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티스. 영어 표기로는 'statice'라고 하는 꽃이 있다. 이 꽃의 꽃말은 영원한 사랑, 불멸성을 의미한다. 나는 영원을 믿지 않는다. 세상에 영원한건 없다고 자부하는 바이다. 인간은 지구상에서 몇백년 몇천년이 넘는 시간동안 존속해왔고, 거대한 문명을 이루었다. 이러한 인간이라는 거대한 존재조차 불멸의 삶을 살 수가 없는데, 어떻게 인간의 인생에서 영원을 논할수 있는가. 짧은 인생을 살며 내일이 오지 않기를 기도하며 잠에 든적이 수없이도 많았다. 하지만 나의 이러한 기도에도 불구하고 내일은 왔고, 나는 18년이라는 세월을 살았다. 스타티스, 이 꽃의 꽃말이 살결로 와닿지는 않지만 나는 변백현이 스타티스라는 꽃처럼 나와 영혼을 마주하고 영원과 같은 시간만큼 함께 있어준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변백현을 오래동안 생각하면 눈물이 날때가 많다. 언젠가 TV에서 흰 도화지에 물이 튀기는 장면을 묘사하려 붓에 물과 물감을 흠뻑 적시고 튀기는 장면을 보았다. 흰 도화지에 물감이 튀기며 물방울이 묘사되고, 어느새 종이에는 몇개의 물방울들이 새겨진다. 수학적으로 놓고 본다면 물방울이 새겨진 면적보다 그렇지 않은 면적이 훨씬 더 많다. 미를 위하여 노력한 부분보다 그렇지 않은 부분이 훨씬 더 많은 셈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작업에도 불구하고 물방울이 튀어지지 않은 부분에 또 다시 그림을 그린다거나 한다.
변백현은 나라는 도화지를 채우는 작가이다. 흰 도화지에 묘사된 몇개의 물방울은 내가 변백현에게 보여주는 성의이고, 그렇지 않은 새하얀 부분은 변백현이 나에게 주는 애정이다. 나의 이러한 습도높은 물방울에도 불구하고 변백현은 나의 비워진 부분을 채우려고 노력하였다. 그림을 그리는 작가가 하얀 부분에 예술을 채우려 하는 일말의 행위처럼, 변백현도 나의 새하얀 부분에 무언가를 응집시키려는 갈증을 보였다. 하지만 나는 변백현의 심리를 아직 잘 모르겠다. 변백현과 나의 관계를 단순한 단어로 묘사하려 수없이 생각해보지만 시원한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 변백현의 심리를 아마 가시적인 것으로 형상화 시킨다면 뿌연 연기같은 존재가 아닐까. 생성된지 32년의 세월이 흐른 뿌연 연기 말이다. 연기, 뿌옇다. 라고 소개할수는 있지만 그것을 정확히 손아귀에 쥐고 느낄수는 없다.
스타티스. 00
2학기가 시작된지 일주일이 흘렀다. 담임이 교탁에 서서 종례를 하였다. 2학기가 시작되었으니 본격적으로 학업에 매진하라는 말과, 몇개월 후면 너희가 고3이 된다는 말이었다. 나는 가방을 챙겨 병원으로 갔다. 한달에 한번, 나는 병원에 간다. 나는 여기서 한달에 한번 진료를 본다. 머리가 의사에 의해 만져지는 느낌이 들어 한달에 한번 묘한 수치심을 느끼는 날이기도 하다. 병원 안내 데스크에 접수를 하였다. 성함이요? 김에리요. 아,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병원TV에서는 건강 관련 다큐와 병원을 홍보하는 방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A병동으로 가는 복도 쪽 벽에 병원 소개가 보였다. 서울 채운 병원. 그리고 그 옆에 한자로 적혀있는게 읽힌다. 白進. 흰 백자에 나아갈 진. 변백현의 백진이다. 찬열 삼촌네 병원과 변백현의 백진이 협업한다는 내용이 병원 복도 벽을 채우고 있었다. 내 인생은 변백현으로 시작해 변백현으로 끝이 난다. 변백현이 이사장직에 있는 학교를 다니고 변백현의 기업과 함께하는 병원에 다니며, 변백현의 집에서 변백현과 둘이 사니까.
