ㅇ...우리 명수찡 미워하지 마라여......☆★
이라라가 또 돌아왔어요!!!
지난 편에 다 답글을 달아드리고 싶었는데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왜 자꾸 원글 뭐가 삭제되었다고 댓글을 못단대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짲응!!!!!!!!!!!!!
그래서 포기하고.........사과의 의미로 8편 업뎃!^0^
정말 답글 못달아 준거 미안해요ㅠㅠㅠㅠㅠㅠ
그래도 나 다 읽고 하나하나 고마워하고 이써요ㅠㅠㅠ
이번 글에 달린 댓글에는 반드시 달아줄게요ㅠㅠ!!!!
오류가 안난다는 전제조건하에ㅇ_ㅇ;;;
그럼 읽으러 가시죠!!!*_<
오타는 애교로, 탈자는 사랑으로!^0^
BGM : 모그 - Devil's Bossa
하얀 거짓말
W. Irara
* * *
“……….”
-듣고 있어, 성규야?
“…네, 형.”
-무슨 일이 있었던 건데. 대체 어떤 일이 있어야 명수가 그런 말을 하느냔 말야.
“……….”
-형한테 말 안할 거야?
“…내일, 다시 연락드릴게요.”
-성규야.
“그럼 주말에 뵈요, 형.”
그래, 쉬어라―하고 끊기는 전화. 가만히 전화를 탁자위로 내려놓은 성규는 한숨을 내쉬었다. 다시는 서지 못할 줄 알았던 카메라 앞에 다시 서게 되었다. 명수를 놓음과 동시에 함께 놓은 꿈인 줄 알았는데, 명수로 인해서 다시 할 수 있게 되었다. 틀림없이 저를 괴롭힐 명수의 무언가가 있을 거라는 걸 짐작하는 성규였지만 기쁜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우현의 데뷔 후에 찾아온 열등감. 우현의 성공으로 인해 뒤떨어지는 기분과 함께 우현이 멀어져버린 듯 한 기분을 느꼈던 성규였다. 그러다 찾아온 ‘김명수’라는 기회. 비록 사랑해버리긴 했지만, 그는 성규에게 좋은 발판이었다.
새로운 꿈이라는 걸 꾸게 해준 사람이었다. 무력한 나날을 보내던 나에게 색다른 삶을 살아보지 않겠냐고 묻던 호리호리한 남자. 형과의 첫 만남을 잊을 수가 없었다. 어쩌면 동경이지 않을까 생각도 해 보았다. 내가 형을 사랑했던 거. 나의 이상을 만나게 해준, 나의 또 다른 삶을 살게 해준 형에게 가지는 동경심 같은 게 아닐까. 그래도 사랑은 사랑이었다. 동경심과 무한한 신뢰. 그마저도 나는 사랑이라고 생각했으니까. 내 사랑은 그런 거였으니까. 나는 또 내심 감탄하고 있었다. 말 한마디에 사람의 앞날을 오락가락할 수 있게 만들 수 있는 형이라는 사람, 그의 능력을.
성규는 등받이에 몸을 깊게 묻었다. 푹신한 소파가 성규를 가득 끌어안았다. 뺨의 상처가 아물자 우현은 바쁘게도 스케줄이 잡혔다. 그간 못했던 활동을 죄다 몰아서 시키기라도 하려는 듯이, 쉴 틈을 주지 않고 우현을 돌렸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씻고 약을 한 듯, 쓰러져 자기가 일쑤. 하루 종일 우현을 기다리다가 지친 얼굴로 돌아온 그를 보며 잠에 들고, 새벽녘에 어렴풋이 들리는 ‘미안해―’ 그 목소리를 들으며, 이마 위로 내리 눌러지는 따뜻한 입술을 느끼는 것. 요즘 성규가 하는 것의 전부였다.
바쁜 너를 탓하는 마음은 전혀 없었다. 서로 얼굴을 마주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은 눈에 띠게 줄었지만, 나는 모든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럴 여유가 마음 안에 생겨나기 시작했다. 형을 사랑하면서 집착과 현실부정의 방법으로 사랑을 했다면, 너를 사랑하면서는 기다림과 믿음의 방법으로 사랑을 하고 있었다. 너를 믿고, 또 너를 믿어 흔들리지 않는 나를 믿고. 나를 다독이면서 견뎌낼 수 있었다. 나 스스로도 형을 정리해내는 데에 시간이 필요했고, 때맞춰 네가 바빠진 게 다라고. 바빠진 일정이라고 해서 나에게 관심을 소홀하게 하는 너도 아니었으니까, 늘 한결같은 너였기에 더욱 마음잡고 견딜 수 있었던 거라고. 정말 진실로― 바쁜 스케줄을 소화해내는 도중에도 틈을 내어 안부를 묻고 사랑한다 말해주는 너 때문에, 나는 너의 사랑을 의심조차 하지 않고 이렇게 꿋꿋하게 버텨 내고 있는 거겠지.
