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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피칼 러브 (Tropical Love) 作. DD 박찬열은 몇 주 전 자기가 마이클 조던 뺨을 후려갈길 정도로 농구실력을 키워놨다며 되도 않는 허세를 부리다 오른쪽 다리를 다쳤다. 그때 나는 아저씨에게 전화해 박찬열이 다리를 다쳐 병원에 가야 할 것 같다고 말했었고 아저씨는 5분 이내로 차를 보내겠다고 말하신 뒤 전화를 끊었었다. 잠시 후 우리는 아저씨 말씀대로 공설운동장 입구 앞으로 3분 만에 도착한 검은색 벤츠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박찬열은 차에 타자마자 죽네사네 고래고래 악을 쓰며 칭얼거렸고 나는 아직 주둥이 열고 나불거릴 힘은 있는 거 보니 많이 다친 것은 아니라고 결론을 내리곤 엄살 부리지 말고 입 다물라며 박찬열의 옆구리를 퍽퍽 쳐댔었다. 병원에 도착해서 박찬열은 절뚝거리는 와중에도 내 볼따구에 자기 볼따구를 사정없이 비비며 검사실 문 앞에서 뻐팅기다가 기어코 나에게 뒤통수를 한 대 쳐 맞은 뒤 검사를 받으러 들어갔다. 결과는 오른쪽 다리에 금이 갔다는 것. 내가 박찬열을 좀 미워하긴 한다지만 명색의 애인이니 적어도 다리몽둥이가 부러진 건 아니라 다행이다, 라는 생각이 들긴 했었다. 어쨌든 간에 이것은 처음에도 말 했듯이 분명 몇 주 전 일이다. 그런데, “물 떠다 줘.” “미쳤냐.” “나 다리 아프잖아.” “깁스 푼 지가 언젠데.” “자꾸 매정하게 군다.” “애인 부려먹어서 좋겠다, 미친놈아.” 우리 사랑스러운 찬열이는 몇 주 전에 다리 다친 걸 왜 지금까지 우려먹는 건지 모르겠다. * * * 박찬열은 20살, 고등학교 3학년이다. 무슨 개소린가 싶겠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박찬열은 고등학교 2학년 때 한번 유급을 당했었다. 그렇다고 박찬열이 뭐 우리 동네를 주름잡는 일진짱이라 사고를 있는 대로 치고 다녀서거나 공부를 더럽게 못해서 진급을 못한 경우는 아니었고, 유학을 다녀와서 그렇다거나 뭐 그런 것도 아니었다. 박찬열이 유급을 당하게 된 이유는 그저 출석일수 때문이었다. 박찬열은 선천적으로 게으름 병을 가지고 태어난 애 마냥 게으름의 표본이 되는 행동들을 혼자 다 하고 다녔는데 학교를 다닐 때도 내가 데리러 가지 않으면 퍼질러 자다가 학교를 빼먹기 일쑤였다. 그런 식으로 잠 때문에 혹은 교복 입기가 귀찮아서 등등 말 같지도 않은 이유로 학교에 나온 날보다 빠진 날이 더 많아진 사태에 이르러 급기야 유급 수준이 아니라 퇴학을 당할 뻔 했었다. 그리고 나는 이때 고등학교 2년 내내 사귀며 처음으로 박찬열이 정말 부모 잘 만난 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까놓고 말하자면 박찬열네 집은 부자다. ─아, 물론 나는 박찬열 배경을 보고 사귄 게 아니다. 게다가 나를 먼저 꼬신 건 박찬열이니 나는 아주 결백하다.─ 우리나라에서 알아주는 기업의 회장님이신 박찬열네 아버지는 당연한 수순처럼 이사장에게 돈을 찔러주며 박찬열의 퇴학을 막아냈다. 물론 이건 나와 박찬열 그리고 이사장과 아저씨만 아는 비밀이다. 아마 아저씨는 우리 학교가 사립이 아닌 공립이었다고 해도 박찬열의 퇴학을 막아냈을 것이다. 아저씨는 천하무적이니까. 아, 그리고 박찬열은 그날 곱게 자지 못했다. 집에 와서 골프채로 죽도록 얻어 터져서 내가 밤새 연고를 발라줬을 정도니. 그러니까 평소에 내 말을 들으면 좀 좋아. 나는 맞기 싫어 도망 다니는 박찬열과 박찬열을 쫓아가는 아저씨가 가장 잘 보이는 명당자리에 앉아 아저씨의 진심 어린 말씀을 귀담아 들었다. 「우리 백현이 반만 닮아 봐라, 이 망할 놈아. 내가 너 때문에 쪽팔려서 얼굴을 못 들고 다녀!」 「아버지 웃긴다. 우리 백현이? 왜 백현이가 우리 백현이야, 내 백현이지.」 