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규 |
고3의 3월. 3월도 슬슬 끝물에 접어들기 시작할 즈음이었다. 그 해 봄의 마지막 꽃샘추위가 찬바람을 몰고 오고 있었다. 1학년 때 학교에서 일괄적으로 바꿔 버린 이상한 연어색의 커튼은 이제 색이 바래 연한 분홍색이 되었다. 날은 맑지만 바람만이 차고 세게 불어 굳게 닫아 놓은 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은, 그 커튼을 한 차례 통해 은은하고 따스하게만 느껴졌다.
반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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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우 |
"야! 너 보충 안 해?"
부럽긴 개뿔.
학원을 가려고 지하철을 탄다. 오늘도 어김없이 같은 칸에 타는 우리 학교 남자애. 우리 학년, 아마 이름이 장동우랬던가 그랬던 것 같다. 애들 말로는 1, 2학년들 사이에서도 '춤추는 오빠'로 유명하댔다. 쟤가 춤을 그렇게 끝내주게 잘 춘다며? 그런데 본 적은 한 번도 없다. 내가 딱히 그런 거에 신경을 쓰는 타입도 아니었고, 쟤 춤을 볼 수 있는 기회마다 나는 학원을 가느라 바빴기 때문이었다.
퀭한 눈으로 등교했다. 너 어제 야동 봤냐, 라는 친구에게 한 마디 해주려다가 네가 제일 나빠, 이 년아, 라고만 하고 책상에 엎드렸다.
정신 좀 차려, 라며 엎드린 내 위로 미스트를 뿌렸다.
전혀 안 미안하다는 말투로 미안하다 그러면 내 기분이 어떻겠니, 이 기지배야.
내가 딱딱하게 부르자 움찔하더니 한 쪽 이어폰을 빼고 내 쪽을 바라봤다.
아오. 말하고 나니까 나 왜 이렇게 찌질해 보이니. 아무래도 오늘 밤에 집에 가서 잠이 들랑 말랑할 쯤에 이불에다가 하이킥 한 번 거하게 하고 지쳐서 잠들 것 같다.
쑥쓰러운 건지 고개를 살짝 숙이고 머리를 긁적였다.
덜컹이는 지하철 안에서 나란히 서서 나는 장동우에게 물었다. 서서히 지기 시작하는 석양에 장동우의 얼굴이 붉어 보였다. 난감한 듯한 표정과 어쩔 줄 몰라하는 행동. 쟤 왜 저러지?
대뜸 내려야 한다며 말을 돌린 장동우가 정말 그 역에서 내렸다. 그리고 나는 이어폰을 꽂고 노래를 재생시켰다. 지잉-. 치마 주머니에서 진동이 울렸고, 모르는 번호로 온 문자가 한 통 있었다.
어쩐지 귓가에선 크리스 브라운의 목소리가 아닌 장동우의 야속하다는 듯한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
우현 |
"안녕-."
남우현은 여러 모로 참 대단한 놈이었다.
그렇게 안 생겨서 노래를 꽤 잘하는 것도, 그리고 노는 건 아닌데 그런 애들하고 은근히 친한 것도, 그러면서도 탈선의 길은 절대 안 걷는 것도. 전체적으로 보자면 꽤 반듯한 놈이었다. 저가 좋아하는 여자가 생기면 남자애들은 귀찮아서 죽으려 한다는 편지나 쪽지도 꼬박꼬박 잘 써주고 다정다감하게 잘 챙겨주는 놈이었다. 이걸 내가 어떻게 다 아냐고? 난 이래뵈도 남우현이랑 태어날 때부터 안 사이다. 물론 저 새끼가 학교 일찍 들어가면서 한 학년 위가 돼서 밖에서 볼 땐 난감하긴 했지만. 어쨌든 저 놈은 나랑 어렸을 때부터 알고 지낸 사이다, 이거다.
남우현네 집 거실 소파에 드러누워서 TV보다가 소파 아래에 앉아있는 남우현을 발 끝으로 툭 쳤다.
남우현은 나한테 돈을 받아들자마자 전화를 걸었다.
개그프로를 보면서 낄낄거리며 무성의하게 묻고 무성의하게 대답했다.