“후우―”
한숨소리가 길었지만 아무도 성규를 나무라지 않았다. 명수에 대해서는 이미 모든 것을 체념하고 마음속으로 삭혀버린 성규였다. 명수에게서 받았던 상처가 다 아물지 않았지만, 모든 것을 덮어버리고 지울 수 있다면 지워내고 싶었던 기억들이니까 성규는 특별히 기억을 끄집어내지도 않았다. 끝도 없이 느꼈던 불안감과 열등감. 저의 것을 빼앗기면서도 돌려받지 못하는 제 현실을 부정하고 도리질 쳤던 치욕스러운 과거. 두터운 이불로 덮어 다시는 꺼내보지 않으려 했던 기억인데, 명수가 다시 부추기고 있었다. 이불을 뚫고 자꾸만 튀어나오는 과거들. 기억해 아픈 시간들이라는 걸 알면서도 자꾸만 끊이지를 않는 잔상들에 성규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이제는 다 괜찮다고 생각했다. 내 꿈을 잃는 대신에 너의 곁에서 사랑받으며 사랑하며 살 수 있다면 웃을 수 있을 거라고. 너의 노래를 듣는 것만으로도 기쁨일 수 있을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자꾸만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는 내안의 욕심이 나를 형과 만나게 만들었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 모든 게 괜찮아진다면 내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설 거라고 다짐했다. 내 곁에 나를 응원하고 바라봐주는 너도 있으니 못할 것 없다고 큰소리 쳤던 나였다. 그런 내 의지가 언제부터 이렇게 나약했던 것인지. 뻔히 눈에 보이는 형의 농락에 나는 놀아나려고 하고 있었다. 알면서도 흔들리는 것은 내가 이기적인 인간이기 때문에. 형의 곁에서 또 흔들리고, 후에 뒤돌아 자책할 내가 눈앞에 보이면서도 자꾸 설레는 가슴을 주체하지 못했다.
[주말에 회사로 와. 명수랑 같이 가게. -동우형]
진동을 내며 울리는 핸드폰에 액정을 들여다본 성규는 또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딱 잘라서 거절하지 못한 게 이미 잘못이었다. 흔들릴 것 같다면 뭐든 흔들릴 만한 여지를 없애야 했는데. 결국 제 발로 호랑이 굴에 들어가려는 상황이 된 셈이니까. 머리를 헝클어뜨린 성규는 입술을 악물었다. 막연하게 떠오르는 우현에 대한 미안함. 그에게 이 말을 또 어떻게 전해야 하는지가 문제였으니까.
무턱대고 전화를 걸어볼까, 그런 생각도 했다. 꺾인 줄 알았던 내 날개를 다시 휘저어 볼 기회가 생겼다고. 그런데 그 기회가 또 형이라고. 너의 반응을 가늠할 수가 없어서 못한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용기가 없었다. 너라면 분명 가슴에 상처를 입으면서도 나를 위해 웃으며 박수를 쳐줄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함부로 입을 놀릴 수 없었다. 애꿎은 핸드폰만 만지작거리며 괴로움에 몸서리 쳤다. 어떻게든 너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은 것도 한편으로 자리한 마음. 내가 잘하는 게 그거 딱 하나라는 게 또 마음에 걸리는 거. 이렇게 저렇게 난감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성규에게는 지친 얼굴로 집에 들어오는 우현을 보며 미안한 말을 할 수 있을 만한 담력도 없었다. 가늠할 수 없는 우현의 반응과 차마 외면할 수 없는 마음속의 분쟁. 성규는 핸드폰을 꽉 쥐었다. 시계의 시침이 새벽 두시를 향해가고 있었다. 동우가 꽤 늦은 시간까지 자지도 않고 이렇게 전화를 해 오는 걸 보면 이래저래 고민을 많이 하고 전화를 걸었던 듯. 일을 하면서 유일하게 성규와 명수의 교제 사실을 알고 있었던 동우이고, 또 명수 곁의 성열도 알고 있는 그였기에. 아무래도 우선적으로 성규 제가 걱정이 되는 수밖에 없었겠지 싶었다. 성규는 동우의 전화번호를 누르고 한참을 망설였다. 지금이라도 거절한다면 늦지 않게 거절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고민에서. 엄지손을 입에 넣고 잘근잘근 깨무는데, 갑자기 도어락이 해제되는 소리가 들렸다. 성규는 놀란 얼굴로 현관문을 바라보았다.
“다녀왔어.”
“어? 우현아.”
“혼자서 심심했지.”
“오늘은 일찍 왔네?”
마지막에 라디오 스케줄 하나 있었는데, 디제이 누나가 내 얼굴보고는 기겁했어. 이런 몰골로 어떻게 방송하냐면서 그냥 가라더라고. 축 처진 몸을 끌고 성규의 앞으로 걸어온 우현은 성규의 앞에 풀썩 주저앉았다. 소파위에 앉은 성규는 우현을 나무랐다. 그렇게 갑자기 앉으면 무릎 상해― 걱정스러운 성규의 목소리가 들리지도 않는 건지, 우현은 성규의 무릎 위로 얼굴을 묻었다. 피곤해서 죽을 것 같아, 성규야. 잔뜩 지친 목소리. 성규는 가만히 우현의 뒷머리에 손을 얹었다.
그럼 펑크 난 라디오는 어떡해. 디제이 누나가 너 보내라니까 피디님은 가만히 계시고? 성규의 물음에 우현은 고개를 들어 배시시 웃었다. 피디님도 내 얼굴 보시고는 알았다면서 우리 회사로 전화 하시더라. 그리고는 그 자리에 신인 그룹이 가게 됐어. 잘됐지, 뭐. 홍보도 하고 나는 좀 쉬기도 하고. 인간의 체력. 그것의 한계에 도전을 하려는 듯 보이는 우현의 모습에 성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씻고 얼른 가서 좀 누워. 지금부터 푹 자. 어차피 내일 늦잠도 못잘 텐데. 걱정이 묻어나는 성규의 목소리가 오랜만이라 반가운건지, 우현은 성규의 얼굴을 끌어와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싫어. 잠은 내일도 잘 수 있는데, 오늘 김성규 얼굴은 오늘이 아니면 못 봐.”
“못 산다, 정말.”
