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연아!" 미영이 까페 안으로 들어오며 환하게 미소지었다. 짧은 바지 아래로 곧게 뻗은 하얀 다리를 쭉쭉 벌리며 단숨에 수연 눈 앞에 선 미영은 잠시도 쉴 새 없이 종알거리며 수연의 옆자리에 앉았다. "나 진짜 너 보고 싶어서 죽는 줄 알았어. 전화 한 번 안하다니 너무해. 나 맛있는 거 사주는거지? 나 정말 화 많이 났었단 말이야. 넌 나 안보고 싶었어?" 수연은 입꼬리를 올리며 까페 안을 둘러보았다. 저 뒤에서 노트북을 하고 있는 여자 외엔 아무도 없었다. 2층이라 종업원도 보이지 않는다. 수연은 대답을 기다리는 미영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장어 먹으러 갈까?" "아니, 나 안보고 싶었냐니까?" 미영이 샐샐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긴 생머리가 그에 맞춰 이리저리 흔들린다. 예쁘게 정리해준 머리가 헝클어졌지만 수연은 인상 한 번 쓰지 않고 다시 미영의 머리를 정리해주었다. 그것이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일인 것처럼. "보고만 있는 것보다 그 동안 쌓인 거 다 하고 싶었어." 대답을 듣자마자 미영이 눈썹을 팔자로 모으고 수연의 어깨를 찰싹 때렸다. "그래서 장어 먹자는 거였어?" "안그래도 예쁜데 오늘은 더 예쁘게 하고 나왔잖아." 미영이 힛, 소리를 내며 수연에게 엉겨붙었다. 수연은 그런 미영이 사랑스럽다는 듯 귀 뒤로 머리카락을 넘겨주며 웃었다. 그리고 눈치를 살피더니 끈적한 키스를 하기 시작했다. 노트북으로 한창 리포트를 작성하고 있다가 야릇한 소리에 고개를 든 태연은 저 앞에서 벌어지는 키스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키스만 하면 다행이지, 아주 살림을 차릴 기세였다. 아니 둘 다 여자인 거 같은데...눈을 가늘게 뜨고 살피던 태연은 기가 차서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황미영. 미영은 눈썹을 팔자로 모으며 어떤 여자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있었다. 여자가 혀라도 깨문건지 잠시 입술을 떼고 둘이 뭐라고 하며 웃는다. 태연은 화가 나 얼굴을 굳혔다. 사람이 저렇게 뻔뻔할 수가 있나. 태연은 방금 전까지 몰두하던 리포트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죽일듯이 미영을 노려보았다. "그새 또 다른 여자 만난 건 아니지?" 그건 너겠지. 태연은 옆에 있던 아메리카노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먹지도 못하면서 값이 싸단 이유로 주문한건데 맛이 잘 느껴지지도 않았다. 얼마 전 잘만 사귀고있던 여자친구를 저 콧소리와 눈웃음으로 살살 꼬여내어 뺏어간 미영이었다. 그리고 일주일도 안되서 저 여자와 붙어먹고있는것이다. 인적 드문 까페라고 아주 살판이 났다. 바람인지 아니면 그새 헤어진 건지도 감이 안 잡혀서 태연은 입술을 앙다물었다. 여우 같은 계집애. 태연은 찌푸려진 미간을 손가락으로 펴며 다시 미영과 함께 있는 여자를 쳐다보았다. 볼룸감 있는 몸매와 웨이브진 금발. 고양이 같은 눈매에 태연은 저도 모르게 혀로 입술을 축였다. 확실히 지금껏 사귀었던 애들과는 비교도 안되게 예쁘장했다. 한 명을 제외하면 말이다. 생각이 딴 길로 새서 태연은 머리를 붕붕 흔들고 다시 미영과 여자에게 집중했다. 황미영은 예쁜 여자라면 환장을 하니 이 여자랑 바람을 피운다해도 이해는 간다. 태연은 미영을 싫어했지만 미영이 보통내기가 아니란 건 인정하고 있었다. 미영은 일주일에 8명의 여자랑 붙어먹어도 이상할 게 없었다. 