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그리고 싶어 붓을 잡고 서툴게 이젤을 펴 캔버스를 올리고 물감 상자를 열었다. 상자 속 색색의 물감들 사이에 빨간색 물감은 말라 비틀어져 구석에 처박혀 있었다. 너를 표현할 붉은색이 남질 않았다. 누구보다도 아름다운 널 새빨갛게 칠하고 싶었는데. 입이 바싹바싹 말라왔다. 연달아 터지는 기침에 형편없이 떨리는 손 위로 피가 뚝뚝 떨어졌다. 탁하고 검붉은 피. 헛웃음이 터져 미친 사람처럼 웃었다. 손에 묻은 피로 너의 얼굴선을 그렸다. 피가 부족했다. 손가락을 칼로 베자 칼이 스친 부분에서 피가 울컥 쏟아졌다. 손가락을 들어 너의 이목구비를 슥슥 그렸다. 쌍꺼풀이 짙은 눈도, 높고 투박한 코도, 두꺼운 입술도, 햇빛을 받아 빛나던 생머리까지. 나를 쏟아 너를 그렸지만 성에 차지 않았다. 진짜 네가 보고 싶었다. 검은 물감을 섞어 눈동자를 덧그리고 입술을 더 붉게 칠했다. 붓을 꽉 쥔 손가락에서 피가 자꾸 흘렀다. 눈 앞에 해사하게 웃던 네가 아른거렸다. 힘이 들어가지 않는 팔로 간신히 그림을 부여잡고 눈 앞의 너를 따라 웃었다. 생의 마지막까지, 나는 너와 함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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