“내일 아침에 씻을래. 너무 귀찮아.”
대학교 시절의 우리가 떠올라서, 웃음이 터져버렸다. 그래, 씻는 걸 유난히도 귀찮아하던 너였지. 더럽다면서 괴롭히면 마지못해 씻으러 들어가던 그때 그 뒷모습이 떠올라서 푸흐흐 웃음을 터뜨렸다. 달라진 게 없는 모습에 고개를 저으며 침실로 들어섰다. 얼른 와서 누워. 조금이라도 더 누워있게. 내 말에 바닥에서 몸을 일으켜 옷가지들을 벗어던지는 너의 행동에 한숨을 내쉬고는 침대위로 올라갔다. 달랑 브리프만 입고 침대위로 올라오는 너. 추우니 가서 잠옷을 입고 오라는 말도 듣지 않는다. 나를 끌어안은 채 연신 ‘좋다, 좋다’만 말하는 너였다. 네가 내 옆에 있기로 한 후부터, 모든 것이 소중해. 진지한 그 목소리와 함께 정말 소중한 것을 끌어안는 듯 조심스럽게 나를 끌어안는 행동까지. 모든 행동에 사랑이 묻어나서, 나는 정말 내가 사랑받고 있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지친 네 얼굴위로 동우형과의 통화가 생각났지만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너는 그렇게나 힘든 얼굴을 하고서도 내 편을 들어줄까? 최대한 빨리 전화를 해주지 않으면 피할 길 없이 촬영을 나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거절도 최대한 빠르게 하는 게 중요했다. 지친 너를 앞에 두고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너무 짜증났지만 어쩔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조심스럽게 너의 이름을 불렀다. 우현아― 언제나 부르기 좋은 그 이름에 얼얼한 혀를 느끼고 있는데 너의 부드러운 대답이 들려왔다. 응? 가벼운 그 대답에 나는 보다 편하게 사실을 말할 수 있었다.
내가 어떤 말을 한다 해도, 네가 화내지 말아 줬으면 좋겠어. 차분한 성규의 목소리에 우현은 감고 있던 눈을 떴다. 뭔데? 성규를 따라서 차분해진 목소리였다. 성규는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내뱉었다. 다소 긴장한 듯 보이는 성규의 얼굴에 우현은 고쳐 누우며 성규의 등을 쓰다듬었다. 왜 그래? 따뜻하고 부드러운 우현의 손을 느끼며 성규는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오늘 동우 형한테서 전화가 왔어.”
“뭐라고?”
“촬영이 있다고 나오래.”
“우와 잘 됐다!”
“문제는, …그걸 명수 형이 시켰다는 거지.”
내 말에 어김없이 너는 입을 다물었다. 충분히 이런 반응을 짐작 했었다. 이제 너의 곁에 머물기 시작한 나인데, 괜찮다고 말은 그렇게 해도 나 몰래 불안해 할 너라고 충분히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손을 들어 너의 볼을 어루만졌다. 꽤 잘 아문 상처였지만, 그래도 흔적은 남아있었다. 길게 남은 흉터를 보다 너와 눈을 맞췄다. 이제는 나보다도 네가 소중했다. 이렇게나 나를 기다려준 너에 대한 고마움과 그만큼 자라난 내 감정. 그리고 믿음을 보여주고 싶은 게 내 마음이었다. 우현아― 이름을 길게 불렀다. 또 다시 돌아오는 짧은 대답. 응. 그에 나는 확실하게 내 마음을 보여줄 수 있었다.
“내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
“네가 하라는 대로 할게.”
곤란한 모양이었다. 짓이겨진 너의 입술을 보고 괜히 버거운 선택을 너에게 미뤄버린 건 아니었나 걱정이 들었다. 너는 팔을 들어 눈을 가렸다. 손등에 가려진 너의 눈 위로 주름이 졌다. 그 손을 잡아 내리니 복잡한 표정을 하고 있는 네가 눈에 들어왔다. 네 마음 그대로 말해줘. 나는 정말 네 뜻에 따를 생각이야. 내말에 너는 싱긋 웃으며 나를 끌어안았다. 늘 편안 품안. 언제 안겨도 편히 눈을 감을 수 있는 그런 너의 가슴에 얼굴을 묻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힘든 건 나한테 다시키지, 김성규? 장난스러운 목소리였지만 미안한 마음을 떨칠 수는 없었다.
우현은 고르게 숨을 내뱉었다. 품에 안겨있던 성규는 고개를 들어 우현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고작해야 턱 끝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어떻게 해서든지 우현의 얼굴을 보고 싶었던 것이 성규의 진심이었다. 우현은 고개를 내려 성규의 이마위로 입술을 내리눌렀다. 꼭 끌어안고 등을 어루만지는 게, 불안하긴 했던 모양인지. 잠시도 가만히 있지를 못했다. 성규는 우현의 허리를 팔 안에 가두었다. 말 해봐, 우현아. 내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지.
고개를 이리저리 젓던 너는 몸을 뒤로 빼며 나와 눈을 맞추었다. 너는 어떻게 하고 싶은데? 묻는 입술이 파르르 떨고 있었다. 늘 나를 믿는다고 말해줬던 너라서, 이번에도 나를 믿어달라고 말을 하고 싶기도 했다. 언제까지 너의 집에서 너를 기다리고만 있을 수는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김명수, 그만 아니라면 언제든지 다시 일을 시작하고 싶다는 욕구도 있었고. 너에게 사랑을 받음과 동시에 짐 같은 존재로 하락해 버리기는 싫었다. 적당히 내 마음이 추슬러지면 다시 시작할 생각이었는데. 그게 생각보다 조금 빨라 진거다. 나도 이렇게 당황했는데, 너라고 침착할 수 있을까. 여전히 나의 의사를 묻는 너의 입술에 입을 맞추고 고개를 저었다.