"김에리 환자분, 들어오세요.'
나는 진료를 받기위해 진료실로 들어갔다. 몇가닥 남아있지않은 머리를 가진 늙은 교수가 앉아있다. 그리고 그 옆엔 찬열삼촌이 서있었다. 김에리! 안녕! 이라고 눈을 크게 뜨며 입모양으로 벙긋 댄다. 나는 찬열삼촌을 보고 소심하게 손을 흔들었다. 나이가 지긋해보이는 늙은 교수가 진료를 시작한다. 매번 똑같은 질문이었다. 최근 한달동안의 감정을 묻는 일로 시작했으며 끝에는 약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잠은, 요즘엔 잘자고? 약은 요즘에는 안먹고?"
"네."
"....좋아요. 박레지, 자네 이거 정리해서 변이사 메일로 보내."
늙은 교수가 찬열삼촌에게 말했다. 교수님! 저 에리랑 저녁 한끼 같이 먹고 와도 되겠습니까? 찬열삼촌이 교수에게 눈을 크게 뜨며 물어보았다. 교수가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삼촌이 가지고있던 차트를 뺏어 모서리로 삼촌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나 레지때는 앉아서 밥을 못먹었어."
"에이, 지금 시대가 어느땐데 옛날일을 꺼내고 그러십니까"
"자네 그런 행동 볼때마다 박원장님 볼 낯이 없어,내가. 자네 누나랑 형들은 그렇게 빠릿빠릿하고 잘했는데 말이야..."
"저랑 제 형제들이랑 같습니까~ 인물은 제가 훨 낫죠?"
찬열삼촌이 윙크를 하며 교수에게 말했다. 교수는 안경 너머로 삼촌을 째려보더니 대답했다. 먹고와. 옙! 삼촌이 내 손목을 이끌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병원 지하에는 카페테리아와 병원 식당이 있었다. 찬열삼촌이 돈까스 정식 2개를 주문했고, 잠시후 우동과 돈까스가 먹음직스럽게 담긴 트레이가 나왔다. 아~배고파. 아침 점심 다 굶고 에리 덕분에 첫끼 먹는다, 얼른 먹어. 삼촌, 점심도 안먹었어? 왜? 바빠서지 뭐. 삼촌이 안경을 벗으며 말했다. 밥을 다 먹고 병원 카페테리아에서 삼촌과 함께 변백현을 기다렸다.
"아~ 똥백 왤케 안와,진짜. 회진 들어가봐야하는데."
"전화 해볼까? 6시까지는 온다고 했는데."
"됐어, 학교랑 회사 둘다 운영해야 하는데 지도 바쁘겠지 뭐."
덕분에 일 안하고 노가리 깔수도 있고. 삼촌이 웃으며 덧붙였다. 나는 괜히 삼촌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카페 테이블에 몸을 축 눕히고 엎드렸다. 그리고 괜히 음료에 있는 얼음을 빨대로 휘젓기도 하고 빨대를 물고 음료에 압력을 가해 보글보글 물방울도 만들어 보았다. 변백현...언제와.. 6시까지 온다며.
찬열삼촌이 시계를 보며 말했다.에리야, 미안한데 삼촌 바빠서 들어가봐야 할거같아. 변백현한테 잘 말해줘? 삼촌이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응. 알았어. 찬열 삼촌도 가고, 나는 카페에서 게속 변백현을 기다렸다. 오늘도 나는 내 감정을 누군가가 만졌다는 생각에 우울하기 짝이 없다. 2시간이 지났고 음료에 있는 얼음이 다 녹았을때 변백현이 왔다.
"에리야, 미안. 회의가 길어져서 늦게끝났네."
"....."
"밥은, 박찬열이랑 먹었어?"
"....어."
