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추가 왔다 갔다 하는 모양새에 닮아가듯, 너 또한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지내고 있었다. 다만 시간의 틀 속에 갇혀 오래 전 추억을 배경으로 살아간다는 것, 그것은 너에게 적용하자면 예전과는 다른 모습이지만 나에 적용한다면 한결같았다고 말할 수 있었다. 무엇이 이토록 우리를 멀어지게 만든 것일까. 시간 속에 갇혀버린 나에게 남은 것은 무엇일까.
너는 나와 함께일 때보다 더욱 행복해보였다. 내가 안겨 울고 웃던 품에는 이미 나 아닌 다른 사람을 품고있었고 나는 그것에 대해 어떠한 말도 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으니까. 나의 기억 속에 살고 있는 너는 한없이 이기적이었다. 네가 행복하기 위해서 방해가 되는 그 어떠한 것은 손아귀에 넣어 부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너에게는 나도 그러한 존재였다. 나는 그런 너를 보듬어주고 감싸주고 또한 지켜주고 싶었다. 하지만 너는 나와 달랐는지 이용으로 시작하여 나를 파멸로 이르게 만들었다. 그래도 나는 그 또한 행복했다.
"세상 그 누구보다 더 널 사랑해."
내 종인아.
"백현아."
사람은 참 잔인하게도 다른 사람이 그토록 간절히 바라고 바라던 순간을 쉽게 내친다. 그때의 너는 지금처럼 나를 내쳤다. 내게 사랑을 말하던 입술을 사랑했다. 하지만 그 입술은 내게 내내 거짓을 고하고 있었다. 사랑한다는 말, 사실은 날 사랑하지 않았고 나는 단지 그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한 도구였을 뿐이었다. 그리고 나밖에 없다는 말은 이중성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나밖에 없다는 것이 아닌 그토록 바보같이 자기를 믿고 속아주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는 말이 진실이었다. 그리고 그 날도.
"루한."
"...."
그래, 너는 그랬었다. 네가 죽을 뻔했던 그 순간에도 너는 나를 이용했다. 차가 미끄러져오는 순간에도 내 품에 끌어안은 너를 포기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너 대신 내 목숨을 버렸다. 정신이 희미해지던 와중에도 나는 너를 찾았지만, 너는, 없었다. 하얀 침대가 붉게 물들어가는 아픔보다 가슴에 밀려오는 슬픔이 더 치명적으로 와닿았다. 어쩌면 그때 네가 내 손을 잡아줬더라면 지금쯤 나는 살아있지 않았을까. 내 장례식에도너는 찾아오지 않았고 나는 그렇게 혼자 몇 일을 지새웠다.
"백현아."
"왜."
"사랑해."
"난 별로."
너는 단 한번도 사랑한다는 대답에 사랑한다고 대답해준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의 너는 옆에 있는 그에게 사랑을 고하고 있었고 요구하고 있었다. 나에게 대했던 것과는 달랐다. 그것은 진심이었다. 내가 옆에 있는 그였다면 내 한몸 다 바쳐 너를 사랑했을텐데. 나는 변한 것이 없었고, 내게 돌아올 너를 여전히 기다리고 있었다. 이기적이게도 나는 차라리 네가 버림을 받아 다시 내게 와주길 바라고 있었다. 전처럼 나를 이용해도 좋으니 다시 안아주었으면 했다. 그때처럼 나는 너를 사랑했고, 지금도 사랑하고, 비록 너는 나를 볼 수 없지만 네 옆을 지키는데.
"변백현, 너는."
종인아, 너는.
"나를 언제쯤."
나를 언제쯤.
"받아줄거냐."
사랑해줄거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