나는 남우현네서 치킨 먹고 뒷정리까지 다하고 좀 더 놀다가 집에 왔다. 얘 최근에 좋은 일 생겼다는 것 같던데 그래서 내가 야, 야, 거려도 막 뭐라고 안 하는 건가. 진짜 간만에 찾아온 평화였다. 곧 죽어도 안에선 남우현한테 오빠라고 안 부르려는 나와 안에서도 오빠라는 소릴 듣고 싶어하는 남우현은 틈만 나면 으르렁거렸고, 그 사이에서 우리 가족과 남우현네 가족만 죽어나는 꼴이었다.
야. 너 왜 이제 들어가.
자정에 가까워져 가는 시간, 남우현과 버스에서 마주쳤다. 그리고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남우현은 보컬학원이 끝나고 집에 들어가는 길이었고 나는 놀다가 늦게 들어가는 길이었다. 안 그래도 집에서 된통 깨지겠다고 생각했는데 그 전에 남우현한테 잔소리 듣겠다.
쉴 새 없이 쏘아붙이는 남우현의 잔소리에 짜증이 확 치밀어 올랐다. 내려야 할 정류장의 전 정류장에서 버저를 누르고 남우현을 밀치고 일어났다.
문이 열리자마자 내렸고, 남우현은 당황하고 문에 한 번 끼일 뻔 했다가 날 따라 내렸다.
뒤따라오면서도 그칠 줄 모르는 잔소리에 짜증이 나서 빽, 소리질렀다.
아오 정말! 하고 씩씩거리면서 걷는 내 뒤를 뛰어서 따라오는 게 느껴졌다. 그렇지만 곧장 내 옆에 서진 않았다. 날 따라오는 발걸음 소리가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있었다. 자박자박 걷는 발걸음 소리와 가로등 불빛 때문에 길게 늘어선 그림자 두 개가 일정하게 겹쳤다 멀어지기를 반복했다.
또, 또, 또. 또 나왔다, 남우현 애교. 내가 삐지거나 한 날이면 사내녀석이 징그럽게 애교를 부리며 곰살궃게 굴어왔다.
그렇게 뜬금없이 제 할 말만 다 해놓고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그렇게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우리 집 앞까지 왔다. 나는 들어간다는 말도 하지 않고 그냥 뚱한 표정으로 들어가려 했는데, 남우현이 다급하게 다가와 내 옷자락을 잡았다.
도대체 얘가 뭔 말을 하는 거야. 내가 도통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맹하게 바라보자 남우현은 씨익 웃으며 내 앞머리 쪽에 손을 올리고 가볍게 누르며 말했다.
사람 심란하게 만들어 놓고 정작 저는 집으로 쏘옥 들어가버렸다. 아니, 얘는 무슨 기미도 없다가 갑자기 저렇게 고백해버리면 나는 어떻게 하라고! 무슨 기미라도 보여야지 내가 마음의 준비를 해놓지! |
호원 |
요즘 세상 흉흉하다지만 이건 진짜 어디 무서워서 세상 살겠나. 등교하는 버스에서 나온 라디오 뉴스를 듣고 그런 생각을 했다. 연쇄살인에 토막살인. 하루가 멀다하고 나오는 소식들이었다. 야자 끝나면 아빠한테 데리러 와달라고 말이라도 해야하나.
* "우리 스승의 날 파티 할 거니까 다들 2000원 씩 총무한테 내!" 반장이 애들한테 말했다. 그리고 칠판 한 구석에 총무한테 2000원, 이라고 남자애치고는 단정한 글씨로 적었다. 글씨체도 이미지랑 잘 맞네. 반듯하고 깔끔하고. 이름도 이미지랑 잘 맞았다. 이호원. 우리 반 25번 이호원. 반장 이호원. 자리로 돌아가는 이호원을 보고 나는 다시 수능특강에 시선을 돌렸다. 좀만 더 하면 이거 끝나고 인터넷 수능 풀 수 있다.
급식 다 먹고 친구랑 교실로 들어가는데 짝꿍이 나에게 다가오며 물었다. 듣긴 뭘 들어?
옆에 있던 친구가 투덜대며 사물함에서 양치도구를 꺼냈다.
애들은 또 한 번 소란스러워졌지만 곧 고3이라는 특수상황에 순응하고 묵묵히 공부했다. 무슨 일이라도 있었냐는 듯 석식도 먹고 야자도 했다.
친구는 내 두 손을 꼭 붙들고 말했다.