“네가 말해. 내가 어떻게 할까?”
“너 하고 싶은 대로 했으면 좋겠는데.”
“이번만큼은 네가 욕심 부려봐. 다음부터는 내가 다 욕심 부릴 거니까, 이번 한번만. 딱 한번만, 욕심 좀 부려봐.”
“……….”
욕심을 부려달라는 소리는 어쩌면 내가 형에게 가지 못하게 잡아달라는 소리였을지도 모른다. 굳게 다물어진 너의 입술을 보면서 네가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재촉할 생각은 없었다. 피곤할 텐데 나 때문에 걱정을 하나 더 안겨준 것 같아서 점점 미안해지고 있었다. 입을 닫고 한참동안이나 나만 바라보던 넌 이윽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성규야― 차분하게 나를 부르는 너의 목소리. 응, 듣고 있어. 말 해. 나 또한 최대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천천히 차분하게, 대답했다.
“촬영 해.”
“……우현아.”
“네가 처음으로 하고 싶다 했던 모델일이고, 그 일은 나 때문에 그만 둘 수는 없잖아.”
“……….”
“김명수 그 사람이 애인으로서는 불합격이지만 너의 성공을 위한 발판으로서는 합격이야. 충분히 대단한 사람이니까. 성규야, 너무 미안해하지 말고 촬영 하고 와.”
예상을 빗나가는 대답이었는지, 성규의 두 눈이 크게 뜨였다. 여전히 성규를 향해 은은한 미소를 띠우고 있는 우현을 보며 성규는 입술을 달싹였다. 멍해져버린 얼굴이었다. 얼어버린 성규를 보면서 우현은 입 꼬리를 크게 말아 올려 활짝 웃었다. 성규야, 난 네 사진을 보면 너무 행복해. 진심어린 응원의 말에 성규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너의 허락은 이번에도 변함없이 나를 믿겠다는 말이었다. 형의 옆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잘 해낼 나를 짐작하고 있는 듯 했다. 이쯤 되니 과연 나를 향한 너의 믿음은 어디까지 인가가 궁금해졌다. 무엇이든 어떤 상황이든 내 편에 서서 나를 믿어주는 너. 어쩌다 너같이 좋은 사람이 나를 사랑해줬을까. 때 아닌 행복에 겨워 눈물도 훔쳤다. 고마워― 수줍은 내 인사말에 너는 내 머리를 헝클었다. 전보다 더욱 피곤해진 것 같은 얼굴로 너는 내 뺨 위에 가볍게 키스를 했다. 잘 자― 들리진 않았지만, 네가 그렇게 말한 것 같았다.
“이제 자자.”
“……….”
“내일 나도 일찍부터 스케줄 있고, 너도 촬영 준비해야 하잖아.”
“응.”
손을 마주잡고 눈을 감은지 얼마 안 되어 스르륵 잠에 빠져드는 너. 너의 큰 손을 잡고 나도 가만히 눈을 감았다. 바로 옆에서 느껴지는 온기. 네가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나에게 큰 힘이 되고 있었다. 언제, 어디서부터였는지 알 수조차 없는 너의 사랑이지만, 그 사랑이 내 사랑보다 더 위대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고 있었다. 그리고 네 옆에서 영원히 행복할 나도, 나름대로 기대하고 있었다.
편안한 잠자리. 아무 걱정 없이 이렇게나 마음 놓고 잠에 들 수 있는 건, 그건 아마 내 곁에 네가 있다는 사실 때문에.
* * *
“먼저 나갈게. 오늘도 노래 열심히 부르고 와. 사랑해.”
쪽―
아침 일찍, 서둘러서 나보다도 먼저 집을 나서는 너를 배웅해주며 받아낸 짧은 키스. 오랜만에 할 일이 생겨서인지 잔뜩 들뜬 얼굴로 집을 나서던 네 얼굴이 떠올랐다. 현관문이 소리를 내며 닫힌 지 아직 일분도 채 흐르지 않았는데 벌써 보고 싶어졌다. 뒤 돌기만 해도 그리운 너라는 내 사랑. 휑하니 비어버린 네 운동화가 놓여있던 자리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너를 믿고 있었기에 허락했던 촬영이었다. 내 허락을 받아 한결 가벼운 마음인건지, 웃는 얼굴로 문을 나서던 너의 얼굴을 기억했다. 그 얼굴 그대로, 오늘 밤에 다시 내 품으로 안겨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랐다.
우현은 굳게 닫힌 문을 보고 서있었다. 불안한 마음을 애써 누르며 표정을 정리했다. 믿음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웃는 얼굴로 성규를 보내줬던 이유도 다 그 때문이었다. 성규가 명수의 곁에 서서도 지금처럼 아무 흔들림 없이 곧은 모습으로 있어주면 다행이겠지만, 그렇게 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더욱 내리기 힘든 결정이었고. 비록 성규를 위하는 마음으로 허락은 내렸다 한들, 떨리는 가슴을 아주 접을 수는 없었다. 우현의 곁으로 온지 얼마 안 된 성규였고, 또 명수의 곁에 꽤 오래 머물렀던 성규니까. 흔들릴 여지가 충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현은 성규를 믿어보기로 한 거다. 이만큼 보여줬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한 저의 사랑, 그에 답하는 성규의 마음은 어떨지. 그를 한번 믿어보기로 했던 거다.