나는 변백현을 잇는 힘껏 째려보았다. 변백현은 미안한 표정을 하고 내 손목을 잡았다. 빨리 차 타. 나는 일부러 뚱한 표정을 지으며 변백현과 함께 뒷자석에 탔다. 윤비서님이 운전하는 차가 부드럽게 병원을 빠져나간다. 변백현이 내 얼굴을 보고 입을 벙긋했다. 화났어? 변백현이 눈웃음 치며 말했다. 나는 그런 변백현의 얼굴을 보며 아무 대답도 할수없다. 변백현은 자신의 눈웃음에 내가 약하다는걸 알고있을까. 나는 잇는힘껏 변백현을 쏘아보았다. 내 눈을 본 변백현이 눈가에 웃음을 거두더니 미안했는지 아무말 없이 내 옆머리를 정돈하였다. 그러더니 팔목으로 딱 떨어지는 수트에 달린 변백현의 손이 내 손목을 붙잡는다. 어느새 차가 집 차고에 들어서고 있었다.
"김에리."
"왜.."
"오늘도 병원 갔다와서 기분 별로 안좋아? 내가 늦어서 미안해."
"..어쩌라고"
나는 집에 들어와 변백현에게 쏘아붙인 뒤 2층에 있는 내방으로 올라갔다. 변백현의 미안하다는 말을 들은 이후로 온 신경과 온 세포가 변백현에 관한것으로 집중된다. 방에 불을 켜고 가방을 내려놓고 옷을 갈아입으며 변백현을 생각한다. 백진그룹의 장남 변백현, 백진의 이사 변백현, 그리고 내가 다니는 학교 재단의 이사장 변백현을 생각한다. 넓은 방을 뒤로하고 침대에 꼬꾸라져서도 변백현 생각이 난다.학교도 변백현꺼. 이 집도 변백현꺼. 이 침대도 변백현꺼. 그리고 나도..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는데도 답이 나오지않을때는 극심한 우울감에 빠진다.
결과적으로 변백현에게 화를 내서 내가 이득볼껀 아무것도 없다. 그리고 변백현에게 짜증을 냈다는 죄의식이 나를 괴롭혔다. 금세 눈시울이 붉어지며 한쪽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온다. 변백현에게 화를 내는건 나 자신을 갉아먹는 행동이었다. 내가 뭐라고 변백현한테 그렇게 말했지. 변백현은 나한테 미안하다고 했는데.. 방에 불을 다 끄고 침대에 엎어져있는다. 변백현이 1층에서 올라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나는 침대 맡에있는 스텐드를 끄고 자는척을 한다. 변백현이 내 방에 오더니 침대에 걸터앉아 말했다.
"에리야."
"...."
"자?"
"...."
"거실에 나가서 영화볼까? 나 오늘 일도 다 끝나고 왔는데."
"....."
"다음달에 바다보러 갈까? 저번에 바다 가고싶다며."
나는 변백현의 말에 서서히 눈을 뜨고 변백현을 올려다 보았다. 변백현이 웃으며 그럴줄 알았다는 듯이 눈물때문에 얼굴에 붙은 내 머리카락을 정돈해주었다. 나는 변백현의 손을 치며 말했다. 치워. 미안하다고 사과를 해야하는데 차마 입에서 그말이 나오지 않았다. 진짜 뭐하냐 김에리..잘하는 짓이다. 하지만 변백현은 내가 병원을 다녀오면 예민해진다는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때마다 내 못난 행동을 다 받아주었다. 변백현이 여유롭게 스텐드를 켜고 내 얼굴을 닦아주었다. 나는 목이 잠긴채로 말했다.
"바빠서.. 못가잖아..바다."
"다음달에는 하루정도 시간 비울수 있을거같은데."
"....진짜?"
"응. 대신 에리가 2주뒤에 있는 9월 모의고사 잘보면."
수학 빼고 국어랑 영어 3등급. 변백현이 덧붙였다. 그럼 그렇지 하고 멍하니 보는 내 눈을 마주치며 여우처럼 생긋 웃는다. 변백현은 내가 수학을 지지리도 못하다는걸 알고있었다. 아마 내 표정도 지금까지 다 읽었을 것이다. 이쯤되니 여우같은 변백현에 사과할 마음도 사라졌다. 이렇게 내 마음을 다 꿰뚫어보고 있는데.. 변백현이 내 이불속으로 들어오더니 날 바라보고 옆으로 누워 말했다. 수트의 이질적인 촉감과 밖에서 뭍은 냄새가 느껴져 나도 모르게 몸을 움찔거렸다.
"자기 전에 내 서재에서. 난 일하고, 에리는 공부하다 방에 들어가."
"....나 못할거같아."