친구는 내려가고 나는 수업을 듣는 교실로 올라갔다. 열다섯 명 정도가 있는 교실은 중간중간 대답하는 소리와 선생님의 수업하는 소리 빼면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11시 반이 되고, 오늘은 이만 하고 가자, 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애들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복도로 나갔다. 우리가 썼던 교실에서 나오는 불빛을 제외하고는 온통 어둠 뿐인 복도는 보고 싶지도 않을 정도로 괴기했다. 학교랑 참 이상한 곳이다. 낮시간 동안에는 그토록 시끌벅적하더니만 밤이 되면 소름 끼칠 정도로 고요하고 어두운 곳이다. 나는 친하지도 않고 말 한 마디 해본 적 없는 아이들 사이에 묻혀서 가장 마지막으로 계단을 내려갔다. 동쪽 현관에서 신발도 가장 마지막으로 갈아신고 고개를 드는 순간,
이호원이 서있었다.
목소리가 조금 갈라져서 나왔지만 그 부끄러운 것보단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기에 바빴다.
멍청하게 아무 대답 못하고 이상한 소리나 냈다. 생각해보니까 이호원은 수학은 잘하는데 언어가 수학 점수에 못 미쳐 언어 특별 진학 수업을 듣고 있었다.
멍 때리는 내 손목을 잡고 이끌며 이호원과 나, 우리는 동쪽 현관부터 교정을 걸어 교문까지 갔다. 으슥한 학교 앞 정류장에서 이호원과 나만이 아무 말도 없이 내가 타고 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확실히 이호원의 활약이 컸었다. 그 때도 반장이었는데 축구랑 계주 둘 다 나가서 우승하고 상금도 받아와서 답합 때 그 돈 썼던 기억이 있다.
나는 문제집들을 껴안고 있었고 이호원은 들어줄까, 하고 물었지만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고 다시 정적. 타이밍 좋게 버스가 왔고, 우리는 텅 빈 버스의 2인 좌석에 나란히 앉아서 우리 집까지 함께 갔다.
자연스럽게 같은 정류장에서 내리고 우리 집 앞까지 이호원이 바래다줬다. 잘 가, 하고 나는 웃으며 손을 흔들어줬다. 2층에 살아서 계단을 올라가다가 그러고보니 이호원은 어느 동에 살았지? 하며 창 밖으 내다보자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는 이호원이 보였다. 쟤 왜 저쪽으로 돌아가지? 이상하다, 싶었다. 다음 날 등교하자마자 출석부를 확인했다. 25번 이호원. J동 S아파트 301동 1605호. J동은 우리 학교가 있는 동네였다. 그럼 어젯밤은 일부러 버스타고 10분이나 걸리는 우리 동네까지 왔었다는 얘기였다.
우리 둘 뿐인 교정, 내 단도직입적인 질문에, 이호원의 굳은 얼굴에서 귀만 빨개졌다.
무뚝뚝한 듯 다정한 말과 함께 이호원은 은근슬쩍 내 손을 잡아왔고, 나중에 들은 바로는 이호원은 작년 체육대회 때부터 혼자서 날 좋아해 왔다고 했다. 평소에는 안경만 끼다가 렌즈도 끼고 머리도 풀렀다 묶고, 결정적으로 '5월 말이라 다 초록색 나뭇잎이 햇빛 받고 바람 불어서 반짝거리는데 네가 햇빛 받아서 햐아얀거야, 하얀 것도 아니고 새하이얘서 반'했단다. 하여튼 은근 귀여운 구석이 있어. |
성열 |
나는 겉보기엔 돌이라도 씹어먹을 것처럼 보였지만 실은 툭하면 아픈 애였다. 고3이 되면서 시도때도 없이 스트레스성 질환에 시달렸다. 이젠 하도 앓아서 병원에 안 가도 내가 내 상태를 알 수 있을 정도였고, 그 날도 나는 스트레스성 위염에 이온음료만 마시며 버틴지 5일 째 되는 날이었다.
친구들에게 미안하다는 미소를 지어보이고 엎드렸다. 친구들은 내 등을 두어 번 두드려주고 나갔다. 마지막으로 나가는 애들이 교실 불을 다 끄고 나가면서 교실은 어둡고 조용한 상태가 되었다. 열린 운동장 쪽 창에선 1, 2학년 남자애들이 축구하는 소리가 산들바람을 타고 아득하게 들려왔다. 아픈 위를 부여잡고 있다가 마악 잠이 들락말락하는데, 아 왜 다 나 버리고 갔는데! 하며 짜증내는 소리와 문이 벌컥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성열이었다.