“후우―”
긴장이 밀려오면서 입술이 바짝 말라오는 게 느껴졌다. 나도 바쁘게 나가봐야 했지만 복잡한 머리로는 도무지 걸음을 뗄 수가 없었다. 매니저의 독촉전화가 오기 시작한 건지, 주머니에서 요란한 진동소리가 들려왔다. 깊은 한숨과 함께 겉옷을 집어 들고 집을 나섰다. 저를 믿어달라는 듯, 간절했던 너의 눈을 다시 떠올리고. 살면서 처음 보았던 행복한 얼굴을 한 런웨이 위의 너도 떠올렸다.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만큼 온 몸이 바들바들 떨려왔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나는 괜찮다고 스스로 주문을 외웠다. 아무렇지도 않다는 거짓 위장으로 나를 숨겼다.
집을 나와서 매니저 형이 기다리고 있는 차로 올라타는 순간까지, 한시도 네 얼굴을 지워낼 수 없었다. 사람의 머리와 마음이 이렇게나 따로 놀 수 있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너는 이제 내 것이고, 또 너도 그렇다 했는데. 어째서 여유로운 마음보다 불안하고 안절부절 할 수 없는 마음이 더 큰지. 나조차 내 마음을 확실하게 알 수 없어서 잔뜩 인상을 구겼다.
“뭐야, 얼굴이 왜 그래.”
“그냥 좀. 컨디션이 별로네.”
“야, 네가 회복을 빨리 해야지. 그래야 회사 체면이 살지. 그간 펑크 냈던 거 다 땜빵 한다고 생각하고 얼른 기운 좀 차려.”
“응.”
좋지 않은 얼굴을 보고 매니저 형은 핀잔을 늘어놓았다. 자동차 시트로 몸을 묻고 눈을 감았다. 메이크업을 받으러가기 전까지 잠깐 눈을 붙이고 있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명치위로 무언가 얹힌 듯 갑갑하고 힘든 느낌. 규칙 적으로 뛰고 있는 심장위로 손을 얹고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너의 태도는 확실하게 변화가 있었다. 처음에 차마 떨쳐낼 수 없었던 김명수에 대한 죄책감은 그나마 좀 덜어낸 건지, 어느 정도 나를 보며 웃는 얼굴도 볼 수 있었다. 점차 말을 하는 횟수도 늘어가고 밤늦게까지 나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들까지. 내 사랑을 받는 대가로 나를 사랑해보려 노력하는 모습이 보여서, 말은 못했지만 고마운 마음도 들었다. 나는 여전했다. 시도 때도 없이 네가 보고 싶었고 곁에 있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언제든 원할 때에 들을 수 있는 너의 목소리. 눈치를 보면서 내 마음을 죽이고, 그러나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전화를 걸던 예전의 내 모습이 상상이 되지도 않을 만큼 나는 너에게 자주 전화를 걸 수 있었다. 어쩌면 당연하지만 기쁨을 참을 수 없는 일임은 확실했다.
성규는 주머니에 손을 넣어 들어있는 핸드폰을 꽉 쥐었다. 벌써 보고 싶어서.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 미동조차 없는 핸드폰을 가만히 쥐고만 있는데도 왜인지 모르게 그에게 마음이 가 닿는 기분. 우현은 가만히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우현의 손에 진동소리가 느껴졌다. 우현은 화들짝 놀라며 핸드폰을 확인했다. 성규에게서 온 메신저. 회사에 도착해 동우를 만났고 이제 곧 촬영장으로 출발한다는 내용이었다. 두려워하는 것도, 또는 설레어 하는 것도 같은 성규의 모습이 떠올라 실없이 웃음을 터뜨렸다. 키패드에 손을 얹고 숨을 고르기를 여러 번. 아랫입술을 꽉 깨문 우현은 천천히 답장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조심해서 촬영 하고. 혹시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연락하고.]
[응. 이따 전화 할게. -우리성규]
[성규야 사랑해.]
[나도… 우현아. -우리성규]
‘나도’― 이 단어에 너무 많은 뜻이 함축 되어 있어서 한참을 화면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도착했다는 매니저 형의 말에 정신을 차린 다음에 참을 수 없이 웃음이 나오는 걸 느꼈다. 어쩔 수 없는 나란 인간은, 너의 말 한마디에 이렇게 미친놈처럼 실없이 웃을 수도 있는 인간. 어디까지 열렸는지 가늠할 수도 없을 그런 너의 마음에 이렇게도 기대가 되고 흥분이 되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내 앞에서 네가 울던 날도, 헛구역질에 괴로워하다 내 품에서 울다 잠들었던 그 날도. 이렇게 가슴이 들끓었던 적이 없었는데. 꽤 힘찬 하루를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우현은 차에서 내려 가벼운 발걸음으로 샵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매일 보는 반가운 얼굴들을 향해 우현은 활기차게 인사를 건넸다. 여기저기에서 우현을 향해 손을 흔드는 사람들이 많았다. 곁에서 늘 그를 사랑해주는 수많은 사람들.
“안녕하세요!”
그리고 이제 앞으로, 우현과 함께 사랑을 할 성규. 우현은 그거 하나에 자신의 전부를 걸었다.
* * *
동우형의 말대로라면 회사에서 형을 만나 촬영장까지 함께 오는 것이 계획이었다. 그러나 언제나 늘 모든 것을 휘하에 둔 형은 오늘마저 자신의 마음대로였다. 약속시간보다 늦게 촬영장에 나타나 여유로운 웃음으로 스태프들을 향해 인사를 건네던 형. 애써 형을 피하고 있던 나에게도 어김없이 인사는 건네졌다. 오랜만이야, 김성규? 잘 지냈어? 정말 못 견딜 정도로 낯 뜨거운 인사. 내 어깨를 감싸 안아 오는 형의 품에서 살짝 피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네, 잘 지냈어요.