"해보지도 않고 그렇게 말하지. 또."
"...."
할말이 없다. 나는 대충 알았다고 말끝을 흐리며 대답한 뒤 베개에 코를 박았다. 나 잘꺼야.. 나가. 변백현은 피식 하고 웃으며 스텐드를 끄고 내 방을 나갔다. 이불에 변백현의 촉감과 냄새가 그대로 남아있었다. 나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잠이 들었다.
다음날부터 잠자리에 들기 2시간 전에 변백현의 서재에 가서 공부를 했다. 변백현은 그 옆에서 회사나 학교에서 다 보지못한 서류를 읽었다. 그리고는 가끔 한자로 쓰여있거나 영어와 함께 어려운 그래프가 있는 서류더미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어느날은 괜히 글자가 눈에 안들어와 펜을 이리저리 굴렸다. 손가락에 힘이 안들어가 펜이 변백현 쪽으로 튕겨지며 데구르르 굴러갔다. 변백현이 뭐하냐는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아니.. 펜이 잘 안나와서 돌리다가.. 튕겨졌나봐."
나는 당황스러워 대답하였다. 변백현이 내 손에 다시 펜을 쥐어주고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나 아무말 안했는데. 그렇게 변백현의 서재에서 공부를 하였다. 또 어느날은 공부가 미치도록 하기 싫은 날이 있었다. 변백현이 멍때리는 나를 보고는 아이패드에 시선을 고정한채 말했다.
"영어 하다 모르는 거있으면 물어봐."
"...이거."
나는 이때다 싶어 변백현에게 책을 들이밀며 물어보았다. 여기 이게 해석이 안돼. 사실 이 문장이 궁금해서 물어본건 아니었다. 그냥 변백현이랑 놀고싶어서 물어본거지, 영어 문장은 해설을 보면 다 나와있었다.
As there are differing tastes and preferences among different peoples and regions of the world, so do tastes and preferences evolve over the course of centuries.
"세상의 다른 사람들과 지역들 사이에 다른 취향과 선호가 있는것 처럼, 수 세기의 과정을 거쳐 취향과 선호도 역시 발전한다."
또, 궁금한거 없고? 변백현이 말했다. 어? 응... 변백현이 내 책에서 시선을 거두고 다시 아이패드에 시선을 고정했다. 아...진짜 공부하기 싫다. 나는 책상에 팔꿈치를 붙여 턱을 기댄채 변백현을 불렀다. 배쿠우~ 변백현이 내쪽을 힐끔 보더니 말했다.
"김에리, 공부가 하기 싫을땐."
"....?"
"바다를 생각해봐."
변백현이 보고있던 아이패드를 들이밀며 바다 이미지를 보여주었다. 변백현이 보고있던건 서류가 아니었다. 아이패드 액정으로 선명한 바다가 보였다. 수많은 바다 사진에 지금 여기가 서재인지, 바다인지 경계가 희미해질 정도로 드넓은 바다 풍경의 이미지가 보였다. 이젠 변백현과 함께 바다를 보러가는지, 바다와 함께 변백현이라는 공간에 있는건지 조차 헷갈린다.
작가의 말&BGM |
여러분 안녕하세요. 마크론 입니다. 고민 끝에 글을 쓰게되었습니다. 사실 글 쓰기 전에 많이 고민했어요. 제가 어렸을때부터 이나라,저나라에 많이 살아서 외국어나 한국어 한가지 언어를 잘 하지 못해요. 한국말을 본격적으로 시작한지 3년밖에 되지 않았구요. 어휘력이 다른 작가들에 비해 다소 부족할 겁니다. 맞춤법이나 띄어쓰기가 틀리더라도 여러분의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백현이의 백 자가 흰백자가 아닌건 저도 알고있습니다.그것또한 떡밥.. 사실 글에 많은 떡밥 장치를 숨겨놓고 싶은데 아직 글을 쓰는것에 많이 미숙합니다. BGM은 MISO의 TAKE ME 라는 노래입니다. 작품에 대해 더 관심이 생긴다면 이 노래 해석을 찾아보서도 좋을거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댓글 꼭 남겨주세요. 암호닉을 신청해주신다면 정말 감사할것 같습니다. 읽어주신 모든분들 사랑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