이성열은 도대체 어딜 갔다온 건지 점심시간 타이밍을 놓치고 등장했다.
대답도 안 하는 나를 향해 그렇게 말했다.
내 옆자리 책상에 걸터앉은 게 느껴졌다.
밥 걸러서 아픈 게 아니라 아파서 거르는 거다, 임마.
나도 잠이나 잘까, 이성열을 기지개를 켰다. 으으으으-. 몸이 찌뿌둥했던 모양이었다.
그렇게 이성열과 그 무리들은 우르르 교실을 떠났다. 얼마 안 있어 내 친구들도 왔고 나를 깨워서 함께 양치를 하러 갔다. 그리고 5교시, 6교시, 7교시, 8교시까지 다 마치고 석식시간이었다.
이성열은 연기학원에 다니고 있어서 정규수업만 듣고 하교했다. 그런데 왠일로 오늘은 안 갔대?
그렇게 말하고 이성열은 교실을 나가 어디로 달려갔다. 몇 분을 멍하니 기다리자 이성열이 빵과 이온음료 세 캔을 사왔다.
뒷문을 닫은 이성열이 내 맞은 편에 앉았다. 우리 이렇게 친한 사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그 날 석식시간에, 이성열과 나는 마주앉아 꽤 많은 얘기를 나눴다. 의외로 속이 깊은 녀석이어서 동생 걱정도 꽤 많이 하는 것 같았고, 어머니의 가사일을 자주 도와드리는 편인 것 같았다. 생각보다 괜찮은 녀석이었고, 우리는 순식간에 친해졌다. 그 후로도 종종 나는 급식을 못 먹었고 이성열은 휴강을 했다. 그 때마다 우리는 더욱 더 많은 얘기를 했다.
그 날도 나는 혼자 교실에 남았고 이성열은 친구들을 놓쳤다. 그리고 이제는 이성열이 자연스럽게 내 옆자리에 앉을 수 있을 정도로 친해졌다.
그리고 나처럼 엎드린 것 같았다.
이게 또 뭔 말을 하려고.
생각치도 못했다. 그저 좋은 친구고, 내가 조금 좋아하는 것 같긴 했지만, 이성열도 내게 그런 감정을 품고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고개를 슬며시 오른쪽으로 돌렸다. 이성열은 당연히 고개를 숙이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랬는데, 눈이 마주쳤다.
당황한 이성열이 소리를 빽, 내질렀다.
내가 그렇게 말했고, 이성열의 얼굴은 그제서야 붉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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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수 |
김명수는 잘생긴 녀석이었다. 그 잘난 얼굴 덕에 주변 학교에도 소문이 자자했지만, 정작 저는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 듯 했다. 그래서 여자애들이 더 난리를 치는 걸지도 모르지.
김명수의 친구가 살갑게 말을 걸었고, 김명수는 그 특유의 톤으로 대답했다.
내 뒷자리에 앉은 남자애와 여자애가 김명수에 대해서 얘기를 하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김명수는 왠지 다가가기 어려운 타입이었다. 남들에 비해 빼어난 외모가 아닌 김명수가 뿜어내는 그 특유의 분위기 때문이었다. 어쩐지 고독해보이고, 권태로워 보여서 가끔씩은 경외감이 들기까지 했다. 그런 걸 느끼는 건 비단 우리 뿐만이 아닌지 선생님들도 김명수는 조금 어려워 하는 게 눈에 보였다. 같은 동네에 꽤 오래 살았던 나도 김명수에게 친근하게 굴 수가 없었다.
말만 '자율'인 야간자율학습을 끝내고 친구들이랑 삼삼오오 하교했다. 길이 갈라질 쯤이 되어 나는 우리집 쪽으로 들어갔다. 골목 어귀서부터 7분 정도 걸으면 우리집이었다. 안 무섭게 한 쪽 이어폰만 꽂고 대충 아무 노래나 재생했다. 최근에 컴백한 걸그룹의 발랄한 신곡이었다. MP를 주머니에 넣고 고개를 들자, 골목으로 꺾어져 들어가는 김명수의 뒷모습이 보였다. 저 골목으로 들어가서 오른쪽이 우리집, 왼쪽이 김명수네 집이었다. 몇 년동안 길 하나 사이에 두고 등하교(물론 하교할 때는 나는 야자가 끝나고 가는 거였고, 김명수는 연습생이어서 연습이 끝나고 집에 가는 길이었지만)를 같이 하는데도 우리는 인사 한 번 해본 적 없는 사이였다. 김명수에게 호감을 갖고 있는 나로서는 조금이나마 야속할 만도 했지만, 쟤는 모든 사람들에게 저렇게 대하니까, 라며 내 처지에 스스로 수긍하곤 했다.