내가 과제에 치여 다크서클이 볼까지 내려올 동안 쟤는 저 도도해보이는 여자를 꼬셨단 말이지. 태연은 문득 회의감을 느꼈다. 조금이라도 친했다면 작업장이 어디인지 당장 물어봤을텐데. 여자는 애교를 부리는 미영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태연은 둘의 모습에 다시 시선을 고정했다. "수여나, 수여나." "왜?" "쌓인 거 꼭 집에 가서 풀어야돼?" 수연이 영문을 모르겠단 얼굴로 미영을 바라보고 있자 미영이 키득거리며 말했다. "미영이가 지금 여기서 풀어줄까?" 수연이 당황한듯 뭐, 하며 소리를 높였다. 야, 사람들 다 보는데...둘만 있을 때 해. 미영은 계속 재미있다는 듯이 킥킥거리기 바빴다. "왜, 아무도 우리 안보잖아." 저게 진짜 정신이 나갔나? 태연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미영을 바라보았다. 내가 있다고, 내가! 미영이 여자의 귀에 뭔가 속삭이자 여자의 얼굴이 갑자기 확 빨개졌다. 가지가지한다, 가지가지해. 태연은 얼굴이 일그러졌다. 내가 인기척을 내던지 자리를 박차고 나가던지 뭐든 해야겠어. 그러나 태연이 어떤 행동을 취하기도 전에, 미영이 선수를 쳤다. 여자의 빨개진 얼굴을 묘한 표정으로 응시하며 미영의 손이 여자가 입은 셔츠를 풀어내렸다. 그리고 여자를 힐끗 보더니 고개를 내리고... 태연은 고개를 돌렸다. 다시 한 번 아메리카노를 마셔보았지만 여전히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저 영상을 찍으면 둘이 까페민폐녀 되는건가. 하지만 태연은 그럴 위인이 못됐다. 착하다기보다는 후의 미영이 어떤 식으로 보복을 할지 두려운 마음이 크다. 수연이 당황한듯 미영의 머리를 가볍게 밀었지만 조금 시간이 지나자 포기한듯 미영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미영은 수연의 가슴에 남은 자욱을 물끄러미 보다가 만족스러운 듯 혀로 입술을 핥았다. 아주 예쁘게 남았다. 미영은 자욱을 손가락으로 간간히 스치며 다시 셔츠 단추를 정성스레 잠가주었다. "돌발행동 좀 하지마." 수연이 불만스러운 듯 인상을 찌푸렸다. "에엥, 그래도 약하게 한건데. 자기는 더 심하게 하면서." 미영이 수연이 어깨에 남긴 자욱을 옷을 살짝 들어 보여주었다. 누가 보면 멍이라도 든 줄 알 것처럼 온통 발갛게 물들어 얼룩덜룩했다. 수연이 웃으며 미영을 타일렀다. "그래도 둘만 있을 때만 해." "나도 나름 상황 살피고 한거야." 그리고 이러는 거 좋아하면서 내숭은. 수연은 결국 못말린다는 듯이 웃어버렸다. "맞아. 사실 더 끓어오르게 해서 열받아." "봐봐! 이 내숭! 좀 더 해줘?" 미영이가 목덜미를 물려고 달려들었다. 그러자 수연은 깔깔대며 피하다가 미영의 얼굴을 붙잡고 이 곳 저 곳에 가볍게 입을 맞춘다. 미영이 그에 장난을 친답시고 익살스럽게 얼굴을 찌푸리자 수연이 고개를 숙이고 몸을 떨었다. 마냥 즐거운 둘과 달리 태연은 그걸 보며 차오르는 토기를 애써 억눌러야했다. 정말 눈꼴 시려서 못봐주겠네. 태연은 자신이 전여친과 치던 장난을 떠올리다 결국 잊으려 애를 쓰던 전여친과 헤어지던 날을 다시 기억해냈다. 니가 맘에 안든다는건 아니야. 근데 황미영은 내가 좋아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어서, 그래서 헤어지잔거야. 잠깐. 태연은 고개를 번쩍 들고 여자의 뒷통수를 바라보았다. 나도 지금은....저 금발머리가 뭘 좋아하는지 알잖아? 황미영이 하던 것만 잘보고 따라하면 된다. 태연은 턱을 괴고 입꼬리를 올리며 둘을 지켜보았다. 황미영은 아주 커다란 실수를 했다. 남 여친 뺏어가놓고 눈 앞에서 그러면 안되지. "돌발행동을 좋아한다 이거지." 쟤도 대단한 여우지만 나도 여자 하나 못 꼬실 정도는 아니거든. 드디어 태연도 즐거워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