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백현"
"응? 아, 잠시만 기다려봐"
벌써 다섯번째다. 변백현을 부른것은, 그러나 백현이는 계속 바쁘다는 소리만 되풀이하고 여자 선배들과 알콩달콩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화가 났다, 이렇게 무시당하는게. 벌써 변백현과 사귄지 일년이 지난 지금이였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일년이였다. 우리는 같은 대학교에 합격을 하여 알콩달콩 대학생활을 보내였지만 그건 내 착각이였나보다. 어느샌가 백현이는 나를 무시하고 다른 여선배들과 이야기만을 나누고 바쁘다는 핑계로 나와 얼굴을 마주보고 대화한지가 벌써 한달째인것같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변백현이란 이름을 불러보았다.
"변백현"
"아아, 선배 그런거 아니에요~"
나는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변백현의 가녀린 팔뚝을 잡아끌어서는 여선배들과 하하호호 재밌게 놀던 그 자리를 급히 떴다. 변백현은 왜이러냐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 시작한다. 지금 이 듣기싫은 목소리로 찬열아하고 다정히 불러줬던 백현이는 어느샌가 내 눈 앞에 없어졌다. 지금의 변백현은 너무나도 많이 변해버렸다. 점차 사람들의 모습이 안 보이자 나는 그제서야 변백현의 팔목을 세게 놓았다. 아니, 놓았다라는 표현보다는 버렸다라는 표현이 가까울수도 있다. 변백현의 처진 눈꼬리엔 눈물이 맺혔고 나는 그 눈물을 모른척했다. 변백현은 이내 그 눈물을 떨어트리더니 소리를 질렀다. 뭐하는짓이냐고. 나는 그런 변백현을 무표정으로 쳐다만 보았다. 지금 이렇게 우는 변백현에게 아무런 말도 못해주었다. 너무나 화가 나서. 난 변백현을 다시 한번 불렀다.
"변백현"
"…"
백현이는 대답 대신 그저 나를 화난듯 바라보았다. 나는 그 모습에 실소를 하며 고개를 떨구었다. 그리고 내 입에서 꺼낸말은
"나도 이제 너무 지친다"
"…뭐?"
"우리 그만하자"
끅끅 대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 소리에 고개를 들어 백현이를 바라보았다. 애써 울음을 참아내는 백현이, 얼마 안돼서는 결국 엉엉 소리내며 울기시작했다. 나는 그런 백현이를 멍하니 바라만 보았다. 변백현은 내 가슴팍에 얼굴을 묻었다. 나는 그런 변백현을 계속해서 밀어내었지만 변백현은 떨어질 생각을 안한다. 나는 이를 꽉 물고서는 소리를 질렀다.
"저리안꺼져?!"
"…왜그래 찬열아"
"우리 그만하자고, 너도 나도 지쳤잖아. 그러니까 우리 여기서 그만 끝내자"
변백현은 그제서야 나에게서 떨어졌다. 그제서야 우리의 사랑이 막을 내렸다. 일년인 짧고 긴 사랑이 끝이나고 나는 변백현에게 등을 돌렸다. 아무런 미련도 없이, 아무런 생각도 없이 변백현에게서 등을 돌렸다. 등을 돌리며 멍하니 멍하니 걸음을 옮겼다. 너무나 힘들었다. 이렇게 쉽게끝나버릴줄 몰랐다.
*
"그래서 헤어졌냐?"
"뭐 그렇게 됐지?"
"…뭐 니 뜻이 그렇다면 그런거지"
간만에 김종인과 연락이 닿아 포장마차에 앉아 이렇게 사소한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김종인이 자리에 앉자마자 물어본것은 백현이와 나와의 관계였다. 아직도 잘지내냐? 어휴 징그러운것들, 고등학교땐 아주 바퀴벌레였지. 아무리 밟아도 다시 일어나ㅋㅋㅋㅋ하면서 김종인이 터지자 나 또한 웃음이 터져버렸다. 그럴때가 있었지, 백현이와 함께 그렇게 다정하고 재밌게 놀던 때가. 나는 웃음이 그치자마자 김종인에게 우리가 헤어지게 되었다고 말을 하자 김종인 또한 표정을 굳히더니 내 말에 귀를 기울어주었다. 이제는 백현이와의 헤어지게된 이야기를 이렇게 간단하게 말할수있게 되었다. 나는 씁쓸한 미소와 함께 술을 한잔,두잔 들이켰다. 그렇게 종인이와 나는 얼굴이 붉어질때까지 아무말없이 술을 들이키기만을 반복했다. 어느새 시간은 새벽을 달렸고, 우리둘은 아쉬운 포옹을 하며 작별의 인사를 하고는 길거리를 걷다가 백현이와 첫키스를 하던 장소를 발견하였다. 서로 쑥쓰러워하며 풋풋하게 첫입맞춤을 하던 그 장소. 지금이나 그곳이나 장소는 변하지 않았다. 그 좁은 곳에 차한대가 주차되어 있고 그 차 뒤로는 서울 전망이 펼쳐졌다. 너무나도 이뻤다. 그때의 우리는 너무나도 어렸었는데 언제부터 이렇게 된것일까? 백현아.
그때 그 시절 우리는 그렇게 즐거웠고
그때 그 시절 우리는 그렇게 행복했다
낡은 필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