저를 피하는 것 같은 성규의 모습을 보고 미간을 구기던 명수는 이내 얼굴을 펴고 천천히 입 꼬리를 말아 올렸다. 지금의 상황을 즐기는 것 같은 명수의 모습을 성규는 바라보지도 못하고 있었다. 촬영 감독은 이번 화보의 컨셉과 함께 명수와 성규가 포즈를 취해야 할 간단한 사항들을 지시하고 있었다. 화보 사진을 찍음과 동시에 메이킹 필름도 함께 공개가 된다―는 감독의 말을 들으며 명수는 웃는 얼굴로 성규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우리 둘이서 다정다감한 모습을 연출해 내라― 뭐 이런 말씀이신가요?”
“응. 엘이랑 성규는 약간의 동성애 적인 느낌을 담아낼 거야. 과감한 스킨십도 좋고 필요하다면 서로의 몸에 터치를 하는 것도 망설이지 말고. 비밀스러운 연애의 현장. 그걸 담아내는 게 이번 화보의 컨셉이니까.”
“……….”
“성규씨? 표정이 왜 그래?”
감독의 말을 들으며 파랗게 질려가는 성규의 얼굴. 그를 보며 감독은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성규의 자켓 안으로 비집고 들어가 헐렁한 티셔츠를 말아 올리는 명수의 손을 아무도 보지 못한 건지, 허리에서 느껴지는 생경한 느낌에 성규는 얼굴을 굳히고 말았다.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티를 내지 않으려 입술을 앙다물고 있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 성규의 얼굴을 흘끗 본 명수는 웃으며 감독에게 대신 둘러댔다.
“아, 얘가 긴장을 잘하는 편이라서 그래요. 그래도 걱정 마세요. 카메라 앞에서는 또 돌변하는 게 매력인 친구니까.”
“그래. 엘씨도 잘 부탁해. 역시 믿고 있으니까.”
“믿어 주세요.”
넉살도 좋게, 이리저리 둘러대는 명수의 품에서 빠져나와 감독에게 인사를 한 성규는 코디네이터를 따라 의상실로 들어섰다. 코디가 내미는 의상을 받아 들어 커튼 뒤로 돌아가 옷을 갈아입기 시작한 성규의 옆으로 명수가 따라 들어왔다. 검은 민소매에 오버사이즈 니트. 어깨 너머로 흘러내리는 것을 유도한 것인지 목이 큰 니트에 자꾸만 성규는 옷을 추슬러 올렸다. 딱 붙는 스키니 진. 전체적으로 성규의 마른 몸을 잘 살려낸 옷이었지만 성규는 자꾸만 눈앞의 명수가 눈에 거슬렸다. 버버리 코트에 구두. 세련된 명수의 이미지와 잘 어울리는 옷을 입고서 명수는 너무 여유롭게 성규를 보고 있었다. 저를 지나쳐 가려는 성규의 팔을 붙잡아 앞에 세우고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왜 그래. 프로답지 못하잖아. 딱 봐도 오프 숄더인거, 모르겠어? 공과 사는 구분해야지. 그렇게 가리려고 들면 예쁜 몸매가 죽잖아. 내 옷을 펼쳐주며 자연스럽게 구김을 넣는 형의 손길을 가만히 받고 있었다. 누가 뭐라고 해도 패션업계에서는 엄지손을 치켜드는 사람이었으니까. 형의 말대로 공과 사를 구분해야 한다고 속으로 되뇌었다. 아무렇지도 않은 형처럼, 나 또한 아무렇지 않게 촬영을 진행해야 했으니까. 애써 끌어올렸던 어깨를 다시 드러나도록 옷을 정리해주고는 형은 만족스럽다는 얼굴로 웃었다. 이제야 예쁘네. 내 볼을 살짝 꼬집는 형의 얼굴과 그 미소를 보며 고개를 돌려버린 건, 잠깐 뛸 뻔 했던 죽여 버린 내 심장 때문에. 서둘러서 커튼 밖으로 나와 화장대 앞에 앉았다. 거울을 통해 내 뒤를 지나쳐 내 옆자리에 앉은 형 때문에 나는 급히 눈을 감아야 했다.
“오늘 성규 스모키 메이크업이네.”
“스모키요?”
“응. 시간이 좀 걸릴 거야. 오늘은 좀 여성스럽게 메이크업 해달라셔.”
“아….”
메이크업 아티스트 누나의 말에 감았던 눈을 잠시 떠야했다. 누나와 눈을 맞추고 있는 데도, 내 시선 속에 자꾸 형이 들어왔다. 나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 두 눈동자. 어떻게 시선처리를 해야 하나 갈등도 들었다. 그러나 곧 나보다 먼저 아이 메이크업을 받는 형이 고개를 돌려 눈을 감았다. 시선을 받아내는 것조차 힘이 드는데, 어떻게 촬영을 해야 하는 건지. 눈앞이 막막해져 한숨을 푹 내쉬었다.
메이크업과 헤어 손질까지 끝낸 성규는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하고 촬영장으로 나왔다. 블랙과 다크 그린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화려한 세트장이었다. 먼저 나와서 보다 자세한 촬영 내용을 듣고 있는 명수를 보고 성규는 천천히 다가갔다. 저의 옆으로 와서 서는 성규를 보고 명수는 조소를 흘렸다. 성규에게 과감한 표현을 부탁한다는 감독의 마지막 말을 끝으로 촬영이 시작되었다. 조명에 하나둘 불이 들어오고 메이킹 필름을 위한 카메라 필름도 돌아가기 시작했다. 긴장 해소를 위한 심호흡을 내뱉은 성규는 명수를 향해 꾸벅 목례를 했다.