실은 어, 도 아닌 이상한 비명소리였다, 내가 내지른 소리는. 내가 살고 있는 빌라로 들어가는 어귀에 누군가가 서있는 줄도 모르고 가다가 마주친 것이었다.
내가 불확실한 목소리로 묻자 김명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언제나의 그 뚱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몇 초간의 어색한 대화를 끝으로 나는 계단을 올랐다. 2층, 아니, 1층, 정확히는, 이 빌라는 반지하가 있었고, 1층도 2층도 아닌 1.5층 정도 높이의 1층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1층에 살고 있었다. 계단을 올라가면서 김명수는 무슨 볼 일이 있다고 여기에 서있는 걸까. 3층에 예쁘장한 언니 사는데 혹시 그 언니랑 사귀기라도 하는 걸까. 짝사랑에 빠진 열아홉 여고생의 상상은 끝도 없이 이어졌고, 괜히 스스로만 마음앓이하는 꼴이 돼버렸다.
내 물음에 김명수는 아무 말도 없이 핸드폰을 내밀었다.
끄덕끄덕.
씻고 수건으로 머리카락의 물기를 털며 방으로 들어오자 그런 문자가 와있었다. 그 흔한 이모티콘 하나 없는 딱 김명수스러운 문자였다. 나는 당연히 저장했고, 우리는 매일 밤마다 연락을 주고 받았지만, 딱히 밖에서도 친하거나 그런 사이는 아니었다. 다만, 우리 둘 사이의 어색한 기류만이 풀렸을 뿐이었다. 그런 관계가 여름방학까지 이어졌다. 3주 동안의 보충수업을 거치고 개학하기 딱 1주 전부터 1주일, 정확하게는 5일간의 진짜 방학이 주어졌다. 방학이라고 해도 우리는 고3이었고 나는 친구와 아침부터 도서관에 가서 공부를 하기로 했지만, 점심시간 쯤이 되면 아이스크림이나 먹으며 시간을 때우다가 3시 쯤에야 다시 공부를 하기 일쑤였다.
"어? 야, 너 문자 왔다."
친구의 말에 입으로 아이스크림을 물고 테이블에 올려져있던 핸드폰을 확인했다.
김명수였다. 김명수는 보충을 듣지를 않으니 방학동안은 마주칠 일이 전혀 없었다.
내 핸드폰을 뺏으려 드는 친구를 요리조리 피해 아직 살아있음 너는 잘 지내? 라는 문자를 보내고 플립을 닫았다. 그리고, 김명수에게선 금요일까지도 답장이 오지 않았다.
괜히 무서운 생각이 들려는 걸 억지로 누르고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는데도 그 소리는 계속 들리고 있었다. 설마 밖에서 나는 건가, 싶어서 에어컨을 켰음에도 창문을 열어보니, 김명수가 날 바라보고 환히 웃고 있었다.
최대한 목소리를 낮춰서 외쳤다. 내 외침에도 김명수는 아무런 말도 없이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가로등 불빛을 받은 그의 얼굴은 맨질맨질해 보였다. 이거, 꿈 같은데? 그렇지 않고서는 김명수가 이 시간에 내 방 창문에 돌맹이나 던지고 있었을 리가 없어.
내려가긴 뭘 내려가. 이 새벽에 부모님 깨시면 나 끝이야, 끝!
김명수는 내가 내려오자 어, 좁 춥나? 하면서 제가 걸치고 있던 저지를 내 다리 위에 올려주고는 야, 잠깐만 여기서 딱 기다려! 하곤 편의점으로 뛰어갔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다시 뛰어오더니 아이스크림 하나를 내게 건냈다.
내 말을 들으며 그는 내 옆에 앉았다.
