그리고 겁에질린 윤보미와 낯선 남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 아 나 진짜 완전 죽는줄 알았어!하고 울음이 터진 보미는 좀처럼 진정을 하지 못한다. "아니 나 막 자고있었는데, 누가 들어온거같은거야. 그래서 생각없이 일어났는데, 어, 막 칼들고," 울먹울먹 하는 보미의 목소리가 떨려서 제대로 알아들을 순 없지만 대충은 알겠다. "알았어." 아무렇지 않은 척 해도 세훈역시 많이 놀랐다. 내가 안찾아갔으면, 윤보미는? 한참 달랜 후 진정이 된 보미는 진이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고마워, 진짜.. 나 너 안왔으면.." "...." "내가 맨날 장난쳐서 너 안올까봐 걱정됐는데, 와줘서 고마워." "그러니까" "응" "불은 니가 꺼." "그래," 울었던 자국에 얼굴이 터서는 그래도 좋다고 활짝 웃는다. 이제 됐겠지, 싶어서 일어서자 바짓자락을 붙잡는다. 뭐냐, 하는 눈빛으로 쳐다보니 "아, 가지마." "왜." "나 오늘 무섭단말이야.." "무슨 일 있으면 불러, 문 잠궈놓고." "아 제발..." 칭얼대는 보미를 매정하게 떼낼수가 없다. 나니까 말이지, 내가 아니라 딴놈이었으면 어쩔려고. 윤보미는 낯선 남자나 옆집 남자나 한 방에 같이있으면 위험하기 마찬가지라는 공식이 없나보다. "..그래." 하고 다시 털썩 앉았다. 사실은, 세훈도 무서웠다. '그녀'가 또 혼자있을때 나타날까봐. 보미랑 있으면 어쨌거나 덜 무서웠다. "뭐야, 너 아직도 밴드 안붙였어?" "아," 아까 베였다고 했던거. 신경도 안쓰고있었는데. 기다려봐, 하고 서랍을 막 뒤지더니 밴드랑 약을 가져온다. 그러곤 굳이 세훈이 하겠다는걸 붙여준다. "내가 고마우니까 하는거야." 누가뭐래. ------ 4~5화가 너무 늦어버렸네요..ㅠㅠㅠ 개인적 사정에다가 등장인물 한명을 빼느라.. 구독해주시는 독자분들 감사합니다 어차피 다쓴거라 두개씩 올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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