“잘 부탁해요.”
“나도.”
세트장으로 위풍당당하게 걸어가 소품으로 놓인 와인 잔을 집어 드는 성규를 보며 명수는 피식 바람 빠진 조소를 흘렸다. 꽤나 당당한 모습에 명수도 놀란 모양이었다. 뒤따라 성규의 곁으로 가서 서 자연스럽게 포즈를 취하고 선 명수를 보며 성규는 고개를 내리 깔았다. 아랫입술을 꾹 깨물고 긴 호흡. 절대로 기죽지 않겠다는 성규의 무언의 다짐이었다.
형의 손 위에서 놀아날 바에야 차라리 내가 예상 못할 쪽으로 튀어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오히려 더 괜찮은 척 굴었다. 아마도 형은 형의 옆에서 벌벌 떠는 나를 기대하고 있겠지. 형의 성격이라면 어떻게 해서든지 나를 괴롭히고 싶어 할 거다. 감독의 촬영을 시작하겠다는 말과 동시에 화려한 조명이 내 얼굴로 쏟아졌다. 조금 더 자연스러운 포즈를 원하는 감독의 요구에 따라 형은 내 허리위로 손을 얹었다. 나 또한 아무렇지 않게 형의 어깨로 고개를 기댔다. 술 한 모금 입에 대지 않았지만 취한 것처럼. 나를 끌어당기는 형의 힘에 이끌려 형의 가슴팍에 이마를 기대고, 가볍게 와인 잔을 흔들었다. 만족스럽다는 감독의 표정. 최대한 괜찮아 해야 한다. 나의 모든 행동을 공과 사로 나누었을 때, 지금은 철저하게 사. 비즈니스 중이니까.
촬영은 무난하게 흘러가는 듯 했다. 연신 ‘좋아!’ 와 ‘오케이!’를 외쳐대던 감독이 촬영 소품을 바꿈과 동시에 얼굴을 구겼다. 옷을 갈아입은 명수와 성규가 나란히 앉아있는 곳은 고급스러운 소파 위였다. 흰 셔츠에 물이 빠진 청바지로 비슷한 스타일을 한 두 사람은 어색해진 분위기에 서로에게 등을 보일 뿐이었다. 소파에 앉은 명수와 그의 오른 쪽 팔걸이 위에 걸터앉은 성규. 성규의 허리를 끌어안고 제 쪽으로 당기는 명수와 그런 그에게 끌려가지 않으려 힘을 주는 성규, 이게 문제의 시발점이었다.
두 사람 왜 그래? 계속해서 잘 하더니 왜 갑자기 틀어져? 감독의 불호령에 두 사람은 고개를 숙였다. 참다못한 감독은 직접 세트장에 들어와 앉은 자리를 고쳐주기 시작했다. 소파에 어정쩡하게 앉아있던 명수를 소파위로 눕게 하고, 팔걸이에 걸터 앉아있던 성규를 끌어와 명수의 위로 엎드리게 했다. 전에 취했던 포즈보다 훨씬 농도 짙어진 포즈에 당황한 건 성규뿐만이 아니었다. 당황함에 미간을 구긴 명수는 감독을 노려보았다.
“이렇게 해줘도 내가 원하는 게 뭔지 모르겠어?”
“……….”
“섹스야, 섹스. 다 큰 사람들이 왜 얼굴을 붉히고 그래.”
“……….”
“최대한 자연스럽게. 꼭 몰래 하던 걸 들킨 것처럼. 조금 과감해도 좋으니까, 둘이서 뒹군다고 생각해.”
조언을 던져주고 간 감독을 보며 성규는 한숨을 내쉬었다. 명수는 제 위로 올라탄 성규를 올려다보며 미소 지었다. 이렇게 된 거, 제대로 하는 건 어때. 명수의 말에 눈을 내리깔며 그와 눈을 맞추는 성규. 그 모습에 플래시가 터졌다.
“좋아! 지금처럼! 자연스럽게 하면 돼! 카메라 있다고 의식하지 말고!”
만족스러운 듯, 높아진 감독의 목소리에 명수는 성규의 셔츠로 손을 뻗었다. 명수의 골반 위에 포개어 앉아 그의 가슴을 지그시 짓누르고 있던 성규는 주먹을 세게 쥐었다. 툭, 툭― 점점 벌어지기 시작하는 성규의 셔츠와 조금 씩 드러나는 하얀 속살. 상체를 조금 일으킨 명수 때문에 조금 더 가까워진 얼굴과 얼굴의 거리. 카메라 셔터가 닫히는 소리가 쉴 새 없이 들려왔다. 뭐하는 거에요? 조용히 내뱉어진 성규의 목소리에 명수는 입 꼬리만 말아 올렸다. 보면 모르겠어? 섹스 하잖아.
낮게 깔린 형의 목소리가 왜 이렇게 야하게 들리는 건지. 내 허리를 큰 손으로 감싸쥐는 형의 행동에 숨이 흐트러지고 있었다. 이러지 말아요. 그만 하고 싶어서 내뱉은 말이었다. 형의 어깨를 잡고 밀어냈다. 그에 플래시가 터졌다. 순간 반짝하고 터진 플래시에 형은 능청스럽게 웃었다.