이번에도 생글생글 웃으며, 앞만 보고 말했다. 얘가 술이라도 마셨나, 오늘 왜 이래.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설레서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서로 앞만 보고 얘기하다가 김명수의 그럼, 하는 목소리에 나는 그를 쳐다봤고, 그는 웃으며 나를 바라봤다.
내가 멍청하게 우슨 말인지 못 알아듣고 있자,
하며 쑥쓰러운지 다시 앞을 바라보고 아이스크림을 한 입 베어무는 김명수가 있었다. |
성종 |
"야, 이성종 진짜 게이 아니야?"
쟤, 게이 아니라고.
친구들에게 목소리를 죽이고 그렇게 말하고 시선을 살짝 돌리자, 제 친구들 사이에서 떠들고 있던 이성종과 눈이 마주쳤다. 그러더니 웃으며 날 바라보다가 냉큼 시선을 피해버렸다. 이성종은 날 좋아하는데 게이는 무슨 게이야.
하나둘씩 이성종의 이름이 들리기 시작했다. 남자애 치곤 너무 마른 감이 없잖아 있지만, 낭창낭창해 보이는 몸에 여자애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결국 이성종은 부반장을 제치고 1위로 들어왔고, 당장 수돗가로 가 물을 콸콸 틀고 그 큰 두 손을 모아 받은 물을 얼굴에 끼얹었다. 세수를 어푸어푸. 그 옆으로 부반장이 가서 이성종을 머리를 수도꼭지 아래로 밀어넣었다. 머리가 다 젖은 이성종이 부반장에게 물을 뿌려버렸다. 그 뒤로 더워하는 남자애들이 다가와 저들끼리 물장난을 치기 시작했고, 보시다 못한 선생님이 "얼른 안 오냐!"하고 호통을 치셔서야 애들은 다시 돌아왔다.
이성종이 부반장에게 씩씩거리자 부반장을 웃으면서 "누가 당하랬냐"라고 더 약올렸다. 부반장을 노려보던 이성종의 시선이 어딘가를 헤메다가 나와 마주쳤고, 작게 웃고선 또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친구들은 매점을 들렀다 간다고 해서 혼자 계단을 올라가고 있는 나를 이성종이 불렀다.
내 쪽을 향해 뻗어 있던 가느다란 팔이 어쩐지 애처롭게 다시 가볍게 주먹을 쥐며 제자리로 돌아갔다.
내가 바닥에서 일어나질 못하자 친구들은 어쩔 줄 몰라하며 괜찮냐고 묻기만 했고 지나가던 애들도 무얼 어떻게 해야할 줄 몰라하기만 했다.
그 와중에 부반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밥을 먹고 내려오는 길이었나 보다.
친구가 울 것 같은 목소리로 외쳤고, 부반장도 당황해서는 어어?! 하고 대답했다. 그리고 누군가 인파를 헤치고 빠르게 내 곁으로 다가왔고, 망설이지도 않고 나를 들쳐업었다. 나는 아파서 눈을 제대로 뜨지도 못하고 나를 업은 그 사람을 당연히 부반장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건, 울 것 같은 미성이었다.
얘는 내가 정신 잃은 줄 알았나 보다. 내가 묻자 냉큼 답해주었다.
이성종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성종의 등에 고개를 묻은 나를 그 상태로 보건실에 도착했고, 보건 선생님의 차를 타고 도착한 병원에서 오른쪽 다리가 부러졌다는 진찰을 받았다.
엄마의 못마땅하다는 말에도 나는 헤실헤실 웃으며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성종이가 나 좋아한다고 직접적으로 말해줬는데, 드디어 우리 마음이 닿았는데 엄마라면 안 좋겠어?
깁스한 다리로 절뚝거리며 걷는 5월 말의 거리는 환한 햇살로 반짝였다. |
Hㅏ...
역시 전 포부는 큰데 결과는 똥망이네여...ㅁ7ㅁ8
왤케 짧냐고요? 왤케 갈 수록 흐지부지냐고요?
제가 그렇죠 뭐... 간만에 망상이 폭ㅋ발ㅋ해서 달려들긴 했지만 제 역량이 제 망상을 따라잡질 못하네옇... 흐규흐규
그리고 우현이는 원래 저게 아니라 다른 거였는데 쓰고보니 구상해뒀던 걸 발견했다는 건 비밀이예요^^!
그리고 브금은 랜덤으로 골라서 안 어울릴지도 모르니 양해부탁드려요...☞☜
안 들으시는 게 나았을지도... 규_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