「네가 아직 덜 맞았지? 너 이놈의 자식 이리와.」 「아, 아버지 잘못했어. 알았어, 우리 백현이 하자, 골프채 좀 치워… 악! 아파! 아프다고!」 「아파? 아프라고 때린 거야 이놈아.」 아저씨 나이스 샷! 나는 백번 옳은 아저씨의 말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고개를 끄덕거렸었다. 그리고 이날로써 진정 우리 게으른 찬열이는 20살이면서 고등학교 3학년이 된 것이다. 하지만 5월 달인 지금 박찬열은 여전히 학교를 밥 먹듯이 빠지며 대학생인 나의 스케줄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 “멍멍아 오빠 목말라 죽는다.” “가고 있잖아, 병신아.” “진짜 말투 개 싸가지 없다.” “그럼 헤어지든가.” “쳐 돌았지, 니가.” 박찬열이 내가 건네는 물 컵을 받고 한 모금 마신 뒤 술이라도 먹은 것 마냥 인상을 잔뜩 쓰고 자기 오른쪽 허벅지를 툭툭 두드렸다. 나는 그 의미가 뭔지 알았으나 못 본 척 하고 박찬열 맞은편에 앉았다. 거실 한가운데 놓여있는 널따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양반다리를 한 채 앉아있는 우리는 한참이나 말이 없었다. 사실 방금 전까지 아무렇지 않은 척 평소대로 행동 했지만 우리는 지금 아주 심각했다. 아니, 우리라기 보단 박찬열이 아주 심각했다. 박찬열이 저번 주 4일 동안 중간고사를 봤는데 어떻게 된게 50점을 넘는 과목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수학은 지지리도 못하면서 나를 따라 이과에 온 박찬열은 같이 학교 다닐 때 그나마 라도 하던 공부를 내가 졸업하며 완전히 놔 버렸다. 그런 와중에 학교마저 자주 빠져버리니 머리에 든 게 없는 것이 당연했고, 50점 넘는 과목이 없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다. 말했다시피 박찬열네 집은 좆나게 잘살고 공부 좀 못해도 아마 평생 먹고 살수는 있을 정도는 될 거다. 진짜 중요한 것은 아저씨, 그러니까 박찬열네 아버지다. 몇 주 전 박찬열 다리에 금이 갔을 때 담임선생님과 통화를 했던 아저씨는 박찬열이 최근 한 달 동안 보름정도 학교를 빠졌다는 사실을 듣고 박찬열을 두드려 패려고 했었다. 하지만 맞지는 않았다. 내가 그래도 아픈 앤데 말로 하시라고 사정을 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박찬열은 맞지 않은 대가로 아저씨와 약속을 했었다. 모든 과목 70점을 넘기로, 그러지 못 할시 오늘 못 맞은 거 두 배로 맞기로. 당장 맞는 게 두려웠던 박찬열은 발로 풀어도 70점은 넘는다며 큰소리를 뻥뻥 쳐댔었고 아저씨는 이를 갈며 서재로 들어 가셨었다. 조금 걱정 되는 마음에 내가 과외도 해준다고 했지만 박찬열은 나한테 배울게 뭐가 있냐면서 온갖 욕지거리를 해대며 거부했었다. “박찬열아.” “왜.” “미리 애도할게 니 미래.” “시발년.” 나는 애인 대신 맞아 줄 만큼 드라마틱한 놈도 아니고 칼과 잉크 펜을 고쳐들고 성적표 위조를 해줄 만큼 간 큰 놈도 아니다. “아버지 완전 빡친거 같으면 니가 좀 말려줘, 울 아버지 너한테 끔뻑 죽잖아.” “아빠한테 빡친게 뭐냐 빡친게, 넌 쳐 맞아도 싸 미친놈아.” “말투 봐, 진짜 개 싸가지.” “니가 더하면 더했지 나보다 덜하진 않어.” 내가 그렇게 말하고 노려보자 맞서 노려보던 박찬열이 별안간 상체를 쭉 펴고 내 쪽으로 다가와 입에다 뽀뽀를 했다. “작별 키스야.” “그러든가.” “끝까지 매정한 년, 나 쳐 맞다가 죽으면 다 너 때문이야.” 왜 나 때문이야, 무식한 니 돌대가리를 탓해야지. 그렇게 말하려다가 참았다. |
DD |
이런 저급한 글에 구독료를 거는건 독자들한테 죄짓는 기분이라 안 겁니다. 그리고 짧고 별 내용 없는 거 같은 기분은 그대들의 착각이 아니에요... 1편이라 그런거라 칩...시다. 하하하 |