“우리가 지금 어떤 행동을 취하든, 저 사람들 눈에는 다 좋은 포즈로 밖에 안보일거야.”
“……….”
“내가 여기서 무슨 짓을 해도, 좋은 포즈이자 결과물로 사진에 담기겠지.”
형의 굵은 목소리와 함께 내 한쪽 어깨가 드러났다. 내 허리를 끌어 당겨와 뒷머리를 자연스럽게 옭아매는 형의 손. 소름이 끼칠 정도로 익숙한 느낌이어서 나도 모르게 형의 목에 팔을 두르고 있었다. 잘하네, 김성규― 비꼬는 듯 비아냥거리는 형의 말투에 아차 싶은 생각도 잠시. 연신 터지는 카메라 셔터 소리에 나는 형을 마음대로 밀어 낼 수 없었다. 살짝 고개를 돌려 우리의 앞에 선 스태프들을 훑어보았다. 그들은 감탄에 젖은 모습이었다. 우리의 행동이 정말 좋은 포즈로 밖에 보이지 않는 건가. 김명수, 이 사람은 저들 앞에서 나를 발가벗기고 능욕할 수도 있을 사람이었다. 눈을 치켜뜨고 우리를 담은 카메라를 바라보았다. 찰칵― 그 찰나를 담은 카메라. 성규씨 좋아! 그리고 끝에 돌아오는 원하지 않던 칭찬. 그렇게 하면 돼. 우리가 침대에서 자주 하던 거, 그거 있잖아. 그때처럼만 하면 돼. 형의 저 말은 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지.
성규의 뒷머리를 끌어당겨 입술을 묻는 명수. 명수의 행동에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는 성규였다. 꽉 쥔 명수의 어깨와 손 안에서 잘게 구겨지는 셔츠. 성규는 눈을 질끈 감았다. 여기서는 이렇게, 고개를 젖히는 거야. 명수의 손에 이끌려 뒤로 젖혀진 성규의 고개. 살짝 실눈을 떠 바라본 천장은 잿빛이었다.
“너와 남우현이 하는 그거.”
“……….”
“정말 사랑이라고 생각해?”
혼란스러운 내 머릿속에 훼방을 놓는 형의 말들. 손을 들어 두 귀를 틀어막았다. 그러자 몸을 틀어 나를 소파 위로 눕히는 형. 형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촬영장 안의 사람들도 내심 놀란 눈치였다. 나를 짓누르며 내 목 언저리를 배회하고, 목 위로 뜨거운 숨을 내뱉는 형에 정신이 아득하게 멀어지고 있었다. 다시 잘 생각해봐 김성규. 그게 정말 사랑이라고 생각해? 형의 주문 같은 읊조림에 나는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셔터소리가 조금 더 빨라지고 있었다. 성규의 손을 집어 들어 제 셔츠 단추를 쥐게 하는 명수. 그의 과감한 행동에 촬영장 안에 정적이 맴돌았다. 성규는 우는 눈과 웃는 입의 대조적인 표정으로 단추를 풀어 내렸다. 드러나는 탄탄한 가슴에 성규는 소리내어 웃고 말았다. 오른쪽 가슴위로 정확하게 새겨진 누군가의 키스마스. 어젯밤도 분명 그사람과 보냈다는 걸 몸소 보여주고 있었다. 이쯤되자 구차해지는 기분까지 들어버린 거다. 성규는 고개를 틀었다. 그러자 성규의 셔츠 밑으로 손을 들이밀며 목에 입술을 묻는 명수. 성규는 팔다리를 축 늘어뜨렸다. …언제나 그랬듯.
“김성규, 다시 한 번 물어.”
“……….”
“사랑이라고 생각해?”
“……….”
“남우현이 정말 널, 사랑한다고 생각해? 그리고 너도 남우현을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해?”
“……….”
“정신 차려. 그거 사랑 아니야.”
“……….”
“과거에 나를 사랑했던 것에서 봤듯, 네사랑은 그런 게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잖아.”
나의 입술 가까이로 옮겨지는 형의 입술. 거의 닿을 뻔 한 거리에 왔을 때, 셔터가 눌러지고 감독은 급히 ‘그만’을 외쳤다. 망설임 없이 내 배위에서 내려오는 형.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소파위에서 일어선 형을 보고, 나는 넋을 놓아버렸다.
“이번을 마지막으로, 우리가 다시는 볼 일이 없을거라고. 그런 어리석은 생각을 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
“나랑 다시 생각해. 앞으로 이런 기회야 만들면 수백 번도 만들 수 있으니까.”
풀어진 셔츠 단추를 잠그며 내게 했던 말. 왜 그 말에 왈칵 울음이 나버렸던 걸까. 아무 표정 없이 다른 기회를 주겠다던 형의 멀어져가는 뒷모습을 보면서 나는 얼굴을 가려 울어버리고 말았다. 사람 많은 촬영장에서 부끄러운 줄 모르고 엉엉 울어버리고 말았다.
“하으…흐윽―”
…심장이 뛰었어. 네가 그렇게 믿고 보내줬던 내 죽은 줄 알았던 심장이, 형의 미소에 다시 덜커덩― 움직이고 말았어.
사랑하는 내사랑 그대들 |
샐러드 / 라라 / 마르 / 몽림 / 냐옹이 / 사인 / 오일 / 롱롱 감성 / 텐더
지난 회에 댓글을 달아주신 내사랑들*_* 내가 너무너무 사랑하고 고마워 하고 있는 거 알죠? 그 밖에 암호닉 없이 댓글 달아주신 그대들도 너무 고맙고 사랑합니다ㅠㅠ 내가 다 기억하고 사랑할거야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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